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마저 고정시키는 <헤어스프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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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라는 속담이 있죠.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끈기를 가지고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의미인데요.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도전을 거듭해요. 가끔 넘어질 때도 있지만, 훌훌 털고 일어나 맞서죠. 그런데 여기, 결코 넘어갈 것 같지 않은 나무 앞에 한 소녀가 서 있습니다.
🙌굿모닝 볼티모어! 내 이름은 트레이시!
이 소녀의 이름은 트레이시예요. 매일 아침 풍성한 헤어스타일을 만들어 등굣길에 나서는 트레이시는 꾸미기에 관심이 많고, 춤을 사랑하는 10대 소녀죠. 보고만 있어도 사랑스러움이 뿜어져 나오는 트레이시에게는 한 가지 꿈이 있어요. 바로 10대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인 ‘코니 콜린스 쇼’에 출연해 볼티모어 최고의 댄싱퀸 ‘미스 헤어스프레이’가 되는 것인데요. 마침 코니 콜린스 쇼의 새 멤버를 찾는 오디션이 열리고, 트레이시는 꿈에 부풀어 오릅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걱정 섞인 목소리로 트레이시의 오디션 지원을 반대합니다. 작품 소개말에도 나와있듯이 트레이시가 ‘슈퍼 헤비급 몸매’를 가지고 있다는 게 그 이유였죠. 코니 콜린스 쇼에 등장하는 10대 출연자 중에 트레이시와 같은 몸집을 가진 출연자는 없었거든요. 하지만 트레이시는 위축되지 않아요. 억지로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지도 않고요. 몸매 때문에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힐 때도 있지만, 결국 우연과 재능 덕분에 코니 콜린스 쇼에 진출하게 된답니다. 트레이시의 행보는 TV쇼 진출을 다짐하는 그에게 의구심을 품은 모든 이들의 편견을 부셨어요. 가까스로 꿈에 한 발짝 다가간 트레이시! 하지만 그는 넘고 싶고, 넘어야 할 진짜 나무 한 그루를 만나게 됩니다.

발랄하고 긍정적인 주인공을 내세운 <헤어스프레이>를 유쾌한 코미디 뮤지컬로 생각하기 쉬운데요. 다소 민감하고 무거운 주제를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 코미디로 승화시킨 것은 아닐까 싶어요. 사실 이 작품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차별’이거든요. 트레이시가 마주한 나무 역시 이 ‘차별’에 해당하고요. 힌트는 눈과 귀를 사로잡는 넘버에도 숨어 있어요. 작품 속 넘버들은 1960년대 미국 남부의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당시 미국은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굉장히 심했고, 흑인 인권 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시기이기도 했죠. 뮤지컬 속 코니 콜린스 쇼에서도 흑인 댄서들이 출연하는 날은 한 달에 딱 한 번, 우리말로 하면 ‘흑인의 날’인 ‘니그로 데이’때뿐인 것도 그 때문이랍니다. 그런 현실 속에서 트레이시는 외칩니다. “매일매일이 흑인의 날이었으면 좋겠어요!”

트레이시는 TV 속 날씬한 사람들 사이에서 춤추기 위해 사회가 만들어낸 외모와 관련한 틀에 도전해요. 이후 코니 콜린스 쇼에서 마주한 인종차별을 없애고자 사회가 만들어낸 차별에 맞서 싸우기도 하고요. 트레이시가 소수와 다수의 영역을 넘나들며 본인과 타인의 꿈을 지켜나가는 과정을 보며 우리는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의구심을 품지 않아요. 그저 응원하게 되죠. 트레이시에게 이 모든 장벽을 허무는 것은 목표가 아닌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니까요.
💨영화와 뮤지컬을 자유롭게 넘나든 헤어스프레이!
어쩌면 <헤어스프레이>를 뮤지컬 영화로 먼저 접해보셨을지도 모르겠어요. 2007년 개봉한 영화 <헤어스프레이>는 동명의 원작이 2개나 존재합니다. 2002년 선보인 뮤지컬 <헤어스프레이>를 원작으로 했다는 것은 많이 알고 계셨을 텐데요. 이 뮤지컬 역시 1988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답니다. 이제는 너무나 흔한 OSMU(One Source Multi-Use) 중에서도 조금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 거죠. 그동안 뮤지컬이 영화로 각색되거나 영화가 뮤지컬로 각색되는 경우는 많았지만, <헤어스프레이>처럼 영화에서 뮤지컬로, 그리고 다시 영화로 재탄생한 경우는 드무니까요.
그 시작에는 존 워터스 감독이 있어요. 존 워터스 감독은 소수의 집단에 의해 광적으로 숭배받는 영화, 즉 컬트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유명해요. 그의 1988년 개봉작인 <헤어스프레이> 역시 소수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미국이 마주한 예민한 문제를 따끔하고 유쾌한 코미디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감독의 고유한 색깔이 엿보이죠. 존 워터스 감독이 그동안 만들어 온 작품들에 비하면 영화 <헤어스프레이>는 대중적인 작품으로 꼽히긴 하지만요.
작품 자체로 대중성을 얻은 것은 단연 2002년 브로드웨이에서 선보인 뮤지컬 버전의 <헤어스프레이>입니다. 눈과 귀를 사로잡는 화려한 넘버와 안무뿐만 아니라 트레이시가 지닌 긍정적인 모습이 당시 미국인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주었거든요. 2000년대 초반 브로드웨이에는 한 차례 위기가 있었어요.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911테러 때문인데요, 추모의 의미로 사건 이후 여러 뮤지컬이 조기 종영하기도 했죠. 몇 개월 후, 뮤지컬계가 재개하려는 분위기 속에서 <헤어스프레이>가 초연되었고, 밝고 긍정적인 트레이시와 그녀가 이뤄내는 것들을 보며 사람들은 위안을 얻었어요. 이듬해 열린 브로드웨이 최고 권위의 토니상에서 8개 부문의 상을 거머쥐며 그 인기를 입증하기도 했답니다.
국내에서는 2007년 충무아트홀에서 초연되었는데요. 당시 박경림 씨가 신시컴퍼니와 함께 협력 프로듀서로서 참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답니다. 미국 유학 당시 브로드웨이에서 <헤어스프레이>를 관람한 뒤 매력에 빠졌고, 작품에 대한 애정이 공연 프로듀서라는 행보로까지 이어지게 된 거죠. 사실 박경림 씨는 국내 초연 당시 트레이시 역으로 오디션을 봤지만 고배를 마셨어요. 그리고 2년 후 <헤어스프레이>가 재연될 때 다시 오디션에 도전해 트레이시 역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죠. 뮤지컬 <헤어스프레이>는 중독성 강한 넘버와 위안을 주는 스토리로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2007년 초연 이후 2009년, 2012년 총 세 번에 걸쳐 무대에 올랐어요. 흑인 분장에 대한 비판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도 했고, 인종 분리에 대한 공감대가 깊지 않다는 기존의 어려움 때문에 그 이후로는 중단되었고요. 하지만 지금까지도 뮤지컬 관련 학과의 실습 공연으로, 혹은 학생동아리의 자체 공연으로 무대 위에 오르는 등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뮤지컬이에요.

뮤지컬 <헤어스프레이>가 흥행하자 원작 영화 제작 및 배급사인 뉴라인 시네마에서 뮤지컬 음악 판권을 구매해 뮤지컬 영화 제작에 돌입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헤어스프레이>와 감독 아담 쉥크만(Adam Shankman, 1964~)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아담 쉥크만은 트레이시가 본인이고 영화가 곧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아담 쉥크만은 춤과 인연이 깊거든요. 그의 SNS 소개말에서도 춤은 빠지지 않는답니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Director of stuff. Producer of stuff. Choreographed a bunch of stuff." 의역하자면, “이러쿵 감독, 저러쿵 프로듀서, 이러쿵저러쿵 이거 저거 엄청 많은 것을 안무함”정도가 되겠네요. 사실 그는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전에 춤을 배우기 위해 이주할 정도로 춤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상당했어요. 실제로 댄서로 활동하기도 했고 유명 연예인들의 뮤직비디오 안무 감독을 맡았을 정도로 실력도 있었죠. 그런 그가 영화 <헤어스프레이>에서도 영화감독이자 안무 감독으로 활약한 것은 어쩌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에요. 그는 직접 안무를 짜고 백 명이 넘는 출연진들과 두 달간 리허설을 감행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그 덕에 영화 <헤어스프레이> 속 완벽한 군무가 나올 수 있었던 거겠죠? 수십 명의 캐스트들이 마치 한 몸이 된 듯 군무를 추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돋보이는 장면이 연출되기까지 얼마나 고민했을지 가늠하는 것도 영화를 재밌게 즐기는 방법 중 하나가 될 거예요. 얼마 전에는 영화 <헤어스프레이> 개봉 15주년을 맞이해 아담 쉥크만이 개인 SNS에 축하글을 올리기도 했었답니다. 작품에 대한 그의 애정이 느껴지죠?
😮배역 캐스팅에 이런 비하인드가?
<헤어스프레이>가 영화와 뮤지컬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 때에도 배역 캐스팅에는 꼭 지켜져야 할 흥미로운 약속이 있었어요. 첫 번째 규칙은 트레이시 역할을 맡는 배우는 신인일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규칙은 트레이시 어머니인 에드나 역할을 맡는 배우가 남자일 것이었고요. 이때 <헤어스프레이> 속 에드나 역할을 남성 배우가 연기하는 것은 공연계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젠더 프리 캐스팅이나 <킹키부츠>의 ‘롤라’처럼 드랙퀸이라는 캐릭터 자체를 연기하는 것과는 조금 달라요.
에드나는 작품에서 트레이시만큼 중요한 인물인데요. 거구의 몸 때문에 집 밖을 나가지 않는 것으로 묘사돼요. 사실 남성 배우가 엄마 역할을 맡는 것을 두고 많은 논쟁과 추측이 있었어요. 그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원작 영화 <헤어스프레이(1988)>에서 에드나를 연기한 디바인(Divine, 1945~1988)이랍니다. 그는 남성이지만 화장과 옷차림 등을 통해 과장된 여성성을 연기하는 ‘드랙퀸’이었거든요. 여기서 ‘퀸’이 붙는 이유는 남성이 여성의 역할을 연기하기 때문이에요. 반대의 경우 드랙 뒤에 ‘킹’을 붙이죠. 하지만 드랙(drag)이라는 단어 자체에 성별의 고정성이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최근에는 성별의 의미를 내포하는 퀸과 킹을 붙이는 것보다 드랙 아티스트라는 단어 사용을 지향하고 있어요. 원작 영화에서는 연출상의 이유로 드랙 아티스트인 디바인을 에드나 역으로 캐스팅했지만, 이후에는 원작 설정이 수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거구의 체형을 표현하기 위해 남성 배우를 캐스팅했어요. 국내에서 뮤지컬이 초연될 때 에드나 역에 정준하 배우가 캐스팅된 것을 보면 어떤 의미인지 이해가 될 것 같아요.

아담 쉥크만의 영화에서는 존 트래볼타가 에드나 역을 맡았습니다. 제작 과정에서부터 에드나 역을 존 트래볼타가 맡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영화 <헤어스프레이>는 큰 주목을 받았죠. 여담이지만 슈퍼 헤비급 몸매를 가진 트레이시보다 훨씬 큰 몸집을 가진 에드나 역을 연기하기 위해 존 트래볼타는 매 촬영에 앞서 4-5시간 동안 특수분장을 해야 했어요. 그렇게 완성된 존 트래볼타는 에드나 그 자체였답니다.
<헤어스프레이>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어요. 누군가는 공감하고, 또 누군가는 위안을 얻으면서 말이에요. 하지만 1960년대에 부당하고 혼란했던 사회상에 고개를 끄덕인다는 건 지금도 그 분위기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물론 60년대보다 정도는 약해졌지만, 여전히 세계 각지에서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죠. 트레이시가 불러일으킨 변화의 움직임이 오늘날의 트레이시들에게 가닿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안 될 것만 같은 일을 마주했을 때, 혹은 부당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을 때, 우리 모두 <헤어스프레이> 속 트레이시를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ㅇ참고자료
- 박혜명, “춤추고 싶은 뮤지컬영화 <헤어스프레이>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씨네21, 2007
- 정은미, “OSMU(One-Source-Multi-Use)를 통해 본 뮤지컬의 콘텐츠 연구”, 단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3
- 지윤미, “뮤지컬영화와 뮤지컬산업의 상관관계 분석 : 뮤지컬영화 <헤어스프레이>, <삼거리극장>을 중심으로”, 상명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8
- 스티븐 제이 슈나이더, 정지인, “501 영화배우”,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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