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 프랑스 혁명을 그리다
- 1,301
- 0
- 글주소
지난 7월 14일은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이었어요. 프랑스 문화를 잘 모르시는 분들도 프랑스혁명에 대해서는 한 번쯤 들어보셨을 거예요. 상위 계급만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던 구시대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모든 시민들에게 권리가 부여된 계기였죠. 현대 프랑스의 정신이자, 인권의 중심이 되는 ‘자유’, ‘평등’, ‘박애’를 위한 투쟁이었고요. 그 유명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이 선포된 것도 바로 이때랍니다. 아! 이러한 혁명의 불씨가 된 것은 테니스코트의 서약이었어요.
👨🎨자크 루이 다비드, 그는 누구였는가?
1789년,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는 왕실의 재정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삼부회를 소집해 세금을 인상하려 했어요. 이에 제3신분은 독자적인 국회 ‘국민의회’를 만들어 저항했고요. 그러나 국왕은 그들을 탄압하고 해산하라는 명령까지 내렸는데요. 이를 거부하며 절대 해산하지 않겠다는 선언문을 발표한 것이 바로 ‘테니스코트의 서약’이랍니다. 테니스코트의 서약은 자크 루이 다비드라는 화가에 의해 그림으로 남기도 했어요. 오늘날까지도 미술 교과서나 역사 교과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품으로 남게 되었죠.
자크 루이 다비드는 당대 프랑스 최고의 화가였어요. 그의 작품들은 로코코 양식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신고전주의 양식의 진보와 함께 절정에 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답니다. 신고전주의는 명확한 표현과 형식, 내용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했죠. 그렇다면 다비드가 과연 프랑스혁명을 있는 그대로 옮기기만 했을까요? 그건 아니에요. 오히려 그는 ‘정치적 선동가’에 더 가까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는 사건을 왜곡하고 인물을 조작하면서까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선명하게 드러냈거든요. 게다가 그는 프랑스혁명의 강력한 지지자였고요! 강경한 혁명당원이자 공화주의자였으며, 프랑스혁명의 지도자 중 한 명인 막시밀리앵 드 로베스피에르에게 협력하기도 했답니다.
사람들은 늘 예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하지만 예술이라는 장르가 완전히 독립적일 수 있을까요? 그건 어려운 것 같아요. 예술 역시 우리 사회 속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정치나 사회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죠. 다비드를 비롯해 한 작가의 작품에 정치적, 사회적 입장이 드러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어요.
🔥공화국 국민으로서의 평등을 외치다
그럼 다비드가 <테니스코트의 서약> 안에 어떤 의도를 숨겨두었는지 함께 살펴볼까요? 우선 다비드는 원근법을 활용해, 작품의 첫인상에서부터 자유로운 혁명의 기운이 느껴지도록 인물들을 구성했어요. 따라서 많은 인물들이 각자 다른 제스처로 감정을 표현하고 있음에도, 산만하기보다는 자유롭게 의지를 표출하는 듯한 느낌이죠. 또한 양 옆에는 휘날리는 커튼을 그려 하단의 인물들에게서 보이는 고무된 감정이 텅 빈 상단에까지 이어지도록 해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답니다.
인물 구성에서도 다비드의 정치적 의도가 나타나요. 그는 프랑스혁명 지도자 중 한 명인 ‘마라’라는 인물을 오른쪽 상단 뒤쪽 벽에 기대어 기사를 쓰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 넣었어요. 그는 제3신분 대표자가 아니었음에도 말이죠. 또 그림 중앙을 보면 세 명의 성직자들이 눈에 띄게 묘사되어 있는 게 보여요. 사실 서약 당시에는 의견 차이 때문에 두 명만 참석했는데도요. 그러니까 다비드는 실제 참석하지 않았던 인물을 포함시키고, 그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단결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었답니다. 상황을 바꾸고, 사실에 토대를 두지 않은 인물들까지 등장시키며 혁명 정신을 강조했던 다비드, 정치적 선동자라고 불릴 만하죠?
🎨사실의 왜곡을 넘어선 창안
다비드가 그림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표명한 것은 <테니스코트의 서약>에서 그치지 않아요. 3년 후 그는 <바라의 죽음>이라는 작품을 남겼는데요. 그림에 등장하는 소년은 단순히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책임 때문에 죽은 것으로 묘사되어 있어요. 마치 대단한 정치적 신념을 지닌 순교자처럼 표현되었죠. 이는 이미 존재하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서 남긴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온전히 창작된 작품이에요.
이 작품에서는 특히 소년의 모습을 아름다운 누드로 그렸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소년은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의 신체 어디에서도 상처의 흔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리스 조각상처럼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죠. 죽은 소년의 얼굴은 고통으로 얼룩진 모습이 아니라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기도 하고요. 이를 통해 다비드는 어린 소년의 순수함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혁명정신의 순결함까지 표현한 거예요. 그의 한 손에는 공화국을 상징하는 삼색휘장이 들려 있는데요. 누가 봐도 이 그림이 정치 선동을 위한 것임을 아주 명확하죠? 죽음 앞에서도 애국심을 가지고 미소 짓는 바라의 용기를 강조함으로써 다비드가 얻고자 했던 건 무엇일까요? 결국 그는 어린 세대들에게 이상적인 시민의 모습을 교육함으로써, 그들이 혁명 정신과 공화국의 미덕을 지닌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고취한 것이었습니다. 즉, 그는 특별한 정치적 신념이 없는 소년 병사를 순수한 결백과 공화국적 영웅, 국가를 위한 희생의 구체적 예시로서 조작했던 것이지요.
💬 Editor’s Comment
프랑스 대혁명 시기 동안 예술가이자 정치가로 살았던 다비드는 자신의 그림이 정치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이용했어요. <테니스코트의 서약>을 통해서 혁명의 역동성을 나타냈고, 동시에 새로운 사회를 위한 통합과 단결의 의미를 강조했죠. <바라의 죽음>을 통해서는 혁명의 숭고한 이념을 지키고자 국가를 위해 희생한 어린 소년 병사를 정치적 의도에 맞추어 왜곡하여 그렸는데요. 결국 정치적 목적에 맞는 인물을 만들어 내기에 이른 것이죠. 예술가에게 정치적 억압이 가해져서는 안 되겠지만, 아무리 예술이라고 하더라도 정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지금 로그인하시면
하루예술의 모든 콘텐츠 열람이 가능해집니다!
이야기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