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Y가 셰퍼드를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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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Y’라는 단어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Do It Yourself’의 약자로, 구매자가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한 상품을 의미하죠.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 외출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자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며 할 수 있는 DIY 상품들이 유행했어요. 각종 SNS에 DIY 제품 메이킹 영상도 많이 업로드되었고요. 그런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인 줄로만 알았던 ‘DIY’가 하나의 ‘정신’으로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1970년대 미국 뉴욕과 영국의 런던에서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과 함께 탄생한 펑크 문화는 DIY 정신을 중요한 가치로 삼았어요. 펑크 록 밴드들은 음반 생산부터 유통까지 스스로 해결하며 이 정신을 지키려고 했죠. DIY 정신은 격변과 혼란의 시대였던 1980년대에도 이어졌어요. 비주류 문화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스케이트보드, 힙합 그리고 그라피티와 같은 거리 예술이 유행하기 시작했죠. 이 시기는 DIY 정신에 매료된 어느 아티스트의 예술혼이 태동하던 시기이기도 했는데요. 지금까지도 30년째 같은 철학을 작품 속에 녹여내며 이미지의 반복과 시각적 강렬함으로 사람들을 각성시키는 셰퍼드 페어리를 소개할게요!
😜장난에서 시작된 진심 어린 예술!
셰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 1970~)는 1970년 미국 남부에서 태어났어요. 어렸을 적부터 사회적 관습을 따르기 싫어했던 셰퍼드는 아버지에 의해 사립학교에 진학했지만, 엄격한 교칙에 적응하지 못하고 예술 전문학교로 옮겨 본격적인 미술을 배웠습니다. 그가 반항적 이미지가 강했던 서브컬처에 매료되었던 것도 타고난 성향과 연관이 있었던 듯해요. 이후 셰퍼드는 미국 예술대학,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에 입학해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하며 예술가로서의 기반을 다져나갔어요. 그가 대중에게 큰 인지도를 얻게 된 것은, 2008년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이 선거 당시 공식 포스터로 채택했던, <희망>을 제작했을 때인데요. 처음에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연설에 감명을 받아 개인적으로 제작한 포스터였지만, 이것이 널리 퍼지면서 공식적인 자리에까지 가게 된 것이랍니다. 이를 계기로 <타임>지 커버 아트도 제작했고,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자리 잡게 되었어요.

대학 재학 시절인 1989년, 셰퍼드는 친구들과 재미 삼아 스티커를 제작하여 거리 이곳저곳에 붙였는데요. 프랑스의 전설적인 거구 프로레슬러 ‘앙드레 더 자이언트’의 얼굴과 함께 <거인 앙드레에게는 그의 패거리가 있다>라는 글귀를 새긴 스티커였어요. 이 스티커는 엄청난 전파력을 가지고 이내 스케이트보드 커뮤니티와 그라피티 아티스트 사이에 퍼지게 되었고 미국 전역에서 모습을 드러냈어요. 이때부터 대중의 이목을 끌어내는 그의 힘이 두각을 나타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이 스티커는 곧 상표권 분쟁에 휘말리게 되어요. 앙드레 더 자이언트의 초상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요. 결국 셰퍼드는 다른 방안을 생각해야 했는데요. 존 카펜터 감독의 영화 <화성인 지구 정복>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오베이(OBEY)’라는 단어와, 앙드레의 얼굴 일부분을 잘라내어 단순화한 새로운 이미지를 탄생시켰어요. 이 작업은 1990년에 ‘오베이 자이언트 캠페인’으로 발전하게 돼요. 사람들의 반응과 관찰을 이끌어내고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일종의 예술적 실험이었죠. 이후 셰퍼드는 친구들과 장난으로 붙였던 스티커가 대중의 생각을 흔드는 돌멩이가 될 수 있음을, 또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자문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보다 진지한 자세로 예술에 임했고, 많은 이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포스터라는 형식을 택했답니다.
그는 단순히 그림만 그리는 아티스트가 아니었어요. 환경, 인권, 정의에도 꾸준한 관심을 보이며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사회 활동가이기도 하거든요. 사회적 약자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포스터와 스티커를 제작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여 그 수익을 기부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그는 대중을 자신의 작품 세계로 이끄는 민주적이고 접근성 좋은 방식이 옷이라 생각하여 2001년에는 패션 브랜드 ‘OBEY’를 설립했어요.

이처럼 대중과의 소통을 즐기던 셰퍼드는 스스로를 ‘스트리트 아티스트’가 아닌 ‘대중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칭했어요. 때문에 그에게 ‘거리’는 작업의 근원이며 대중과의 소통과 참여를 이끌 수 있는 매력적인 장소였죠. 굳이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대중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쉬운 참여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허가되지 않은 공공의 공간에 그림을 그리고 다녔기 때문에 그의 예술 활동은 영 순탄치 않았어요. 20여 회 이상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답니다! 첫 개인전 오프닝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연행되기도 했고요. 그러나 셰퍼드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예술을 꾸준히 만들어 나갔어요. 그는 수십 년 동안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유명해요. 그 지속성의 기저에는 펑크 음악의 DIY 정신이 담겨 있답니다. ‘직접 나 스스로 하는’ 주체적이고 목적지향적인 정신이죠. 이번에 서울시 서초구 롯데뮤지엄에서 열리는 전시명 역시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인데요. 그가 DIY 정신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잘 드러나고 있죠?
❗색이 강렬하니 조심히 다가가세요!
셰퍼드 페어리는 시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프로파간다적, 즉 선전적인 이미지를 포스터에 적극 활용했어요. 때문에 셰퍼드의 그림에서는 붉은색, 푸른색, 검은색 등 강렬한 원색의 이미지를 흔히 볼 수 있답니다. 한 작품에 5가지 정도의 색만 사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죠. 이번 전시에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담은 포스터가 대규모로 설치되었어요. 선명한 색과 간결하고 볼드한 텍스트가 결합된 포스터 형식의 작품들이 한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어요.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하면서도 무언가를 경고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의 포스터는 ‘이 작품에 담긴 의미가 무엇이며, 무엇에 대한 위험 신호를 보내는 것인가 ‘를 생각하게 해요. 그리고 작품에서 인권, 반전, 권력 남용 등을 다루고 있음을 포착할 수 있었답니다. 셰퍼드는 우리에게 친숙한 선전의 표현 방식이 좋지 않은 목적에 의해 쉽게 이용될 수 있음을 지적하기도 해요. 그러면서 관람객들 스스로가 권력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시험하도록 하죠.
셰퍼드의 작품들은 선전 포스터와 같은 도상을 차용하여 만들어졌기에 이미지의 배치는 낯익었지만 작품 속 인물들의 표정이나 동작은 인공성이 가미되어 부자연스러워 보여요. 이런 익숙함 속에서 낯섦을 유발하는 효과는 관람객들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경각심을 심어주는 데에 탁월하게 작용하죠. 이 벽면 작품들에는 압도적으로 붉은색이 많았는데요. 강압적이고 명료한 이미지들의 병치는 관람객의 시각을 끌어당겨 포스터에 쉽게 고정시켰어요. 그러나 고정된 시선의 지속력은 약했는데요. 강렬한 이미지들이 한 군데 몰려 전시되어 있어 눈이 금방 피로해졌거든요. 그래서 스트리트 아트의 감성은 역시 좀 더 트인 장소인, ‘거리’에서 보았을 때 더 살아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반복의 마술사, 셰퍼드 페어리
어떤 것이든 반복을 거듭하면 어느 순간 상징성을 가지게 되고, 반복적 리듬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생성되곤 하잖아요. 셰퍼드 페어리는 바로 이와 같은 점을 잘 활용한 아티스트예요. 대표적으로 ‘OBEY’ 텍스트가 있어요. ‘복종하라’라는 의미를 가진 이 단어는 셰퍼드 페어리 작품에 자주 등장합니다. 이 단어는 권력을 비판적 시각으로 받아들이고, 행동할 것을 촉구하는 시각적 명령어로서의 힘을 가지죠. 한편으로는 단어 본연의 뜻과 상반되는 의미로 작용하기도 해요. 저도 <오베이 스타, 2019> 작품 속 오베이 텍스트를 보았을 때 복종하라가 아닌, ‘저항하라! 지각을 가지고 깨어나라!’라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림과 메시지의 불일치라는 아이러니를 일으키며, 다양한 메시지를 동시에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셰퍼드 페어리의 작품이 가진 매력이죠.
다른 예시를 하나 더 들어볼까요? 장미 역시 셰퍼드의 작품 속에서 자주 사용되는 도상인데요. 장미는 단순히 장식적인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생명력의 아름다움과 역경을 이겨내는 강인함을 의미해요. 한 개인과 사회 전반을 상징하죠. 그는 장미에 변형을 일으키기도 해요. <아이즈 오픈, 2021> 작품에 있는 꽃은 장미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형태를 가지고 있어요. 이 특이한 형태의 꽃은 장미와 카네이션을 결합한 가상의 꽃이랍니다. 비록 장미의 형태는 살짝 달라졌지만 이 작품에서도 장미는 여전히 강인함을 상징하는 존재로 ‘아이즈 오픈(Eyes Open)’이라는 텍스트와 결합하여 ‘역경 극복’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전달한답니다. 셰퍼드는 이 작품을 통해 사회 속 무력감을 느낄 때 오히려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면밀히 살피며 세상의 오류와 맞설 것을 권유해요. 이것이 해소 방법이며, 삶에서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있는 길임을 제시하죠. 나아가 격려와 희망의 메시지도 담고 있답니다.

또한 셰퍼드는 반복적으로 혼합매체를 사용하여 벽지나 신문지 같은 이미지의 도상 위에 아티스트, 위인, 아내 등 영감을 받은 대상을 그려요. <바이어스 바이 넘버스, 2019>에서 신문 텍스트와 그 위에 그려진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의 중첩된 이미지를 볼 수 있는데요. 셰퍼드는 매체의 혼합이 주는 강력한 힘을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관람객들에게 이 작품 속 현상이 상상 속의 일이 아님을 직설적으로 알리는 듯합니다.
✅솔직 핵심 정리 노트
ㅇ박수갈채드립니다
- - 아티스트에 대한 설명이 벽면에 상세하게 잘 되어 있어 셰퍼드 페어리를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어요.
- - 셰퍼드 페어리 작품 특유의 스트리트 아트 감성을 잘 살려, 벽면에 상징적인 로고와 작품들을 잘 재현해냈어요.
ㅇ요건 쫌 아쉬운데
- - 한 벽면을 이용한 대규모 설치 작업의 경우, 포스터들이 한 군데에 100여 점 이상 몰려 있어서 눈이 금방 피로하기도 했어요.
💬Editor’s Comment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행동할 이유가 없고, 행동은 내 철학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셰퍼드 페어리가 한 말이에요. 행동 너머에 있을 희망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행동의 근원으로 삼는다는 이 말이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마치 그의 모든 예술과 철학을 한 문장으로 집약한 것 같았죠. 앞서 보았듯이 셰퍼드는 자신의 생각을 반복과 시각적 강렬함으로 이미지화하고, 단순화된 도상에 다양한 의미들을 부여해요. 이렇게 만들어진 세밀한 디테일들이 보여주는 여러 갈래의 메시지를 하나로 엮어내면, 전체적인 하나의 큰 이야기가 완성되어요. 이것이 셰퍼드 작품의 흥미로운 점이라고 생각했죠. 작품을 접하면 접할수록 셰퍼드 페어리는 인간적인 따뜻함을 가졌지만 가위 같이 날카롭고 예민한 눈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의 눈을 거친 사회적 현상들은 오려지고 붙여져 중첩된 이미지를 이루고 또 반복을 통해 생명력을 얻는 거예요. 이렇게 세상을 향한 셰퍼드 표 메시지가 탄생하는 것이겠죠? 그리고 이러한 독창적 이야기 방식은 관람객을 주체의 자리에 세워, 시각적으로 각성하게 하는데, 이 또한 그의 작업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셰퍼드는 자신이 감명받은 ‘DIY’ 정신을 이어받아, 예술과 사회의 경계를 허물고 그 중심에 대중을 초청해 행동가로 만드는 아티스트인데요. 저는 진정한 예술가는 대중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깨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셰퍼드 페어리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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