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꽃, 꽃들의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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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열리는 예술 시상식을 본 적 있으시죠. 연극 부분에 있어서도 시상식의 꽃은 단연코 ‘연기상’일 텐데요. 쟁쟁한 너 다섯 명의 후보들 중에서 수상자는 단 한 명. 대체 어떻게 연기의 우위를 가리는 것일까요? 우리는 보통, 연기를 ‘잘한다’ 혹은 ‘못한다’라고 평가하죠. 사실, 이렇게 단 세 글자로 연기자의 연기를 평가하기는 역부족입니다. ‘연기’는 많은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죠. 오늘은 연극의 꽃인 연기자, 그리고 그들이 펼치는 시상식의 꽃, 연기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행동하는 자, 연기자
Actor라고 불리는 연기자란,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요? Actor라는 단어는 라틴어 동사인 ‘agere=하다(do)/행동하다(act)’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는데요. 라틴어 명사로 ‘행하는 자(doer)’ 또는 ‘행동하는 자(actor)’를 뜻했던 것이, 중세 영어로 넘어오면서 ‘행동하는 자(actor)=연기자’로 명명된 것입니다. 즉, 연기자란 무대 위에서 행동하는 사람을 말하죠. 연기자는 관객들을 대상으로 무대 위에서 희곡의 내용을 연기(Acting)하고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연기에 대한 정의
연극에서 배우의 자질을 결정짓는 요소는 배우로서 보여주는 연기(Acting)일 텐데요. 그렇다면, 연기를 ‘잘한다’라는 것은, 어떤 점이 뛰어나다는 것일까요? 연극학자인 멀린(Mullin, 1961)에 의하면, 연기는 오랜 시간을 거쳐 다양하게 정의되어 왔다고 합니다. 그가 말하는 연기란, ‘의인화하기(impersonating), 모방하기(imitating), 해석하기(interpreting), 창조하기(creating), 느끼기(feeling), 내뿜기(radiating), being(존재하기), behaving(행동하기), 또는 believing(믿기)’입니다. 멀린의 정의를 바탕으로 연기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의인화하기, 창조하기, 해석하기

<캣츠>에서 연기자들은 얼굴과 온몸에 고양이 분장을 하고 고양이가 된 듯한 새침한 표정과, 요염한 손짓과 몸짓을 보여주죠. 연기자들은 어느새 대사를 읊고, 춤을 추며 노래를 하는 고양이가 됩니다. 관객들은 고양이 세계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되고요. ‘의인화하기’는 무대에서 사람이 아닌 동물을 의인화해서 관객에게 판타지를 제공하고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공연에서 연기자들은 자신이 본 동물의 기억을 단순히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인데요. ‘무대 위에서 표현 가능한 요소를 선택해 동물의 기질과 핵심을 표현’하는 것이지요.
캐릭터의 이미지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한 치밀한 관찰을 거친 후, 모방하는 과정을 거치는데요. ‘모방하기’는 연기자들이 ‘캐릭터 구축(building a character)’시 많이 활용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연기자들은 맡은 배역과 가장 흡사한 타인이나 동물의 움직임, 말투, 성격 등을 모방하면서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합니다. 연기자에게 모방이란 터부시되는 것이 아닌, 창작의 밑거름인 것이죠.
편집을 통해 개입을 할 수 영화와는 다르게, 연극 무대 위에서는 오롯이 연기자의 예술로 마무리됩니다. ‘해석하기’가 연기자의 자질을 가르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이유입니다. 연기자가 대본 및 장면 분석을 어떻게 하는지는 극 전체의 분위기와 흐름을 결정합니다. 잘 쓰인 대본이어도 연기자의 해석 능력이 부족하면 관객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어렵게 되죠. 수 세기 동안 공연되어온 <햄릿>은 지금도 여전히 무대에 오릅니다. 연기자가 햄릿 캐릭터를 어떻게 재해석했느냐에 따라, 같지만, 같지 않은 공연이 되기 때문입니다. 연기자 훈련의 시스템을 만든 스타니슬라브스키도 ‘연기자의 작품 해석’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역할을 활동적으로 분석하기

스타니슬라브스키는 말년에 ‘활동적 분석(active analysis)’이라는 방법을 제시했는데요. 연기자 스스로가 ‘리허설룸 바닥 위에서 몸(body), 상상력(imagination), 직관(intuition), 감정(emotions)을 모두 사용하면서 역할을 활동적으로 분석하는 것’입니다. 연기자는 대본 속 인물들의 움직임을 따라 하고 대사를 전달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캐릭터의 정서를 도출해 낼 수 있고 더 나아가 희곡의 구조도 파악하게 되죠. 그가 말하는 희곡을 분석하는 최고의 방법은, ‘주어진 환경(given circumstances)에서 직접 행동하는 것’이었습니다.
느끼기, 내뿜기, 존재하기 그리고 믿기
다시 멀린이 제시한 연기의 정의로 돌아가 볼까요. 연극의 4대 요소에 ‘관객’이 포함되어 있듯, 무대 위의 연기자를 바라보는 관객이 없다면 연극이라고 할 수 없겠지요. ‘느끼기’, ‘내뿜기’, ‘존재하기’는 관객들과의 교감에 관련한 것입니다. 좋은 연기자는 주어진 상황 속에 최대한 몰입하고, 관객과 교감하면서, 무대 위에 존재합니다. 무대 위에서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뿜어져 나오는 연기자의 아우라를 경험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내뿜기’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좋은 연기자의 자질입니다. 무대의 크기에 따라 목소리, 움직임, 에너지 등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죠.

마지막으로, 연기에서 ‘믿기’는 연기자들에게 제일 중요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요소입니다. 연기자들은 하나의 캐릭터로 존재하기 위해, 캐릭터의 이름, 성격, 극 중 관계 등 만들어진 ‘가짜 상황’을 믿기 위해 집중합니다. 연기자는 상상력 훈련을 통해, 캐릭터의 과거, 주요 사건들, 인물 간의 관계 등을 질문하면서 허구 속의 논리를 대본 안에서 찾습니다. 샌포드 마이즈너(Sanford Meisner)는 ‘연기란 상상의 환경들 속에서 진실하게 사는 능력이다(acting is the ability to live truthfully under imaginary circumstances)’라고 말합니다.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뛰어난 피지컬과 보이스로 ‘미친 존재감’을 갖고 있었으나 극중 캐릭터와는 이질감이 느껴졌던 그. 꽤 자자했던 명성을 듣고 찾아간 공연이었는데 자신만의 무언가가 없었던 그. 그들의 공연 끝이 왜 아쉽고 씁쓸했는지 말이지요. 아, 캐릭터에 신선한 분위기를 더했을 뿐 아니라 섬세한 내면 연기로 관객조차 숨죽이게 만들었던 그 배우도 있었군요! 아마도 그가 이번 시상식의 꽃이 될 것 같은데요. 여러분의 ‘그’는 누구일지 궁금해집니다.
참고자료
- Augusto Boal, 『Games for Actors and Non-Actors』, Routledge, 2002.
- Bella Merlin, 『Konstantin Stanislavsky』, Routledge, 2004, 34p
- Dan W. Mullin, Acting is Reacting,『The Tulande Drama Review』, Vol.5, No3. 1961. p152
- Oxford Dictionary. 『Oxford English dictionary online』, Mount Royal College Lib., Calgary, 14, 2004.
- 연기자 단어의 유래, 옥스퍼드 영어사전
- 2007년 바르샤바 공연, 로마 뮤지컬 극장
- 1938년 그의 생애 마지막 년도에 작업하는 콘스탄틴 스타니슬라브스키
- 메소드 연기의 샌포드 마이즈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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