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작가? 의사? 이론가? 하나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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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일상 속에서 비현실적이거나 놀라운 것들을 경험할 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와, 영화 속 이야기 같아. 드라마틱하다!" 혹은 "소설 쓰고 있네!” 라고요. 이처럼 우리는 소설이나 드라마를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것으로 느껴요. 그렇다면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 있다면 어떨까요? 우리 주위에서 흔히 일어나는 이야기를 글로 유쾌하게 풀어낸 작가가 있답니다. 바로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 안톤 체호프예요. 19세기 문학의 문을 닫는 동시에 20세기 문학의 문을 연 안톱 체호프에 대해 소개해드릴게요.

 

🙄의대생은 어떤 아르바이트를 할까?

  체호프는 어린 시절 집안이 파산하는 바람에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어요. 어렸을 때부터 돈을 벌기 위해 가정교사를 하면서 학교를 다니는 등 가정 형편에 보탬이 돼야 했죠. 당시 러시아에서는 뛰어난 의사들이 많이 배출되었는데요. 어려운 형편에도 뛰어난 성적을 보였던 체호프 역시 의사가 되기 위해 모스크바 대학 의학부에 입학합니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하고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대학생이 되어도 체호프는 생계유지를 위해 돈을 벌어야 했죠. 그러던 어느 날! 체호프는 아주 의외인 아르바이트를 하게 돼요. 바로 단편소설을 쓰는 것이었죠. 체호프는 단편소설을 쓴 뒤 유머 잡지 출판사에 보내 돈을 벌기 시작했어요. 단편소설이 호평을 받으면서 작가로서의 발걸음을 내디디게 된거죠. 의대생인데 글까지 잘 쓰는 건 반칙 아닌가요? 적게나마 돈을 벌고자 취미로 쓰기 시작한 단편소설이 러시아 문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셈이니까요. 지금까지의 이야기로는 체호프가 대학을 졸업하고 전업 작가로서 승승장구했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답니다. 

 

[러시아 문학 다가가기] 6편, 글쓰는 의대생 체호프
안톤 체호프 ©문화신문

 

🎖체혼테, 다작왕 드립니다!

  체호프는 약 510편의 소설과 11편의 희곡 작품을 써냈어요. 현대 소설의 형식을 구축했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수많은 명작을 남겼죠. 우연한 기회에 작가 인생이 시작됐던 대학 시절, 그는 짧은 분량의 유머 소설 작품을 주로 만들었어요. 당시 러시아에서는 작품 속 글자 수에 따라 원고료를 지급했는데요. 그래서 러시아 문학이라고 하면 아주 두꺼운 책이 떠오르는 거랍니다. 이 긴 작품들 속에서 유머러스하고 간결한 체호프의 단편소설은 단연 눈에 띄었어요. 그는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2년 동안 무려 300편에 달하는 소설을 써냈는데요. 그가 일생 동안 쓴 500편의 소설 중 절반 이상이 이 짧은 시기에 발표된 거라니 그의 작품 활동이야말로 정말 소설 같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이 시기에 체호프가 쓴 소설들은 전체적으로 익살스럽고 유머러스해요. 실제로 체호프 역시 장난기 많고 유쾌한 사람이었죠. 체호프의 단편소설은 중후기에 쓴 <6호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귀여운 여인> 등이 손꼽히지만, <적들>, <어느 관리의 죽음>, <망쳐버린 일>처럼 난처하고 어처구니없는 상황과 실수를 간단히 다룬 초기작도 굉장히 매력 있어요. 이 작품들은 모두 다양한 인물을 통해 사소한 일상 이야기를 보여주는데요. 동시에 그의 작품 속에는 삶의 본질과 아이러니도 녹아 있답니다.

  그래서 독자들은 피식 웃다가도 깊은 생각에 빠지게 돼요. 체호프는 당시 ‘안토샤 체혼테’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소설을 써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체호프가 유머가 가득한 단편소설을 집필한 시기를 체혼테 시기라고 부르죠. 체혼테 시기 이후 체호프의 작품은 약간의 변화를 맞이합니다. 이때부터는 자신의 본명을 내세워 활동했는데, 밝은 일상에 가려진 인간의 어두운 삶을 보여주는 작품을 많이 발표했죠. 체호프가 대학을 졸업하고 다양한 경험을 한 뒤 쓴 작품들은 확실히 이전보다 진지하고 성숙하답니다. 우리가 아는 체호프의 대표작 또한 체혼테 시기 이후의 것이죠.

 

체호프 단편선 | 민음사
체혼테 시기의 소설이 포함된 체호프 단편모음집 ©민음사

 

📜연극의 고전of고전

  체호프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것에 그의 극작품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소설에 비하면 현저히 적은 수지만, 그의 희곡 작품들은 20세기 현대 연극사에 큰 영향을 끼쳤을 정도로 인정을 받았어요. 체호프의 희곡은 44년 인생의 후반부에 등장합니다. <갈매기(1898)>, <바냐 아저씨(1900)>, <세 자매(1900)>, <벚꽃 동산(1903)>은 체호프의 4대 희극이라고 불리며 현재까지도 세계 무대에 오르고 있죠.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갈매기>는 섬세한 심리 묘사를 통해 우울한 시대의 고통을 파헤친 비판적 리얼리즘 작품이에요. <갈매기>에는 체호프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실제로 이 작품에는 가족의 그늘을 벗어나 유명한 작가가 되려는 ‘뜨레플레프’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극에서 이 인물은 새로운 형식의 작품을 추구하지만,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해요. 가족의 그늘에서 벗어나 작가가 되고자 한다니, 어딘가 익숙한 듯한 설정이죠? 네, 바로 실제 체호프의 모습이에요. 남녀 간의 사랑, 가족의 사랑, 의사소통의 문제, 꿈 등 복합적이고 어려운 인간의 감정들을 체호프는 <갈매기>에 담았어요.

 

국립극단에서 무대에 올렸던 <갈매기>의 한 장면 ©국립극단

 

  그러나 <갈매기>가 처음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아니랍니다. 이 작품은 1896년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서 처음 상연되었는데, 배우들의 어설픈 이해력과 서투른 연기력 때문에 완전한 실패를 겪었죠. 관객들의 반응도 부정적이었고요. 공연이 끝난 후 체호프가 다시는 희곡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정도였죠. 그러나 자신의 말과는 달리 체호프는 자신의 작품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오랜 연습을 통해 사실적인 연기로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구현했죠. 결국 이후에 다시 공연된 <갈매기>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갈매기>를 공연했던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상징은 갈매기가 되었어요. 이 외에도 그가 연극사에 남긴 큰 흔적은 작품 외의 요소로도 남아 있는데요. 바로 ‘체호프의 총’이라고 통용되는 희곡 이론인데요.

“만약 1막에서 총이 나왔다면, 3막에서 다시 총이 나와 총을 쏴야 한다. 총을 쏘지 않을 거라면 없애버려라.”

  어찌 보면 당연하게 들리는 이 말, 체호프가 설정한 극의 장치예요. 연극을 위한 작품을 쓸 때, 연극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는 요소가 아니면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는 뜻이죠. 한 번 등장한 요소는 끝까지 가지고 가야 하고요. 체호프는 왠지 천재적인 글솜씨로 마구마구 글을 썼을 것 같지만, 사실 나름대로 규칙과 이론을 고려하며 썼던 거예요. 이 총 이론 덕분에 독자들이 그의 작품에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의사로서의 삶을 잊지 않고 작품에 녹여낸 체호프

  체호프는 의학부를 졸업해 약 1년간 의사로 일했어요. 체호프가 의사였다는 사실은 그의 삶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데요. 의사 체호프와 작가 체호프는 매우 달랐을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어요. 비록 의사로서의 삶은 1년 남짓했지만, 굉장히 직업의식이 투철하고 인정받는 의사였다고 전해져요. 그는 "의사는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다.”를 의사 시절 좌우명으로 삼았어요. 직업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고, 진심으로 봉사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이죠. 실제로 체호프는 러시아 사할린섬에 고아와 매춘 여성을 위한 기관을 설립하기도 하고, 모스크바에서는 빈민 구호 활동에 매진했으며, 무료로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었다고 전해져요. 똑똑한 데다 마음씨까지 따뜻했던 체호프야말로 정말 소설 속 주인공 같지 않나요? 

   체호프는 뛰어난 관찰력으로 실제 있을 법한 인물들을 창조했다고 평가받는데요. 의사 시절 약자를 자주 접하며 치료해주던 시선이 그의 글 속에 고스란히 담겼답니다. 의사 체호프는 인간의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고통에 주목했다면, 작가 체호프는 인생의 실존적 고통에 주목한 거예요. 불안하고, 어리석은 사람들, 상한 사람, 다정한 사람, 무정한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겪는 아픔들이 그의 글 속에 나타나곤 하죠. 그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아주 깊고 섬세하게 보여줬어요. 어쩌면 의사라는 직업을 통해 인간을 향한 사랑과 연민이 그의 내면에 뿌리내린 것은 아닐까요?

 

  20세기 연극계에 커다란 영향을 준 안톤 체호프, 오늘날에도 그의 작품이 널리 애독되는 것에는 그의 작품에 삶을 주제로 한 인간의 고민, 인간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기 때문이에요. 거기에 따뜻한 마음씨와 봉사 정신까지 더해져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받고 존경받았던 것 같네요. 그의 인생은 다소 이른 44살에 막을 내렸어요. 하지만 독자들은 그의 작품에서 유머를 배웠고,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죠. 세계 문학에 인상 깊은 한 획을 그은 안톤 체호프! 지금껏 그래왔듯 세월이 흘러도 체호프는 영원이 기억될 거예요. 그의 작품은 우리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으니까요.

 

 

 

ㅇ참고자료

- 승주연, “안톤 체홉”, 아트인컬처, 2020

- 권종술, “[새책]러시아 사실주의 거장 안톤 체홉의 모든 것 ‘안톤 체홉 해설서’”, 민중의소리, 2017

- 석영중, “체호프, 영웅주의를 거부한 영웅[석영중 길 위에서 만난 문학]”, 동아일보, 2021

- 유형중, “톨스토이가 아꼈던 안톤 체호프”, 의학신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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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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