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의 색에서 당신의 색으로,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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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을 좋아하세요?

한 해 동안의 경제, 라이프 스타일 등에 대한 방향성을 예측하는 ‘트렌드 코리아’가 있다면, 소위 ‘패잘알’의 메카로는 ‘팬톤 색채 연구소’가 있죠. 펜톤사는 2020년 당시, ‘올해의 컬러’로 ‘클래식 블루’를 선정했습니다. 컬러 선정 인터뷰에서 펜톤사는, ‘클래식 블루는 시대를 초월하는 영속성과 함께,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내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습니다. 컬러학에서의 블루는 신뢰감과 안정감을 주는 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국에선 귀족의 색으로 쓰이고요. ‘삼성’, ‘블루 보틀’ 이외에도 많은 회사들이 파란색 계열의 CI를 사용하고 있죠. 이렇게 봐서는 시대를 막론하고 늘 사랑받았을 것만 같은 ‘파란색’.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데요. 오늘 <하루예술>에서는 그동안 ‘파란색’에 어떠한 사연이 있었는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혐오의 색, 파란색
파란색은 동식물, 광물 등 다양한 자연 속에서 쉽게 발견되지만 빨간색이나 노란색, 녹색 같은 다른 색들에 비해 비교적 늦게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의 물질로부터 색을 추출하기가 까다로웠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서구 문화의 바탕을 일구었던 고대 그리스(로마)인들은 애써 파란색을 사용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들에겐 오히려 혐오의 색이었죠. 대체 어떤 속사정이 있었던 것일까요?
당시 로마를 위협했던 북방의 게르만족과 켈트족이 파란색을 몸에 칠해 적을 위협하는 용도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속사정을 가진 로마인들은 파란색을 미개하고, 품위가 없는 색으로 간주했습니다. 장례 의복으로써나 가난한 노동 계층에서만 사용되었죠. 그뿐만 아니라 파란색 눈을 가진 사람을 추하다고 여겼고, 여성의 경우에는 정숙하지 못한 여성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무지개에서도 파란색은 존재하지 않는 색으로 여겼으니, 얼마나 싫어했을지 감이 오시나요? 이렇듯 낮은 계층의 색으로 온갖 부정적 시선을 받았던 파란색은 12세기 이전까지 계속 외면당했다고 합니다.
성스러운 파란색

파란색이 인정받기 시작한 건 12세기 초반, 고위 성직자 쉬제에 의해 교회에서 사용 되면서 부터였습니다. 쉬제는 그가 원장으로 있었던 세인트 대니스 대성당의 부속 교회를 재건축 하게 되었는데요. 그는 신을 찬양하기 위해 풍부한 색채들로 회화, 조각, 스테인드글라스, 고급 천, 금은 세공품 등을 제작해 건물을 꾸몄습니다. 그 중 파란색은 신성한 천상의 빛, 모든 창조물을 비추는 빛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쉬제는 ‘보석 중 사파이어가 가장 아름답고, 파란색은 곧 사파이어의 빛이다. 파란색은 교회를 가득 채우는 신성한 신의 색’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이 일화는 성직자 사이에서 전파되었고, 파란색은 스테인드글라스, 에나멜 세공, 삽화 등 다양한 곳에서 신을 찬양하는 성스러운 색으로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파란색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순간이네요!
파란색의 시대, ‘로열블루’의 시작

파란색은 이후 12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사랑을 받게 됩니다. 성화에서 성모 마리아가 파란색 의상을 입고 등장한 것이 큰 역할을 했죠. 로마 가톨릭교회는 화가들에게 교회의 신성함을 강조하기 위해 아시아에서 가장 비싼 염료로 성모 마리아를 색칠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당시 가장 비쌌던 파란색은 울트라 마린이라는 색이었습니다. 금과 비슷한 가격의 청금석을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만들어야 나올 수 있는 색이기 때문에 고결하고 귀했죠. 화가들은 이 귀한 염료로 성모 마리아의 로브를 채색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때부터 장례 의복 색으로 사용되었다는 전례를 봤을 때, 성모의 슬픔을 표현하기에도 적합했죠.

성모를 따라 프랑스의 왕들이 처음으로 파란색 의상을 입기 시작했고, 뒤이어 다른 나라의 왕들도 파란색 의상을 즐겨 입게 됩니다. 이는 곧 유럽의 왕가나 귀족들 사이에 유행으로 번졌습니다. 심지어 한 때에는, 파란색의 사용이 귀족들에게만 허락되었다고 하니, 로마 시대에 비하면 엄청난 신분 상승이죠? 이것이 바로, 로열블루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더불어 대중에게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파란색 염색 기술 역시 크게 발전하게 됩니다. 이로써 사람들에게 파란색은 아름답고, 우아하며, 귀족적이고, 신성한 색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성공적인 이미지 메이킹이라 볼 수 있겠네요!
14세기에서 15세기 사이에는 유럽 각국에 사치 단속법, 16세기 말에는 종교 개혁이 시작되면서 빨간색, 노란색 등의 화려한 색채들은 탄압 받고, 검은색이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파란색은 한때 귀족을 대표했던 색이었던 만큼, 특유의 차분한 색감과 검은색과 비슷한 느낌 덕분에 꾸준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17~18세기에는 군대 제복과 청바지에 사용되면서 자유와 혁명의 상징이 되었고, 18~19세기에는 화가들의 섬세한 감정을 표현하는데 쓰여 그들의 작품을 대표하는 색이 되었죠.
우리를 꿈꾸게 하는 ‘파란색’

현대에서 파란색은 다양한 분야에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국제 협력 기구인 ‘UN’과 ‘unicef’에서 평화와 중립을 상징하는 색으로 밝은 파란색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국내외 다양한 기업에서도 신뢰, 정직, 스마트함의 이미지로 인식되기 위해 파란색을 활용한 로고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사다난한 인류의 역사 속에서 파란색이 갖는 의미도 많은 변화를 거쳐 왔는데요. 중세 초기까지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 정도로 천대받았던 파란색이었지만, 이후 다른 색들만큼, 심지어는 다른 색들보다 더 대중에게 사랑받는 색으로 성장했습니다. <파랑의 역사>의 저자인 미셸 파트 투로는 파란색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Blue, 이 단어는 환상적이고 매력적이고, 안정을 가져다주며 우리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한다.” 여러분은 파란색으로 어떤 꿈을 꾸시나요?
참고자료
- 미셸 파스투로, 『파랑의 역사』, 민음사, 2017
- 최화삼, 『그림감상과 실기의 기초 - 파란색의 상징성 中』,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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