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에 예민보스! 음악혁신을 불러온 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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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늘 이런 모습일까요? 헝클어진 머리에 화가 잔뜩 난 듯한 진한 눈매, 카리스마 넘치는 빨간 머플러를 두르고 손에는 다부지게 연필을 쥐고 있는 베토벤은 항상 이런 모습으로 묘사되는데요. 가까이하기엔 먼 당신이 아닐 수가 없어요. 베토벤은 한창이었던 20대 후반, 음악가로서 너무나 치명적인 청각장애를 겪으면서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어요. 그럼에도 베토벤은 마지막까지 수많은 대작을 남겼고, ‘음악의 성인’으로 일컬어지고 있는데요. 우리에겐 <엘리제를 위하여>, <월광>처럼 친숙한 작품들도 많아요. 18세기 고전주의 시대를 마무리하고 19세기 낭만주의가 태동하던 시기, 음악사에 새로움과 혁신의 발자취를 남긴 베토벤에 대해 알아볼게요.
🎓학력이 없었던 베토벤?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athovan, 1770~1827)은 동시대에 신동으로 주목받으면서 활동하던 모차르트보다 14년 후인 1770년, 독일에서 태어났어요. 오스트리아를 넘어 전 유럽을 뒤흔들었던 모차르트의 활동은 베토벤의 아버지를 자극했어요. 베토벤도 상당히 이른 나이에 연주활동을 시작했는데요. ‘내 아들도 음악 신동으로 소문내서 돈을 벌겠다’는 아버지의 과욕 때문이었죠. 어린 베토벤이 대중 앞에서 처음으로 공개 연주회를 하기로 되어있던 날, 베토벤의 아버지는 그를 이슈화 하기 위해 베토벤의 나이를 2살 더 낮춰서 소개한 적이 있기도 해요. 베토벤의 아버지 역시 궁정 음악가 출신이었어요. 덕분에 일찌감치 베토벤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본 것은 좋았지만, 술주정뱅이에 난폭한 성격으로 그를 힘들게 했답니다. 그는 베토벤이 11살 때 학교를 관두게 하고 연주활동으로 돈을 벌게 해서 생계를 이끌게 했어요. 그래서 베토벤의 학력은 초등학교 중퇴에 머무르고 말았죠.

학교를 오래 다니지 못했던 것은 그에게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어요. 기본지식과 상식, 사회성의 부족은 귀족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상류층과 소통해야 했던 그에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죠. 게다가 베토벤의 예민하고 완벽주의적인 성향까지 더해졌으니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은 계속 늘어났고, 이에 지친 듯 베토벤은 점차 혼자 떨어져 사색하는 시간이 더욱 많아졌어요.
❌괴팍한 천재? ⭕노력형 완벽주의자

생각에 잠겨 거리를 걷고 있는 베토벤을 목격한 사람은 꽤 많았어요. 작은 키에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어두컴컴한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베토벤은 주위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죠. 베토벤은 항상 메모장과 연필을 들고 다니면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나 생각을 적어두었어요. 메모는 그의 오랜 습관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요. 그는 현장에서 즉흥연주가 예정되었을 때, 완벽하게 연주하기 위해서 주제나 메인 선율을 미리 적어 놓기도 했어요. 자신 스스로 탐탁지 않으면 수 십 번이고 고쳐 썼다고 해요. 베토벤이 스케치한 악보나 편지 역시 꽤 많이 남아있는 편이에요. 특히 악보를 보면, 여러 차례 썼다 지웠다 한 흔적들 속에서도, 허투루 쓰는 음표가 없었어요. 천재성을 갖춘 음악가의 완벽 주의적 성향을 엿볼 수 있죠. 악필이었기 때문에 악보인지, 낙서인지 제대로 알아보기 힘든 부분이 많긴 하지만요.
✨새로운 시대를 열다!
베토벤은 교향곡, 협주곡, 피아노곡, 합창곡 등 다방면의 장르를 섭렵한 작곡가예요. 그중에서도 교향곡과 피아노곡은 클래식 음악사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어요. 베토벤의 9개 교향곡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고 있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음악적 깊이와 규모가 상당하거든요. 교향곡 <3번, 영웅>, <5번, 운명>, <6번, 전원>까지, 이름만 들어도 묵직한 무게가 느껴지시죠? 특히 그의 마지막 교향곡 <9번, 합창>은 베토벤이 청력을 완전히 상실했을 때 만든 작품으로, 구상 기간을 걸쳐 완성하기까지 약 32년이 걸렸어요. 당시로서는 처음으로 대규모 악기들을 편성했다는 점, 최초로 악기와 합창을 함께 사용했다는 점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는데요. 이런 획기적인 시도들로 베토벤은 ‘19세기 낭만주의 시대로의 문을 열었다’는 평을 들었어요.

이 외에도 그의 생애 전반에 걸쳐 작곡된 32개의 피아노 소나타 또한 빼놓을 수 없어요. 작품별로 견고함과 높은 완성도를 자랑할 뿐만 아니라 피아노라는 악기 자체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어요. 다른 악기들에 비해 표현할 수 있는 음역대도 넓고, 소리의 강약 조절이 쉬웠던 피아노는 당시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베토벤은 피아노 연주 실력은 물론이고 힘까지 좋았던 터라 피아노가 가진 역량을 한껏 끌어올려 작품들을 만들었어요. 19세기를 대표하는 독일 출신의 지휘자, 한스 폰 뷜로가 이런 말을 남길 정도였어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은 구약성서, 이 사람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은 신약성서이다”.
🤦♀️작곡도 훌륭한데… 연주까지?

명 작곡가였던 베토벤은 당대 최고의 비루투오소1) 피아니스트였어요. 그는 20대 중반, 피아니스트로 정식 데뷔를 하고 유럽의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연주여행을 했어요. 음악가로서의 성공을 이루고 싶었던 그는 고향을 떠나 당시 음악의 중심지였던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떠났어요. 빈의 여러 유망한 음악가들을 제치고 그가 유명해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즉흥연주'였어요. 연주자들끼리 즉흥연주 대결을 펼치는 것이 유행했던 당시, 베토벤은 뛰어난 즉흥연주로 패권을 잡을 수 있었어요. 베토벤이 즉흥연주 대결을 하는 모습은 보통 검투사의 경기, 야수들의 싸움처럼 묘사되는데요. 항상 청중을 압도했다는 묘사가 따라다녔어요. 당대 연주자들의 후기를 보면,
"베토벤의 자유로운 환상적인 연주를 못 들어본 사람은 이 천재가 가진 깊이를 불완전하게 알 뿐이다”
"그는 기술만이 아니라, 아이디어의 명료함, 심오함, 표현력에 있어서 매우 뛰어났다”
라고 할 정도로 극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죠. 베토벤은 작곡가이자 선생님, 연주자로서 빈의 사교계에서 명성을 날리게 돼요.
1) 비루투오소 (Virtuoso)는 뛰어난 연주 테크닉을 가진 음악가를 지칭하는 말이에요!
18에서 19세기로 넘어갈 무렵, 작곡부터 이론, 연주, 스타일 등등 그 어떤 것도 ‘베토벤화’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대단했어요. 특히, 궁정에 소속돼서 후원자들이 필요로 하는 목적과 용도에 맞게 곡을 썼던 당시 음악가들과는 달리, 베토벤은 처음으로 작곡가 개인의 생각과 철학이 담긴 작품들을 만들었어요. 개인 음악회를 열어 청중들이 음악을 열망하고, 찾게 만들었던 그는 음악가가 독립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초석을 마련하기도 했고요. 앞서 이어져 온 음악적 전통을 지키면서도 시대적, 문화적으로도 새로운 혁신을 만들었던 베토벤. 베토벤은 지금까지도, 음악가들에게도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과 같은 존재로 남아있어요.
ㅇ참고문헌
- Donald J. Grout, 민은기 외 옮김, 『그라우트의 서양음악사(하)』, 서울: 이앤비플러스, 2013.
- 최은규, 『베토벤』, 파주: 아르테, 2020.
- 한영화, "베토벤의 즉흥연주와 '판타지' -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의 영향과 수사학", 『한국예술연구』, 제31호,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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