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미래에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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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생각하는 미래도시가 궁금해요.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유토피아를 꿈꾸시나요, 자연도, 아무런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는 황량한 도시를 상상하시나요? 모두 아니라면 현실에 가까운 미래를 떠올릴 수도 있고요. 저마다 떠올리는 미래의 모습이 다른 만큼 사실 우리는 미래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변화할지 예측할 수 없어요. 그러나 모두가 잘 어우러져 살아가기 바란다는 사실은 다르지 않을 듯한데요. 이런 바람을 담아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 2022 : 미래도시>가 연 미술 축제가 있답니다. 함께 구경해볼까요?
❌노잼도시 아니고요! 과학과 문화의 도시라 불러주세요
인터넷 세상에서 ‘대전', 이라고 하면 ‘노잼도시’라는 웃픈 수식어가 따라오는 경우가 있어요. 놀 것도 볼 것도 없는 곳이라며 붙은 별명이죠. 하지만 대전이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건 이제 그만!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 2022>에서 예술과 과학을 융합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예술과 기술의 창조적인 만남을 시도했거든요. 어쩐지 멀게만 느껴지는 두 분야이지만, 이 둘의 조합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곤 합니다. 대전은 과학의 도시답게 첨단기술을 활용하여 ‘미래도시’에 대한 물음에 예술로 답하며 과학과 문화도시의 정체성을 확립했어요.
🤗모두가 행복한 곳, 테라폴리스!
테라폴리스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테라폴리스란 땅을 의미하는 테라(Terra)와 도시를 뜻하는 폴리스(polis)가 합쳐진 단어로, 지구에 있는 모든 것들이 행복을 이루는 장소를 말해요. 도시와 자연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생명체가 동등한 권리를 갖고 긴밀하게 소통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상적인 테라폴리스를 갖추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에요. 흔히들 친환경적이라고 생각하는 종이 빨대도 한 번 사용하면 재활용되지 않고 쓰레기가 된다고 하니까요. 이를 대체한 스테인리스 빨대조차 제조 과정에서 환경오염이 불가피하고요. 결국 요즘 시대에 환경을 완전히 해하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데요. 그럼에도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2022 : 미래도시>는 모두가 평등하게 공존하는 테라폴리스를 모색하며 자연과 도시, 다양한 생명체 간의 위계를 허무는 다양한 방법을 예술 작품으로 표현했어요. 우리에게 중요한 건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태도에 있음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인간만 사랑하냐? 동물도 사랑하고 공감한다!
간혹 SNS 화제의 게시물에 ‘주인을 살린 동물’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뜰 때가 있죠. 영상에는 자신을 희생해 주인을 구한 용감한 동물들의 모습이 담겨 있는데요. 애정 어린 동물의 모습을 볼 때면 뭉클함과 동시에 신기한 감정이 들곤 했어요. 사랑과 공감은 인간 본유의 감정이라 여겼었기 때문일까요? 동물도 자신의 목숨을 바칠 만큼 누군가를 사랑하고 때로는 공감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의식할 때마다 깊은 생각에 빠지는 듯한데요.
이번 전시에 참여한 예술가 ‘에이샤 리사 아틸라’는 이러한 감정에 초점을 두어 인간과 인간이 아닌 생명체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의 잠재력을 다뤘어요. 그는 사랑과 공감이 생명체 간의 위계를 허물고 새롭게 인식하도록 만든다고 전하기도 했죠. 작품 <리서치 테이블1,2>에서는 한 영장류 동물의 팔이 움직이는 화면을 볼 수 있는데요. 안내에 따라 스크린 옆이나 아래 표시에 손을 올리면 마치 스크린이 거울인 양 영장류 동물의 팔을 거울상처럼 비춰 볼 수 있는 독특한 작품이랍니다. 아틸라는 환지통 치료 장치에서 영감을 받아 심리적인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도록 만들었다고 전했어요. 모니터 상의 팔이 나의 팔인 것처럼 움직이는 것을 보며 다른 생명체와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죠. 내가 아닌 또 다른 생명체가 되어보는 일은 상대를 공감하는 새로운 경험을 선물합니다.
🌱 삐빅. 인공자연의 시대가 도래했다.
만약 모든 자연이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어떨까요? 푸릇하게 자라난 수목들, 그 주위를 날아다니는 수많은 반딧불과 지저귀는 새들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인공 구조물일 뿐인 거죠. 실제로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으로 동식물들과 생태계가 세상 끝에 내몰렸는데요. 그렇다면 기술로 만든 자연은 현실이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무리 완벽하게 재현한다고 해도 자연만이 품고 있는 경이로움은 느낄 수 없을 것 같아요.
예술가 ‘켈리 리처드슨’은 작품 <불씨와 거목들>을 통해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그는 대규모 벌목사업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원시림의 모습을 영상작품으로 재현했어요. 영상 속 반딧불의 불빛들은 환상적인 숲 속 풍경을 자아내요. 하지만 반딧불은 그래픽 효과에 의한 드론에 불과하죠. 묘한 이질감이 드는 이 작품은 우리가 알던 숲의 모습이 모두 사라져버린 황량한 미래를 보여줘요. 리처드슨의 작품에 자연이 아닌 인공 대체물이 등장하는 것에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드러내고자 하는 역설이 존재해요. 자연이 없어진 미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자연을 보존해야 하는 이유를 더욱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불씨는 작은 불꽃을 의미하지만, 어떤 사건을 일으키는 원인을 뜻하기도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이 작품의 제목인 <불씨와 거목들>은 환경오염의 불씨가 된 인간과 커다란 자연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환경 문제는 우리와 가장 밀접하고 시급한 문제이지만, 왜인지 막연하고 심지어 남의 일 같이 느껴지기도 해요.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 2022 : 미래도시> 전시는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건 ‘우리’ 임을 강조해요. 잊고 있던 환경문제는 더 이상 ‘나’와 ‘남’의 문제로 구분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드러내기도 하죠. 서로 긴밀하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회인만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미래를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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