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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 악기 시리즈 ⑤] 위트까지 겸비한 멋쟁이 신사, '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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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어가 물을 길어와!’ 미키 마우스가 빗자루에 마법을 걸어요. 빗자루는 뒤뚱거리며 물을 길어오기 시작합니다. 미키가 잠이 든 사이, 집에 물이 넘치려 해요. 하지만 미키는 주문을 어떻게 푸는지 알지 못해요. 미키는 급히 도끼를 집어 들어 빗자루를 산산조각내요. 휴우, 안심하려는 그 순간, 그 조각들은 각각의 빗자루로 자라나 뒤뚱거리며 더 많은 물을 옮기기 시작해요. 디즈니 애니메이션 <마법사의 제자>에서는 빗자루가 움직일 때마다 뭔가 흥미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아 눈을 뗄 수가 없는데요. 이 장면을 더욱 실감 나고 익살스럽게 만들어주는 키포인트가 있으니… 바로 빗자루의 걸음걸이를 표현한 ‘바순’의 음색이에요.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젠틀한 악기!

  독어로 ‘파곳’이라는 이름을 가진 바순은 10세기경의 이집트와 고대 그리스인들이 연주한 악기들을 시초로 해요. 15세기경 유럽에서 많이 연주되어 목관악기의 조상으로 불리는 '포머(Pommer)’라는 악기가 있는데요. 다양한 크기의 포머 중 가장 낮은 음역을 연주하던 ‘베이스 포머(Bass-Pommer)’가 발전되어 현재의 바순 형태가 되었답니다.

  그렇기에 바순은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낮은 음역 대와 넓은 음역 대를 연주하는 목관악기인데요. 현악기로 치자면, 첼로와 같은 역할을 하는 악기예요. 첼로와 동일하게 낮은음자리표와 가온음자리표(테너표)를 사용하죠. 약 4옥타브 정도의 음역 대를 소리 낼 수 있으며, 목관악기와 금관악기, 현악기 모두를 잘 받쳐주고 잘 감싸서 하나로 엮어주는 역할을 해요. 때문에 바순은 다양한 악기들의 앙상블 연주에 늘 환영받는, ‘오케스트라의 신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악기예요.

 

바순이 선택한 연주자&#039; 이지현의 LOVE : 뉴스 : 동아일보
바순을 연주하는 모습 ©동아일보

 

  바순은 신사 중에서도 중후한 멋을 지닌 신사에 비할 수 있어요. 바순은 1880년 유명한 독일의 악기 제작자, ‘요한 아담 헤켈 (Johann Adam Heckel, 1812-1877)’에 의해 24개의 키와 5개의 지공을 갖춰 완성되었는데요. 그 바순의 형태가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답니다. 

  이 중후한 멋을 지닌 이 신사가 위트까지 갖췄다면 어떨까요? 글 서두의 <마법사의 제자>를 작곡한 뒤카스뿐만 아니라, 베토벤 역시 여러 앙상블 작품들에서 익살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바순을 넣었어요. <플루트, 바순, 피아노를 위한 3중주 (Trio for Flute, Basson & Piano in G Major, WeO.37)>나 <클라리넷과 바순을 위한 듀오>와 같은 곡에서도 바순의 독특한 음색은 악기들의 조화를 이끌면서도 유머러스한 포인트가 되고 있죠.

 

✨팔색조 음색의 비결은 바로 구조!

   독특하면서도 자연스레 다른 악기와 어우러지는 바순의 음색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바순은 관악기 중에서도 그 위용을 자랑할 정도로 크기부터 남달라요. 몸통은 단풍나무나 장미나무, 무화과나무 등의 고급 원목을 사용하며, 4개의 부분들을 모두 연결한 하나의 악기의 길이는 1.5m가량이나 된답니다. 4개의 몸통은 위에서부터, ‘벨 조인트(Bell joint)’, ‘베이스 조인트(Bass joint)’, ‘테너 조인트(Tenor Joint)’, ‘더블 조인트(Double Joint)’로 불리는데요. 가장 아래인 더블 조인트가 S자로 휘어 있어 더블 조인트에 베이스 조인트와 테너 조인트를 꽂아요.

 

바순의 구조 ©amazonaws.com

 

  다른 관악기와 무엇이 다른지 잘 모르겠다고요? 바순의 가장 큰 특징은 테너 조인트에 연결된 ‘크룩(Crook)’이랍니다. ‘보컬(Bocal)’이라고도 불리는 크룩은 금속관으로 휘어져 있는 모양이라 쉽게 눈에 띄어요. 연주자는 이 크룩에 겹리드를 연결해 숨을 불어넣죠. 크룩에는 숨이 들어가는 통로 이외에도 한 가지 역할이 더 있는데요. 크룩의 길이를 조절해 음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것이에요. 크룩을 테너 조인트 안쪽으로 밀어 넣으면 악기의 전체 길이가 줄어들며 음이 높아지고, 테너 조인트에서 조금 빼내면 악기의 전체 길이가 길어져 음이 낮아지죠.

  바순 연주를 위해서는 악기 이외에도 필요한 부가적인 부품들이 있어요. 바순이 길고 굉장히 무겁기 때문에 바로 세우거나 손으로 들어 연주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보통 연주자들은 스트랩을 연결해 바순을 몸에 걸어준 후,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기댄 상태로 연주하는데요. 이때 기울어져 있는 바순을 오른손으로 고정시키고 연주해야 한답니다. 이를 위해 더블 조인트에는 키와 함께 ‘핸드 레스트(Hand Rest, 손 받침)’가 있어요. 이렇게 안정적인 자세를 잡아 바순을 고정시키고 난 후에서야 왼손으로 키를 잡아 연주할 수 있죠.

  이렇게 정교한 구조를 이리 거치고 저리 거쳐 나오는 바순의 음색, 더 깊고 짙게 느낄 수 있는 방법도 있어요. 바로 단 하나의 바순 가족 악기인 '콘트라바순(Contrabassoon)'의 소리를 들어보시는 거예요. 콘트라바순은 바순보다 한 옥타브 낮고, 전체 길이가 6m나 되는데요. 관악기가 낼 수 있는 극한의 저음을 들어볼 수 있답니다. <마법사의 제자>뿐 아니라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이나 9번 <합창>에서도 등장하죠. 하지만, 콘트라바순을 실제로 만나는 것은 흔한 기회가 아니에요. 서울시향이 2017년, 6년간의 기다림 끝에 콘트라바순을 구입하게 되었을 때 뉴스로 보도가 되었을 정도라고 하니까요.

   이 멋쟁이 신사의 부드러운 음색은 많은 작곡가들을 매료시켰어요. 비발디는 무려 39개의 바순 협주곡을 작곡하기도 했는데요. 그중 <바순 협주곡 마단조 작품번호 484(Vivaldi Concerto for Bassoon and Orchestra in e minor, RV.484)>은 아직까지도 많은 바순 연주자들이 즐겨 연주하는 작품이랍니다.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모차르트가 1774년에 작곡한 <바순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내림 나장조 작품번호 191 (Mozart Concerto for Bassoon and Orchestra in B flat Major, KV.191)>를 꼽을 수 있어요. 

 

 

  바순이 내는 소리를 처음 들으면 뒤뚱거리는 거위의 울음소리와 닮은 것 같다며 웃음이 터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해요. 하지만 바순은 그저 웃음거리로 남지 않아요. 넓은 포용력에 재치를 겸비한 멋쟁이 신사에 비할 만하죠. 묵직한 저음의 소리가 시선을 집중시키고, 뭔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호기심을 자극해요. 바순 소리에 맞춰 유쾌하게 걸어가던 빗자루 부대는 과연 물을 길어 오는 것을 멈췄을까요? 철없는 꼬마 마법사, 미키의 빗자루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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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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