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2050년 서울의 사계를 상상하다, ‘사계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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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왔노라 기쁜 봄이 새들은 즐겁게 지저귀며 봄을 맞이하고 시냇물은 미풍의 숨결 속에서 졸졸거리며 흐른다...’ 사계절 중 봄의 모습을 그려낸 소네트(sonnet)의 일부입니다. 이번엔 위의 시구를 눈으로 읊으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비발디의 <사계>중 <<봄>>의 시작 부분을 떠올려 볼까요? 마치 퍼즐이 맞춰지듯, 시구와 음악이 잘 맞아떨어지지요? 사계절을 그려낸 이 시를 근간으로 비발디의 <사계>가 탄생했다고 전해집니다. 약 300년이 지난 지금, ‘봄’은 미세먼지 걱정이 먼저 떠오르는 계절이 되어버렸죠. 때문에 비발디의 <사계>는 옛이야기 속에서나 나올법한 ‘봄’의 모습같이 느껴지는데요. 2050년 우리의 사계절을 담은 <사계>가 재탄생 한다면, 어떤 음악이 될까요?
 

안토니오 루치오 비발디 (1678~1741)

 

비발디의 <사계>중 <<봄>> 1악장의 일부

 

‘사계 2050’ 프로젝트

  18세기에 작곡된 비발디의 <사계>를 재해석한 ‘2050년의 <사계>’가 탄생했습니다. ‘사계 2050’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서인데요. 이는 클래식 음악을 통해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알리고자 하는 글로벌 프로젝트입니다. 30년 후 우리의 사계절을 음악에 담기 위해 음악과 과학이 손을 잡았어요. 기후변화 시나리오 (RCP 8.5)가 예측한 2050년의 서울의 기후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AI) 머신러닝 기술을 결합해 작곡이 이루어 졌죠. 이후, 작곡가들이 악기들의 특성에 맞게 수정하고 편곡해 음악의 완성도를 높였고요. 작곡가 휴 크로스웨이트(Hugh Crosthwaite), Monash 기후변화 커뮤니케이션 연구 허브, 글로벌 디지털 디자인 혁신기업 AKQA가 협업하였고, 한국을 비롯해 독일, 스코틀랜드, 네덜란드, 호주, 케냐, 캐나다, 브라질 등이 함께 진행하고 있어요.

 

<사계 2050 – 2050년 서울의 사계를 상상하다> 공연 포스터 Ⓒ뮤직앤아트컴퍼니

 

AI 작곡가가 만든 사계

  이 프로젝트가 이렇게 글로벌화될 수 있었던 것은 작곡가로서 인공지능의 역할이 컸습니다. 전 세계의 도시의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해 작곡을 한다? 사람의 능력만으로 이렇게 세계의 미래 버전을 작곡하는 일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어쩌면 아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일부에서는 이런 음악과 인공지능의 협업에 우려 섞인 목소리도 있는데요. 예술과 창작이라는 인간의 고유한 영역에까지 로봇과 인공지능 기술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 과하다는 지적입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의 상상은 더욱 구체화되어 실현될 수 있었고, 이런 새로운 시도가 가능했던 것이겠죠.

 

사라진 종달새 소리

  2021년 1월에 열렸던 ‘시드니 페스티벌(SYDFEST2021)’에서는 이미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공연으로 2050년의 <사계>를 선보인 적이 있어요.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비발디의 <사계>는 이제 정말 ‘클래식’으로 남으려나 봅니다. 시드니 버전의 2050년 <사계>는 한마디로, 암울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원작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타악기와 관악기들이 추가되어 해수면 상승에 따른 잦은 태풍과 혹독한 겨울을 표현했고요. 원작의 <<봄>> 1악장에서 경쾌하게 현을 울리던 종달새의 소리는 안타깝게도, ‘무음’으로 처리되었습니다. 2050년에 종달새는 멸종되어 더 이상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리지널 사계의 악보와 2050년 버전의 악보 중 발췌 Ⓒ뮤직앤아트컴퍼니


  그렇다면, 서울의 2050년 <사계>는 어떤 모습일까요? 비발디의 <<봄>> 1악장에서는 새들의 노랫소리와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가 음악으로 표현되었는데요. 2050년 버전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해 토양수분 함량이 적어지고, 새들의 개체수도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어, 해당 부분의 음표들이 많이 삭제되었고 강수량 감소 가능성에 따라 템포도 느려졌습니다. <<여름>>에서는 빠른 온도 상승에 따라 여름마다 찾아오는 태풍은 더욱 강력해질 것이라는 데이터 분석에 따라, 여름 폭풍우가 몰아치는 부분이 더욱 거칠게 반복되었고요. <<겨울>>은 원작의 아늑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강수량 감소로 인한 불안하고 우울한 느린 악장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비발디의 <사계>와는 역시 큰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환경의 파괴와 기후변화에 대한 경고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전까지 환경과 관련한 클래식 음악계의 활동은 전무한 정도였는데요, 최근 몇 년 사이에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계 2050’프로젝트가 오는 10월 20일과 28일, 양일간 서울과 인천에서 2050년의 <사계>공연을 펼치는 것도 그 일환입니다. 직접 가서 관람하신다면 300년 사이, 두 <사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음악뿐만 아니라 영상으로도 체감하실 수 있을 거예요. 11월 1일에는 UN환경협약당사국총회의 개막 프로그램으로,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들의 2025년 <사계>연주가 24시간 온라인으로 중계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미래의 언젠가, 비발디의 원작만큼이나 평화롭고 다양한 소리들로 꽉 찬 또 다른 버전의 <사계>를 들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되길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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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10-12

키워드

#사계 #비발디 #클래식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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