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선스 뮤지컬’의 성장 배경에는 대기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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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90년대 전후, 라이선스 뮤지컬이 국내 공연시장에 정착하기 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았죠. 오늘은 그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후 1990년대부터는 뮤지컬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극단이 생겨나게 됩니다. 번역 뮤지컬 시대를 지나, 정식적으로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라이선스 뮤지컬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죠. 21세기를 코앞에 둔 뮤지컬계는 과연 어떤 변화를 거쳤을까요?
뮤지컬 전문 극단의 탄생
1990년대 뮤지컬 시장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한층 더 커진 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텐데요. 이는 뮤지컬계에 양적, 질적 성장이 골고루 수반된 결과였습니다. 먼저 뮤지컬을 제작하는 측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요. 연극 극단이 뮤지컬 시장을 이끌었던 70년대가 지나고, 80년대 후반부터는 ‘뮤지컬 위주’로 운영되는 극단들이 생겨났습니다.
특히 1986년 정부의 주도로 창단된 서울예술단은 뮤지컬 전문화의 선두주자 역할을 했습니다.이에 고무된 극단 신시, 맥토, 대중 등의 여러 민간단체들은 연극과 병행하던 시스템을 버리고 1990년대부터 아예 뮤지컬만을 제작하게 되었는데요. 특히, 극단 신시와 에이콤은 ‘라이선스 뮤지컬’에 주목했습니다. 두 회사는 현재까지도 대표적인 라이선스 뮤지컬 회사로 손꼽히며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에이콤이 현재 뮤지컬 <영웅>, <명성황후> 등 굵직한 창작 뮤지컬 제작에 집중하고 있는 반면, 신시컴퍼니는 <시카고>, <맘마미아>등 대표적인 해외 뮤지컬 작품을 지속적으로 들여오고 있는 모습입니다. 뮤지컬 전문 극단이라니, 한때 연극 극단들에게 곁다리 프로그램에 불과했던 뮤지컬의 성장, 정말 놀랍지 않나요?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90년대의 뮤지컬계. 그러다 보니 점점 기존 연극 극단 시절의 운영 시스템에도 한계가 왔는데요. 파이의 크기가 커졌으니, 이를 담을 더 커다란 접시가 필요해진 것이죠. 때문에 90년대부터는 언론 및 방송사가 광고비를 투자하는 형식으로 공동 주최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특히, 극단 대중이 초연한 뮤지컬 <캣츠>는 세계 일보의 후원으로 무려 5억 5천만 원의 투자를 받았다고 알려져 세간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라이선스 뮤지컬의 성장에는 대기업이 있었다
하지만 제작비용이 커지면 그만큼 흥행에 대한 압박이 더 커지는 법이죠. 뮤지컬 제작사들은 점점 흥행을 위한 광고의 필요성을 느꼈고, 때문에 각종 신문, 방송 등의 매스미디어를 통한 ‘뮤지컬’의 노출이 잦아졌습니다. 덕분에 대중은 뮤지컬을 매니아만의 예술이 아니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대중 예술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 부스터를 달아준 것은 대기업의 뮤지컬 시장 진출이었죠. 대표적인 사례로, 국내 뮤지컬 전용 극장으로 탄생한 ‘롯데월드 예술극장’과 ‘삼성영상사업단’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을 좀 더 살펴볼까요?

먼저, 1989년 만들어진 롯데월드 예술극장은 최첨단 장비로 채워진 중극장 규모의 뮤지컬 전용 극장이었습니다. 개관 공연인 <신비의 거울 속으로>는 무려 브로드웨이 연출가까지 초빙해 제작한 작품이었는데요. 이전의 라이선스 뮤지컬 공연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롯데월드 예술극장의 노력과 플렉스(Flex), 정말 대단합니다. 그들은 전문적인 인력의 양성에도 공을 들였는데요. 자체적인 오디션을 통해 좋은 배우들을 발탁하고 해외 스텝들의 트레이닝을 받게 함으로써 훌륭한 뮤지컬 전문 배우들을 양성했습니다. 이러한 질적 성장에 힘입어 19990년대에는 <아가씨와 건달들>, <레미제라블> 등의 흥행작들을 꾸준히 선보일 수 있었죠. 이런 그들의 행보는 뮤지컬계에 꾸준히 좋은 라이선스를 들여오고 전문 배우를 양성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1996년 예술의 전당에서 <애니>를 시작으로 뮤지컬 사업을 시작한 삼성영상사업단 나이세스 공연팀도 눈여겨볼 만한데요. <브로드웨이 42번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같이 한미 합작품을 공동 제작하면서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의 ‘제작 환경’을 크게 발전시키는 원동력을 마련했기 때문이죠. 그들은 해외 제작팀과 국내 스태프를 묶어 각자의 시스템을 익힐 수 있도록 했으며, 자본력을 바탕으로 제작 시스템의 과감한 변화를 꾀하는 등 뮤지컬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혹자들은 대기업이 공연시장에 뛰어들어 생태계를 흐렸다는 비판을 하기도 하지만, 그만한 기획과 자본력이 없었다면 한국 뮤지컬계의 비약적 발전은 이루기 힘들었겠죠. 큰 규모의 라이선스 수입, 한미합작, 뮤지컬 전용 극장의 탄생, 공연 업계의 전문화 등 이때에 이뤄진 성과들이 1990년대에 라이선스 뮤지컬의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아쉽게도, 이 황금기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롯데월드 예술극장은 끝내 공연 수입만으로는 운영이 힘들어 폐관하게 되었고, 삼성영상사업단 또한 1999년 IMF로 인해 사업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황금기를 이끌었던 두 거물들은 한국 뮤지컬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 것이죠. 모든 영광의 이면에는 또한 어둠이 있다고 하죠. 그렇기에 그 어둠 뒤에 다시 영광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롤러코스터와 같은 라이선스 뮤지컬의 역사,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신 분들은, 그 마음 그대로 다음 이야기도 기다려주세요. 곧 돌아옵니다!
참고자료
- 최원근, 임병진, “우리나라 뮤지컬의 산업화 역사와 발전방안에 관한 고찰”, 경영사학 제 30집 제 3호 2015, p39
- 박병성, “2000년대 라이선스 뮤지컬의 산업화 양상 연구”, 예술전문사과정, 한국예술종합학교, 2015
- 박현주, 임대근, “국내 라이선스 뮤지컬 공연 현황과 특징 분석”, 인문학콘텐츠, p.255-256, 2016.
유인경, “한국 뮤지컬 산업의 성장 동력과 그 문제점-현대예술극장, 롯데월드 예술극장, 삼성영상사업단 등 대기업 진출 사례를 중심으로”, 공연문화연구, 2010, p403-447
- 최승연“1990년대 한국 뮤지컬 공연의 양상”, 한국연극한 제29호, p265
-“대기업 참여로 뮤지컬 시장 활성-삼성나이세스”, CMI, 중앙일보, 이은주 기자 1996.2.15. https://news.joins.com/article/322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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