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초월한, 슈만과 클라라, 브람스의 러브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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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랑 타령이야?” 멜로 드라마나 영화, 책을 보면서, 혹은 노래를 들으면서 이런 불평을 해보신 적이 있으시죠? ‘사랑’을 소재로 하는 작품은 진부한 듯 느껴지지만, 또 이만큼 유행을 타지 않고 사람들의 꾸준한 관심을 받는 소재도 없습니다. 클래식 음악가 중에도 ‘사랑’을 소재로 작품을 남긴 이들이 많은데요, 그 중에서도 낭만주의를 이끌었던 슈만과 클라라, 브람스의 러브스토리는 아직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강렬했습니다. 그랬던 그들의 사랑은 과연 어떤 결말을 맺게 되었을까요?
슈만과 클라라의 만남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이 훗날 그의 부인이 된 클라라(Clara Wieck, 1819~1896)를 만난 것은 그가 라이프치히(Leipzig) 대학의 법대생이었을 때였어요. 슈만은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지만, 그의 부모님은 슈만이 법대에 진학하길 원했어요. 음악가라는 직업이 경제적 안정성을 보장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법대에 진학한 슈만은 다른 작곡가들과는 달리, 비교적 늦은 나이에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첫 작품인 아베그 변주곡(Variations on the name“Abegg”, Op.1)이 그의 나이 20세인 1830년에 작곡되었으니 말이지요.

슈만은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비크(Friedrich Wieck, 1785~1873)의 제자로 들어갔는데요. 그곳에서 스승의 딸 클라라를 만나게 됩니다. 이 둘은 서로에게 첫눈에 반한다거나 하는 운명적인 사랑은 아니었어요. 그때 슈만의 나이는 18세였고, 클라라는 겨우 9세였거든요. 그 후, 슈만과 클라라는 10년간 서로 좋아하는 감정을 키워가다 결혼까지 생각하게 되었죠. 스승 비크는 둘의 결혼을 완강히 반대했어요. 자신의 딸인 클라라는 이미 유명한 천재 피아니스트 소녀였던 반면에, 늦깎이 제자 슈만은 장래성이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죠.
비크는 둘을 떼어놓기 위해 고심했어요. 그는 연주여행을 명분삼아 클라라를 잠시 슈만에게서 떼어놓는데 성공합니다. 클라라가 떠나던 날, 슈만은 그녀를 껴안고 키스를 해주었죠. 비크의 예상과는 다르게 이 키스로 인해 클라라는 어떤 운명적인 확신을 얻게 됩니다. 그날 클라라는 이렇게 일기를 썼어요. ‘당신이 처음으로 나에게 키스를 해주었을 때 나는 실신하는 것 같았습니다. 눈앞이 깜깜해져서 손에 들고 있던 램프를 떨어뜨릴 뻔했습니다.’ 결국 슈만은 클라라와 결혼하기 위해 비크를 상대로 소송을 하게 됩니다.
슈만과 클라라의 결혼생활

1840년은 슈만이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았던 해입니다. 재판에서 승소하고, 드디어 사랑하는 클라라와 결혼을 했으니까요. 얼마나 행복했던지, 슈만은 그 해에 가곡을 무려 140여 곡이나 작곡했습니다. 사랑의 힘이라 할 수 있을까요. 주로 <시인의 사랑>이나 <여인의 사랑과 생애>와 같은 사랑 노래가 대부분 이었으니 말입니다. 클라라도 결혼한 날이 자기 생애의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고 고백했죠. 그러나 비크는 자신의 딸이 무일푼의 괴팍한 작곡가에게 자신을 던져버렸다고 비탄하면서 슈만이 술주정꾼이라는 루머를 퍼뜨리고 다녔어요. 그로부터 3년이 지나서야 비크와 슈만은 비로소 화해할 수 있었는데요. 슈만이 음악가로서 서서히 이름을 날리기 시작할 때였죠.
한차례의 위기를 극복한 그들에게 찾아온 행복했던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어요. 뛰어난 재능을 가졌던 클라라는 하는 연주공연 마다 대성공을 거두어 국제적 명성을 얻었습니다. 반면에 슈만은 사회적으로 잘 적응하지 못했어요. 그의 가족들은 유전적으로 정신병의 이력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자신 역시도 ‘미치지 않을까’하는 걱정에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야했죠. 슈만은 뛰어난 재능을 두루두루 갖추었던 덕분에 지휘자, 교수, 편집장 등의 여러 일을 맡았어요. 하지만 결국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모두 사임하게 됩니다. 이런 슈만에게 클라라는 적잖이 실망했을 만도 한데요. 하지만 클라라는 남편을 보호하고 지지하는 쪽을 택했어요. 그녀는 슈만이 해야 했으나 해낼 수 없었던 일들, 음악감독 및 리허설등을 대신하곤 했죠. 클라라의 이런 사랑에도 슈만은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자신보다 더 유능한 클라라에 대한 열등의식으로 괴로워하곤 했습니다.
브람스와의 만남

1953년의 어느 날, 무명의 피아니스트였던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가 슈만을 찾아왔습니다. 슈만은 브람스의 피아노 연주를 듣자마자 그의 장래성과 천재성을 알아보았어요. 슈만은 자신이 편집장으로 있던 <음악신보(Neue Zeitschrift für Musik)>에 ‘새로운 길(Neue Bahnen)’이라는 제목의 글로 브람스를 대중에게 알렸습니다. 이를 계기로 사제지간이 된 슈만과 브람스, 천재 피아니스트 클라라는 서로에게 음악적 영감을 주고받으며 가까워졌고, 머지않아 가족과 같은 친밀한 관계가 되었어요.
이쯤에서 삼각관계를 의심해 보셨다면, 맞습니다. 브람스는 클라라를 흠모하게 되었어요. 클라라는 브람스보다 나이가 무려 14살이나 많은 연상의 여인이었는데요. 브람스에겐 14년이라는 나이차이가 큰 문제는 아니었을 거예요. 브람스의 어머니도 아버지보다 17세나 많았으니까요. 클라라는 브람스가 꿈꾸던 여성상이었고, 브람스의 곡을 가장 훌륭하게 연주해 냈던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이었습니다. 브람스는 그녀를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었죠.

그 사이, 슈만의 상태는 갈수록 나빠져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상태였습니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2년을 아주 비참하게 보냈어요. 대화 기피증이 심했던 슈만은 혼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고, 아니면 하루 종일 멍하니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죠. 가족들에게 짐이 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자신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갔지만 라인강에 투신해 겨우 목숨을 건지기도 했고, 환청과 언어장애로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46세의 슈만은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칩니다.
클라라와 브람스의 보이지 않는 사랑
남편과 사별한 클라라와 그녀를 사랑한 브람스, 이 둘의 관계는 어떻게 됐을까요? 클라라와 브람스는 슈만의 사후 40여 년을 더 살았는데요. 그들의 관계는 이전과 변한 것이 없었어요. 클라라는 8명의 아이들과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며 연주 여행을 다녀야 했죠. 남편의 음악을 연주하며 슈만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브람스는 클라라를 그저 곁에서 지켜봐야 했어요. 클라라를 짝사랑 했던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곤, 그녀가 연주여행을 떠나 엄마의 자리를 비울 때면 그녀대신 아이들을 돌보아 주는 것뿐이었죠.
아슬아슬하면서도 아련한 짝사랑인데요. 클라라는 이런 브람스의 마음을 알고 있었을까요? 네, 브람스는 편지글로 클라라에게 구애를 했었어요. ‘사랑하는 클라라,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고 얼마나 당신을 위해 헌신하고 싶어 하는지 그것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하루 종일 애인이라든지 무엇이든 쉴 새 없이 불러보고 싶습니다.......나는 당신을 나의 클라라로 부르고 싶을 만큼 끝없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구구절절 애절함이 묻어나죠. 하지만 클라라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어요. 브람스는 이에 개의치 않고 평생 동안 클라라를 사랑했습니다.
우연치 않게도 클라라가 죽고 1년 후, 브람스도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마치 클라라의 곁에 있고 싶다는 듯이 말이죠. 브람스는 클라라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어요. ‘삶의 가장 아름다운 체험이었으며 가장 위대한 자산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사랑의 결실은 맺지 못했지만, 낭만주의 시대에 가장 지고지순한 사랑을 했던 로맨티시스트가 바로, 브람스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슈만과 클라라의 불타는 사랑, 클라라를 사랑했지만 결코 ‘나의 클라라’라고 부를 수 없었던 브람스의 짝사랑. 두 가지의 사랑 모두 강렬했지만, 새드 엔딩으로 끝나게 되었는데요. 그들이 느꼈던 사랑의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고 슈만과 브람스가 작곡한 낭만주의 시대의 곡에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클라라의 변치 않는 사랑을 받았던 슈만은 서정적이며 편안한 느낌의 곡을, 반면 브람스는 우울하면서도 다양한 감정들을 담은 곡을 많이 만들었죠. 꼭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이 여운이 다 가시기 전에요.
참고자료
- H. C. Schonberg. “위대한 피아니스트.” 윤미재 역, 나남출판사, 2003.
- 이은선.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의 뤼케르트 시에 의한 가곡 연구 : <Myrthen, Op. 25>와 <Drei Lieder, Op. 12>를 중심으로”석사학위논문, 숙명여자대학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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