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연극의 제작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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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나 영화를 보고난 후, ‘이것’을 찾아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작품의 여운이 진하게 남아 장면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때, ‘이것’을 찾아보며 아쉬움을 달래곤 하는데요. 바로, ‘메이킹필름’입니다.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이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었는지 엿볼 수 있는 재미가 있죠. 생각보다 많은 제작 스텝들이 화면에 등장해 놀라기도 하고요. 연극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편의 작품을 무대로 올리기 위해 겪는 일련의 과정들은 또 하나의 본편을 보는 것처럼 재미있고 치열한 사건들로 가득합니다. 연극의 막이 오르기 전까지 무대 뒤와 앞에선 어떤 시나리오가 펼쳐지고 있을지, 연극의 제작 과정을 따라가 볼까요.
연극 제작 과정은 크게 제작 전 예비 단계(Pre-Production), 공연 및 제작 단계(Main-Production), 그리고 제작 후 정리단계(Post-Production)로 나뉩니다.
연극 제작의 예비단계
‘예비단계’는 다시, 네 단계로 나뉘는데요, 먼저 작품을 선정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제작자들은 ‘무엇(What)’보다는 ‘왜(Why)’에 집중합니다. ‘어떤 작품을 제작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쉽게 내릴 수 있어도, ‘왜 이 작품이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가령, <햄릿>이라는 고전 작품을 제작하기로 했다고 가정할게요. <햄릿>의 작품성이야 따로 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보증된 것이지만, 이 작품을 굳이 2021년 지금 올려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각자의 대답이 다를 거예요. 때문에 모두를 만족시킬만한 답을 찾기 위한 치열하고 고된 토론의 장이 이어집니다. 제작자뿐 아니라, 배우와 관객 모두 이 물음에서 ‘공연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에, 이는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절차라고 할 수 있어요.
예비 단계의 두 번째 파트는 주제와 콘셉트의 확정입니다. 이때 연출자의 사상, 감정 등을 ‘어떻게(How)’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해요. 예를 들어, 선정된 작품 <햄릿>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지, 아니면 재해석을 하거나 각색을 통해 새롭게 표현할 것인가를 결정하며 콘셉트를 정하는 것이죠. 주제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기존의 주제에 충실할 수도 있고, 표현하고자 하는 새로운 부분에 초점을 새로 맞출 수도 있어요. 이 어려운 고민이 끝나면 세 번째 스텝으로 넘어갑니다.
공연대본을 완성하는 것인데요. 만약 희곡을 그대로 공연하는 경우엔 희곡이 그대로 공연대본이 되겠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수정이 이뤄지면 희곡은 ‘원본’으로 남고, 새로운 공연대본이 탄생하게 돼요. 이때 재창작된 대본은 아예 제목까지 바꾸는 경우가 많아요. 원제 <햄릿>에 변형을 가한 <플레이 위드 햄릿>, <햄릿, 혼잣말>처럼요.
예비과정의 마지막은 역할의 확정으로, 메인 스태프들을 섭외하는 과정입니다. 프로듀서(Producer), 연출가(Director), 극작가(Playwright)를 비롯해 무대감독(Stage Manager), 무대디자인(Scenic Design), 조명디자인(Lighting Design), 음향디자인(Sound Design), 의상디자인(Costume Design) 등 각 파트 별로 최종 책임을 지는 스태프를 메인 스태프라 부르는데요. 연출가의 경우 작품의 선정 이전에 결정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통상적으로는 작품 선정 후 가장 맞는 연출가를 섭외하는 편입니다. 연출가가 정해지면 그를 도울 조연출도 정하고요. 각 파트별 스태프 규모도 함께 결정하게 됩니다.


연극의 제작 단계
예비단계에서 기본 조건들이 완성되고 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제작 단계가 시작됩니다. 이 단계는 크게 배우들의 연습과 스태프들의 준비과정으로 구분할 수 있어요.
먼저, 배우들의 연습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첫 번째는, 대본 읽기(Reading)입니다. 대본 읽기는 감정 없이 읽는 Dry Reading과 감정을 실어 읽는 Emotional Reading 두 종류가 있는데요, 이를 번갈아가며 대본을 파악한 뒤 본격적인 캐스팅(Casting)이 진행돼요. 사실 캐스팅 방식은 연출과 주관하는 단체에 따라 매우 상이하지만, 대본 읽기 과정에서 배우의 이미지와 역량을 체크한 후 연출이 캐스팅하는 것을 이상적인 방식으로 여겨지고 있어요. 이렇게 캐스팅이 확정되고 나면 다음은 블로킹 만들기(Blocking)가 진행됩니다. 이는 우리말로 ‘행동선’이라고도 부르지요.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지정해 주는 작업이에요. 이 과정을 통해 배우들은 말하고 움직이는 데 있어 정확한 동기와 감정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블로킹 만들기는 보통 장면별로 진행되고요. 이 작업이 끝나면 연극의 대략적 모습이 갖춰져요. 하지만 이 장면들을 더욱 매끄럽게 이어주는 작업이 필요한데요. 이를 위해 런스루 연습(Run-Through Rehearsal)을 진행합니다. 이 연습을 통해 극의 흐름과 템포를 잡으면 이후 세부사항을 섬세하게 다지는 디테일 연습(Polishing Rehearsal)이 이루어져요. 이 과정에서는 손가락의 움직임에서부터 시작해 큰 감정을 수반하는 행동에 대한 정제된 표현까지 모든 동작을 아주 섬세하게 연습합니다. 반복과 수정을 거듭하기에 고난도 연습 과정에 속한다고 볼 수 있어요. 연습의 마지막 단계는, 최종 리허설(Dress Rehearsal)이에요. 공연 오픈 전 최종 점검을 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배우뿐 아니라 모든 스태프들이 참여해 실제 공연과 똑같이 연습을 진행해요. 공연 전 마지막으로 수정사항을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단계이죠.
이제 스태프 측면에서의 제작 과정을 살펴볼 텐데요. 단순하게 정리하자면, 연출가와 각 메인 스태프들과의 협의를 통해 디자인 콘셉트를 정하고 이를 실체화시키는 과정이에요. 아래, 연극 <Hamlet>의 사진을 함께 볼게요. 사진 속 조명과 무대장치들이 어떻게 보이세요? 이 연극만의 급진적이고, 모던하며 강렬한 컨셉이 고스란히 묻어나있죠? 특히 현대적 각색이 들어간 의상 디자인은 이 작품을 해석하는 또 다른 기준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이 관람하길 원하는 분위기나 스타일의 연극이 있다면, 무대와 배우들의 의상을 참고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거예요.




자, 모든 제작 과정이 끝나고, 이제 공연만 남았습니다. 첫 공연 당일은 연극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보내는 하루이기도 하죠. 이날은 모든 구성원이 리허설에 참여하는데다가, 각자 최종적으로 점검해야 하는 것도 있기 때문에 비교적 이른 시간에 모입니다. 만약 공연이 저녁 8시에 시작된다고 하면, 점심시간 전부터 모이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워낙 바쁘고 정신이 없기에 긴 시간도 지루할 새 없이 지나간다고 합니다.

연극 제작의 마무리 단계
첫 공연을 마쳤습니다. 공연 직후에는 으레 연출가들의 코멘트 시간이 이어집니다. 그날의 공연에 대한 평가와 수정사항을 전달하는 시간이에요. 첫 공연 때는 전달할 사항이 많기 때문에 긴 시간을 할애하지만, 날짜가 거듭될수록 시간이 단축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이 부분도 연출가의 성향에 따라 달라서, 어떤 작품은 공연 내내 코멘트 시간이 따르는 고단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시간이 흘러, 첫 공연을 선보였던 작품도 이제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있는데요. 만감이 교차하는 ‘막공’까지 끝나고 나면, 연극 제작 과정의 마지막 단계인 정리 단계만 남게 됩니다. 이 과정은 ‘극장을 원상복구’하는 단계라고 생각하면 이해하시기 쉬울 거예요. 설치했던 무대를 철거하고, 조명을 떼어내거나 음향실과 분장실을 치우는 등 극장을 깨끗하게 비우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이 모든 끝나고 나면 처음 상태의 텅 빈 극장만 남게 되죠. 이곳에 잠시 존재했던 무대와 치열했던 시간들을 반추하고 나면, 이제 정말 모든 과정이 마무리될 시간입니다.
여러분이 인터넷에서 쉽게 구경할 수 있는 ‘메이킹필름’이란, 신선한 재미들로 채워져 있는 단 몇 분짜리의 짧은 영상들 일 거예요. 하지만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해요. 극의 제작 과정은 이렇듯 길고 고된 시간으로 채워져 있거든요. 모든 작품은 각자만의 ‘메이킹필름’, 즉, 그들만의 제작 과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작품들이 세상에 펼쳐졌을 때 관객의 환호나 극에 대한 평가는 각각 다르겠지만, 그 과정에 담겨있는 스텝들과 배우들의 노력은 모두 같을 겁니다. 그러니까요 여러분, 공연이 끝나면, 무대 뒤에서 그들만의 시나리오에 충실했을 제작 스텝들과 배우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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