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보다 더 예술을 사랑한 사람들, 메디치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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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의 후원자, 메디치 가문
영화 <E.T> 시그니처 포즈라고 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시나요? 두말할 것도 없이, 이티와 소년의 손가락이 서로 맞닿는, 전기가 찌릿하고 통할 것만 같은 장면이 아닐까 합니다. 이 포즈의 시작은 사실,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천지창조>중 <<아담의 창조>> 작품에서부터입니다. 인간과 신의 만남을 그린 작품이죠. 미켈란젤로는 이 명화를 완성하기 위해 4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는데요. 그가 다른 걱정 없이 벽화 완성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톡톡히 기여를 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예술가들의 후원자, 메디치 가문입니다. 그들은 미켈란젤로뿐만 아니라, <모나리자>를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테나 학당>의 작가인 라파엘로 등도 후원했죠.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대표주자! 메디치 가문을 소개합니다.
중세 말, 13세기 이탈리아의 중북부 도시 피렌체의 정치적 상황을 간단히 살펴볼까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지지하는 기벨린(Ghibeline)당과 로마 교황을 지지하는 겔프(Guelf)당이 서로 대립 관계에 놓여있었습니다. 피렌체와 가까운 항구 도시 피사(Pisa)가 제노바(Genova)와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중세 최대의 항구 도시인 피사는 피렌체의 것이 되었죠. 피렌체는 피사 항구를 자유롭게 이용함으로써 양모(羊毛) 무역과 금융업을 활발히 하였고, 엄청난 부를 이루게 됩니다. 곧 경제적 부유함을 기반으로, 르네상스 시기 유럽을 대표하는 국제도시로 성장했습니다.

이때, 메디치 가문은 은행업, 무역업 등의 사업 확장을 통해 얻은 부를 바탕으로 예술을 후원하기 시작했는데요. 메디치 가문이 후원을 시작하면서 피렌체는, 르네상스시대 예술의 중심 도시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합니다. 메디치 가문이 엄청난 부를 축적한 시기, 그리고 예술의 급 성장기였던 르네상스시대, 이 둘의 교집합은 어땠을까요? 그 결과는 역대 명작들의 탄생으로 귀결되었어요. 역시, ‘타이밍’이 중요한 법이죠. 이번엔 부와 예술의 번창, 그 중심에 있었던 메디치 가문의 두 주요 인물을 알아볼까요.
타고난 사업가 ‘코지모 데 메디치’

먼저, 코지모 데 메디치(1389-1464)는 사업적 수완이 아주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기반을 잡아놓은 은행업과 무역업을 통해 피렌체와 로마 본점 이외에도 피사, 밀라노, 제네바, 브뤼헤(Bruges), 런던까지 유럽 주요 도시마다 메디치 은행을 설립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는 가문의 위상을 드러내기보다 피렌체 시민들의 지지를 받는 것에 관심이 많았고, 고대 로마 시절의 부강한 이탈리아 모습을 동경했다고 합니다. 피렌체를 유럽 최고의 도시로 만들고자 하는 야망을 품고 있었던 그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사상적 바탕을 고대 그리스와 로마 철학자들의 사상을 통해 찾으려 했습니다. 인문학에 관심과 애정이 많았던 코지모는 유럽 전역의 문헌과 서적을 모으고 수집하는데도 적극적이었죠. 플라톤 아카데미 등 수많은 도서관과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인문학자, 예술가, 부유한 귀족들이 서로 인문학적인 교류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이를 후원하는데 집중했습니다. 피렌체를 ‘핫-플레이스‘로 만들기 위한 그의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피렌체를 예술의 도시로 만들어 그 위상을 높이기 위한 ‘빅-픽쳐’를 그립니다. 재능 있는 예술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하고, 그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해 피렌체 도시 전체를, 예술 작품으로 전시합니다. 도시 자체가 예술이 되었을 것 같은데요, 그만큼 예술에 대한 코지모의 후원은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는 프라 안젤리코에게 ‘종교화’를 그리게 했고,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에게는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완성하도록 했으며, 건축가 미켈로초에게는 ‘팔라초 메디치 궁전’ 등 오늘날까지도 유명한 건축물을 만들도록 했죠. 이 작품들은 오늘날 피렌체 시민들의 자부심으로 남아있으며, 세계인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습니다.
예술가 후원에 관한 코지모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일화도 있는데요. 그는 예술 앞에서 어떤 편견도, 그로 인한 제한도 두지 않았습니다. 조각가 도나텔로는 동성애자였기에 많은 사람들의 혐오와 가난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코지모는 이와 상관없이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적극 후원했습니다. 도나텔로에겐 단순한 ‘후원자’를 넘어서 ‘은인’과도 같은 존재였을 겁니다. 도나텔로가 유언으로 코지모 옆에 묻어달라고 남겼을 정도였다고 하니까요. 편견을 배제하고 예술을 사랑한 코지모 데 메디치. 그는 죽어서도 이름만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의 손자 로렌초 데 메디치에 의해 피렌체 예술은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자 ‘로렌초 메디치’

로렌초 메디치(1449-1492)는 할아버지의 특출난 사업 능력을 물려받진 못한 것 같습니다. 문서들을 살펴보고 처리하는 것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고, 메디치 은행에 부채만 지속적으로 안겨주었죠.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를 ‘위대한 자 로렌초’라고 불렀습니다. 예술에 대한 아낌없는 후원과 투자 때문이었죠! 할아버지 코지모 데 메디치처럼, 예술로 피렌체의 명성을 높이고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자 하는 데는 뜻을 같이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궁전인 메디치 궁과 산마르코 수도원 사이의 정원에 도나텔로의 제자, 베르톨도를 고용해 수많은 그림과 조각을 세웠습니다. 또 다른 예술가 보티첼리 역시 로렌초 후원으로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에겐 탁월한 재능이 있었는데요, 바로 예술가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발굴하는 것이었습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를 발굴한 사람도 로렌초 메디치입니다! 어린 소년이었던 미켈란젤로는 로렌초가 고용한 조반니의 제자로 들어가 조각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로렌초는 아직은 보잘것없었던, 이 작은 예술가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본 것이지요. 이 밖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도 러브콜을 보냈습니다. 로렌초는 밀라노의 로도비코 스포르차 공작에게 다빈치를 추천하였고, 다빈치는 후원을 받으며 예술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이렇듯 그는 예술에 대한 아낌없는 후원과 투자 그리고 작가의 발굴을 통해, 예술로써 르네상스의 꽃을 피웠습니다.
예술 작품을 신앙심의 표현이 아닌 독창적 표현물로 인식하기 시작한 곳은 이탈리아, 피렌체입니다. 그런 인식 전환의 시작은, 르네상스시대 뛰어난 안목을 갖고 예술가들을 전격적으로 지원한 메디치 가문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평론가 이주현은 "예술에 관한 자의식 충만했던 피렌체의 예술가들은 태초 형식으로 르네상스를 일으킬 수 있었다”라고 언급했는데요. 이어서 "그 예술가들 모두가 한 집안과 연결되어 있었으니 그 집안은 바로, 메디치 가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기존의 예술을 한껏 끌어올리는 동시에, 예술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만들어낸 메디치 가문. 예술인보다 예술을 더 사랑했던 메디치 가문의 두 남자 덕분에, 우리는 21세기에도 여전히 르네상스와 소통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참고자료
- 메디치가이야기,Hibbert, Christopher 생각의나무 펴냄 I 2000.
- 메디치,G.F. Young , 이길상 지음 / 옮김 현대지성사 펴냄 I 2001.
-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시오노 나나미 , 오정환 지음 / 옮김 한길사 펴냄 I 2002.
- 르네상스 미술과 후원자, 이은기 지음 / 옮김 시공사 펴냄 I 2002-03-10
-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 시오노 나나미 , 김석희 지음 / 옮김 한길사 펴냄 I 2001.
- 르네상스의 이태리 화가들, 버나드 베른슨 , 최승규 지음 / 옮김 한명 펴냄 I 2000.
- 피렌체 르네상스, 리처드 터너 , 김미정 지음 / 옮김 예경 펴냄 I 2001.
- http://www.pbs.org/empires/medici/index.html / The Medici
- G. Vasari. Lepiveccellenti architetti, scultori.pittiri 1568, 이근배 번역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 III 탐구당I, 1995.
-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 이기숙 지음 / 옮김 한길사 펴냄 I 2003.
- 박지영, 르네상스 음악발달에 미친 이탈리아 메디치가(家)의 영향 연구, 2018
- 김혜경. 인류의 꽃이 된 도시, 피렌체. 서울: 호미,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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