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세상을 캔버스 삼아! '대지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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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막한 도시의 삶을 떠나 고향 마을로 돌아온 주인공이 농촌 생활을 꾸려나가며 치유받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아시나요? 영화 속에 묘사된 사계절의 아름다움과 소담스러운 음식들이 우리를 매료시켰었죠. 최근 들어 농촌의 삶을 꿈꾸며 귀농, 귀촌을 택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지난해 귀농, 귀촌 인구는 약 51만 명이었죠.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은 비단 현대인들뿐만이 아닙니다. 답답한 갤러리를 벗어나 자연으로 복귀하고자 하는 미술이 있었으니, 바로 대지미술(Earth Art)입니다.
🥺미술도 자연으로 가고파
대지 미술, 알 듯 말 듯 조금은 생소한 이름이지요? 대지 미술이란 거대한 자연환경을 재료로 삼아 작품을 만들거나, 자연경관 속에 작품을 어우러지도록 하는 미술 경향을 말해요. 랜드 아트(Land Art), 어스워크(Earthworks) 등으로도 부르죠. 1960년대 후반 부상한 대지 미술은 개념 미술, 설치 미술과 함께 미니멀리즘(Minimalism)에 속해요. 당대 미술계를 장악했던 팝 아트(Pop Art)에 대항하여 상업주의와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고자 했죠. 또한 대지 미술은 1960년대의 시대적 분위기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요. 상업적인 도시를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모토로 하는 히피(hippie) 정신뿐만 아니라 고고학의 인기, 서구에서 전승되던 풍경화 전통 등이 모두 대지 미술에 녹아 있답니다.
대지 미술은 그 구현 방식이 다채롭다는 점에서도 자연과 닮아있어요. 형태와 재료, 규모 위치 등에 따라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요. 첫 번째는 자연의 재료들을 전시장으로 옮겨 온 유형입니다. 대지미술이라고 하면 가장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작업들이죠. 대표적인 예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채석장에서 발견한 거대 바위를 옮겨온 마이클 하이저(Michael Heizer, 1944~)의 <공중에 떠있는 돌(Levitated Mass)>이에요.

두 번째는 자연환경과 작업을 연결하여 하나의 경관을 형성하는 유형입니다. 크리스토(Christo Javacheff, 1935~2020)와 그의 부인 잔느 클로드(Jeanne-Claude, 1935~2009)의 <포장된 해변(Wrapped Coast)>을 보시면 감이 오실 거예요.

마지막은 자연 현상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완성되는 유형입니다. 멕시코 사막에 400여 개의 스테인리스 기둥을 설치한 월터 드 마리아의 <라이트닝 필드(The Lightning Field)>는 번개가 칠 때마다 극적인 풍경을 자아내며 완성되는 작품이죠.
어때요? 광활한 자연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품들, 실제로 본다면 정말 경이로울 것 같죠? 하지만 대지 미술은 영원성을 간직한 작업보다는 자연 속에서 생성·변화·소멸하는 작업을 추구하기 때문에 현재 우리는 사진으로만 그 흔적을 볼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기도 합니다.
🙄유명한 작가는 누가 있어?
앞서 섬의 해변가를 둘러싸고 있는 분홍색 포장을 보셨죠? 이 작품은 대지 미술의 대표주자 격으로 여겨지는 크리스토-잔느 클로드 부부의 작품이에요. 공공장소나 건물을 포장하는 거대한 규모의 작업으로 유명한 크리스토와 잔느 클로드 부부는 1960년대부터 꾸준히 활동을 해왔어요. 그러나 2009년 잔느 클로드가 세상을 떠나고, 2020년 크리스토까지 그의 곁으로 가면서 그들의 다음 작업은 기대할 수 없게 되어버렸죠. 그런데 2021년 9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들이 진행하던 <포장된 개선문>(L'Arc de Triomphe, Wrapped) 프로젝트가 그의 조카에 의해 완성된 거예요. 부부가 진행해온 포장 작업들은 막대한 자금과 대규모의 협상이 요구되는 프로젝트라, 개인적으로 진행하기는 더욱 어려웠을 텐데 말이죠. 그들의 작업에 투입되는 자금과 협상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은 긴 제작기간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요. 뉴욕 센트럴파크에 설치된 <입구들>(The Gates) 작업을 위해서 뉴욕시와 25년 이상 협상한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랍니다. 오랜 시간 대형 프로젝트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국가 보조금을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해요. 이는 후원과 권력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작업 스타일을 보여주는 듯한데요. 이렇게 공들인 작품은 얼마나 오래 전시되냐고요? 크리스토와 잔느 클로드 부부는 이동과 일시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작품을 만들어요. 그래서 2주 정도 후에는 모두 철거된답니다. 의도에 따르면 어쩔 수 없지만, 조금은 아쉬운 일이에요!
이번엔 미국으로 떠나 볼게요. 미국의 비평가이자 예술가 로버트 스미슨(Robert Smithson, 1938~1973)은 1960년대 초반 미니멀 아트의 주요 작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1968년 《대지미술》 전시에 참여하면서 대지 미술 대표 작가로 부상했답니다. 작업 초반에 그는 버려진 도시나 산업 지대를 찾고 폐기물이나 돌들을 채취한 다음 사진과 함께 전시하는 형태의 작품을 선보였어요. 이러한 작업은 예술 작품을 특정한 장소에 위치시키는 기존의 개념을 거꾸로 뒤집어 특정한 장소를 예술의 영역에 위치시키고자 한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었죠. 이러한 장소 특정성은 로버트 스미슨 이후 대지 미술의 큰 특징 중 하나로 자리 잡았죠. 스미슨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후 엄청난 규모의 대지 작업으로 스타일을 바꾸어 활동을 이어나가는데요. 그의 대표작이자 대지 미술의 대표작인 <나선형의 방파제(Spiral Jetty)>가 바로 그런 작품입니다. 스미슨은 작업 중 불운의 사고로 3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작업은 오래도록 기억되며 미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답니다.
영국에도 유명한 대지 미술가가 있죠! 바로 ‘걷기'를 통해 자신이 경험한 자연을 기록했던 리차드 롱(Richard Long, 1944~)입니다. 영국에서 시작된 걷기 작업은 국외로도 확대되었고, 작업 중에 모은 수집물이나 걸어온 길을 찍은 사진들은 전시를 통해 대중들에게 공개되었죠. 롱은 스위스, 인도, 네팔 등 여러 국가를 걸으며 자연물들을 배열하고 기록했는데요. <볼리비아의 선(A Line in Bolivia)>은 작은 돌들을 발로 차면서 걸었던 그의 작업 과정을 유추해볼 수 있는 작품이에요.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그의 작업들은 하나의 흔적인 동시에 과정이 되기도 하는 것이죠. 크리스토와 잔느 클로드가 미술관에서 벗어난 대지 미술을 보여주었다면, 롱의 작업은 그 자체가 미술계라는 개념을 벗어난 미술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는 여러 해에 걸쳐 터너상 후보에 올랐는데, 1984년 터너상 수상을 거부하면서 그 명성이 더욱 높아졌답니다.
🤝대지 미술, 자연과 인간의 합주
대지 미술은 이렇듯 기존의 상업적인 미술계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했는데요. 하지만 작업을 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고, 작품 접근성이 낮다는 점 때문에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미술관 밖 자연으로, 또 대중들에게로 나아가고 싶어했던 대지 미술은 그러기 위해서 아이러니하게도 상업적이고 제도적인 시스템 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게 된 것이죠. 게다가 일부 비평가들은 대지 미술 자체가 자연에 대한 폭력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크리스토와 잔느 클로드의 사례처럼 대지 미술 작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답니다.
대지 미술가들의 작품은 쉽게 변형되거나 소멸되었으나, 그들이 미술계에 남긴 발자취는 굳건히 유지되고 있어요. 스미슨이 작업을 통해 이야기했던 장소 특정성은 장소 특정적 미술로 구체화되어 이어져 오고 있으며, 리차드 롱과 여러 작가들이 이야기했던 찰나의 풍경, 비물질성 등은 이후 개념미술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죠.
그리고 정말 자연의 일부가 된 작품도 있어요! 바로 앞에서 살짝 이야기했던 스미슨의 <나선형 방파제(Spiral Jetty)>입니다. 1970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스미슨이 유명을 달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어요. 호수에 물이 차면서 방파제가 물밑으로 잠겨버린 거죠. 하지만 2005년, 자취를 감췄던 나선형의 방파제가 다시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물밑에 잠겨 있던 작품이 다시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거예요. 놀랍고도 감동적인 이야기 아닌가요? 스미슨과 함께 우리를 떠난 줄 알았던 작품이 다시 돌아오다니. 대지 미술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 혼자 그려내는 풍경이 아닌 자연과 함께 만들어가는 풍경인 거죠!

💬Editor’s Comment
어찌 보면 대지 미술은 196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했기 때문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제도권과 갤러리를 떠나 자연으로 돌아간 미술과 각박한 도심을 떠나 자연에서 여가를 즐기는 우리들, 많이 닮지 않았나요? 직접 대지 미술 작품들을 관람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그러한 시도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 자체로 큰 의미가 있기도 하고요. 찰나를 속삭였던 대지 미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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