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그때의 감각을 불러오는 작가?
- 1,348
- 0
- 글주소
여러분은 ‘어린 시절의 추억’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저는 침대나 식탁 아래, 또는 옷장 안에 비밀 기지를 만들었던 것이 기억나는데요. 그땐 왜 뻥 뚫린 공간을 놔두고 구석진 곳에서 놀았나 싶어요. 어릴 적 제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혼자만의 공간이 마냥 좋았던 것 같기도, 어른들이 들어올 수 없는 어린이들만의 공간이라 희열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해요. 어른이 된 지금으로선 들어갈 엄두도 나지 않는 좁은 공간에 기지를 꾸몄으니까요. 몸이 작은 어린이였기에 지금은 생경하다고 느낄법한 감각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어린 시절의 감각을 살려 작품으로 표현한 전시가 있습니다. 로버트 테리엔의 <at that time>, 구경해 볼까요?
🤗일상 속, <at that time>
<at that time>은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미술작가 로버트 테리엔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주제로 한 개인전이에요. 이번 전시에서는 조각과 설치, 페인팅, 드로잉과 같은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하여 일상 속 사물을 새로운 시선으로 본 그의 대표작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그는 예술 대상을 직접 창안하기보다 삶 속에서 마주하기 쉬운 사물을 작품으로 승화하는 방법을 택했답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흔히 사용하는 의자나 책상과 같은 사물을 완벽히 복제해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었죠.

🤔복제품을 작품이라 말할 수 있나?
잠깐, 작가만의 고유한 작품을 담은 개인전인데 사물을 복제해 만들었다는 점이 의아하죠? 복제품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 걸까요? 정답은... ‘될 수 있다.’입니다! 물론 테리엔이 그랬듯 작품을 설명할 수 있는 명확한 작품관이 있다면 말이죠. 이렇게 이미 존재하는 상품에 예술적인 아이디어를 덧붙여 작품으로 만드는 것을 ‘레디메이드’라고 해요. 사물이 어떤 장소에 놓여 있는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에 따라 예술이 될 수도 있고, 평범한 기성품에 불과할 수도 있답니다. 예술품은 고귀하고 완벽한 모습이어야 할 것 같지만, 기성품도 작가의 주관을 거치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획기적인 개념이죠. 대표적인 ‘레디메이드’ 작품 <샘>은 남성용 소변기를 뒤집어 본래의 특성을 버리고 작가의 목적과 시각을 담아 유명해요. 이것으로 우리는 익숙한 대상도 특별한 시선이 더해지면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 <at that time>에서도 ‘레디메이드’의 특징이 온전히 드러나는데요. 그렇다면 테리엔은 ‘레디메이드’를 활용하여 어떤 작품 세계를 만들었는지 알아볼까요?
👀사물의 크기에 주목하다
테리엔은 일상적인 사물을 이용했지만, 거침없는 상상력을 원동력으로 삼아 독창적인 예술성을 선보였어요. 그 독창적인 예술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 감이 잘 안 잡힐 수도 있겠는데요! 앞서 떠올려본 의자와 책상 등을 기억해보세요. 지금은 그리 크지 않게 느껴지는 물건들이지만, 어렸을 때에는 비밀 기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만큼 크게 느껴졌었잖아요. 테리엔의 작품 중에도 비슷한 것이 있답니다. <No title (folding table and chairs, green)>(2008)은 무려 3미터에 달하는 테이블과 의자로 구성된 작품인데요. 바로 이 작품에, 이번 전시에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요소가 존재합니다. 바로 ‘사물의 크기’를 자유롭게 활용했다는 점이죠. 그는 사물을 비정상적으로 크게 표현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었어요. 일반적인 책상과 의자처럼 보이지만, 관람자가 작품을 보기 위해 다가가면 마치 거인국에 입성한 것 같은 느낌이 들게끔 하는 거예요.
그는 천진난만한 동심의 세계를 느낄 수 있도록 작품의 크기를 매우 작게 만들거나, 매우 크게 표현하는데요. 이는 테리엔이 예술가 활동을 하는 데에 큰 영감을 주었던 어린 시절의 감각을 재현하기 위해서랍니다. 그는 모든 것이 거대하게 느껴지던 어린 시절의 감각을 선명히 기억했고, 그때 보았던 애니메이션 영화는 작품의 중요한 원천이 되었어요. 그래서 테리엔은 관객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제공하고자 ‘사물의 크기’에 주목하게 된 것이죠.
또 이번 전시의 특징으로는 작품의 제목을 들 수 있어요. 이번 전시 속 작품의 제목은 모두 두 단어로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No title>, 즉 제목이 없다는 뜻인데요. 부제목을 보아도 단순히 사물을 구분하는 표현만 적혀 있을 뿐, 고유한 이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테리엔은 왜 작품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요?
생각해 보면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생각과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는 행위인 듯해요. 아기의 이름을 지을 때도 앞으로 삶의 방향을 고려해 공들여 짓곤 하잖아요. 테리엔 또한 작품 제목을 짓고자 했다면 자신만의 의도를 담았을 테죠. 하지만 그는 관람객들이 제목에 얽매이지 않고 작품을 해석하길 원했어요. 모두가 다른 환경에서 자랐으니, 작품을 보고 떠올리는 제목 또한 다 다를 것이라 생각한 것이죠. 그의 의도에 응답하듯, 많은 관람객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었다는 평을 남겼답니다.
💬Editor’s Comment
어린 시절의 일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다 보니, 가끔 과거에 느꼈던 감각들이 궁금해지곤 해요. 지금은 책상과 의자로 비밀 기지를 만들어도, 그때 느꼈던 만큼 아늑하거나 널찍하게 느껴지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어른이 된 오늘까지도 테리엔의 작품으로 인해 언제든지 그때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어요. 테리엔의 작품에는 나이와 관계없는 천진난만함이 존재하는데요. 아마 끊임없이 예술을 탐구했던 그의 도전정신 덕분이 아닐까요? 테리엔은 지금 비록 세상에 없는 작가이지만, 그의 작품은 언제나 생명력을 갖고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줄 거예요.
지금 로그인하시면
하루예술의 모든 콘텐츠 열람이 가능해집니다!
이야기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