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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업계를 뒤바꾼 새로운 흐름, 누벨바그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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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고전 영화를 자주 보시나요? 보통 1960년대 이전의 영화를 고전 영화라 하는데요. 거기에는 눈에 띄는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세트장에서 대부분의 촬영이 이뤄졌다는 점이에요. 특히 할리우드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할리우드 시스템의 영화가 주류로 통했죠. 하지만 이런 시스템이 고착화되면서 반대 의견이 생겼어요. 프랑스에서 이러한 경향이 유독 강했고, 결국 역사를 뒤바꾼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누벨바그 혹은 프랑스 뉴웨이브라고 불리는, 영화사(史)에서 중요한 족적을 남긴 운동이죠.

 

👊누벨바그? 행동으로 보여줄게!

  누벨바그의 탄생은 19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현재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프랑스 대표 영화 잡지 <카예 뒤 시네마(Cahiers du Cinéma)>에 한 편의 에세이가 기고됩니다. 에세이의 제목은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으로, 글을 쓴 평론가의 이름은 프랑수아 트뤼포(François Truffaut, 1932~1984)였죠. 

  당시 프랑스 영화계에서는 유명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시대극이나 로맨스 장르의 영화가 인기를 끌었어요. 연출 기법이나 메시지보다는 관객에게 재미와 웃음을 주는지가 좋은 영화를 판단하는 척도였죠. 프랑수아 트뤼포는 이러한 흐름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영화는 그 자체로서 예술이 돼야 하며, 비평가는 작가주의1)에 입각한 영화 비평을 해야 한다고 말했죠. 

  사람들은 그의 생각에 동조했습니다. 특히 그와 함께 일하던 <카예 뒤 시네마>의 비평가들은 뜻을 함께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어요. 직접 영화를 찍으면서 행동으로 보여주기 시작했죠. 그리고 이들은 현재까지 영화 애호가들에게 회자되는 명작들을 내놓습니다. 그렇게 누벨바그는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운동으로 남게 돼요.

1) 작가주의란 한 편의 영화에서 중심적인 인물은 감독이며, 따라서 감독은 작가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개념을 적용한 이론이에요. 예술가로서의 영화감독을 중시하며, 영화감독의 철학과 개성을 다른 요소보다 더 중요시하는 시각이랍니다.

 

카예 뒤 시네마  ⓒCahiers du cinema

 

  누벨바그 운동의 기반은 할리우드 영화를 향한 저항의식이었습니다. 할리우드에서는 영화 촬영 전에 모든 것을 설계하고 계산했으니까요. 따라서 누벨바그 감독들은 계산된 것, 정형화된 것에 대척하는 제작 방식을 따랐어요. 그래서 누벨바그 사조에 포함되는 감독들도 저마다 개성이 확고하다는 재미있는 특징이 있죠. 그래도 몇 가지 교집합은 존재합니다.

  그들은 다소 즉흥적으로 작품을 제작했고, 촬영 현장에서 구성을 만들거나 수정하는 경우가 잦았어요. 기존의 영화는 사전에 준비를 끝내고 찍는 방식이었으니, 이러한 변동성은 누벨바그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때문에 연기자에게 즉흥 연기를 요청하는 경우도 많았는데요. 이는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저항의식뿐 아니라, 그들이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이미지를 선호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연기자들에게도 기본적인 상황만 알려주고, 그들이 스스로 상황을 풀어나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죠. 이처럼 그들은 자연스러움을 살릴 수 있는 영화적 기법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일례로 당시에는 소리를 후시녹음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누벨바그 감독들은 동시녹음을 사용했어요. 인위적인 조명이 아닌 자연광을 사용했고요. 스튜디오 사용을 최소화하고 실제 장소에서 촬영을 진행하기도 했답니다.

 

✨새로운 흐름을 이끈 사람들

  작가주의가 중요한 흐름으로 작용하는 만큼, 누벨바그 운동이 영화사(史)에 이름을 남긴 건 여러 감독의 영향이 컸어요.

  누벨바그 운동의 핵심 인물로는 우선 프랑수아 트뤼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이름, 어디선가 본 거 같지 않나요? 맞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에세이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을 쓴 프랑수아 트뤼포예요. 트뤼포는 해당 에세이를 쓰고 5년 뒤인 1959년에 자신이 연출한 영화 <400번의 구타>로 데뷔했어요. 그의 자전적 이야기가 들어간 작품으로, 이 영화를 통해서 칸 영화제의 감독상을 수상했죠.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 ⓒ네덜란드 국립기록보관소

 

  두 번째는 장뤽 고다르(Jean-Luc Godard, 1930~2022)입니다. 고다르 역시 <카예 뒤 시네마>에서 비평가로 활동했고, 1960년에 영화 <네 멋대로 해라>를 연출하며 감독으로 데뷔했어요. 해당 영화는 점프컷2), 핸드 헬드 촬영3)이라는 당시를 기준으로 파격적인 연출 기법과 전개를 보여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고전으로 남았죠. 장뤽 고다르 역시 연출하는 영화마다 혁신을 시도해서 누벨바그를 상징하는 감독으로 여겨지고요.  

2) 점프컷은 연속되는 샷에서 배경은 고정한 채로, 연기자의 동작이 시간을 뛰어넘는 편집 기법을 이야기해요. 컷 이후, 연기자는 자연스럽지 않고 끊어지는 느낌의 다른 위치나 자세로 나타나죠.

3) 핸드 헬드(hand-held) 촬영은 카메라를 고정시키지 않고 말 그대로 카메라를 손으로 든 채 촬영하는 촬영 기법이에요. 자연스러운 흔들림으로 사실적인 감정을 전달하죠.

 

장뤽 고다르 감독  ⓒWikimedia commons

 

  세 번째는 에릭 로메르(Éric Rohmer, 1920~2010)입니다. 역시 <카예 뒤 시네마>의 비평가였고, 1957년에는 편집장까지 역임했답니다. 다만 에릭은 급진적인 성향이었던 누벨바그 감독들과 달리 어렵지 않은 영화 내용, 심플한 영화 제작 시스템을 추구했어요. 그래서 주로 소시민의 일상이나 연애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는데요. 영화를 찍을 때도 최대한 인력을 줄이고 예산을 아끼는 방향으로 진행했다고 전해져요. 어느 정도 경험과 경력을 쌓은 뒤에는 스태프 서너 명만 고용해서 영화를 찍었을 정도죠. 대표작으로는 <녹색 광선>, <해변의 폴린느> 등이 있답니다.

 

에릭 로메르 감독  ⓒcloudinary

 

💥영화사는 누벨바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누벨바그는 영화업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어요. 우선 누벨바그를 기점으로 작가주의라는 개념이 영화계에 정착되었죠. 앞서 이야기했듯이 1950년대 이전의 영화에서 중요한 건 웃음과 재미였는데요. 이는 다시 말해 대중이 영화를 볼 때 분석하고 비평하는 행위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런 행위가 가능한 영화를 요구하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누벨바그 이후 대중들은 감독의 철학과 개성을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영화를 분석하고 비평해야 할 작품으로 여기게 되니, 자연히 영화감독의 위상은 함께 높아졌습니다. 누벨바그 등장 이전의 영화감독은 제작자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스태프 중 하나로 여겨졌어요. 그러나 누벨바그 운동은 감독을 중시했고, 이후 전 세계 영화계에서 감독이 제작 중심에 서게 된답니다. 

  마지막으로 누벨바그는 영화사(史)의 새로운 분기점이 됐어요. 영화 제작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고, 그간 보지 못했던 영화적 기법을 탄생시켰잖아요. 영화계에서는 누벨바그 등장을 기점으로 고전 영화와 현대 영화를 구분한답니다.

 

핸드 헬드 기법을 사용해 촬영을 하고 있는 장뤽 고다르의 모습 ©japanall

 

  오늘날 영화 업계는 20억 달러(한화 기준 약 2조 6천억)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엄청난 규모의 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을 이룩한 건 불과 50년도 되지 않았어요. '블록버스터'라는 단어를 도입시켰던 1975년 영화 <죠스>의 매출이 2억 달러에 불과했으니까요. 물론 2억 달러는 현재도 엄청난 매출입니다만, 지금과 비교하면 1/10밖에 되지 않아요. 영화 업계가 급속도로 발전한 셈이죠. 영화 업계가 이처럼 눈부신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건 <죠스> 이전에 존재한 수많은 영화들과 누벨바그의 감독들처럼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의 발전을 위해서 고민한 사람들  덕분이에요. 오늘 이 글을 통해서 여러분도 영화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존재를 알게 되셨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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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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