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텐베르크 비켜, 20년 앞선 금속활자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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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 금속활자의 역사를 뒤흔들 엄청난 소식(대박 사건!)이 전해졌어요. 바로, 약 1,600여 점의 조선 초기 금속활자가 무더기로 발견된 것인데요.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고려 시대 후기, 1377년)’을 보유하고 있어서, 인쇄 역사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죠. 그러나 서적이라는 이유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영향력을 인정받지는 못해서 아쉬움이 컸는데요. 이번 발굴은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보다 약 20년이 앞선 활자라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우리나라 인쇄술이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가능성이 기대를 모으고 있어요. 또한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조선 전기 과학유산도 금속활자와 함께 발견되어 과학계도 주목하고 있는데요. 이번 대규모 발굴은 인사동 골목 정비 공사 중 발견되었다고 해요. 역시 종로 일대는 ‘삽을 대면, 공사 중단’이라는 말이 옛말이 아니었군요!
🔎1600여 점의 금속활자가 항아리에서?
이번 발굴은 종로2가 사거리에서 인사동 길로 들어서는 입구이자, 조선 시대 피맛길로 알려진 서울 종로구 인사동 79번지에서 이루어졌어요. 이 일대는 과거 조선 한양 도성의 중심지로 관청과 왕실 궁가, 상업시설이 위치했던 조선 시대의 핫 플레이스인데요. 주요 유물이 발견되었기에, 관청이나 궁가 시설일 것이라는 추측이 많았어요. 하지만 유물들이 항아리 안에 들어있었다는 정황상, 실제로 발굴된 장소는 과거 평범한 민가의 창고로 예상해요.
또한 학계는 1588년 이후에 누군가가 고의로 땅에 묻었을 것으로 그 시기를 짐작하고 있는데요. 이는 발견된 유물 중 조선 시대 휴대용 소화기 승자총통(勝字銃筒)이 있었는데, 그 총통에는 물건의 제작 시기나 주인의 이름을 알려주는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죠. 명문을 해석해보면, 승자총통 1점은 1583년에, 소승자총통 7점은 1588년에 제작되었다고 해요. 또한 항아리를 묻기 위해 항아리 밑에 돌을 괴어 놓은 형태나, 주전(籌箭)과 총통이 일정한 크기로 잘린 것을 보았을 때, 누군가 금속 유물을 재활용하려다 묻은 것으로 예상하고 있죠.
👑어떤 유물들이 발견됐을까?

이번에 발견된 유물들은 조선 전기 세종대왕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속활자 1,600여 점과 자동 물시계의 부품으로 쓰이는 주전(籌箭), 천문시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승자총통(勝字銃筒) 8점, 동종(銅鐘) 1점 등 금속 유물이에요. 금속활자와 주전은 도기 항아리 안에 있었고, 크기가 큰 동종, 승자총통 등은 항아리 밖에 쌓여 있었어요. 특히, 승자총통과 동종은 이미 발견된 적이 있는 유물이지만, 주전과 일성정시의는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것들이라 더욱더 반가운데요.
유물들의 시대를 유추하자면, 주전은 세종과 중종 시기, 일성정시의는 세종 때 제작된 것으로 추측돼요. 총통과 동종은 중종에서 선조 때 만들어진 것으로 예상하죠. 이렇게 몇 시대를 거친 금속 유물이 한꺼번에 같이 묻힌 형태로 발굴된 것도 이례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어요.
* 주전(籌箭) : 작은 구슬을 저장했다 방출해 물시계의 시보 장치를 작동시키는 부품
*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 낮에는 해를 관측하고, 밤에는 별을 관측해서 시간을 알려주는 해시계, 별 시계 모두 사용 가능한 복합시계
* 승자총통(勝字銃筒) : 조선 시대 휴대용 소화기
* 동종(銅鐘) : 구리로 만든 종
✍️ 세종대왕 시대 금속활자의 발견?!
이번에 발굴한 금속활자는 조선 전기에 사용된 것으로 의견이 모이는데요. 1,600여 점 중 한글이 600여 점, 한자가 1,000여 점이에요. 한글과 한자가 같이 발견된 것도 생소한 일인데, 1,600여 점 모두 서체나 크기와 형태 그리고 뒷면의 모양이 다르다고 해요. 이렇게 다양한 활자의 발굴은 시대에 따른 변천사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죠.
이번 동국정운(東國正韻)식 금속활자 발견 전에는 을해자(乙亥字)가 현재 보존하는 가장 오래된 활자로 꼽혔어요. 을해자는 1455년 제작되어 약 100여 년간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을해자 역시, 인쇄본만 전해지다가 2007년에 중앙국립박물관의 학예사가 수장고에서 잠자고 있던 활자 30여 점이 을해자의 활자임을 발견하게 되면서,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죠. 현재 중앙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 중이에요.
그 중 동국정운(東國正韻)식 표기법을 따르는 금속활자의 발견이 주목받고 있어요. 동국정운식 표기법은 순경음(ㅱ, ㅸ)과 이영보래(ㅭ), 반치음(ㅿ) 등으로, 국내 최초 음운서인 동국정운에 나온 표기법을 칭해요. 동국정운은 세종 시대인 1448년에 인쇄된 것으로, 인쇄본만 전해질뿐 1480년대 초반 이후로는 사용된 기록이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발굴한 금속활자가 한글을 창시한 세종 시대의 금속활자라면, 인쇄본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장 오래된 한글 금속활자로 인정받을 예정이에요. 한편 연주 활자 10여 점도 발견되었는데요. 연주 활자는 한문 사이에 한글의 ‘이며’나 ‘이고’를 편의를 위해 주조한 활자를 말해요. 이번에 발굴한 금속활자는 초기 을해자로 추정되고 있어요.
*동국정운(東國正韻) : ‘우리나라의 바른 음’이라는 뜻이에요. 1448년 한자의 운을 일정한 순서로 배열한 서적이에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한자음을 우리 음으로 표기한 점에서 큰 의미와 가치를 지녀요.
*을해자(乙亥字) : 1455년 세조 시대에 만든 구리 활자예요. 갑인자보다 획이 곧고 옆으로 퍼진 형태를 취하고 있어요.
🧐세계사를 뒤흔들 금속활자 발견

1,000여 점의 다양한 한자 금속활자가 한 곳에서 발견된 것도 신기한 일이지만, 그중 갑인자의 발견이 제일 뜨거운 이슈라고 볼 수 있어요. 갑인자는 갑인년인 1434년, 세종 시대에 만들어진 한자 활자예요. 그동안 인쇄본만 전해졌을 뿐 활자가 발견된 적은 없었어요. 조선 금속활자의 꽃이라 불리며, 정사각형으로 만들어진 생김새가 다른 금속활자와의 차이점인데요. 이번에 발굴된 활자 중 1차 육안 감식에서 갑인자 인쇄본과 일치하는 글자 8개가 확인됐어요. 이 소식이 최종 공인을 통해 사실이 될 경우, 세계 역사를 바꾸는 일이 되는데요. 그 이유는 현재 발견된 금속 활자 중 가장 오래된 구텐베르크 인쇄 활자 보다 무려 약 20년이나 앞서기 때문이에요. 또한 이번 갑인자는 인쇄 활자와 인쇄본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으니, 그 가치는 배가 되겠죠?!
*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397~1468) 금속 활자 : 1440년대 독일인 구텐베르크가 개발한 서양 최초 금속 활자예요. 덕분에 신속한 인쇄술을 발전을 이룰 수 있었고, 정보 확산의 혁명을 일으켰다고 평가받고 있어요.
🧪과학 유물도 중요해요!
세종 시대의 과학 유물 대부분이 기록으로만 전해져서 아쉬움이 많았는데요. 이번 인사동 발굴에서 일부가 그 모습을 드러내서 화제가 되고 있어요. 이번에 발견된 과학 유물 중 가장 주목받는 것이 ‘세종실록’의 기록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는 주전(籌箭)과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예요.
우선, 주전은 1438년 세종 20년에 제작된 경복궁 흠경각의 옥루나, 1536년 중종 31년에 제작된 창덕궁 보루각의 자격루 부품 중 하나일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그 쓰임은 시간을 알리는 구슬을 반출하기 위해 사용된 부품으로 추정돼요. 주전의 형태는 동그란 구멍이 있는 동판과 걸쇠와 은행잎 형태의 갈고리가 결합한 모습이라고 ‘세종실록’에 전해지는데요. 이번에 발견된 주전의 형태가 이와 매우 유사해요!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또한 ‘세종실록’에 1437년 일성정시의 4개를 제작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서, 그 당시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어요. 기록에 따르면 일성정시의 모양은 용의 입이 바퀴 모양의 환을 물고 있는데 그것이 적도를 나타낸다고 되어있어요. 이번 출토 유물을 복원하면 원형 고리 3점이 나오는데, 각각 주천도분환(周天度分環), 일구백각환(日晷百刻環), 성구백각환(星晷百刻環)이라고 해요. 기록에 있던 적도를 나타내는 환(環)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죠. 그리고 자격루가 시간의 오차가 발생하면 이를 바로잡아주는 역할로 일성정시의를 사용했다고 하니, 이 둘이 함께 발견된 이유에는 연결고리가 있었네요. 이번에 발굴된 과학유물은 기록만으로 남아있던 조선전기 과학기술과 과학 문화재 복원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학계는 기대하고 있어요.
👩🚒진행하던 공사는 어떡하죠?
이전부터 종로 일대는 ‘조선의 폼페이’로 유명했어요. 이는 한양도성의 사대문 중 종로 주변은 ‘땅만 파면 뭐든 나온다’는 이야기가 증명되는 일들이 종종 벌어졌기 때문이죠. 2009년 청진동 235번지 재개발에서 최상급 조선백자 3점이, 광화문광장 조성 때는 조선 시대 왕권의 상징이었던 주작대로(육조거리)가, 2015년 공평동 도시환경 정비 사업에서는 조선 시대의 대규모 건물 터가 발견되는 등 개발만 하려고 하면 유물이 발견되면서 일정에 차질이 생기곤 했어요.
그래서 서울시는 사업자에게 ‘용적률 인센티브’라는 것을 주어, 유물 보존과 개발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어요.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2015년 공평동 도시환경 정비 사업인데요. 당시 개발을 준비 중이던 공평동 일대에서 108개 동의 건물터와 골목길, 100여 점의 유물이 발견되었어요. 서울시는 발굴된 터 보존과 건축하려는 건물의 지하에 ‘공평 도시유적전시관’ 조성을 제안하였고, 그 대신 용적률 200%를 부여하는 파격 조건을 제시하죠.
그러나 이러한 사례는 서울시의 이례적인 경우예요. 유물 발견 시, 매장문화재보호 조사법 36조에 따라, 문화재 보호를 위해 공사를 중지하고 발굴을 진행하고, 발굴 완료 후 필요한 사항에 따라 개발의 진행 여부를 지시하는데요. 이러한 전 과정을 따르지 않을 경우, 징역과 벌금형에 처하게 돼요.
💬 Editor’s Comment
이번 인사동에서 발굴된 유물을 보면, 조선 최고의 성군으로 칭송받는 세종이 떠오르는데요. 금속활자부터 자동 물시계, 일성 정시의 등 어학과 과학을 넘나들며 뛰어난 업적을 남기신 세종대왕. 특히 이번 금속활자의 발견은 한글을 만든 후 많은 백성에게 보급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로 인쇄 기술의 발전까지 이룬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에요.
기록으로만 남았던 우리의 역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금, 우리의 역할은 발견된 역사를 잘 보관하고 그 가치를 널리 알리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현재 발굴된 유물의 검사가 아직 진행 중이라서, 남은 유물을 더 확인한다면 또 어떤 엄청난 역사가 모습을 드러낼지 모른다고 해요. 이번 발굴이 세계사에 한국의 우수한 역량을 선보이는 기회가 되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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