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가 주는 힌트, 무대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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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공연 공간’이 아닌 ‘공연 장소’라고 말합니다. 표면적이고 물리적인 ‘공간’과는 다르게, ‘장소’는 의미를 가진 공간이기 때문이죠. 공연 장소는 작품의 스토리가 진행되고, 관객과의 호흡이 이뤄지는 곳인데요. 그렇다면 공연 장소가 갖고 있는 ‘의미’는 언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요? 관객석이 하나씩 채워지는 순간이나, 무대 위로 배우들이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부터일까요? 관객이나 배우가 등장하기 전, 텅 빈 ‘무대’에서부터 ‘공연 장소’로서의 의미는 이미 시작되고 있어요. 무대의 형태는 작품이 가진 특정 컨셉을 말해주기 때문인데요. 오늘은 무대의 종류와 각각의 무대가 우리에게 주는 힌트를 알아볼게요.
무대는 크게 ‘프로시니엄 무대, 원형 무대, 돌출 무대, 블랙박스 무대’의 네 종류로 나뉩니다.
1. 프로시니엄 무대
먼저, 프로시니엄 무대(Proscenium Stage)는 우리가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형태의 무대입니다. 전체 극장의 80%를 차지할 만큼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어요. 이 무대는 프로시니엄 아치 무대로도 불리는데, 이는 무대와 객석 사이에 아치(Arch) 형태의 구분선이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모든 프로시니엄 무대에 다 아치가 존재하는 건 아니고, 어떤 형태로든 무대와 객석이 정확하게 분리된다는 것이 프로시니엄 무대의 가장 큰 특징이랍니다.


프로시니엄 무대를 접한 객석의 관객들은 액자나 사진 프레임을 통해 그 안의 무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데요. 프로시니엄 무대를 종종 ‘액자 틀 무대’나 ‘사진틀 무대’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편, ‘프레임을 통해 들여다본다’는 것은, 관객의 입장에서 프레임 속 광경을 ‘훔쳐본다’고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제4의 벽(Fourth Wall)’이란 개념을 등장시키기도 했죠. 무대에서 객석을 마주한 ‘면’은 투명한 벽과 같아서 배우들은 이를 인지할 수 없지만, 관객들은 그 벽을 통해 무대 안 세상을 몰래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러한 형태의 구조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크게 느낀다고 해요.
프로시니엄 무대는 ‘연극적 환상’을 창조하기에 적합합니다. 뮤지컬 <라이온 킹> 속 수많은 동물들이 무리를 지어 등장하는 장면이나, <미스 사이공>에서 스크린 속 3D 헬리콥터가 등장하는 장면을 볼까요. 이런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배우와 스태프들, 그리고 기술적 장비와 장치가 필요하기 마련인데요. 만약 이러한 것들이 관객들에게 그대로 드러난다면 어떨까요? 몸에 동물 코스튬을 장착하는 배우들, 헬리콥터에 오른 사람들이 하늘을 나는 대신 무대 뒤로 빠져나가는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면요. 무대 위의 ‘환상’은 사라지고 말겠죠. 때문에 관객들의 시선으로부터 장치들을 숨길 공간이 필요한데요, 프로시니엄 무대의 액자 틀 안쪽에 이 모든 것을 숨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프로시니엄 극장들은 관객이 보는 무대보다 그 뒤의 공간이 몇 배에 달할 만큼 넓다고 해요. 이 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이라면, 무대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자리에서 안무와 동선, 무대 장치 등의 시각적 효과들을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프로시니엄 무대는 무대와 객석이 분리되는 지점이 분명하기 때문에 거리감과 단절감이 느껴지기도 해요. 관객으로서는 작품에 대한 친밀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요. 관객은 철저하게 ‘감상자’의 입장으로 남게 되지만, ‘감상’에 포인트를 두는 공연이라면 이만큼 효과적인 무대도 없습니다.
2. 원형 무대
다음으로 소개할 무대는 원형 무대(Arena Stage)입니다. 원형 무대는 무대의 모양보다는, 객석의 형태에 주목해야 해요. 객석이 무대를 ‘둘러싸고’ 있는 원형 경기장의 모습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무대 자체는 정사각형이거나 직사각형이지만 객석이 이를 둘러싸고 있는 경우에도 우리는 이를 원형무대라고 부른답니다. 원형무대는 관객과의 원활한 ‘소통’이 가능해요.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어느 방향에서나 관객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게 되거든요.
우리의 전통 연극인 ‘마당놀이’는 전형적인 원형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입니다. 마당놀이에서 배우와 관객이 서로 어우러져 공연을 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이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인 양 배우와 관객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분위기가 나죠? 배우들의 연기에 울고 웃으며, 어느새 적극적으로 소리 내어 반응하는 관객들의 모습은 마치 무대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아, 원형 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의 경우, 어떤 관객은 배우의 정면이 잘 보이는 반면, 그 반대쪽에서는 뒷모습만 봐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어요. 물론 필수적으로 이 ‘시각선의 문제’를 고려해 동선이 섬세하게 연출되긴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선 좌석 선택 시 이런 점 또한 고려해야겠죠.
3. 돌출 무대
세 번째는, 돌출 무대(Trust Stage)입니다. 돌출 무대란 말 그대로 무대가 객석 쪽으로 돌출되어 있는 형태인데요. 이 무대는 프로시니엄 무대와 원형 무대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형태입니다. 진화된 프로시니엄 무대라고도 볼 수 있어요. 프로시니엄 무대의 장점인 ‘무대 뒤 공간’을 확보하는 동시에, 원형무대처럼 배우가 객석에 거리감을 줄일 수 있어 많은 작품의 선택을 받고 있죠. 특히, 가수들의 콘서트에서 이런 무대가 많이 등장합니다. 돌출 무대에 오르는 공연을 관람한다면, 좌석 선택은 ‘전체나 디테일이냐’에 따라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되겠네요.


4. 블랙박스 무대
마지막으로 소개할 무대는 블랙박스 무대(Black-Box Stage)입니다. 블랙박스 극장이라고도 불리는 이 무대는 주로 소극장에 설치됩니다. 블랙박스 극장의 목적은 ‘자유로운 연극적 실험’을 위한 것인데요. 형식에 특별한 제한이 없고, 언제든 유연하게 바꿀 수 있어 작품에 따라 자유롭게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손꼽히고 있어요. 이 무대에서는 배우를 위한 무대뿐 아니라 객석까지 온전히 작품을 위해 조정할 수 있기에, 연출의 컨셉을 실험해 보는 경우나 배우들이 공동창작으로 작품을 선보이는 경우처럼, 기존의 방식보다 획기적이고 공격적으로 작업을 하는 작품들과 주로 짝을 이루고 있어요. 관객은 연출팀의 새로운 시도에 함께 한몫했다는 기분이 들것 같습니다.


무대는 어둠 속에서도 조용히, 공연 작품의 의미를 전달합니다. 어떤 근사한 무대효과를 갖춘 작품이 올려질 것이라고 우리에게 기대감을 안길 수도 있고요. 이리 모여 수다 한번 떨어보자며 재잘 될 수도, 혹은 소박하지만 새로운 매력을 찾아온 누군가에게는 그들만의 특별한 시공간을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공연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지요. 여러분의 다음 공연은 어느 무대 위에서 선보이게 되나요? 공연을 기다리면서 미리 작품의 배경을 알아보거나, 관람하기에 좋은 좌석을 구글링 해보기도 할 텐데요. 여기에 한 가지 더, 무대가 주는 힌트도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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