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정말 천재 화가 맞나요, 피카소

  • 2,651
  • 0
  • 글주소

  천재와 둔재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때론 그 경계가 애매모호해 보입니다. 특히, 정해진 답이 없는 예술계에선 더욱 그렇죠. 입체주의의 거장, 피카소에 대해서도 이런 의구심을 품고 있는 분들이 계실 거예요. 그가 엉뚱하게 그림을 그렸기에 천재라고 불리는 것은 아닌가 하고요. 입체주의를 표방하는 피카소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신체의 일부분이 생략되었거나 혹은, 말도 안 되게 몰려 붙어있는 괴상한 모습인데요. 그의 실제 그림 실력은 정말 뛰어났을까요? 피카소는 12세 때 본인 스스로 자신이 라파엘로만큼 그렸다고 자부할 수 있었고, 15세 때에는 이미 거장 반열에 오를 정도로 고전 미술을 완벽하게 구사했다고 해요. 그럼 왜 피카소는 굳이, 그처럼 난해하고 괴상한 그림을 그렸을까요? 

 

15세의 피카소가 완성한 유화. 첫 성찬식(La premiere communion) ⓒPablo Picasso, 1896

 

피카소의 유년시절

  피카소는 1881년 스페인 남부 ‘말라가(Málaga)’ 지역에서 태어났어요. 피카소는 화가이자 미술 교수였던 아버지 ‘호세 루이즈(José Ruiz y Blasco, 1838-1913)’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어요. 그는 어려서부터 미술과 아주 가까운 삶을 살았는데요. 어린 아기였던 피카소가 처음 말한 단어가 ‘연필’을 뜻하는 스페인어 ‘lápiz’의 줄임말 인 ‘piz’이었다고 하는 일화가 있습니다. 호세는 어린 피카소에게 천재성이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아차렸어요. 그는 단지 7세였던 아들에게 인물화와 유화를 가르치기 시작했죠.

 

피카소의 아버지 호세의 그림. 비둘기 무리 ⓒJosé Ruiz y Blasco. Wikimedia Commons.

 

  그리고 마침내, 피카소가 13살이 되던 해에, 호세는 피카소가 자신을 능가하기에 충분한 그림 실력을 갖고 있다고 판단했어요. 그리고 서둘러 피카소를 마드리드의 명문 미술학교인 ‘리얼 아카데미아(Real Academia de Bellas Artes de San Fernando)’에 입학시켰습니다. 하지만 피카소는 아버지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피카소는 딱딱한 규칙에 얽매여 그림을 배우는 것보다는 거리로 나가 풍경을 보며 자유롭게 그림을 연습하는 것을 원했어요.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피카소는 19세가 되자, 절친한 친구들과 함께 예술과 자유로 가득한 파리로 떠났습니다.

 

청색시대와 장미시대

  1901년, 스무 살의 피카소를 큰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벌어집니다. 아주 가까운 친구였던 ‘카사헤마스(Carles Casagemas, 1880-1901)’의 자살이었는데요.. 이 사건으로 피카소는 한동안 깊은 우울감에 빠져있었습니다. 때문에 당시 그의 작품 대다수는 가난과 고난과 같은 주제를 다루었고, 수척한 인물들이나 매춘부, 거지와 같이 소외되고 어두운 면을 가진 인물들이 자주 등장했어요. 푸른 안개라도 끼어있는 듯, 푸른색과 청록색으로 채색하여 침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는 배가되었죠.  

 

청색시대 피카소의 대표작. 인생 (La Vie). ⓒPablo Picasso, 1903. Wikimedia Commons.


  그러던 피카소의 화풍이 1904년, 또다시 극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요. 바로 연인인 ‘페르난드 올리비에(Fernande Olivier, 1881-1966)’를 만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올리비에와 사랑에 빠진 피카소는 그녀와의 장밋빛 인생을 꿈꿨던 것일까요? 그는 우울증을 극복하고 낙관적이고 밝은 분위기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당시 그의 작품에는 곡예사와 할리퀸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주황색이나 분홍색 색을 이용해 명랑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담아내었어요.  

 

장미 시대 피카소의 대표작. 라펭 아질에서. Au Lapin Agile ⓒPablo Picasso, 1904. Wikimedia Commons.
 

 

입체주의의 시작

  이러한 피카소의 작품들은 미국의 미술 수집가이자 작가였던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 1874-1946)’과 ‘레오 스타인(Leo Stein, 1872-1947)’의 눈에 띄었어요. 피카소의 그림을 알아본 거트루드 스타인은 피카소의 후원자가 되기를 자처했죠. 당시 이들은 미술계에서 큰 역량을 발휘하던 인물이었는데요. 덕분에 피카소는 점차 이름을 알리게 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스타인이 주최한 모임에서 평생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앙리 마티스(Henri Émile-Benoit Matisse, 1869-1954)’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호적수는 서로의 성장을 위한 자양분이 되기도 하죠. 마티스가 선보였던 야수파 작품들의 강렬한 색감은 피카소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어요.

 

앙리 마티스의 대표작. 모자를 쓴 여인. ⓒHenri Émile-Benoit Matisse, 1905. Wikimedia Commons.


  스스로를 늘 마티스와의 경쟁구도에 올려놓았던 피카소는, 또 한 번 이전까지와는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릅니다. 아프리카 예술과 폴 세잔의 영향이 컸는데요. 피카소는 아프리카의 조형적인 예술성과, 세잔이 추구했던 색면의 구성에 깊이 매료되었어요. 그 고뇌의 결과로 탄생한 작품이 ‘아비뇽의 처녀들’입니다. 이 작품은 현재 피카소의 대표작으로 꼽히지만, 완성했을 당시에는 아주 혹평을 받았던 작품이에요. 여러 각도에서 본 모습을 한 화면에 담아내어 괴상하기 짝이 없죠. 그의 그림을 처음 본 그의 예술가 친구들조차 모두 경악했다고 해요. 아마도 이 한 사람만 제외하고서요.

  피카소의 친구인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그는 ‘아비뇽의 처녀들’에서 강력한 인상을 받았어요. 이후 피카소는 조르주 브라크와 함께 입체주의를 만들어 내죠. ‘색’을 최소화하고 ‘모양’에 집중하는 것이었는데요. 물체를 분해하고 모양에 따라 분석하여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실험은 점점 더 세분화되어 결국, 원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작품이 등장하기도 했죠.

 

입체주의의 시작을 알린 피카소의 대표작 ‘아비뇽의 처녀들’ Les Demoiselles d'Avignon ⓒPablo Picasso, 1907. Wikimedia Commons.

 

신고전주의와 초현실주의

  피카소라고 해서 입체주의 작품만 그렸던 것은 아니에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는 극단적인 전위 예술을 거부하고 대신에 전통의 예술로부터 영감을 얻자는 ‘질서로의 회귀’라는 운동이 일기 시작했는데요. 이러한 영향으로 피카소 또한 입체주의적 작품보다는 고전주의적 양식의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피카소는 다시 입체주의로 돌아와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됩니다. 당시 피카소는 다년간 ‘호안 미로(Joan Miró i Ferrà. 1893-1983)’의 초현실주의 작품에 푹 빠져있었는데요. 초현실주의와 입체주의를 함께 작품에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이 시기의 작품에서는 그동안 피카소의 작품에 모티브로 사용된 할리퀸이 사라지고, 초현실주의의 상징으로 일부 사용되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소 머리에 인간의 몸을 한 괴인 미노타우로스가 등장합니다. 이 시기의 작품으로는 피카소의 또 다른 대표작인 ‘게르니카’가 있습니다. 1937년,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그린 것인데요, 그림에서 피카소의 분노가 느껴지시나요? 전쟁의 참혹함과 공포가 입체파 화풍을 통해 생생하게 표현되었어요.

 

게르니카 Guernica ⓒPablo Picasso, 1937. Wikimedia Commons.


  당시의 예술은 사진의 발명과 함께 ‘그저 보이는 대상을 똑같이 캔버스에 옮기는 것에 의미가 있는가?’라는 의문을 품던 시기였습니다. 변화와 새로움의 싹이 움틀 기반이 마련된 것이지요. 그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이어져온 고전 미술의 개념에서 벗어나, 사물을 분해하고 재구성하여 표현하기 시작하며 ‘입체주의’라는 싹을 틔웠습니다. 그의 작품 활동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일생을 통해 계속 변화하며 새로움을 추구했고요. 그의 이런 노력들은 현대 미술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그가 ‘천재’라 불리는 이유이죠. ‘둔재’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의 엉뚱한 그림들, 그 단순함 아래엔 그의 치열한 고민과 새로움을 향한 열정이 얽히고섥혀 있었습니다. 마치 아이들의 장난 같아 보이기도 했던 그의 그림들에서, 이제 그 깊이와 무게가 느껴지시나요?

 

 


참고자료
 - 최례행. 『피카소와 초기 입체파와의 관계』. 숙명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88.6
 - Wikipedia. 『Pablo Picasso』
 - 조원재. 『방구석 미술관 1』. 블랙피쉬. 2018.08.03

지금 로그인하시면
하루예술의 모든 콘텐츠 열람이 가능해집니다!

등록 : 11-10

키워드

#미술 #피카소 #입체주의 #청색시대 #장미시대 #신고전주의 #초현실주의

이야기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