미술

행복을 그린 화가, 르누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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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소확행’을 찾으셨나요? ‘소확행’은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소박하면서도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이런 ‘작은 행복’이 몇 년 전부터 진짜 행복으로 대두되기 시작했고, 유행처럼 번져 가장 중요한 트렌드로 꼽히기 까지 했었죠. 이 소확행의 가치를 일찌감치 알고 소소한 행복으로 그림을 가득 채웠던 화가가 있어요. 바로,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1841-1919)’입니다. 그는 자신이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일상들, 지인들과의 식사 시간이나 공원에서의 평화로운 한때, 또는 숙녀들의 아름다운 모습 등을 화폭에 담아내었는데요. 이런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상의 단편들이 어떻게 그의 손을 거쳐 ‘행복’으로 바뀌었던 것일까요?

 

르누아르의 대표작 <그네> (1876) Ⓒ위키피디아

르누아르, 새로운 바람을 불어온 괴짜

  1841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르누아르는 어려서부터 그림과 노래에 큰 재능을 보였어요. 하지만, 형편이 어려워 13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도자기 공장의 견습생이 되어 돈을 벌어야 했죠. 이런 환경에서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종종 집 근방의 루브르 박물관을 찾아가 전시된 그림들을 따라 그려보곤 했던 것뿐이었어요. 그의 그림은 누구나 깜짝 놀라게 할 만큼 훌륭한 수준이었죠. 그의 그림 실력을 범상치 않게 여긴 공장 주인은 가족들에게 이를 알렸고, 결국 그는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 국립 미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어요.

 

 르누아르의 자화상(1876) Ⓒ위키피디아

  학교는 그에게 배움 그 이상의 것을 선사했어요. 르누아르는 스승 ‘샤를 글레이르(Charles Gleyre.1806-1874)’에게 미술을 배우기 시작했는데요. 이곳에서 ‘알프레드 시슬레(Alfred Sisley.1839-1899)’, ‘장 프레데릭 바지유(Frédéric Bazille.1841-1870)’, 평생의 친구였던 ‘클로드 모네(Claude Monet.1840-1926)’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죠. 당시에는 실내의 아틀리에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당연시 되었었지만, 이들은 밖으로 나가 풍경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것에 더 흥미를 느꼈던 괴짜들이었어요. 그들은 함께 나가 같은 주제의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La Grenouillere> 르누아르(1839) Ⓒ구글
<La Grenouillere> 클로드 모네(1839) Ⓒ구글
르누아르가 그린 클로드 모네의 초상 (1875) Ⓒ위키피디아

인상주의 화가! 그런데 이제 … 인물을 그립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의 작품을 세상에 선 보일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르누아르와 모네, 시슬레 등은 함께 ‘앙데팡당 전'을 열게 되었어요. 앙데팡당 전은 전통적인 화풍에 맞선 새로운 흐름의 그림들을 전시하는데요, 마침내 르누아르 일당의 인상주의 회화가 최초로 이곳에 전시된 것이에요. 그러나 19세기 이전의 주류 화풍에서 벗어난 그들의 그림은 혹독한 비난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래도 르누아르의 작품은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당시의 전통적인 그림의 소재에서 벗어나 풍경을 주 소재로 삼았던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는 달리, 그는 인물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었어요. 아마 대중들은 그의 인상주의적 화법이 새롭지만, 아주 낯설지는 않다고 느꼈을 거예요.

 

앙데팡당 전에 출품한 작품 <특별관람석> (1874) Ⓒ위키피디아

  하지만 여느 인상주의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르누아르역시 가난하고 힘든 생활을 이어나가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르누아르는 계속해서 색체의 모호성을 이용한 따뜻한 느낌의 인상주의 그림들을 그려나갔어요. 1879년, 그가 본격적으로 유명 화가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는데요. 당시 르누아르의 후원자이자 그림 수집가였던 샤르팡티에부인과 그녀의 자녀들을 그린 그림, ‘샤르팡티에부인과 그 딸들’이 좋은 평가를 받기 시작하면서 부터였어요. 마침내 그는 성공적이고 세련된 화가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샤르팡티에부인과 그 딸들. 1878 Ⓒ위키피디아.

나른한 행복의 풍경을 그려내는 화가

  예술계에서 냉대를 받던 인상주의 그림이 어떤 매력으로 대중을 사로잡았을까요? 그의 그림이 가진 특징이 몇 가지 있습니다. 채도가 높은 색상을 사용했음에도 색상을 아주 조화롭게 사용하여 부드러운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작품의 전반에서 따스한 햇살의 기운을 느낄 수 있으며, 여성들을 무척 우아하고 부드럽게 묘사하죠. 또한 일상의 즐거운 한때를 들여다 보는듯한 주제가 자주 등장하는데요. 이런 밝고 따스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행복감과 평화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하품 한번 쩌억 나올 만큼, 나른해지기도 하고요.

 

물랭 드 라 갈레트 무도회(1876) Ⓒ위키피디아
 보트 파티의 오찬(1880-1881) Ⓒ위키피디아

  이러한 화풍은 당연히, 르누아르의 성격에서부터 비롯되었는데요. 르누아르는 평소에도 ‘안 그래도 불쾌한 것이 많은 세상인데 아름답지 않은 것을 그림으로 그릴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으로, 아름답고 따뜻한 그림을 그리는 것에 큰 의미를 두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의 한평생동안 한 사람만을 사랑했으며, 자식들에게는 무척이나 자상한 아버지였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의 그림에 대한 철학과 신념, 그리고 그의 온화하고 따뜻한 성격이 이렇게 행복한 그림들을 탄생시켰던 것이죠.

 

부지발의 춤(1882-1883) Ⓒ위키피디아
이렌느 깡 단베르 양의 초상(1880) Ⓒ위키피디아

  여러분은 르누아르의 그림에서, 행복을 찾으셨나요? 아니라면, 행복까지는 아니라도 왠지 모르게 기분좋은 느낌이 들진 않으셨나요? 과연, 행복을 그리는 화가라 불릴만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느루아르가 이렇게 늘 행복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아름답지만은 않은 삶에서 작은 기쁨조차 무심코 흘려보내지 않으려했던 그의 의지덕분 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곁에있는 사소한 즐거움들은 뒤로한 채, 어딘가에 있는 큰 행복만을 쫓고 있진 않나요? 르누아르의 그림들과 함께한 오늘 이 글이 여러분에게 또 하나의 소확행이 되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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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11-29

키워드

#미술 #르누아르 #인상파 #인상주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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