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 내가...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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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인격이라는 게 지갑에서 나오는 법이지”
영화 <도둑들, 2012>에서 마카오 박이 했던 유명한 명대사예요. 이 대사처럼 돈은 인간성, 인간 내면의 이중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도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본질적으로 돈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하게 되었지만 돈이 인간보다 우위를 점하게 되면 보편적인 도덕적·윤리적 상식이 무너지고, 인간은 돈을 위해 움직이는 도구로 전락하게 되니까요. 더군다나 재빠른 디지털 시대인 요즘에는 돈의 이동속도가 훨씬 가속화되고 거래 또한 쉬워졌습니다. 방 안에 앉아서 하는 몇 번의 클릭으로 다양한 범위의 액수가 오갈 수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인간이 고유의 위치를 잃고 도구화되는 상황은 역시 더 다양해졌다고도 할 수 있는데요. 안타깝게도, 이런 일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
연극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죠.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현대의 자본주의의 민낯을 그대로 비춘 연극이 있는데요. 바로 6월 30일까지 진행되는 연극열전 9의 두 번째 작품, <보이지 않는 손>입니다. 숫자 9는 무엇이고 또 두 번째 작품이라는 게 무슨 뜻이냐고요? ‘연극열전’은 한국 연극 대중화의 가능성을 연 2004년 <연극열전>을 시작으로 탄생한 격년제 연간 연극 프로젝트예요. 현재는 연극열전 시리즈들을 체계적으로 소개하기 위한 회사로서 자리잡기도 했고요. 숫자 ‘9’는 연극열전의 9번째 시리즈임을 의미하고, 연극열전 9의 두 번째 작품이라는 것은 올해의 연극 프로젝트 중 두 번째 작품이라는 것이죠.

연극 <보이지 않는 손>은 제목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듯, 영국의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제시한 경제 이론, ‘보이지 않는 손’에서 착안하여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사회의 모든 경제 주체가 합법적인 제도 아래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며 경쟁을 해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통제되는 것처럼 절로 경제 질서가 잡히고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이론이에요. 연극 <보이지 않는 손>은 이 이론에 현대성을 더해, 주식시장에서 사용되는 ‘옵션거래’를 핵심 키워드로 하여 서사를 전개해나갑니다. ‘옵션’이란 미리 책정된 가격으로 약속한 시점에 사고팔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답니다. 옵션거래의 핵심은 가격 변동에 따라 이 권리를 행사할지 포기할지에 달려 있죠.
이 작품은 퓰리처상 희곡 부문을 수상한 바 있는 파키스탄계 미국인 작가 에이야드 악타가 쓴 금융 스릴러물입니다. 무대 배경이 조금 독특한데요, 번쩍번쩍한 은행가가 아닌, 바로 파키스탄의 무장단체에게 감시를 당하는 방안이거든요! 미국의 유능한 투자 전문가인 닉 브라이트는 무장단체에게 납치를 당한 후 자신의 몸값 천만 달러를 직접 벌기 위해 단체 조직원인 바시르에게 투자일을 가르치며 함께 옵션거래를 시작해요. 이들은 주식에서 이득을 취하기 위해 테러를 일으켜 정보를 이용하고 경제를 불안정화 시키는데요, 닉은 잠시 죄책감에 괴로워하기도 하지만 곧 자신의 가족을 생각하며 눈앞에 놓인 이익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바시르는 우리 손에 직접 피를 묻힌 것도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하죠.
인간의 목숨이 그저 데이터화 되고 수치화되는 장면은 섬뜩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바시르와 무장단체의 수장 이맘 살림은 파키스탄에 봄이 오기를 바라며 혁명과 민중을 외치는 인물이었지만, 닉에 의해 자본주의에 눈 뜨게 되면서 사적 이익을 취하는 인물로 변모하게 됩니다. 어리고 순수했던 또 다른 조직원 다르도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에 조종당하고 인간의 이중성에 물들어 변하게 되죠. 연극 <보이지 않는 손>은 ‘금융투자’를 소재로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자체보다는 돈에 대한 인간의 본질적 습성에 대해 더욱 깊이 논하는 작품이에요. 돈에 의해 무너지는 인간성과 수단화된 인간을 긴박감 속에서 치밀하게 잘 그려낸 극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막혀오는 듯 답답하면서 동시에 아찔하죠. 저 또한 관람 중에 스스로 제대로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해볼 정도였답니다.
💪조별과제 성공!
연극이 끝나고 난 뒤, 가장 강렬하고 빠르게 와닿았던 생각은 바로 ‘와, 조별과제 성공 예시 같다!’였습니다. 왜냐고요? 배우의 연기와 작가의 스토리,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든든하게 받혀줄 연출력까지 누구 하나 무임승차하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단연 훌륭한 연출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연출이란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공연을 빛내줄 최선의 경우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과연 이런 연출이 아니었다면 연극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얼마나 전달해낼 수 있었을까 싶었거든요.
이번 공연에서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펀자브 지역에서 사용하는 ‘펀자브어’를 대사 중간중간에 사용하여 현장감을 더했어요. 배우가 펀자브어로 말할 때면, 무대 벽에 자막이 등장해 관람객의 이해를 돕습니다. 파키스탄인과 미국인 사이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극인데, 한국인 배우들이 연기를 하다 보니 아무래도 사건 현장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인데요. 하지만 이런 한계를 펀자브어 사용으로 완화하려 했던 노력이 돋보였어요! 또 미국인 닉이 알아들으면 안 되는 내용들을 내용들을 말할 때 펀자브어를 사용함으로써 극의 긴장감 역시 자연스레 더해졌고요.
또 주목할만한 점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또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한 공포를 함축적으로 표현해낸 그림자예요. 민중의 돈을 몰래 자신의 이익으로 빼돌린 수장의 행적이 바시르에게 발각된 이후 그는 다르의 손에 의해 처단되는데요. 컴컴한 방 안에 램프를 들고 들어온 다르는 구토를 하고 자신의 손을 남의 손인 것처럼 찬찬히 뜯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괴상한 소리를 냅니다. 이때 절묘한 위치에 놓인 램프가 다르 손의 그림자를 그의 얼굴 위에 머무르게 하고, 벽면에는 그의 움직임을 투영한 거대한 그림자를 만들어내죠. 마치 막강한 어둠의 존재가 다르의 탈을 쓰고 움직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닉의 손 역시 그림자가 되어 벽에 등장하는데요. 닉과 다르의 손은 경제 이론인 보이지 않는 손을 은밀히 암시하는 듯합니다. 이 연출 덕분에 극은 특별한 대사 없이도 인물들의 심리는 세밀하게 표현되고, 그림자의 이중적 의미 또한 드러나게 되죠.
마지막으로는 영상을 활용해 관객에게 압도감과 함께 연극의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어요. 극의 후반부에서 바시르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 채 닉의 발과 손을 묶었던 쇠사슬을 풀어주고 돈을 주며 이제는 자유의 몸이라고 말합니다. 돈과 자유, 닉이 갈망하던 것들이었죠. 그러나 모든 상황을 지켜본 관람객은 그가 정말 자유해진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한 품에 다 안을 수도 없는 많은 돈을 갖고 문간에 선 닉 앞에 펼쳐진 풍경은, 폭격 소리와 피비린내 나는 전쟁 현장이었거든요. 자유함이 무엇인지 재고하게 되는 순간, 벽이 양 사이드로 해체되면서 거대 스크린이 등장하고 엄청난 사운드와 함께 영상이 시작됩니다. 전투기에서 떨어지는 폭탄과 달러 지폐, 그리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주식 그래프가 한 데 엉켜서 등장하죠. 열린 결말로 극은 마무리되지만, 영상이 던진 메시지를 통해 관객의 고민은 시작됩니다. ‘나는 평소에 돈과 인간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했으며 어떤 태도를 가지고 바라보고 있었는지’ 또 ‘자본주의 체제 안에 있는 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떤 제스처를 취했을지’ 등 극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에 대해 말이죠.
✅솔직 핵심 정리 노트
ㅇ박수갈채드립니다
- 한국인을 연기하는 것이 아님에도 배우들의 눈빛 연기와 목소리 톤이 극 중 인물들과 잘 어우러졌어요! 능숙하게 들리는 펀자브어도 자연스러웠답니다.
- 현대적 감각을 살려 미디어를 적절하게 활용했어요. 극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그저 창문 너머의 일이 아님을 효과적으로 전달했죠.
ㅇ요건 쫌 아쉬운데
- 경제 분야에 큰 관심이 없다면 상황을 즉각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있겠어요. 대사의 호흡이 빠르고 대사 속에 많은 양의 경제 용어들이 밀도 있게 등장하거든요!
💬Editor’s Comment
인간도 돈도, 그리고 사회를 이루는 대부분의 것에는 다면적인 부분이 있잖아요. 이번 연극은 바로 이 점을 계속해서 인지하게끔 해요. 그래서 더 본질적으로 가치 있는 것들을 상실하지 않도록요! 이번 연극은 제가 처음으로 접한 연극열전 작품이기도 한데요. 흥미롭게 관람한 덕분에 앞으로 예정되어있는 연극열전 9의 다른 작품들까지 기대하게 되었답니다. 여러분도 연극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인식 재고의 시간을 가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또 연극열전 시리즈의 매력에 저와 함께 퐁당 빠져버리실 분도 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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