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몸으로 말해요: 난 하고픈 말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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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이 미술관의 살아 있는 전시품이라고 상상해봅시다. 눈앞의 탁자에는 각각 다른 성격을 띤 72개의 물체가 있죠. 깃털, 향수, 물 한 잔, 코트 한 벌, 신발 한 짝, 장미 한 송이, 칼, 면도날, 망치, 총알이 한 발 장전된 권총… 그리고 지시사항도 적혀 있습니다.

지금부터 저는 물체입니다. 관람객들은 탁자 위에 있는 모든 것을 저에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심지어 저를 죽이는 것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시간은 6시간이 주어집니다.

  전시장으로 관람객들이 걸어 들어옵니다. 한 사람이 용기를 내 물 한잔을 따라 주네요.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들고 있습니다. 그 반대편 관람객은 날카로운 무언가를 집습니다. 빛이 반사되어 번쩍거리는 물체를 들고 묘한 표정으로 당신에게 천천히 다가옵니다. 섬뜩해지면서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나요? 그 현장에서 누구보다 연약하고 위태로운 존재는 바로 여러분이니까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상상이 스릴러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예요. 의도적으로 자신을 신체적 고통의 중심으로 몰아넣음으로써 고통을 가시화하여 메시지를 전하는 한 예술가의 실제 작품이거든요. 이 예술가는 누구일까요?

 

😰두려움을 뛰어넘은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밤은 새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달콤한 잠에 빠진 아이는 누군가 다급하게 깨우는 소리에 눈을 반쯤 뜨고 일어났어요. 깨운 이는 다름 아닌 소녀의 어머니였죠. 어머니는 말했어요. “침대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자야지!” 소녀는 엄격하기만 한 부모님이 무서웠어요. 실제로 소녀의 부모님은 파르티잔1)이기도 했고요. 부모님의 사이 역시 살얼음판 위를 걷듯 아슬아슬해 집안에는 냉기가 맴돌았어요. 집안 계급부터 달랐던 둘은 성향도 달랐고 대화도 잘 통하지 않았죠. 아버지는 가난한 농민계급 출신이었고, 어머니는 부유한 세르비아 정교도 출신이었거든요. 딱 하나, 공산당의 열렬한 지지자였다는 점이 유일한 공통점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완강한 성격이었어요. 버릇이 나빠질까 염려된다는 이유로 딸에게 키스나 포옹을 해주지 않을 정도였죠. 

  정치하느라 바쁜 부모님 대신 소녀를 보살펴준 사람은 그의 외할머니였어요. 소녀는 독실한 세르비아 정교도였던 할머니를 따라 자주 교회에 방문했는데요. 영성 가득한 공간에서의 기억은 소녀가 성인이 되었을 때 엄청난 영감의 원천이 되었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님께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해 갖게 된 결핍도 영감으로 피어났어요.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는 정신작용은 그의 예술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들이거든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유명한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 1946~)입니다. 

1)  파르티잔(partisan)은 적의 배후에서 통신, 교통 시설을 파괴하거나 무기, 물자를 탈취하는 비정규군을 이야기해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Marco Anelli

 

🙄행위도 예술이 될 수 있을까?

  다시 미술관으로 돌아가 봅시다. 1974년 이탈리아의 한 미술관, 20대의 젊은 여성이 탁자 앞에 동상처럼 서 있습니다. 관람객들은 여성을 하나의 오브제로서 마주합니다. 그들은 탁자에 놓인 도구를 이용해 여성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선뜻 나서기를 꺼려했지만, 3시간이 지나자 그의 옷은 벗겨졌고 4시간째에는 면도날로 그어진 상처에서 피가 흘렀죠. 성적 추행이 벌어지기도 하고 관자놀이에 총알이 겨누어지기도 했습니다. 관객들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고요. 6시간이 지나고 전시가 종료되자, 그는 눈물과 피를 흘리며 관람객들을 향해 걸어갔어요. 많은 관람객들은 그를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비로소 오브제가 아닌 한 사람을 마주하게 된 거예요.

 

<리듬0(1974)> ⓒMoMA 

 

  혹시 눈치채셨나요? 앞서 제시된 작품 <Rhythm 0 (1974)>의 좀 더 구체적인 상황이에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초기작이죠. 자신의 신체를 전면에 내세워 끔찍한 폭력에 노출되게 한 이 행위를 통해 마리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이 작품은 아티스트와 관객 사이의 한계를 시험해보는 퍼포먼스였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실험하는 자리였던 거죠. 인간이 잔인함을 허락받으면 얼마나 빠르게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 거예요. 이처럼 마리나의 초기 작품은 주로 억압과 폭력적 행위를 통한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는 것에 대해서 다루었어요. 

  <Rhythm 10 (1973)>은 마리나의 첫 번째 작품이에요.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탐구하며 의식과 동작의 요소를 표현했어요. 스무 개의 나이프와 두 개의 테이프 녹음기를 가지고 러시안 게임을 하는 작품인데요. 반복적으로 빠르게 자신의 손가락 사이를 찌르는 행위를 하며 만약 손가락을 찌르거나 상처를 입히면 다른 칼로 바꾸어 계속해서 행위를 이어나갔어요. 이 작업은 테이프로 녹음이 되었고, 스무 번 베인 뒤에는 녹음된 테이프를 재생한 채 같은 동작을 반복했어요. 소리와 행위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병합하려는 시도였죠. 이 작품을 통해 마리나는 공연자의 의식 상태를 고려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공연 상태에 들어가면 평소에는 절대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도록 몸을 밀어붙일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요. 

  마리나는 사회적, 역사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에도 퍼포먼스로 목소리를 내었어요.  1990년대 일어난 발칸 전쟁을 계기로 <발칸 바로크 (Balkan Baroque, 1997)>라는 퍼포먼스를 진행했죠. 피범벅이 된 25,000개의 소뼈들 사이에 앉아 6시간씩 4일 동안 뼈들을 씻어내는 공연이었어요. 마리나는 소뼈의 피를 완전히 씻을 수 없고, 견딜 수 없는 냄새 또한 떼어낼 수 없었다고 말하며,  전쟁의 수치심은 씻어낼 수 없음을 지적했어요. 이 퍼포먼스는 발칸 전쟁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벌어지는 모든 전쟁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기도 하답니다.

 

<발칸 바로크(1997)> ⓒLisson Gallery 

 

  이처럼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행위로써 세상과 소통했어요. 그러나 아티스트로서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어요. ‘이것이 왜 예술인가’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거든요. 당시 사람들은 그녀의 공연을 예술로 인정하지 않았어요. 미쳤다거나 마녀라는 식의 말을 하기 일쑤였죠. 그럼에도 그녀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고 지속적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했어요.

 

❤️‍🔥울라이와의 강렬한 만남

  1987년, 중국이 개방되기도 전의 일입니다. 파란 옷을 입은 남자는 고비사막을, 붉은 옷을 입은 여자는 황해를 시작점으로 하여 만리장성 양끝에서 걷기 시작합니다. 걸음은 3개월 동안 지속되고 2,500km 거리에 발자국을 남겼죠. 각 지점에서 출발하여 중국의 12 지방을 돌고 중간지점에 만난 그들은 서로를 껴안았고 여자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감격의 순간이지만, 사실 이는 결별의 시점이었어요. 12년 동안 함께한 이들의 연인 관계에 막이 내려진 것이죠. 영화 같은 결별의 주인공은 바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옛 연인이자 협업가였던 독일의 예술가 울라이(Frank Uwe Laysiepen, 1943~2020)예요. 이 이별 여정은 퍼포먼스 작품이기도 한데요. 헤어짐까지도 예술로 풀어내는 그들의 러브스토리가 궁금하지 않나요? <연인: 만리장성 걷기(The Lovers: The Great Wall, 1987)>를 있게 만든 그들의 만남과 이별, 함께 살펴볼까요?

 

<연인: 만리장성 걷기(1987)> ⓒMoMA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976년, 마리나가 암스테르담에 갔을 때였어요. 마리나와 울라이는 첫눈에 빠졌고, 생일까지 같았던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영혼의 쌍둥이라고 느꼈습니다. 이들의 작품은 관계성에 대한 질문과 남녀의 역학관계, 예술가의 정체성을 다루어요. 서로에 대한 신뢰 없이는 불가능한 것들입니다. <정지 에너지(Rest Energy, 1980)>는 관계와 믿음을 다룬 작품이에요. 목숨을 건 4분 10초 동안의 퍼포먼스죠. 마리나와 울라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고 울라이는 마리나의 심장을 향해 화살을 당기고 있거든요. 집중을 흐리거나 힘을 잃어 균형이 붕괴되면 끔찍한 일이 벌어지게 되는 거예요. 마리나의 가슴쪽에 마이크가 달려 있어 관객들은 그녀의 심장박동을 들을 수 있었어요. 마리나는 이 공연이 가장 힘들었던 작품 중 하나라고 밝혔답니다.

 

<정지에너지(1980)> ⓒMoMA 

 

  한편 인내심을 다루었던 작품도 있어요. <머리 둘이 달린 한 몸(Two Headed Body, 1975)>이라는, 서로의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은 채 등을 대고 앉아 열몇 시간을 버티는 퍼포먼스랍니다. 이외에도 서로의 호흡을 쓰러질 때까지 들이마시거나, 서로의 얼굴을 계속 때리거나, 서로 나체로 마주한 채 그 틈 사이로 관객이 지나게 하는 등 많은 퍼포먼스를 시도했습니다. 그들은 실생활에서도 커다란 벤을 끌고 다니며 염소젖을 짜고, 주유소 샤워실을 사용하며 이리저리 떠도는 현대판 유목민 생활을 함께할 정도로 긴밀한 사이였어요. 하지만 다양한 작품을 통해 믿음을 확인했던 그들도 이별을 피할 수는 없었나 봐요.

  그러나 그들의 헤어짐처럼 20년 만의 재회 역시 작품 안에서 이루어졌어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회고전, <예술가가 여기 있다(The Artist Is Present, 2010)>가 바로 그 현장이었죠. 이곳에서 마리나는 3월부터 5월까지 약 736시간 30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 동안 관객과 마주 앉아 그들이 원하는 만큼 서로의 눈을 응시하는 퍼포먼스를 펼쳤어요. 마리나가 눈을 감고 있다가 관객을 마주할 준비가 되면 고개를 들고 눈을 뜨는데요. 관객이 그녀의 눈을 마주치는 순간 마리나는 거울이 되어 그들을 투영하게 되죠. 마리나와의 이러한 경험에 대해 미국의 할리우드 배우, 제임스 프랭코는 주변에 보는 사람들이 많고 그것을 알고 있는데도 마리나와의 연결이 너무 강력해서 잘 느껴지지 않았다고 전했죠. 많은 이들이 그때의 강렬한 몰입감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눈을 감았다 뜨는데 마리나의 동공이 평소보다 심하게 흔들렸어요. 눈물도 고이는 듯했고요. 입가엔 옅은 미소도 번졌습니다. 눈앞의 관객은 20년 전 헤어진 울라이였거든요. 둘은 눈빛으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녀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규율을 깨고 손을 내밀었고, 마주 잡은 두 손 주변에서는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답니다. 이 사건은 회고전의 가장 유명한 장면이에요.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재회가 이렇게 예술적일 수 있을까요!

 

<예술가가 여기있다(2010)> ⓒMoMA

 

👊끝도 없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영향력

“좋은 아침입니다. 마리나, 일어나서 공연 준비를 할 시간이에요. 이 대화글을 삭제하려면 아무 키나 누르세요, 움직이려면 화살표 키를 누르세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인 <The Artist Is Present, 2010>를 보고 감명받은 게임 제작자 피핀 바(Pippin Barr)가 만든 <The Artist Is Present 2, 2021>라는 게임 속 대사입니다. 본 공연을 그대로 재현한 배경 속,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되어 관람객들을 마주하게 는 것이 게임의 핵심 서사죠. 사실 <The Artist Is Present 1, 2011>가 게임의 첫 번째 버전인데요. 이 버전에서는 반대로 플레이어는 관람객이 되어 마리나를 마주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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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Artist Is Present 2, 2021> ©GameScenes

 

  ‘아브라모비치 메서드(The Abramovic Method)’는 마리나가 그간의 퍼포먼스를 통해 개발한 행위예술운동으로, 미국의 팝스타인 레이디 가가를 비롯하여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제공했어요. 이처럼 마리나와 그녀의 퍼포먼스는 다른 문화 영역에도 영향을 미쳤어요. 자신만의 길을 열심히 가꾼 개척자,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이미 예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음에도 그는 안주하지 않고, 후배 예술가들을 위한 일에 주목합니다. 2010년 뉴욕 현대 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MOMA)에서 회고전을 열 때에도 참가를 희망한 예술가들을 선발하여 훈련시키고 그녀의 이전 전시 재현에 참여하게 했죠. 또한 ‘아브라모비치 인스티튜트(Marina Abramović Institute, MAI)’라는 조직을 설립하여 2013년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해오고 있답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 곳에 모여 행위예술을 중심으로 교류하는 장이자, 대중들에게 몸과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운영되고 있어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목소리를 내기도 했는데요. 이처럼 후원을 위해 이전 퍼포먼스를 재연하는 등 현재도 왕성한 행보를 보이고 있답니다. 70년대에 함께 활동했던 퍼포먼스 예술가 중에는 거의 유일하게 현재도 활동하는 인물이죠. 거절도 많이 당하고 욕도 많이 먹었지만, 남들이 뭐라 해도 본능적으로 옳다 믿는 일은 그대로 밀고 나갔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걸어온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예술계에 충격과 변화를 일으켰듯, 후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예술가로 남을 듯하네요. 역시 ‘퍼포먼스의 대모’입니다!

 

💬Editor’s Comment

  초창기 시절인 70년대의 마리나가 과격하고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퍼포먼스를 했다면,  21세기의 그는 대중과의 공감, 소통, 치유, 위로 그리고 사랑을 위한 공연을 하는 예술인이 되었어요. 울라이와의 만남이,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850만 명이 넘는 대중들과의 만남이 그녀의 생각과 소통방식을 변화시켰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약해지는 것, 두렵고 부끄러운 부분을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말이죠. 그런 방식으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요. 이것이 신뢰를 창출하는 과정입니다.” 

  그의 삶과 정신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니, 그녀 스스로 연약해지려 했던 이유가 이해되는 것 같아요.  자신만의 독보적인 무언가를 예술로 표현하는 것도 멋있지만, 결국 예술은 근원적인 것들을 건드리며 인간의 본성을 끄집어내는 것이잖아요. 아브라모비치처럼 소통과 사랑으로 내면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아티스트들이 세상에 많이 존재하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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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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