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용어는 어느 나라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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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손바닥에 바를 탁탁 두드리며 구호를 내뱉고 있고요. 아, 이 박자에 맞춰 동작을 하고 있는 이들이 있군요. “원, 투, 쓰리, 플리에(plié)! 원, 투, 쓰리, 탄듀(tendu)! 원, 투, 쓰리, 피루엣(pirouette)!” 원, 투, 쓰리...그리고 뭐였더라...? 어렵게만 들리는 이 단어들은 발레 동작을 일컫는 단어들인데요. 대체 이 낯선 단어들은 어느 나라에서, 어떻게 탄생하게 된 것인지, 발레의 탄생 배경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발레의 탄생
발레는 1390년경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하, 저 발레 용어들은 이탈리아어이겠구나!’ 하시는 분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발레가 탄생한 14세기경 이탈리아는 르네상스(Renaissance)시대였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신에서 인간으로 옮겨간 시기였지요. 예술 역시 인간중심의 가치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사교계가 활성화됐고, 이전과는 다르게 사교를 위한 ‘춤’ 또한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발레(ballet)가 탄생했고요. ‘춤을 추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발라레(ballare)’. 발레라는 명칭은 여기에서 유래 된 것인데요.
당시에는 단순히 궁중무용에서 사용되는 춤 형식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즉, 초창기의 발레는 오늘날처럼 관객들을 위해 공연되는 것이 아니라, 왕궁에서 귀족들의 부와 위엄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었지요. 재미있는 것은, 이 궁정발레의 공연자 모두가 아마추어 남성이었으며, 춤추기에는 장식이 너무 많은 의상에 가면까지 착용했다는 것입니다. 또, 무대 구조는 관객들이 3면 모두에서 무대를 내려다보는 형태였지요. 때문에 공연자들의 움직임에 따라 만들어지는 형상이 강조되었으며 기하학적인 형태의 춤이 많았습니다.


최초의 발레는 1581년, 이탈리아의 발레 교사 발타자르 드 보주아외(Balthasar de Beaujoyeuilx)가 카트린느 왕비의 후원 아래 제작한 <왕비의 발레 코미크(Ballet Comique de la Reine)>입니다. 여기서 ‘코믹 발레’란 연극적 구조를 띤 발레를 뜻하는데요. 이는 발레가 단순한 몸짓의 나열이 아니라 이야기 구조를 지닌 무용극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최초의 발레는 이탈리아에서 궁정발레의 형식으로 탄생해, 이후 100년 동안 유행했습니다.
프랑스에 진출한 발레
이제, 이탈리아만의 궁정 무용이었던 발레가 프랑스로 진출합니다. 이는 16세기 프랑스 왕비였던 카트린 드 메디시스(1519-1589)에 의해서였는데요.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이었던 이 왕비는 프랑스 궁정에 이탈리아의 궁중무용을 들여옴으로써 발레를 전파했습니다. 역대 왕들의 애호를 받으며 발전한 프랑스의 궁정발레였는데요. 태양왕이라 불린 루이 14세(1643년-1715)에 의해 발레는 역사적으로 큰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루이 14세는 무려 26편의 발레에서 주역으로 활동한 ‘스타 발레리노’였죠. ‘태양왕’이라는 별명도 그가 열다섯 살에 <밤의 발레>(1653)라는 공연에서 태양 역을 맡으면서부터 얻게 된 것이었고요. ‘태양’이라는 초월적인 존재로 자신을 묘사함으로써 강력한 왕권의 이미지를 얻으려 한 이유 또한 다분했답니다. 이후, 루이14세는 1670년 <멋진 애인들>이란 공연을 마지막으로 무대에서 내려왔습니다. 항간에는 그가 살이 찌면서 춤을 추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는데요. 이미 확고한 왕권을 다진 이상 무대에 오를 필요가 없었겠죠.
발레 연구를 시작한 피에르 보샹

하지만 ‘발레 마니아’ 루이 14세는 발레가 아마추어적 기예로 남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직업적인 무용가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던 것이지요. 그에 의해 1672년, ‘왕실 음악 무용 아카데미’가 설립되었습니다. 현재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전신입니다. 초대 교장은 루이 14세의 무용교사였던 피에르 보샹(Pierre Beauchamps)인데요. 그는 1674년, 루이 14세의 명을 받아 발레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피에르 보샹은 턴 아웃 자세를 활용한 발레의 기본 5가지 포지션을 정립했으며, 팔의 12가지 포지션, 피루엣(pirouette), 앙트르샤(entrechat) 등의 전문적인 기교를 발전시켰습니다. 무용보(舞踊譜)를 제작해 무용 동작들을 정확하게 기록했고요. 음악의 악보와 같은 역할이죠. 이런 여건 아래에서 무용교육을 받은 직업적 무용가가 등장함에 따라 무용 기술도 급속하게 진보하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기본 발레 용어들은 프랑스어로 되어있습니다. 한번 듣고는 흉내 내기도 서툰 프랑스 단어가 너무 어렵게 느껴지시나요?
시작은 이탈리아, 용어는 프랑스에서
이번엔 발레 용어에 관한 퀴즈를 하나 내볼게요. ‘파드샤(Pas de chat)’라는 발레 동작입니다. 무용수가 가뿐히 점프해서 착지하는 모습이 어떤 동물과 닮았다고 해서 ‘OOO스텝’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데요. 공중에서 뛰어오르며 무릎을 턴 아웃하고, 양쪽 다리를 엇갈려 내려오는 파드샤. 날렵하게 뛰어 우아하게 착지하죠. 여러분께 떠오르는 동물이 있나요? 바로, ‘고양이 스텝’입니다. 이 동작은 발레 작품 <백조의 호수> 속 ‘네 마리 백조의 춤’에서도 볼 수 있는 동작이죠. 어떠세요. 이제 ‘파드샤’라는 이름이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으시죠?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발레. 하지만 우리가 접하게 되는 그 용어들은 프랑스에서 탄생한 것인데요. 루이 14세의 발레를 향한 막강한 애정공세가 이에 큰 역할을 했던 것이죠. 발레의 많은 용어들은 아직도 우리에게 낯설게 느껴지긴 합니다. 하지만, ‘나는 파드샤라고해. 발음이 어렵다면 날 고양이 스텝으로 기억해줄래?’하고, 우리에게 먼저 다가와 인사하는 외국 친구쯤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 류한울·조주연 공동 작성
참고자료
- 배소심·김영아. 『세계무용사』, 서울:혜민북스, 2018.
- 이은경. 『발레 이야기』, 서울: 열화당, 2019.
- 정재왈. 『발레에 반하다』, 서울:아이세움, 2010.
- 수잔오. 『발레와 현대무용』, 서울:시공아트,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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