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커는 이 게임도 잘할까? 모바일 게임 <플로렌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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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그만하고, 공부 좀 해!” 제가 학창 시절 때만 하더라도 게임은 건전하지 못한 취미 생활 정도의 취급을 받았습니다. “중꺾마”가 밈이 되고, 아시안게임에서 e스포츠 종목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만큼 요즘은 그 상황이 많이 나아진 편이죠. 하지만 게임을 ‘유희를 위한 오락거리’ 정도로 생각하는 인식은 여전히 사람들 마음속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연 게임도 하나의 문화 예술이 될 수 있을까요? 최근 게임은 ‘프랑스가 선정한 제 10의 예술’, ‘한국문화예술진흥법 상 예술’ 등으로 인정을 받으며 하나의 예술 영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게임 <플로렌스>를 소재로 “게임이 어떻게 예술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얘기하고자 합니다.
🥰 사랑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플로렌스>는 우연한 만남으로 사랑을 시작한 연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마음속에 품었던 꿈과 거리가 멀어진 일상에 무채색의 답답한 일상. 그 속에 뿌리내린 사랑은 ‘유명한 첼로 연주자가 되는 꿈’ 그리고 ‘나만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화가의 꿈’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들어줍니다.
하지만 영원한 마음 같은 건 없다고 그러던가요?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두근거림으로 가득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끝을 향해 나아갑니다. 각진 말투로 상대방을 밀쳐내고, 서로의 마음을 찌르며 이내 다시 함께하지 못할 정도로 큰 상처가 됩니다. 결국 ‘너가 있던 그 공간’은 텅 빈 적막함만이 남습니다. 슬프게도 그 구멍은 가슴 깊은 곳에까지 남게 되죠.

이때 이별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는 플로렌스의 모습이 특히나 인상적입니다. 바쁜 직장 생활 혹은 일상 때문에 미뤄뒀던 그림을 다시 시작하죠. 다행히도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모습은 플레이어에게 큰 뿌듯함을 선물합니다. 이런 본 작품의 대략적인 서사 구조는 웹툰 <유미의 세포들> 혹은 영화 <라라랜드>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게 느껴집니다. 달콤했던 사랑과 씁쓸한 권태 그리고 자아의 성장, 이 모든 과정이 단순한 로맨스 장르 이상의 여운을 남겨주는 것 같네요.
🎮 <플로렌스>의 연출 뜯어보기

이 작품을 통해 느낀 점은 게임도 나름의 미장센 연출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 종류도 제법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우선 <플로렌스>는 ‘서사가 있는 퍼즐 게임’이라는 형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퍼즐의 난이도는 어디까지나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유지되고 있죠. 이때 게임의 설계 방식이 재밌습니다. 영화로 따지면 촬영, 미술, 음악 등이 전체적인 미장센 형성을 유도합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처음으로 전화번호를 교환하는 장면에서, 넘어진 플로렌스의 초점은 완전히 나가 있습니다. 이때 상대방과 자신의 주파수를 맞춰나가며, 시각적으로는 화면의 초점이 청각적으로는 음악의 선율이 온전한 상태로 바뀌게 됩니다. 낯설었던 상대방과의 대화는 어떨까요? 처음에는 무슨 말을 꺼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 생각의 조각이 흩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대화를 이어 나가며 맞춰야 하는 조각은 점점 단순하고 부드럽게 변해갑니다.
<플로렌스> 특유의 말풍선 연출은 갈등 과정에서도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둥글던 말풍선은 점점 각진 형태로 나아가 서로를 찌르는 날카로운 형태로 변합니다. 처음에는 힘겹게 꺼내던 다툼의 말이 점점 쉬워지며 두 사람의 관계가 끝을 향해간다는 것을 분명하게 암시하죠. 이를 가장 직관적으로 형성한 장면은 다툼 이후의 퍼즐에서 나옵니다. 한 침대에 누워있지만 서로를 완전히 등진 두 사람. 그리고 결국 맞춰지지 않는 두 사람의 퍼즐. 마음속에서 상대방을 온전히 떠나보내기 위해서 화면을 터치하지 않는 것, 즉 더 이상 붙잡아두지 않는 것도 진한 씁쓸함을 남겨줍니다.
이처럼 이 게임 속 퍼즐 요소는 각각이 하나의 미장센 요소로 자리합니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로 하여금 인물들의 감정과 상황 등을 직관적으로 전달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 게임의 예술성은 어디에서 올까?

다시금 첫 질문으로 돌아와 봅시다. 게임은 하나의 문화 예술이 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플로렌스>가 예술적이라고 느껴지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게임은 그 특성상 기존 예술과 연결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첼로와 피아노 연주를 기초로 한 사운드 트랙, 한 사람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성장을 다루는 내러티브, 직관적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미장센 연출, 화면을 가득 채우는 삽화까지. 플레이어들은 정말 다양한 예술적 요소들을 게임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게임만이 지니는 예술성은 따로 없을까요? ‘플레이어’라는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게임은 유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술 활동을 감상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하나의 세계관 속 등장인물이 되는 체험의 경험이죠. 시작 버튼을 누르는 순간 우리는 ‘화가를 꿈꿨으나 평범한 직장 생활을 이어가는 25세의 플로렌스’로 변하게 됩니다. 함께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함께 사랑에 빠지며, 다툼의 아픔과 이별의 슬픔을 느끼다가도, 다시금 꿈을 이뤄내는 성취감을 맛보기도 합니다. 다른 문화 예술 장르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게임만의 장점을 온전히 느끼는 순간이죠.
💬Editor’s Comment
OSMU, 즉 하나의 콘텐츠가 장르를 오가며 변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게임 또한 그 한 축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상황이죠. 내게 익숙했던 그 작품이 게임으로는 어떻게 재해석 됐는지 찾아보는 것도 즐거운 경험일 겁니다. 여러분은 그 안에서 어떤 예술적 포인트들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여운 있는 서사를 쌓아 올린 <투 더 문>, 시각적 비쥬얼에 집중한 <저니>, 개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강렬한 성취감을 선물하는 <다크소울>. 그 밖에도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게임들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 얼마든지 예술적 영감을 받을 수 있죠. ‘게임은 그냥 놀이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그 속에 숨어있는 문화 예술적 가치들을 발견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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