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버튼, 오해받아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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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외로움이나 이방인이 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면 그 감정은 결코 당신을 떠나지 않습니다. 당신은 행복하기도 성공하기도 하고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그것은 여전히 당신 안에 남아 있습니다.”
외로움은 우리의 삶을 파멸로 이끄는 나쁜 감정일까요? 사람들은 저마다 고독을 경험해요. 타인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특히나 더 쓸쓸하죠. 여러분은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들 때, 어떻게 감정을 해소하나요? 어떤 사람은 일기를 쓰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파편이 담긴 물건을 수집하고, 또 어떤 사람은 가족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외로움에서 벗어나려고 해요. 그런가 하면 자기만의 방, 자기만의 고독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술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죠. 이들이 음악과 몸짓, 이미지로 승화시킨 고독은 손에 잡히거나 통제 가능한 실체가 되어 우리의 일상에 말을 걸어오곤 합니다.
🙌10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거장, 팀 버튼
자신의 심오한 외로움에 기괴한 상상력을 더해 특별한 이야기로 탄생시키는 예술가가 있습니다. 바로 판타지 영화의 거장 팀 버튼 감독인데요. 그는 본인만의 독특한 철학과 콘셉트를 고수해 ‘작가’형, ‘예술가형’ 감독으로 불리곤 하죠. 여기, 팀 버튼의 작품 세계를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지난 4월 30일에 시작되어 9월 12일까지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진행되는 <팀 버튼 특별전>인데요. 최초로 공개되는 150여 점의 작품을 포함해 총 520여 점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답니다. 본 전시는 팀 버튼의 지난 50년 영화 인생이 담긴 회화, 드로잉, 사진, 영상, 미디어 아트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그의 예술적 사유와 모티프가 담긴 역작과 미공개 프로젝트도 만나볼 수 있어요. 아, <팀 버튼 특별전>은 전세계에서 개최되고 있는 투어전으로서 무려 60만 명의 관람객을 유치한 영향력 있는 전시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지난 2012년 현대카드의 컬쳐프로젝트 이후 딱 10년 만에 열리는 전시예요. 팀 버튼은 10년 전 한국에 왔을 당시의 이방인이 된 듯한 감정을 느끼고 특별한 조형물을 만들었는데요. 그 작품은 전시장 입구에서 만나볼 수 있답니다. 한편 팀 버튼은 자신에게 많은 영감을 준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건물에서 여는 전시라 더욱 감회가 새롭다고 전하기도 했죠. 팀 버튼은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번 전시를 관람한 분이라면 팀 버튼의 겸손함에 한 번 더 놀라실 거예요!
🧐팀 버튼, 어떤 사람이야?
꿈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지고, 과거나 현재, 미래 같은 시간적 구분이 어려우며,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모호한 것을 판타지라고 해요. 영화이론가 비비안 소브책(Vivian Sobchack)의 말을 빌리면, 판타지 영화는 자연법칙을 ‘일시정지’시킵니다. 현실에서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도 판타지 영화에서는 가능하죠. 때문에 독특한 공상을 즐겼던 팀 버튼은 무한한 상상력이 힘을 발휘하는 판타지 장르에서 온전히 환영받는 축복을 경험했을 거예요.
사실 팀 버튼은 아버지와의 불화, 학창 시절의 따돌림으로 음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성격도 내성적이라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공동묘지에서 놀기도 했죠. 또한 고향 동네는 팀 버튼에게 지루하고 따분한 곳이었답니다. 때문에 혼자서 공포영화나 소설 같은 대중문화를 접하는 시간이 많았다고 밝혔어요. 피규어 수집도 즐겼는데, 그래서였을까요? 또래 여학생들로부터 기피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고독한 어린 시절을 보낸 팀 버튼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월트 디즈니가 설립한 캘리포니아 미술학교(칼 아츠, CalArts)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디즈니에 애니메이터로 입사했어요. 하지만 그가 그리고 싶었던 기괴한 이야기는 디즈니가 추구하는 ‘아이를 위한 동화적인 이야기’와 대립했고, 결국 퇴사를 선택했죠. 팀 버튼의 판타지에서 현실과 환상은 뒤섞여 그 의미가 뒤집히고, 행복과 불행은 관객에게 새로운 정의를 요구합니다. 그의 작품은 주로 몽환적인 미장센과 기괴한 콘셉트가 혼합된 판타지인데요. 주인공은 주로 괴물이고 자신의 어떤 측면으로 인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져요.
그의 손이 닿으면 종이 한 장이 아이디어를 담아내고, 이야기를 발생시키고, 나아가 영화가 됩니다. 전시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은, 창작의 과정이 생각보다 가시적이라는 점이에요. 그러니까 팀 버튼의 영화도 실체 없는 개념의 덩어리가 아니라, 수많은 아이디어가 단계를 밟으며 쌓아 올려진 견고한 성과도 같다는 말이죠. 이렇듯 본격적으로 영화가 만들어지기 전 아이디어 단계에서 그려진 그림 조각들도 직접 볼 수 있었는데요. 세계를 여행하며 순간순간 떠오른 이미지들을 냅킨에 그린 <냅킨 시리즈>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서로 다른 색과 질감의 냅킨에 펜 하나로 그의 머릿속을 옮겨 놓았다는 점이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뿐만 아니라 쭉 찢어낸 작은 노트에 그려낸 그림 시리즈도 확인할 수 있답니다.
🥶기묘하고 오묘한 팀 버트네스크
팀 버튼의 예술세계는 ‘버트네스크’(Burtonesque, 버튼양식)라는 단어를 낳았어요. 그만큼 그의 작품이 독창적이고, 확고하다는 뜻이겠죠. 그럼 저와 함께 팀 버튼의 머릿속으로 잠시 들어가 볼까요?
팀 버튼은 어떤 방식으로든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이미지를 표현해요. 그가 연출한 <찰리와 초콜릿 공장>, <가위손>을 본 사람이라면 제목만 보아도 다채로운 색채와 질감, 장면들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는 스케치를 먼저 생각한 다음에 캐릭터에 흥미를 느끼면 그것에서 발생하는 의미를 고민한다고 밝혔는데요. 마치 피카소처럼, 자신만의 고유한 시선을 거쳐 재창조된 인물들을 그려내는 겁니다. 따라서 인간과 동물, 신화 속 캐릭터가 한데 섞여 창조된 이미지가 많죠.
특히 ‘지구’의 변형을 표현한 작품들이 인상 깊었는데요. 지구인과 외계인의 상호작용을 다룬 작품들은 본 적이 있지만, 지구의 형태와 존재 그 자체를 변형시킨 작품은 처음이었거든요. 한편 <세 개의 생명체>가 대표하는 팀 버튼의 생명체 시리즈는 대부분 외계인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몇몇 작품에서는 지구가 괴상한 외계 생명체들에게 둘러싸여 있거나, 수많은 인파에 의해 분절되고, 긴 꼬리 형태의 물체를 동반하는 등 갖가지 모습으로 변형되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자신이 사는 곳인 지구를 마음대로 자르고, 터뜨리고 또 공격당하게 하는 등 독창적으로 비틀어 표현한 작품에서 그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 표현 방식을 엿볼 수 있답니다.
팀 버튼의 작품 속 캐릭터가 주는 인상은 ‘완벽한 이방인’ 그 자체예요. 대부분 인간의 모습과는 다른 해골이나 유령의 모습이죠. 개미만 한 눈동자, 빨려 들어갈 듯한 다크서클, 빼곡한 치아 등은 완벽하게 낯선 세계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팀 버튼은 신체를 표현할 때 분리된 육체와 기하학적 형태, 그리고 바느질 자국의 모티프를 자주 사용하는데요. 그가 바느질 모티프를 담아 1992년부터 1999년까지 제작하며 영화의 시각적 연출과 테마에 활용했던 큼지막한 사이즈의 폴라로이드 사진 시리즈 역시 이번 전시에서 관람할 수 있답니다.
<유령신부>, <가위손>,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의 잭 스켈링턴, <프랑켄위니>의 스파키 등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 대부분이 가지는 공통점을 아시나요? 그들은 바로 ‘동정심을 부르는 괴물’이자, ‘오해받는 낙오자’랍니다. 유년의 순수함과 성인의 불완전함을 동시에 지닌 존재이기도 하고요. 팀 버튼은 그의 단편작과 시를 모아 1997년 책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이라는 책을 출간했는데요. 굴 소년 역시 팀 버튼의 어린 시절이 응집된 캐릭터이자 ‘오해받는 낙오자’랍니다. 책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사회에서 고립된 것으로 묘사되어 독자들의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리게 해요. 이 작품은 특별상영관에서 애니메이션의 형태로 관람할 수 있는데요. 아직 본 적 없으시다면 꼭 보시기를 추천드려요. 팀 버튼이 바라보는 세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하는 계기가 될 거예요. ‘오해받는 낙오자’는 전시에서 하나의 테마로 관람할 수 있답니다.
팀 버튼 특별전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아름다운 요정이 아닌 괴물이 나를 위로하고, 친구가 되어주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요. 팀 버튼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괴물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는 작품을 통해 진정으로 무서운 것은 괴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나는 항상 괴물이 좋았고, 괴물 영화를 정말 즐겨 봤다. 한 번도 그들이 무섭다고 느낀 적이 없다. 보통 아이들은 동화 속 예쁜 그림을 더 좋아하지만, 난 사람들이 괴물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괴물들은 주위 인간들보다 훨씬 더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다.”
팀 버튼이 그려낸 캐릭터들은 겉모습은 기괴하지만, 그 속에서 사랑스러움을 품고 있어요. 괴물의 형태 안에 반짝이는 모습과 인간미를 심어둠으로써 관객이 캐릭터를 사랑하고 괴기스러움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었죠. 팀 버튼은 외로움과 내면의 상처로 인한 아픔을 반복해서 경험했어요. 때문에 그의 내면의 아이는 기괴한 형태로 존재하죠. 하지만 작품에서만큼은 무서운 모습의 아이가 오롯이 사랑받을 수 있었답니다. 그렇기 때문에 팀 버튼의 작품세계는 ‘예술로 승화된 외로움’으로 집약되는데요. 그의 상처는 작품에서 다양한 괴물과 생명체의 형태로 살아 숨 쉬며 또 다른 ‘이해받지 못한 낙오자’들의 삶에 가닿습니다. 이해받지 못한 아이에서, 전세계가 사랑하는 인물들을 그려낸 감독이 되기까지. 이번 전시에서 그의 여정에 함께 해보면 어떨까요? 아름답고 선한 이야기로 가득 찬 동화도 좋지만, 현실의 이면을 섬뜩하게 표현하면서도 각자의 빛을 외면하지 않는 팀 버튼만의 스토리, 특별하고 귀중하지 않나요?
✅솔직 핵심 정리 노트
ㅇ박수갈채드립니다
- - 약 520여 점의 팀 버튼 작품을 한 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워요.
- - DDP의 건축물과 동선에 걸맞은 전시 흐름과 창작 조형물이 관람의 재미를 한층 더 돋워요.
- - 팀 버튼이 그려온 스토리보드와 습작들을 스케치 선 하나하나 아주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어요.
- - 각 작품의 영상 자료가 대부분 상영 중이어서, 기존에 팀 버튼의 작품을 접하지 않은 이들도 충분히 그의 작품을 맛볼 수 있어요.
ㅇ요건 쫌 아쉬운데
- - 팀 버튼은 자신의 내면세계가 외부에 공유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하기도 했는데요. 그 때문인지, 각 작품의 스토리보드에 관한 추가적인 설명은 부족했습니다. 풍선이나 괴물에 관한 거시적인 의견 외에는 팀 버튼의 창작 과정에 대한 깊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없어 아쉬웠어요. 그의 사고에 대해 조금이나마 힌트를 줄 수 있는 코멘트가 있었다면 더욱 흥미로운 탐색이 되었을 것 같아요.
💬Editor’s Comment
팀 버튼은 음울한 어린 시절에 겪었던 고독을 그저 아픈 기억으로만 남겨두지 않아요. 자신의 감정과 부유하는 마음들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인물로 입체화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죠. 그의 창조행위가 그를 버티게 하고, 그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다시 그를 살게 하는 묘약이었던 것 같습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공포스러운 모습은 그 캐릭터를 전부 나타내지 않아요. 캐릭터가 이방인으로서 겪는 감정과 어두운 현실에 대응하는 방식은 순수하고 아름답습니다. 아마 팀 버튼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태도를 작품 속에 녹여냄으로써 그 방법을 공유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가 살아온 세계는 결국 우리의 세계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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