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자신의 회고전에 살아 돌아온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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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줄 알았던 사진가가 자신의 회고전에 나타났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불리는 2차 세계대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볼게요. 프랑스 육군에 입대해 사진병으로 일하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독일군에 포로로 잡혀가 연락이 끊겨 버린 거예요. 사람들은 모두 청년이 죽었으리라 생각했죠. 뉴욕현대미술관의 큐레이터 보몬트 뉴홀(Beaumont Newhall, 1908~1993)은 그 소식을 듣고 청년의 회고전을 기획합니다. 하지만 1943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는데요. 바로 프랑스 청년이 세 차례의 시도 끝에 탈출에 성공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회고전이 준비되고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를 돕기로 했어요. 청년은 본인의 작품 중 300여 점을 골라 스크랩북에 연대순으로 부착한 것을 들고 뉴욕에 갔습니다. 그렇게 큐레이터와 함께 163점을 다시 선별해 뉴욕미술관에서 선보였고, 프랑스 청년의 ‘인생 첫 회고전’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었답니다. 그가 바로 현대 사진의 선구자,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 1908~2004)’이에요. 아래의 사진은 당시 브레송이 전시를 준비하며 만든 스크랩북 원본인데요. 여기에는 브레송이 전쟁과 포로 생활을 겪으며 느낀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답니다. 끔찍한 전쟁 속에서 3번의 탈출 시도 끝에 무사히 돌아왔다는 점도 놀라운데, 곧바로 자신의 회고전으로 대성공을 거두기까지 하다니, 정말 드라마틱하지 않나요?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스크랩북 원본 페이지(1946) ⒸHenri Cartier-Bresson/Magnum Photos

 

📖모든 사진가들의 바이블, <결정적 순간>

 

<결정적 순간>(1952) ⒸFoundation Henri Cartier-Bresson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길거리 사진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포토저널리즘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인물이에요. 오늘 소개할 전시는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사진집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의 발행 7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입니다. 1952년에 발행된 이 사진집의 원제목 <달아나는 이미지들>은 당대 최고의 화가 앙리 마티스(Henri Émile Benoît Matisse, 1869~1954)가 붙여주었다고 해요. 심지어 몸이 불편했음에도 직접 커버아트까지 그려줄 만큼 둘의 사이는 각별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헝가리의 전설적인 사진가 로버트 카파(Robert Capa, 1913~1954)는 <결정적 순간>을 보고 ‘사진작가들의 바이블’이라고 말했는데요. 이 어마어마한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죠.
 

❓이 사진집, 왜 바이블이죠?!

 

<생 라자르 역 뒤에서(1932)> ⒸHenri Cartier-Bresson/Magnum Photos

 

  그렇다면 <결정적 순간>이 사진가들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그의 작업이 사진을 예술로서 바라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해요. 지금이야 미술관에서 사진전을 관람하는 게 흔한 일이죠. 하지만 사진이 예술의 영역으로 인정받기까지는 오랜 사회적 논의가 필요했답니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비평가 샤를 보들레르가 “사진은 충실하게 사물을 기록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예술이라 할 수는 없다.”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을 정도니까요. 이러한 흐름은 19세기 이후 여러 예술가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점차 극복되었습니다. 브레송은 그중에서도 길거리에서 찍은 보도 사진이 예술로 인정받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답니다. 이전까지의 보도 사진은 현장에서의 사실을 전달하는 데에만 그쳤는데요. 사진을 찍는 이가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진 채 우연히 마주친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면서 비로소 예술성을 띠게 된 거예요. 사진가 개인의 특정한 시선으로 구성한 사진에 자신의 철학을 담아낸 거죠!

  전쟁을 겪은 후 미국, 인도, 중국, 프랑스, 스페인 등 여러 국가를 오가며 생동감 넘치는 길거리 사진을 찍은 브레송은 간디의 장례식처럼 역사적인 순간을 포착하기도 했습니다. <결정적 순간>에는 이런 아이코닉한 사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일상적인 순간도 여럿 담겨 있어요. 위 사진은 ‘결정적 순간’이란 주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진이에요. 누군가 물웅덩이를 건너 뛰어가는 그 찰나를 포착하기 위해 24시간 내내 기다려 찍은 ‘생 라자르 역 뒤에서’랍니다. 단 한 번의 결정적인 순간을 위해 하루 종일 밖에서 카메라를 들고 기다리다뇨! 피사체를 가리지 않고 세상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했던 그의 진심 어린 예술성이 엿보이네요.

 

📸우리는 왜 사진을 찍는가

  사람이 왜 사진을 찍는지, 어떤 사진이 좋은 사진인지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결정적 순간>은 이러한 질문을 가진 사람들과 사진을 찍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전시예요. 필름 카메라가 스마트폰으로 대체됐을 뿐, 우리는 여전히 사진을 찍죠. 누군가는 그날의 추억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찍고, 또 누군가는 친구의 권유로 마지못해 찍기도 할 거예요. 전시를 감상하다 보면 사진의 주제를 막론하고 사진 속 인물에 감정을 이입하게 돼요. 그때마다 내가 찍었던 사진, 혹은 찍히던 순간이 떠오르곤 하죠. 그래요! 사진에는 찍는 사람이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찍히는 사람이 발산하는 찰나의 감정이 담겨 있어요. 그때 우리가 가졌던 감정들이 프레임 안에 영원히 저장되는 거죠. 전시되어 있는 사진들을 보면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온도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합니다.

“내게 가장 중요한 주제는 언제나 인간이었다. 짧고, 덧없고, 위협받는 우리 인간의 삶.”_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브레송은 “사진보다 삶에 더 관심이 많다”라고 말했을 만큼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에 주목했어요. 필연적으로 유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 삶의 유한함마저 이 전시는 절묘하게 담아냈습니다. 이렇듯 불안정한 인간의 삶과 순간의 감정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은 아닐까요?

 

사진계의 거장, 찰나의 미학을 말하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사진을 찍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파라다이스 문화재단

 

  전시에서 본 브레송의 인터뷰 영상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 세상에 새로운 발상이란 없다”라고 말했어요. 모든 건 그저 사물의 재배치일 뿐이고,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모든 것이 새롭다고도 했죠! 이런 브레송을 가리켜 ‘보도 사진을 예술 사진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새로운 시도를 한 인물’로 평가한다는 점이 재미있지 않나요? 브레송의 이 말은 마치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상당히 모순적인 말처럼 느껴지지만, 모든 것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열린 시각과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겠어요. 이제 같은 사진을 찍어도 사진가에 따라 프레임 속 구성과 분위기가 달라지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겠는데요?

  브레송은 사진집 서문 첫머리에 “누구에게나 결정적 순간은 있다”라는 레츠 추기경의 회고록 문구를 인용했어요. 이를 본 리처드 사이먼이 ‘결정적 순간’이라는 문구를 따와 제목으로 쓰고자 해 지금에까지 이르렀죠. 그 이름처럼 전시 속 브레송의 사진은 저마다의 결정적이고 중요한 순간들을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게 포착했어요. 이를 직접 볼 수 있는 것만으로 관람할 가치가 있는 전시라고 생각합니다!

 

✅솔직 핵심 정리 노트

ㅇ박수갈채드립니다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잘 모르는 사람도 전시 흐름을 잘 따라갈 수 있도록 전시 순서가 그의 생애에 따라 구성되어 있어요. 텍스트도 적절히 섞여 있어 직관적인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됐네요. 꽤나 친절했던 전시!

- 같은 구성의 전시 공간이 반복되어 질릴 때 즈음 앉아서 감상할 수 있는 영상이 있는 공간이 배치되어 새로운 재미를 줘요. 끝까지 감상하는데 1시간 정도 걸릴 만큼 규모가 꽤 있는 전시니까, 잠깐 앉아서 브레송의 생전 인터뷰를 보고 들으며 쉬었다 가세요!

ㅇ요건 쫌 아쉬운데

- 전시 오픈 첫날임을 감안하더라도, 전시장 내부가 다소 소란스러운 느낌이었어요. 전시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길 바라요.

- <결정적 순간> 사진집을 팔지 않을까 기대하고 굿즈샵으로 갔는데… ‘<결정적 순간> 프랑스어판 48권 한정/예약판매 480,000원’이란 문구를 읽고 엄청난 충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저렴한 번역본이나 복사본도 함께 판매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Editor's Comment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모두에게 당연하게 느껴지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어요. 현대에는 보도 사진 역시 예술의 분야로 당당히 인정받고 있지만, 만약 브레송의 업적이 없었더라면 그 시기는 분명 늦춰지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지금도 누군가의 사진은 샤를 보들레르의 말처럼 그저 사물과 현실의 기록일지도 모르죠. 브레송이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쏟았던 진심과 사진에 대한 굳건한 철학은 길거리 사진이 비로소 예술이 될 수 있게 했어요. 사진가가 세계를 바라보는 고유한 시선이 담겨야만 사진을 예술이라 부를 수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없으니까요! 이러한 점을 주목하며 전시를 감상하면 더 알차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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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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