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을 재미있게 읽는 다섯 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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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책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을 받는다면, 여러분은 잠시 생각한 뒤 각자 다양한 책의 제목을 답하실 거예요. 그럼 이번엔, 이런 질문은요? ‘최근에 읽은 희곡 작품은 무엇인가요?’… ‘희곡’이 가져온 당혹감에 그저 침묵만 흐르지 않을까 싶은데요. 많은 분들이 ‘희곡’은 연극배우나 전문가가 읽는 거라고 생각하시죠. 독서를 즐기는 분이라 해도, 희곡은 어렵고 재미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고요. 이렇게 희곡이 꺼려지는 이유는 사실 간단합니다. 희곡을 읽는 방법을 모르고 소설이나 시와 동일하게 읽었기 때문이에요. ‘희곡을 쉽고 재미있게 읽는 방법’이 있냐고요? 네, 있습니다.

첫째. 한 번에 읽기
희곡을 재미있게 읽는 첫 번째 방법으로, ‘한 번에 읽기’입니다. 어떤 작품이든 단숨에 읽는 것과 끊어 읽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어요. 여러분 앞에 한 편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고 생각해 본다면 이해가 쉬울 텐데요. 중간에 공연을 끊어서 보면 서사의 흐름도 끊기고, 감정의 몰입도도 깨지고 말 거예요. 같은 이유로 희곡을 읽을 때 단숨에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방법은 특히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강조되는데요. 한 번에 읽으면 그만큼 집중해서 그 상황에 어울리는 풍성한 감상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이미지라던가, 색깔, 빛, 음악, 냄새 등, 다양한 종류와 형태로 발현된 감상들은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재능에 날개를 달아준답니다. 때문에 많은 예술가들이 ‘한 번에 읽기’를 실천하고 있어요. 또, 그 때 그 때 떠오르는 감상들을 잊지 않기 위해 메모한다고 해요.
둘째. 상상하며 읽기
두 번째는, ‘상상하며 읽기’입니다. 희곡은 무대 공연을 전제로 쓴 ‘대본’이죠. 때문에 활자 그대로 읽는 것보다는 마치 공연을 하듯 상황을 상상하며, 능동적으로 읽는 것이 중요해요. 여러분이 작품 속 주인공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밋밋하게 눈으로만 읽어서는 주인공이 될 수 없겠죠? 부끄러움은 조금 뒤로 미뤄두시고, 대사를 한번 입 밖으로 뱉어보세요. 어느 순간 주인공의 감정에 공감하고 상황에 몰입해있는 자신을 발견하실 거예요. 그것이 바로 ‘재미’의 시작입니다. 이 새로운 흥미는 여러분을 ‘캐릭터’에 푹 빠지게 만들 거예요. 내가 연기하고 있는 캐릭터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표정은 어떨까? 목소리 톤은 좀 더 높은 게 어울릴까? 상상의 나래를 펼칠수록 캐릭터는 더욱 매력적으로 변한답니다. 참, 이때 ‘지문’을 놓치지 않고 흡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희곡에는 극적 공간을 이해하도록 돕고, 대사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을 보충해 주는 ‘지문’이 있죠. 이는 일종의 지시문 역할을 하는데요. 작가의 의중을 좀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고, 이로 인해 장면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체험할 수 있게 된답니다. 하지만, 상상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이 지문이 오히려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성가신 존재가 될 수도 있으니, 우선, 여러분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보시기 바랍니다.
셋째. 분석하며 읽기
세 번째로, ‘분석하며 읽기’인데요. 이 방법은 공연을 목표로 읽으시는 분과 공연 관람 후, 좀 더 상세하게 작품을 파악하고 싶은 분들께 추천하는 방법이에요. 다음 항목들을 순서대로 파악하며 진행해보세요.
1. 제목이 주는 의미를 되새기며 읽기
2. 등장인물 리스트를 체크하면서 읽기: 인물의 이름, 나이, 직업, 간략한 특징을 기억하며 읽기
3.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나 궁금한 부분은 최대한 답을 찾아가며 읽기
4. 장면별로 사건을 정리하고 클라이맥스에 집중하여 읽기
5. 작품의 영향력과 시의성을 생각하며 읽기
6. 작품의 주제를 인지하며 읽기
넷째. 좋은 버전 찾아 읽기
희곡을 재미있게 읽는 네 번째 방법, 바로 ‘좋은 버전 찾아 읽기’입니다. 우리나라 희곡 작품은 따로 개정본이 나오는 경우를 제외하곤 대부분 한 가지 버전으로 나오는데요. 번역이 필요한 서양 희곡의 경우는 여기서 가장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많고 많은 번역본 중에 어떤 것이 가장 좋은 버전인 지를 가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직역 위주의 딱딱하고 지루한 번역, 의역이 심해서 의미가 퇴색된 번역, 잘 사용하지 않는 어휘와 억양으로 쓰인 번역 등 우리가 피해야 할 번역은 많기에, 서양 희곡의 경우에는 ‘좋은 버전을 찾아 읽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때문에 서양 작품을 고르실 때에는 대사가 어색하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지는지에 집중해서 버전을 고르시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 잊지 마세요!
다섯째. 재미있는 요즘 작품 읽기
이제 마지막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특히 희곡 읽기에 처음 도전하는 분들께 추천드리는 것인데요. 바로 ‘재미있는 요즘 작품 읽기’입니다. 재미있게 읽는 방법을 알려준다면서 ‘재미있는 요즘 작품 읽기’가 웬 말인가 싶으시죠? 하지만 이것처럼 쉬운 방법도 없어요. 별다른 방법을 취하지 않고서도 술술 읽히는 희곡이 있다면, 그걸 먼저 읽으시면 되거든요. 우선, 우리나라 희곡을 읽어보실 것을 추천드리는데요. 혹자들은 서양의 유명한 고전을 읽어야 희곡의 참맛을 안다고 말하기도 하죠. 하지만 그런 어려운 작품으로 희곡 읽기를 시작해서 금세 흥미를 잃으면 낭패입니다. 이럴 땐 내가 ‘당장’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부터 시작해 차차 영역을 넓혀나가는 게 좋은 대안이 될 거에요. 어차피 연극의 역사만큼이나 희곡도 다양하니까요. 어떤 것이 여러분께 가장 재미있게 읽힐 지 탐험하는 시간을 즐겨보세요.
지금까지 희곡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다섯 가지의 방법을 소개해드렸어요. 술술 읽히는 일반 도서들에 비하면 희곡은 따져봐야 할 것도, 노력해야 할 것도 많은 까칠한 녀석 같죠.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읽어보신다면 ‘재미없는 희곡’에 어느새 몰입해 있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실 거예요. 만약 ‘글’로는 도저히 안되겠다, 하는 분들은 공연을 먼저 관람하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공연을 보신 후 희곡을 읽으면, 공연 때는 몰랐던 사실을 알 수도 있고, 그때의 여운을 다시 느끼실 수도 있죠. 또 각 장면이 시각적으로 잘 떠오르기 때문에 희곡을 읽는 재미를 배로 느끼실 수 있답니다. 마지막으로, 입문자들을 위하여 재미와 작품성을 두루 갖춘 희곡집 몇 권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칠까 합니다.

추천할 첫 번째 도서는, <장진 희곡집>입니다. 스물네 살에 등단해 호평과 악평의 극단을 오가며 차분히 자신의 이름을 알린 ‘장진’의 희곡 5편을 한 권으로 엮은 작품인데요. 수록작 중 <웰컴 투 동막골>과 <박수칠 때 떠나라>의 경우에는 영화로도 제작되었어요. 희곡과 영화를 비교하면서 보면 읽는 재미는 배가 될 거예요.


두 번째 추천 도서는, 김은성의 희곡집 <시동라사>와 <목란언니>예요. <시동라사>에 수록된 <순우삼촌>과 <목란언니> 속 <뻘>, <달나라연속극>은 각각 유명한 서양 고전을 재창작한 작품인데요. <순우삼촌>은 안톤 체홉의 <바냐 아저씨>를, <뻘> 역시 체홉의 <갈매기>를, 그리고 <달나라 연속극>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동물원>을 한국 사회에 맞게 인물과 배경을 바꿔 재탄생시켰어요. 원작이 부담스러운 분들께 먼저 접해볼 만한 희곡집으로 권해드리지만, 원작을 사랑하시는 분들께도 색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참고자료
- Kevin Rigdon 교수(Head of MFA Design & Technology, School of Theater, U of Houston)의 조명 디자인 수업을 수강할 때 수업 재료로 주신 'How to Read a Play'(handout)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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