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시간을 거스르는 자! 공간을 지배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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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가와 깊게 교감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애견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강아지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었는데요. 처음에는 어찌할 줄 몰라 우왕좌왕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강아지들이 원하는 게 뭔지 알겠더라고요. 이처럼 ‘교감’은 더 깊은 이해 또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전시는 서귀포시 공립미술관 공동기획전 <교감의 형태>예요. 교감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죠? 이 전시에서는 시간 교감(공존)과 공간 교감(안팎의 조응)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답니다. 시간과의 교감? 공간과의 교감? 상당히 낯선 발상인데요. 예전에 살던 집에 방문하거나, 1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과 연락하거나, 어린 시절에 받았던 크리스마스 카드를 다시 펼쳐보는 것도 시간과의 교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전시 <교감의 형태>를 통해 자세히 알아볼게요.

 

➰미술관끼리도 교감을 해

  제주도 서귀포시는 3개의 공립미술관이 운영되고 있는 문화예술의 도시예요. 한 도시에 무려 3개나 되는 공립미술관이 있다니, 이런 경우는 전국적으로도 매우 드물답니다. 1987년 전국 최초 시립미술관으로 개관한 기당미술관, 2002년에 개관한 이중섭미술관, 2008년 개관한 소암기념관이 바로 서귀포시에 활력을 더하는 세 곳의 공립미술관인데요. 각자의 성격에 따라 운영되고 있던 미술관들이 2019년에 ‘기증’을 테마로 한 릴레이 전시회를 시작으로 2020년부터 적극적으로 연계하여 공동기획전을 개최하고 있답니다. 그러니까 올해 열리는 전시 <교감의 형태>는 세 번째로 열리는 서귀포시 공립미술관 공동기획전인 것이지요.

  세 곳의 미술관이 단일 주제의 전시를 기획한 데에는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었습니다. 코로나19로 단절됐던 일상을 ‘예술과의 교감’을 통해 회복하고, 문화예술 도시로서의 정체성도 강화하고자 했던 것이죠. 그중 <교감의 형태>전이 유독 특별한 것은 4월 18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해제되어 인원 제한 없는 자유로운 관람이 가능하기 때문인데요. 2020년, 2021년에 공동기획전이 열릴 때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엄격히 지켜졌고, 온라인 사전 예약이 필수여서 전시를 관람하기가 까다로웠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다소 잠잠해진 지금, 이번에 개최된 전시는 누구나 제한 없이 즐길 수 있어요!

 

교감의 형태 포스터 ©서귀포시

 

  한편 지난 2020년부터 공립미술관 공동기획전에 함께했던 소암기념관은 내부 증축 및 리모델링 사업 추진으로 인해 이번 <교감의 형태> 공동기획전에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기당미술관에서 ‘시간교감: 공존’을, 이중섭미술관에서 ‘공간교감: 안팎의 조응’을 관람하도록 되어 있는데요. 두 곳의 미술관을 모두 방문해 관람하는 것도 이번 전시의 주제인 ‘교감’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육지에 계신 분들은 전시를 보러 갑자기 제주도까지 날아오기란 쉽지 않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어요! 그런 분들을 위해 <교감의 형태>가 어떤 모습의 전시였는지, 포인트만 꼭꼭 짚어 말씀드릴게요!

 

🙄시간, 모두에게 같을까?

  첫 번째로 다녀온 기당미술관의 ‘시간교감: 공존’을 먼저 소개할게요. 이 전시에서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고, 늘 우리와 함께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너무 당연한 말 아니냐고요? 하지만 이 당연한 진리를 세 명의 작가가 모두 다르게 해석했다면요? 전시에 참여한 강주현 작가, 문창배 작가, 오기영 작가가 각각 해석한 시간 교감을 짧게 짚어볼게요.

  강주현 작가는 사물이 변화되는 극적인 순간의 움직임을 연속적 흐름으로 포착하여 입체작품으로 보여주었어요. 쉽게 말해 1초 전, 현재, 1초 후가 예상되는 사물의 상태 변화를 작품으로 만들어 시간과의 교감을 드러낸 것이죠. 강주현 작가는 순간과 연속이 동시에 표현되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고 작가노트를 통해 밝혔습니다. 특히 그 의도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은 ‘드로잉-떨어지는 의자’였는데요. 의자가 떨어지는 모습을 카메라가 연속 촬영하듯 포착한 것이 인상 깊었답니다. 작품을 보는 순간 ‘시간을 잡아둔다’는 말이 머릿속을 스쳐가며 온몸에 소름이 돋기도 했어요. 

 

강주현, <드로잉, 떨어지는 의자> ©오지은 에디터

 

  문창배 작가는 제주 바다를 꾸준히 작업의 중심에 두고 있는 작가예요. 그의 ‘제주 바다’는 너무 사실적이어서 마치 사진을 보는 것 같았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캔버스 위에 아크릴로 그린 그림임을 알 수 있는데요. 이렇듯 섬세하게 쌓아 올린 선들이 바로 문창배 작가가 해석한 시간교감이에요. 그러니까 선 하나하나를 그은 순간이 모여 만들어진 사실적 순간에서 시간을 포착한 것이지요. 흑백 속에 자신의 시간과 자연의 시간을 모두 담아낸 것도 작품의 특징입니다.

 

문창배, <시간-이미지> ©오지은 에디터

 

  오기영 작가는 한지를 이용해 항(‘독’의 제주 방언)을 주제로 제주의 삶과 자연을 읽어냈어요. 작가의 유년 시절의 잔상과 지난 세월을 떠올리게 하는 항을 통해 시간과 교감한 것이지요. 제가 처음에 생각했던 시간 교감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걸요? 이렇듯 작가마다 시간과의 교감을 다르게 표현한 것을 작품을 통해 이해할 수 있어 흥미로운 전시였습니다.

 

 오기영, <제주, 시간을 입히다.> ©오지은 에디터

 

👀같은 제주, 다른 시선

  다음으로 이중섭미술관에서 열린 ‘공간교감: 안팎의 조응’을 살펴볼까요? 이 전시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바로 ‘섬 안과 밖에서의 교감 이야기’예요. 전시에 참여한 작가는 박순민, 이윤빈 작가로, 두 분 모두 이중섭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인데요. 두 작가는 ‘제주’라는 동일한 공간에 머무르면서도 섬 안과 밖에서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제주와 교감했어요. 박순민 작가는 서귀포에서 나고 자라, 작가로서의 대부분의 시간을 제주에서 보냈지만, 이윤빈 작가는 주로 서울에서 작품 활동을 했던 소위 육지작가죠. 그럼, 공간 교감에 대한 두 작가의 해석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볼게요. 

  박순민 작가는 서귀포 토박이랍니다. 때문에 그의 그림에서 서귀포를 많이 볼 수 있는데요. 토박이의 시선과 이방인의 시선이 공존해서 흥미로운 그림들이죠. 그는 가끔 이방인의 시선으로 서귀포를 바라보고 싶을 때가 있다고 밝혔어요. 그러나 도시가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마주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어쩌면 이방인일지도 모른다고 하기도 했죠. 이렇듯 같은 공간을 다양한 시점으로 캔버스에 녹여낸 것이 박순민 작가 그림들의 큰 특징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역시 서귀포시에서 나고 자랐으므로, 그림 속의 풍경들이 익숙하고 반가웠는데요. 서귀포라는 도시를 잘 몰라도 전시 관람엔 아무 문제없습니다! 오히려 그림에 숨겨진 다양한 시점을 찾는 재미가 있을 거예요.

 

박순민, <또 다른 언어-서귀포> ©오지은 에디터

 

  이윤빈 작가는 공간과 본인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관심이 많은 작가예요. 그는 ‘나’라는 존재가 주체가 되어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경험하는 것이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라고 전했는데요. 그래서일까요? 제주의 여러 곳을 작품에 담아낸 이윤빈 작가는 그 주제가 된 지명을 작은 지도 모양으로 작품 밑에 표시해 두었답니다. 이는 제주를 잘 모르는 외부인을 배려한 것이기도 하죠. 동화적인 분위기로 제주 곳곳을 담아낸 그의 그림을 보면 제주에 놀러 온 여행객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 거예요.

 

이윤빈 작가의 작품들 ©오지은 에디터

 

✅솔직 핵심 정리 노트

ㅇ박수갈채드립니다

  • - 시간 또는 공간과의 교감을 주제로 작가들의 다양한 시선을 담은 작품들을 볼 수 있었어요.
  • - 통일감 있는 전시회장에서 관람할 수 있었어요.

ㅇ요건 쫌 아쉬운데

  • - 전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인터넷에도 나오지 않아 사전 정보가 부족했어요.

 

💬Editor’s Comment

  전시 주제 자체도 꽤 독특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해 후기를 많이 검색해보았는데, 생각보다 정보가 자세히 나오지 않았어요. 하지만 작품을 보고 나니 직접적으로 작가의 생각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크지 않은 전시장이라 하루에 다 돌아볼 수 있어 관람하기에 편했고, 시간과 공간을 비교하며 작품을 즐길 수도 있었고요. 시간과 공간은 늘 우리를 두르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깊이 생각해보지 않는 주제이기도 하죠. 자칫하면 뻔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여러 작가의 생각이 묻어나는 작품들을 보니 오히려 다채롭게 느껴졌어요. 서귀포시에서 보여줄 다음 공동기획전의 주제는 무엇이 될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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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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