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엘리트 예능인 양성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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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어화’는 1940년대, 일제 강점기의 조선을 살아가는 기생들의 이야기예요. 텔레비전 사극에 등장하는 술상 앞의 기생들에 익숙했던 여러분이라면, 이 영화의 ‘꽃’들을 보며 조금은 갸우뚱하실 거예요. ‘권번’이라는 곳에 속해있던 그녀들은 마치 학교와도 같은 체계를 갖춘 기관에서 교육을 받고, 고위급 행사에 참석하기에 손색없는 일본어와 교양을 뽐내는가 하면 훌륭한 기예를 선보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그들이 다재다능한 예인이 되기까지, 그들의 커리어를 뒷받침해준 것은 ‘권번’이었어요.
권번, 어떤 곳이었을까?
일본식 명칭인 ‘권번(券番)’. 그 역사는 ‘기생조합’에서부터 시작되었어요. 20세기 초반 일제강점기 시절, 기생들은 역사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는데요. 바로, 신분제와 관기제도가 폐지된 것이었죠. 궁에서 나온 기생들과 고향으로 내려가지 않은 일반 기생들은 유명한 요리점을 무대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궁중을 주 무대로 삼아 활동하며 예술가로서의 자부심이 상당했던 관기 출신의 기생들에게 요리점이라니요? 심지어, 그들은 요리점의 손님과 직원들로부터 종종 괄시와 수모를 당하곤 했었는데요. 이것이 그들을 뭉치게 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어요. 그들에겐 요리점을 연결해주고 손님과의 마찰을 해결해주며 사례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관리해줄 단체가 필요했죠. 기생조합은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최초의 기생조합은 1908년에 출범한 ‘한성기생조합’이었어요. 이후 1913년에는 기생조합의 기틀이 되는 ‘다동조합’과 한성기생조합의 후신인 ‘광교조합’이 설립되었고요. 당시 평양 출신의 기생들을 비롯해 지방에서 올라온 많은 기생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서울에 머물며 이와 같은 기업을 차렸는데요. 당시 조선정악전습소를 이끌던 하규일은 이들을 모아 다동조합을 만들어 가곡과 가사, 시조, 경기잡가와 가야금 산조를 교육했어요.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서울 출신의 기생들이 만든 광교조합은 가곡, 가사, 서도소리와 춤을 가르쳤습니다.
1918년에는 일본의 영향으로 기생조합의 명칭이 권번으로 바뀌었어요. 권번은 기존 기생조합과는 달리, 모든 교육과정을 수료한 기생들이 요정에 나가는 것을 일본이 지휘하고 감독하기 위한 목적을 가졌어요. 이렇게 ‘권번’에는 당대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이미지가 다분했기 때문에 기생들은 권번을 대신하는 자신들만의 은어를 사용하였는데요. 그중 하나로 ‘노래서재’라 부르곤 했다고 해요.

권번에서는 무엇을 가르쳤을까?
당시 신문에는 기생들이 선보이는 기예의 수준을 비판하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었는데요. 이때부터 권번은 기생 교육에의 중요성을 깨닫고 체계적으로 기생들을 관리하기 시작했어요. ‘기생양성소’를 설립하여 전통적인 기예뿐 아니라 교양의 함양을 위한 교육을 실시했죠. 권번은 기생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기생들의 예술 활동 또한 이 기관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어요.
당시 서울과 지방에는 약 30개의 권번이 존재했어요. 전국의 권번은 경쟁적으로 기생들을 교육하는데 열을 올렸죠. 권번은 기생들에게 여창가곡1)부터 민요와 잡가에 이르는 전통 성악, 가야금·거문고·양금 등의 전통 악기들과, 궁중무용과 민속무용을 포함한 전통춤을 지도했어요. 더 나아가 서양댄스와 서화 그리고 일본어와 한자 교육도 실시했고요. 기생들은 이처럼 권번에서 실시하는 일정 기간의 교육을 거친 후에야 당국으로부터 영업인가증을 받고 놀음이나 공연을 펼칠 수 있었어요.
권번 중의 으뜸이라면 단연코 평양의 기성권번을 들 수 있는데요. 기성권번은 당시 평양을 방문했던 일본인들에게 유명한 관광지로 알려져 있었어요. 근대적인 교육제도를 최초로 도입한 기생학교로 명성이 자자했죠. 기성권번의 교육과정은 3년제로, 1학년은 가곡 외에 사군자와 한문, 조선어와 산술을 학습했고, 2학년은 ‘관산융마’나 ‘백구사’와 같이 음이 높은 시조나 생황, 피리, 대금의 관악기와 양금, 거문고의 현악기를 합친 관현악을, 3학년은 승무와 검무 수업이 이루어졌답니다.
1) 가곡은 관현악 반주에 부르는 전통적인 성악곡을 이야기해요. 그중 여창가곡은 여성이 부르는 가곡을 뜻한답니다!


경성 대표 권번 3대장!
경성에는 기생 학교를 독립적으로 운영했던 대표적인 세 곳의 권번이 있었는데요. 한성권번과 조선권번, 그리고 이후에 세워진 종로권번입니다. 이 중에서도 종로권번은 전통 성악곡과 전통악기, 조선무용 등, 주로 전통문화에 초점을 맞춰 교육했다는 점에서 다른 권번들과는 차이가 있었죠. 또 종로권번에는 흥미로운 점이 하나 더 있었는데요. 바로, 입학시험을 봐야 했다는 것이에요. 14세부터 20세까지의 보통학교를 졸업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국어, 조선어, 산술 이외에 기생으로서 알아야 할 가사와 춤 등을 시험해 입학할 기생들을 선별했어요.

1942년, 기생 교육에 전문성을 갖춰 발전해오던 이 세 권번은 일제에 의해 삼화권번으로 통합되었어요. 권번을 하나로 합하여 더욱 손쉽게 기생을 통제하고 관리하고자 하는 목적이었는데요. 결국 1948년을 끝으로 삼화권번이 폐업하면서 권번은 역사 속에 남게 되었어요.
권번은 일본이 기생들을 좀 더 쉽게 관리 감독하고자 만든 기관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긴 해요. 하지만,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기생들이 전문 예능인으로서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었다는 점에서 권번의 의미를 찾을 수 있어요. 영화 ‘해어화’의 후반부엔 50여 년이 흐른 후, 권번 출신의 기생이었던 주인공이 방송국의 무대에 오르는데요. 그녀의 실제 이름이 아닌, 그녀가 탐내던 재능을 가졌던 옛 동무의 이름으로 그 동무가 불렀던 노래를 부르죠. 그녀의 정체를 알아본 지인이 그녀를 찾아온 순간, 그녀는 얼어붙고 마는데요. 지인은 어찌 됐건, 좋은 가수가 되면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권번에서 품었을 그녀들의 꿈이란, 이토록 강렬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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