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제 1의 아해만 공연본다 그리오, 연극 <코오피와 최면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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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공연장은 위기에 빠졌어요. 좌석을 띄엄띄엄 떨어져서 앉다 보니, 비어있는 좌석만큼 수익이 떨어져서 공연을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어려워진 거죠. 그래서 이 시기를 기점으로 오프라인 공연을 대체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비대면’‘영상’이 공연계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지금, 지난 9월 24일부터 10월 3일까지 진행되었던 국립극단의 <코오피와 최면약>은 그야말로 색다른 관극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였어요. 천재 시인 ‘이상’(1910-1937)을 모티브로 한 공연! 1명을 대상으로 50분 동안 진행되는 공연이라니! 귀가 솔깃하지 않으신가요?

 

👣이상의 작품, 그 속에서 걸어볼래?

수국전망대에서 VR 장비를 통해 본 180도 뒤집힌 서울역 모습, 출처: 국립극단

  공연은 극장에서 본다고 생각하면 오산! 이 공연은 극장에서 시작되지 않아요.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1㎞ 남짓 떨어진 ‘서울로 7017’  안내소가 출발지죠. 안내를 들으며 이어폰을 착용하면, 종소리와 함께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요. “나는 어디로 어디로 들입다 쏘다녔는지 하나도 모른다. 다만 몇 시간 후에 내가 미쓰코시 옥상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거의 대낮이었다.” 바로 이상의 단편 <날개>(1936)의 문장이죠.

  연극에서는 <날개>에 등장하는 장소 다섯 곳을 방문하는데요. 관객은“어쨌든 나섰다. 설레설레 길을 걸어본다”는 이상의 문장이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면 다시 일어서서 걸어야 해요. 관객이 방문하는 장소는 현재 신세계백화점 본점이 자리하고 있는 미쓰코시백화점과 주인공이 ‘코오피(coffee)’를 마시러 가는 단골 가게인 경성역(서울역) ‘티룸’등이죠. 관객이 걷는 동안 ‘날개’, ‘삼차각설계도’(1931), ‘1933, 6, 1’(1933), ‘오감도’(1934) 등의 소설과 시가 오디오에서 흘러나와요. 

  이어서 서울역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에 도착하면, 안내에 따라 가상현실(VR) 장비를 착용해요. 전망대에서 보는 서울은 1930년대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때로는 180도 뒤집어지기도 해요. 최종 종착지는 백성희장민호극장이죠. 관객은 182석 규모의 극장에 혼자 들어가 가상현실 공연을 마지막으로 관람해요.

 

🙆‍♂🙆‍♀이 공연의 주인공은 나야나

연극 <코오피와 최면약> 공연 사진, 출처: 국립극단

  <코오피와 최면약>에서는 관객이 걷는 길이 곧 무대가 돼요. 이미지와 사운드, 관객 스스로의 움직임을 통해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공연이죠. 관객도 배우도 단 한 사람뿐이에요. 바로 관객 ‘자신’! 공연의 동선에 맞는 이동 시간이 제한되어 있긴 하지만, 관객이 어떤 풍경을 보며 공연을 관람할지는 자율에 맡겨요. 관객참여형 연극의 본래 취지를 잘 살린 셈이죠. 

  관객은 공연 내내 <날개>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체험을 해요. VR 속에서 주인공의 아내가 다가와 알약(소설에서 아스피린이라고 속였던 최면제)을 건네주고, 곧 눈앞에 관객 자신으로 보이는 인물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요. 실재와 허구의 경계가 희미해진 상황이죠. 이를 통해 관객은 자신이 공연 퍼포먼스의 일부라는 걸 깨달아요. 이러한 공연 양식은 비대면이 요구되는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최적화된 공연이라고 볼 수 있죠.

 

💡이렇게 독특한 연극을 만든 아티스트는 누구야?

연극 <천사-유보된 제목> 공연 사진, 출처: 남산예술센터

  <코오피와 최면약>은 10여 년 전부터 1인 관객을 위한 연극들을 만들어온 서현석 작가가 제작했어요. 서현석은 ‘*다원예술’에 가장 어울리는 아티스트 중 한 사람이죠. 그는 특정 공간에서 관객의 감각을 끌어올리는 공연을 진행해왔는데요. 텅 비어있는 청계천 세운상가 골목에서 진행된 <헤토로토피아(Heterotopia, 2010-2011>를 시작으로, 영등포 시장에서 열린 <영혼매춘(2011)>, 일본에서 공연한 <매정하게도 가을바람>과 같은 공연을 선보였어요. 특히 남산예술센터에서 개막한 <천사-유보된 제목(2017)>부터는 VR을 활용했는데요. 이 작품에서 관객은 VR로 만들어진 가상세계를 돌아다니며 관점이나 감각이 뒤바뀌는 경험을 해요. 이와 같은 서현석의 퍼포먼스는 관객에게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어디에 둘 것인지’ 고민하도록 만들어요. 
 

👉다원예술

무용, 연극, 사운드, 영상 등 장르의 경계에 얽매이지 않는 예술이에요.

 

 

💬 Editor’s Comment
  사람들이 극장은 물론, 카페, 지하철, 혹은 침대 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영화를 즐기듯, 공연을 즐기는 방식도 더 다양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특히 공연은 영화처럼 단순히 영상에만 얽매이지 않고 퍼포먼스를 시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파격적인 변신을 이룰 수 있어요. 실제로 코로나19로 인해 여러 예술 단체들이 온라인 생중계, VR, 온라인 전시 등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실험이 예술의 영역을 새롭게 고찰하게 만드는 중요한 도구가 되고 있어요. 앞으로는  ‘관람’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어떻게 제시될지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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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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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창작연극 #비대면연극 #코로나 #VR #서현석 #다원예술 #1인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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