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ON & OFF] 서로 닮은 배우와 영화
- 1,368
- 0
- 글주소
❗ [필름 ON & OFF]는 개봉 중인 화제작 ‘ON’과 극장에서는 볼 수 없거나 극장에 있어도 많이 주목받지 못한, 하지만 그렇게 사그라들기엔 아쉬운 ‘OFF’를 골라 소개해 드리는 글입니다.
지난 5월, 영화계에 들려왔던 비보가 있었죠. 자택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강수연 배우가 5월 7일 유명을 달리한 것이었어요. 고인은 과거 더블유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할머니 배우'가 되고 싶다며, '여배우가 나이가 드는 게 슬픈 일'이라는 세간의 말에 편견이라고 일갈하며 내면을 표현하는 배우로 늙고 싶다고 연기에 대한 애정을 내비쳤었는데요. 오늘의 ON & OFF는 이런 그녀와 닮은꼴 영화, <그대안의 블루>를 가져왔어요.
카메라 역시 모던하게, 자극적으로!
아마 <그대안의 블루>라고 하면 김현철과 이소라가 함께 부른 동명의 가요를 먼저 떠올리실 수도 있겠어요. 사실 이 곡은 김현철이 영화 <그대안의 블루> OST를 제작하며 타이틀 곡으로 만들었던 노래기도 해요. 1992년에 개봉한 <그대안의 블루>는 국내 관객들에겐 ‘시월애’로 잘 알려진 이현승 감독의 데뷔작이에요. 80년대 이후, 아시아 영화의 중심이었던 홍콩 영화들은 카메라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잔상을 조절한 연출과 파격적 앵글이 특징이었죠. 이런 영향을 받은 <그대안의 블루>는 90년대 아시아 영화 스타일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어요.
깔끔한 영상에 익숙해진 여러분들에겐 그 시절의 거친 흐름이 낯설게 느껴질 수 도 있긴 합니다.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보여주는 시점 샷이 과감하게 쓰이고, 카메라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흔들리죠. 또한, 노란색과 빨강, 파랑 등 원색의 색감들이 자주 등장하고 흑백과 컬러를 교차시키며 심리를 표현하는 영상미도 뛰어나요. 당시 ‘파격’이란 꼬리표가 붙었던 만큼, 온갖 영화를 경험한 22년의 관객들에게도 여전히 신선함을 줄 법한 영화예요.




로맨스 대신, 자아 찾기
우연히 만난 유림과 호석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이 영화는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나 ‘풀하우스’, 최근의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처럼 자주 사용되는 단골 재료를 소재로 사용했는데요. 바로, 청춘 남녀의 동거입니다. 그럼에도 <그대안의 블루>가 특이한 점은, 이런 익숙한 재료에서 단순히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가 아닌, 페미니즘의 향을 내기 때문이에요. 유림은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해 가정을 꾸리는 것이 직장에서의 성공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말하는 반면, 호석은 그것은 ‘환상’이라고 단정 짓습니다. 호석은 사랑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조언하면서 그녀가 ‘환갑의 여성 디자이너’가 되길 요구하는, 페미니즘의 독기로 가득 찬 남자예요. 이 시대의 ‘여성상’을 두고 펼쳐지는 두 남녀의 갈등이 영화 내내 긴장감을 만들어내는데요. 결국 유림 역시 결혼에서 벗어나 일을 택하면서, 사회 속에서 자아를 찾은 여성이라는 깔끔한 결말로 마무리됩니다.

<그대안의 블루>의 또 다른 재미는 영화 곳곳에 박혀있는 90년대의 시대상이에요. 90년대는 눈부신 경제 발전 이후 개인이 우선시 되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물꼬를 트던 시기였어요. 영화 첫 장면에서부터 유림은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며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식장을 뛰쳐나옵니다. 그녀는 디자인 학원이 아닌 요리학원을 다니라는 부모님의 강요에 또 한 번, 집을 뛰쳐나오고요. 유림은 자신과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뚜렷한 인물이에요. 유림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뤄내죠. 유림이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 호석은 디스플레이어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데요. 당시 시각 디자인 산업이 태동하던 시기였던 만큼, 아마 쇼윈도를 꾸미는 디스플레이어는 90년대에 꽤나 신선하고 멋져 보였던 직업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대안의 블루>는 고전적인 영화 이야기의 구조를 따라가지 않고 풍부한 색채를 이용한 이미지 표현에 집중해 개성이 돋보이는 영화예요. 90년대를 반영하는 스토리 라인 또한 단순히 흥미로운 구경거리에만 그치지 않아요. 유림이 사랑과 일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일련의 과정은, 2022년을 살고 있는 청춘들에게도 유효한 고민거리죠. 아역배우에서 시작해 성인 배우로 우뚝 서기까지, 세상의 부정적인 인식을 견디며 자신의 한계를 부숴내야 했던 고 강수연 배우와 스스로 투쟁해 나가는 유림은 닮아도 참 많이 닮은 듯합니다.
지금 로그인하시면
하루예술의 모든 콘텐츠 열람이 가능해집니다!
이야기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