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미셸 바스키아 전시에 뜬 F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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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입니다.” 지갑 속 명함을 보이며 던지는 한마디에 모두가 비켜서는 장면, 영화에서 본 적 있으시죠? 이들은 보통 정체 모를 파편과 혈흔이 가득한 범죄 장소에 등장하곤 하죠. 그런데 지난 4월, 미국의 한 미술관을 조사하기 위해 FBI가 떴다지 뭐예요! 미술관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사건 현장인 올랜도 미술관에서는 2월부터 <영웅 & 괴물: 장 미셀 바스키아>라는 제목의 전시가 진행되었는데요. 25점의 작품에서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했다고 하죠. FBI의 미술관 출두, 자세히 알아볼까요?
🧑🎨검은 피카소, 장 미셀 바스키아!
먼저 바스키아가 누구인지 알아볼게요. 장 미셀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1960~1988)는 1960년에 태어나 만 27세의 나이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천재 화가입니다. 그의 천재성은 ‘검은 피카소’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어요. 바스키아만의 독창적이고 강렬한 화풍에는 눈에 띄는 특징이 있는데요. 바로 아이의 낙서처럼 보인다는 점이에요. 하지만 그 속에는 여러 상징과 기호로 형성한 사회적 메시지가 들어 있답니다. 왕관, 카피라이트를 의미하는 ⓒ 표시, 해골과 장기 등의 반복적인 이미지도 큰 특징이죠. 이렇게 여러 번 재생산된 이미지들과 혼재된 낙서가 풍기는 만화적 분위기는 그의 삶, 그리고 시대적 배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바스키아는 어린 시절 만화를 즐겨 보며 만화가가 되기를 꿈꾸었어요. 그러다 만 7세 때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입원하는 일이 있었는데요. 그 시절 어머니가 주신 해부학 입문서를 탐독했죠. 이를 계기로 이후에도 여러 해부학 서적을 접했고요. 어린 바스키아에게 해부학이 어떤 느낌을 주었을지는 몰라도, 성인이 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후 해골과 장기를 꾸준히 그린 것을 보면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죠.
바스키아가 살았던 60-80년대는 비주류 문화가 유행하기 시작했던 시기였어요. 틀에서 벗어난 가치관을 추구하는 문화가 확산되었거든요. 낙서화도 그 시대의 산물입니다. 1977년부터 바스키아는 친구였던 알 디아즈와 함께 ‘SAMO’라는 활동명으로 뉴욕 거리를 누비며 낙서화를 그렸어요. 사회에 대한 저항의 이미지와 메시지를 남겼던 이들의 행보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맞아떨어져 크게 환영받았죠. 미술계에서도 이들을 주목하기 시작했고요. 그러나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는데요. 익명의 예술가로 남고자 했던 알 디아즈와 달리 바스키아는 스타가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바스키아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죠.
찰리 파커, 지미 핸드릭스 같은 내 모든 영웅들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유명해진다는 것에 대해 나는 낭만적인 감정을 품고 있었다.
실제로 바스키아가 했던 말입니다. 유명세를 얻고 싶어 했고, 영웅적인 흑인 예술가들을 동경했음을 알 수 있죠. 이러한 동경은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흑인 재즈 아티스트, 인권 운동가, 복싱선수들의 머리 위에 그린 왕관으로도 드러납니다. 카피라이트 표시와 함께 자주 등장하는 이 왕관은 인물에 대한 존경과 찬미를 의미하거든요. 바스키아는 왕관을 통해 자신의 작품이 가지는 권위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스타가 되고 싶었던 그의 열망은 1980년,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을 만나고 현실이 되었어요. 하지만 너무 빠르게 얻은 유명세 탓이었을까요? 언론은 바스키아와 워홀의 관계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퍼트리기 시작했어요. 두 사람이 공동 기획한 전시도 실패로 끝났죠. 이렇게 둘의 사이가 멀어졌고, 앤디 워홀은 1987년 심장발작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에 바스키아는 큰 상실감에 빠졌는데요. 결국 다음 해인 1988년에 약물중독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나는 흑인 예술가가 아니다, 나는 그저 ‘예술가’다.
눈을 감기 전까지도 바스키아는 자본주의의 폐해, 인종차별 같은 미국 사회의 문제에 맞서고자 했습니다. 시대에 대한 저항과 분노를 자신만의 메시지를 통해 작품 속에 담아냈죠. 이러한 행보는 바스키아가 실력 있는 화가이자 시대의 지성인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도와줘요, FBI!
바스키아의 진지한 정신이 담긴 독창적인 작품들은 지금까지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천 억대에 거래되곤 하는데요. 워낙 유명해서 그런지 아직도 바스키아의 작품은 스캔들을 몰고 다니죠. FBI가 올랜도 미술관을 조사한 것도 전시된 작품들에 위작 의혹이 제기되었기 때문입니다. 미술관 측은 작품의 대다수가 40년 간 공개되지 않았던 것들로, 바스키아가 아트 딜러인 가고시안의 자택 지하에서 작업한 그림들이라고 주장했어요.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작품들이 공개된 과정이 이상하다며, 전시회 초기부터 작품 진위 여부에 의문을 제기해 왔죠. 택배 업체 페덱스의 상자에 그려진 ‘Untitled (Self-Portrait or Crown Face II, 1982)’가 특히 주목받았는데요. 이 그림이 1982년 작으로 소개되었으나 택배 상자에 적힌 폰트가 1994년 이후부터 쓰인 것이기 때문이죠. 심지어 바스키아는 1988년에 사망했으니 의심을 할 만하죠? 올랜도 미술관장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바스키아가 가고시안과 상의도 하지 않은 채 직접 TV 시나리오 작가인 멈포드에게 작업한 작품들을 팔았고, 멈포드는 지하창고에 그림들을 넣어두고 잊고 있었다고요. 그러다 2012년에 창고 보관료를 납부할 수 없어 그림들이 다시 지상으로 나왔고, 이후 여러 경매자들을 거쳐 전시장까지 오게 되었다고 전해왔는데요. 이런 스토리에 가고시안은 “현실성 없고 불가능한 시나리오”라 반응하며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미술관 측이 작품에서 바스키아의 이니셜을 발견했고, 권위 있는 기관의 인증을 받았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요.
바스키아 위작 논란은 이번 사건 뿐만이 아니에요. FBI는 지난 5월에도 바스키아의 위작과 관련해 수사했거든요. 아트딜러인 다니엘 엘리 부아지즈가 온라인 경매 사이트에서 바스키아의 위작을 판매하다가 위장 수사를 하던 FBI 요원에게 발각되었죠. 결국 그는 바스키아, 앤디 워홀, 뱅크시 등의 위작을 5배 이상 부풀려 판매한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위작 예방주사라서 따끔해요~ 따끔!
최근 FBI가 바스키아뿐만 아니라 여러 예술가들의 미술품 위작 관련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미국 미술의 세계적 입지 상실과 신뢰도 하락을 막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우세합니다. 2011년에 발생한 ‘뇌들러 화랑 스캔들’이 미국 미술계에 큰 충격을 주었는데요. 마크 로스코, 잭슨 폴록 등의 작품들을 속여 판 것이 밝혀져 165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뇌들러가 문을 닫게 된 것입니다. 뇌들러 사건 수사 담당이었던 제이슨 헤르난데즈 검사는 1000만달러가 넘는 작품이 믿을 만한 정보와 보증서 없이 갤러리나 딜러의 명성만으로 팔리는 미술 시장의 실황을 비판하기도 했죠. 미국 미술의 자부심이었던 미술관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리자 미술계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커졌어요. 폐쇄적인 구조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아졌고요. 따라서 FBI의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 미술계의 명성을 유지하고자 투여하는 예방주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극적인 수사를 통해 2011년 뇌들러 사건의 재발을 막고, 최근 코로나19 완화로 활기를 되찾은 미술 시장과 급성장세를 보이는 온라인 경매 시장에서 발생할 만한 위험을 발빠르게 제거하겠다는 의도인 것이죠.
미술계에 대한 신뢰는 FBI뿐만 아니라 예술가와 중개자, 수집가 모두에 의해 지켜져야 해요. 예술가들이 스스로 진품 보증서를 발급해서 작품과 같이 유통시키는 방법이 있죠. 아트 딜러들은 계약서나 영수증을 잘 보관해서 소장 이력을 보존해야 하고요. 수집가들은 중개인의 전문성을 충분히 조사한 뒤 전시 도록이나 언론 보도 같은 사료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약속들이 잘 지켜진다면, 위작 전시 없는 깨끗한 미술계를 만날 수 있겠죠?
💬Editor’s Comment
작품에는 예술가만의 숨결과 돌이킬 수 없는 당시의 시간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바스키아의 작품에서 그의 생애와 가치관을 엿볼 수 있듯이 말이에요. 때문에 위작을 그리거나 판매하는 것은 원본에 대한 모욕 행위와도 같습니다. 더 나은 세상으로 향하는 길을 닦는 예술의 순기능과 가치를 저해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미술 시장에 존재하는 구조적 구멍 때문에 아직도 불미스러운 일이 종종 발생하곤 하죠. 그래서 FBI가 미술시장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입니다. 더불어 아티스트, 아트 딜러, 컬렉터들의 사전 준비와 우리들의 보존 의식이 더해진다면 미술계에 난 구조적 구멍이 빨리 메워지지 않을까요? 끝으로 올란도 미술관 사건이 올바른 판정 아래 잘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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