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팬데믹 속 클래식, ‘빨간 맛’을 보여주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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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100주기설

  ‘팬데믹 100주기’ 설이 있습니다. 1720년 ‘페스트’의 창궐, 100년 후 1820년에는 콜레라가, 그로부터 또 한 번의 1세기가 지난 1918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스페인 독감’이 유행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약 100년 후인 2020년부터, 우리는 ‘코로나19’를 지독하게 앓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발생 후를 ‘뉴노멀’시대라 칭하는 만큼, 이로 인해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어느 것 하나 없을 텐데요. 클래식도 인류의 역사 속에서 팬데믹을 여러 차례 겪어내어 왔습니다. 100년마다 돌아온다고 하는 팬데믹 상황을, 클래식은 어떻게 감내하고, 극복해 왔을까요?

 

 

페스트로 부터 사람들을 위로하는 ‘칸타타’

  1720년, 페스트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시작되어 프로방스 및 인근 지역으로 퍼졌고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바흐(Johann Sebastian Bach)는 1723년, 마르세유 페스트가 끝난 1년 후에 칸타타 no. 25 ‘내 육신의 온건함은 하나 없고’(Es ist nichts Gesundes an meinem Leibe)를 작곡하여, 전염병으로 가족이나 친지를 잃은 사람들을 위로했다고 합니다. 그는 칸타타 25번에서, ‘첫 번째 사람은 죄의 병균(페스트)을 모든 사람에게 전염시킵니다, 아! 이 병균들이 저의 사지에 퍼집니다. 불쌍한 제가 어디서 치료를 얻을 수 있을까요? 누가 고통에 있는 저를 도울 수 있을까요?’라는 가사를 붙였습니다. 병에 대한 인간의 무기력함이 처절하게 느껴지는데요.

  일찍 부모님을 여읜 바흐는 1720년, 그의 첫 번째 부인도 잃게 됩니다. 그는 총 20명의 자식을 낳았지만, 10명만이 살아남았죠. 바흐의 인생에서 죽음은 항상 그의 곁에 머물며 운명의 장난을 치는 듯했습니다. 바흐는 그의 65년 생애 동안, 총 1,128곡을 작곡하는 엄청난 성과를 이뤘는데요. 이는 바흐가 단지 라이프치히의 토마스 교회 칸토르 로서의 소임을 충실한 결과라기보다는, 고난과 슬픔을 음악으로 승화시키며 그 어려움들을 극복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스페인 독감이 클래식에 미친 영향?

1918년 10월  Musical Courier 1면  ⓒ뉴욕타임즈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1917년, ‘스페인 독감’이 전 세계를 강타합니다.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도 피해 가지 못했던 스페인 독감은 클래식 음악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요? 2020년 5월 <뉴욕 타임스>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놀랍게도, 스페인 독감은  클래식 음악계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1918년에 발행된 미국의 음악전문 잡지인 <Musical Courier>의 1면에는 세계 1차 대전의 연합군들을 위한 갈라 콘서트로 2천만 달러가 넘는 성금 모금에 성공했다고 대서특필했습니다.

  카네기 홀은 공연 취소나 연기 없이 모든 공연을 예정대로 진행했습니다. 당시 기사를 참고해보면, 독감 예방을 위해 선제적으로 공연을 취소하기보다는 연주자가 독감에 걸려서 무대에 오르지 못할 때만 공연이 취소되었습니다.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에게서도 독감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하는데요. 물론 지금처럼 격리가 들어간 도시들에서는 공연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공연은 주요 가수들이 독감에 걸려서 공연이 연기되었고, 바이올리니스트 하이페츠의 공연 또한 연주자가 독감에 걸려서 취소되었습니다. 연주자의 독감 감염으로 공연이 취소되지 않았던 이상, 공연장은 관객들로 넘쳐 났는데요. 그래도 팬데믹의 상황이었던 만큼, 감염에 대한 불안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겠죠. 재밌게도, 이를 놓치지 않고 발명왕 에디슨은 자신의 포노그래프를 ‘독감 걱정 없이’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수단이라고 강조하며 틈새 홍보를 했네요.

레오폴드 고도프스키와 가족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 ⓒ 뉴욕타임즈

  그 당시에 유명한 클래식 음악 연주자들은 일종의 방역 홍보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미국에서 유명했던 리투아니아 출신 피아니스트 레오폴드 고도프스키(Leopold Godowsky)와 그의 가족들이 마스크를 쓴 사진을 실으며, “선량한 시민처럼 (like a good citizen) 마스크를 쓰고 있다”라는 주석이 달렸습니다. 그 시대 클래식 연주자들은 종종 전쟁 선전물에도 등장할 정도였으니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그만큼 컸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이렇듯 1900년대 초, 클래식 음악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은 독감을 개의치 않을 정도였고, 업계 관계자들 역시 이러한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코로나시대의 클래식

  자, 그럼 현재로 돌아와 코로나19시대의 클래식 음악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2020년 3월 말, 바이올리니스트 안네-소피 무터(Anne-Sophie Mutter)의 코로나19 확진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독일 태생의 바이올리니스트 무터는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은 당일,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함께 베토벤 현악 4중주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확진으로 실제 공연을 할 수 없었던 그녀는, 베토벤 현악 4중주 10번의 일부분의 연주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연주가 끝나고 마스크를 쓴 무터는 “머지않은 미래에 다시 건강하고 행복하게 다시 만나길 바란다.”라고 말하며, 베토벤의 인생 모토이기도 한 “고난 뒤에 오는 기쁨을 잊지 말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선제적 방역을 위해 수많은 공연이 취소되었던 가운데, 클래식 음악계는 또 다른 방식으로 끊임없이 관객들과 소통하고자 노력해오고 있습니다. 2020년 대관령 국제 음악제는 자동차 극장과 야외무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안전 수칙을 준수한 공연이었고, 모든 공연은 매진됐습니다. 연주 기회가 사라진 ‘서울시향’은 ‘SM 엔터테인먼트’와의 협업을 통해 클래식과 케이팝이 만나는 신선한 결과물을 만들었습니다. 서울시향이 연주한 레드벨벳의 ‘빨간 맛’은 유튜브 누적 조회 수 140만 이상을 기록하며, 말 그대로 여름날에 새빨간 ‘핫‘한 반응을 이끌어 내었죠!

  음반사 ‘도이치 그라모폰’은 예브게니 키신, 마리아 주앙 피레스, 조성진 등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들의 홈 연주 영상을 릴레이 연주회 형식으로 기획했고,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은 전 세계의 유명 연주자들과 함께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를 합주한 영상을 올렸습니다. 많은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단도 무료로 자신들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동영상을 제작하고 스트리밍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은 역사 속에서 인류와 함께 여러 차례 팬데믹 상황을 겪어왔습니다. 이전까지는 다소 소극적이며 수동적으로 위기를 극복했다면,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지금은 그 모습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더욱 다양한 루트를 통해 능동적으로 관객과 소통하려 애쓰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최신 연주를 클릭 하나로 어느 장소에서든 쉽게 만날 수 있게 된 것처럼요. 클래식 연주는 조용하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고, 재미있고 기발한 방법으로 연주 영상을 만들어내고 있고요. 이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앞으로 클래식 음악의 신선한 앙상블을 만나게 될 날을 기다려 봅니다.

 

 

 

참고자료
 - Huizenga, Tom ‘When Pandemics Arise, Composers Carry On’, VPR News, 20204.13
 - Robin, William, ‘The 1918 Pandemic’s Impact on Music? Surprisingly Little’, New York Times 2020. 5. 6. 
 - Wise, Brian ‘How the 1918 Flu Pandemic Shaped Classical Music’, 202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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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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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팬데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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