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연기자가 되고 싶다면, 심리신체적 연기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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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살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고(故)히스레저는 역대 최고의 조커로 일컬어집니다. 조커와 같이 <다크나이트>에서 연기를 했던 상대 배우는, 히스레저가 조커 분장을 하고 자신을 보며 악랄하게 웃었을 때, 그는 너무나도 ‘조커’ 그 자체여서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할 정도였죠. 9번째 배트맨 시리즈였던 만큼, 이전에도 조커는 있어왔지만 히스레저의 뛰어난 조커 연기는 유독 호평을 받았었는데요. 같은 배역을 맡아도 우위가 가려질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더 훌륭한 연기를 보였기 때문일 겁니다. 소위 말하는 훌륭한 연기, 좋은 연기는 어떻게 습득할 수 있는 것일까요? 심리신체적 연기에 그 열쇠가 있습니다.

심리신체적 연기란?
러시아의 배우이자 연극연출자였던 스타니슬라브스키는 ‘심리신체적 연기(psychophysical acting)’라는 연기론을 주장했는데요. 심리신체적 연기란 ‘내적인 느낌과 외적인 표현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말해요. 다시 말해, 어떠한 감정을 경험할 때, 그 감정에 대한 신체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타나고, 반대로 어떠한 신체 동작을 행했을 때도 동작에서 야기된 내적 느낌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죠.
신리신체적 연기 훈련법
여러분의 이해를 위해 짧은 실험을 해 볼게요. 중요한 것은 아무 감정이 없는 중립의 상태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동작을 행할 때는, 심리와 신체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움직여주세요. 자, 이제 의자에 앉아볼게요. 두 발을 모으고 양쪽 무릎은 살짝 벌려 주세요.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팔꿈치는 무릎 위에, 얼굴은 턱에 기대어 바닥을 보면, 아래 그림의 모습이 될 거예요.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포즈인데요. 이대로 10초 정도 지켜보겠습니다. 그 사이 어떤 변화라도 감지하셨나요? 만약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면 중립으로 돌아가서 다시 반복하겠습니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반복하다 보면 처음, 중립 상태였던 심리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그저 ‘생각하는 사람’의 자세를 취했을 뿐인데도, 서서히 고민, 좌절, 심각함 등의 감정을 느끼셨을 텐데요. 어떤 특정 행동과 연관된 느낌을 소환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심리신체적 연기’의 시작이랍니다.

이처럼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내면의 감정과 사고와 관련된 외적 행동, 표현 등을 표출하며 상호작용을 합니다. 이를 인지하기도 하고,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행하기도 해요. 무대 혹은 카메라 앞에서 타인을 연기해야 하는 연기자들은 이 과정을 무의식적으로 수행할수록 더욱 자연스러운 연기를 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초보 연기자들의 경우엔 ‘무대’라는 도식화된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이 과정이 어려워지죠. 긴장을 하면 평상시에 아무리 자연스럽게 하던 것도 어색하게 표현하게 되고요. 이는 심리와 신체의 상태가 완전히 끊어졌기 때문에(disconnect) 일어나는 일인데요. 즉, 심리신체적 연기의 핵심인 ‘상호작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더 치열하게 ‘심리신체적 연기자(psychophysical actor)’가 되는 것입니다.
전체의 존재 활용하기
배우이자 연기 연출 교사인 멀린(Bella Merlin)은 심리신체적 연기자를 ‘캐릭터를 표현하고 연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전체 존재‘를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어요. 여기서, ‘전체의 존재(entire being)’란 연기자의 신체(body), 상상력(imagination), 느낌이나 감정(feeling), 정신(spirit)을 뜻하는데요. 멀린은 연기자가 캐릭터를 연기할 때 이 모든 것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때, 연기자는 단순히 신체와 심리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멀린이 말한 ‘전체’의 네 가지 요소들이 동시다발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관절의 움직임처럼 작은 부분에도 집중해야 하는데요. 우리 신체의 작은 부분을 인지하고 느끼는 데서부터 심리신체적 연기가 시작되기 때문이죠.
이번에도 실험을 하나 해볼까요? 먼저 눈을 감고, 여러분의 왼손으로 오른손을 천천히 만져보세요. 이때 우리는 분명 나의 왼손이 오른손을 만지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손이 스치는 순간, 그 감각에 몰두하며 ‘부드럽다’, ‘따뜻하다’ 등의 다양한 느낌을 가질 수 있게 돼요. 즉, 감정이 생겨난 거죠. 여기서 더 집중을 하면 내 손을 감싸주는 엄마의 손길이나 반려동물이 내 손을 간지럽히는 장면이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심리, 신체, 상상력, 감정의 4가지 요소가 긴밀히 작용하면서 심리신체적 연기를 체험하고 훈련할 수 있습니다.
결과와 외부의 형태, 과정과 내적인 삶
이 훈련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결과(result)나 외부의 형태(outer form)가 아니라, 과정(process)과 내적인 삶(inner life)에 집중하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볼게요. 우리는 종종 연기자가 극단의 감정 상태에 치달아 눈물을 흘리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요. 여기서 눈물을 ‘결과’라고 본다면, 눈물을 흘리느냐의 여부에만 집착하는 것은 결과와 외부의 형태에 갇히는 꼴이 되겠죠. 하지만 관객들이 정말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연기자의 ‘눈물’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눈물을 참으려 애쓰거나 눈물이 서서히 맺혀가는 ‘과정’입니다. 여기에 캐릭터의 내적인 삶까지 표현한다면 금상첨화겠죠. 다음으론 ‘화를 내는 장면’을 떠올려볼게요. 이 장면을 비전문가들에게 맡기면 보통은 버럭 화를 내는 ‘결과’에만 치중할 거예요. 하지만 ‘심리신체적 연기’를 지향하는 연기자들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다가, 왜’ 화가 났는지를 고민한 후 연기하게 되죠. 연기에 이 ‘과정’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분노를 표출하는 ‘결과’는 천차만별로 달라질 겁니다. 이를 지켜보는 관객이 그 차이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요.

좋은 연기자가 될 수 있는 열쇠는, ‘과정’과 ‘내적인 삶’에 집중하고 전체의 존재인 연기자 자신의 심리, 신체, 감정, 상상력을 유기적으로 캐릭터에 활용하여 내적인 느낌과 외적인 표현이 동시에 일어나도록 훈련하는 겁니다. 바로, ‘심리신체적 연기가’가 되는 것이지요. 누군가의 연기가 다른 배우들에 배해 유독 자연스럽다, 마치 캐릭터 그대로 같다고 느낀 적이 있으신가요? 그는 분명, 심리신체적 연기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연기자일 거예요. 혹시, 연기자가 꿈인 분들 혹은 연기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있다면, 오늘 이야기가 특히, 더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참고자료
- Bella Merlin,『Beyond Stanislavsky』, Nick Hern Books Limited, 2010.
- Phillip Zarrilli, 『psychophysical acting』, Routledg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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