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귀가 좀... 간지러운데요?
- 1,117
- 0
- 글주소
영화계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이창(1954)>을 아시나요? 사진작가인 제프리가 카메라 렌즈로 창 너머 이웃들을 훔쳐보며 펼쳐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작품으로, 방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 특이한 배경 설정으로도 유명하죠. 영화에서처럼, ‘카메라 렌즈’와 ‘창문’의 결합은 이중의 틀로 풍경을 제한하기 때문에 조금은 답답한 느낌이 들 수 있지만, 때론 더 매력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창밖 너머의 피사체를 고집하여 작품화한 사진작가가 있어요. “나에겐 유명한 사람들 사진보다 빗방울 맺힌 유리창이 더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조금은 독특한 말을 남긴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한 걸음 뒤엔~ 항상~ 내가 있었는데~
사울 레이터(Saul Leiter, 1923~2013)는 ‘컬러 사진의 선구자’, ‘뉴욕의 전설’로 불리는 데에 반해 사진계에서는 오래도록 컬러가 입혀지지 않은 예술가였습니다. 그의 60여 년의 사진 경력은 대부분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80세를 훌쩍 넘긴 200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기 때문이죠. “세상에서 잊히기를, 별거 아닌 사람으로 남기를 바랐다.”는 레이터의 말은, 그가 어떠한 예술운동이나 사조에도 참여하지 않았으며 다소 내향적인 성격의 예술가였음을 잘 보여줍니다.
레이터는 23살이 되던 해에 예술을 공부하기 위해 뉴욕에 정착했는데요. 이후 평생을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보냈답니다. 1940년대의 뉴욕은 새로운 예술적 움직임이 일어나며, 많은 사상과 담론들이 충돌을 일으켰던 시기였어요. 그러나 레이터는 평생을 그래 왔듯, 한발 치 멀리 떨어져 도시의 풍경을 조용히 관조하고 이를 사진으로 남기던 사람이었죠. 그는 주로 컬러필름을 이용해 사진을 촬영했는데요. 그 당시 컬러필름은 색상 재현에 제한적이라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었어요. 때문에 그는 동시대 평론가들로부터 ‘진실을 왜곡한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레이터는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히 사진을 찍었으며, 그 덕분에 우리는 지금까지도 20세기 중반의 문화 황금기를 지닌 뉴욕 거리의 다양한 풍경을 지금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설적인 사진가이자 큐레이터인 에드워드 스타이켄은 일찍이 그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언제나 젊은 이방인들>(1953)이라는 기획전시를 통해 레이터의 작품 5점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그를 눈여겨본 몇몇 기획자들도 있었으나 그는 상업적 성공에 연연하지 않았어요. “내가 아끼고 나를 아껴주는 사람을 갖는 것을 가장 큰 행복이라고 생각했죠. 성공하는 것 보다요.”라고 말하는 그는, 그저 묵묵히 자신의 시선을 사진으로 옮겨 담을 뿐이었습니다.
레이터의 작품들은 ‘형식적’이라는 단어와는 상당한 거리감을 가집니다. 레이터 특유의 관조적 태도가 담긴 구도는 사진의 형식성을 무너뜨리고 묘한 매력을 풍기죠. 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누구든 아티스트가 될 수 있게 된 요즘 사회에, 또 구조화·규격화된 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욕망이 점점 커지고 있는 현대의 사람들에게 더욱 와닿는 지점이 큰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일까요? 2021년 12월 29일을 시작으로 하여 피크닉에서 열게 된 사진전, ‘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3월 말에서 5월 29일까지로 기한연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심 속 그림자 같은 삶을 지향했던 레이터가 아직 살아있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참 궁금합니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 아니 사진?
전시에서는 레이터의 초기 컬러 및 흑백작품부터 미공개 컬러 슬라이드, 그가 작업했던 패션 화보 사진들, 그리고 사진과 회화를 결합한 형태인 ‘페인티드 누드’까지 여러 범주에 걸친 예술적 시도들을 만나 볼 수 있는데요. 그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 보면 사울 레이터의 수줍은 시선이, 소극적 다정함이, 또 기발한 대담함이 느껴지더라고요! 이러한 레이터 고유의, 사진 문법에서 벗어나는 구도와 탁월한 색감 선별력은 풍경을 한층 더 시적으로 나타냅니다.
특히 카메라 렌즈와 레이터의 눈이 합체된 시각으로 뉴욕 거리의 풍경을 볼 수 있었던 점이 흥미로운데요. 천막으로 가려진 풍경, 계단 틈의 사람들. 빗물 얹힌 유리창, 뿌연 안개 등 흔히 사진 찍을 때 최대한 제거하려는 요소들을 레이터는 적극 활용하거든요. 이처럼 ‘무언가를 사이에 두고’ 그 너머의 대상을 찍고자 했던 그만의 촬영 방식은 영화 <캐럴(2015)>에 오마주 되기도 하죠. 레이터의 관점으로 풍경을 보니, 그냥 흘러가는 일상의 일부분으로만 기억될 수 있는 장면이 또 다른 서사를 품은 듯했어요. 그저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찰나에 전면적으로 드러나있는 존재보다는 어렴풋이 놓여있는 대상에 몰두한 그의 시선은, “세상에는, 잘 보이진 않아도 그럼에도 존재하는 것들이 있단다.”라고 말해주는 듯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비주류가 쉽게 배제되고 잊히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요. 이런 세상 속에서 그와 같은 세심한 눈길이 더욱 빛나지 않을까요?
전시는 이렇듯 누구 하나 배제되지 않도록, 관람객의 관람에도 따스한 배려를 건넵니다. 단순 관람에 그치지 않고 관람객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획한 점도 눈에 띄었거든요. 1950년대, 레이터는 친구들을 자기 아파트로 불러 빈 벽을 스크린화하고 환등기로 사진 슬라이드를 보여주는 작은 모임을 갖곤 했다고 해요. 이를 재현하듯, 컬러 슬라이드 구간에서는 빔 프로젝터로 사진들을 벽에 투사해서 보여준답니다. 찰칵찰칵 하고 들려오는, 사진 넘어가는 소리가 현장감을 더욱 주는데요.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 당시를 떠올리며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사울 레이터 클럽에 합류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사울 레이터의 삶을 따라가는 체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3층까지의 관람을 마치고 옥상에 다다르면, 전 세계에 있는 사울 레이터의 팬들이 그의 사진을 오마주 하여 SNS에 올린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레이터의 시그니처 작품 중 하나인 빨간 우산 사진을 관람객들이 오마주 할 수 있도록, 빨간색 우산들이 소품 도구로써 놓여있는 것은 센스가 가득 담긴 포인트라고 할 수 있죠.
✅솔직 핵심 정리 노트
ㅇ박수갈채드립니다
- 관람객이 작품 감상뿐만 아니라 전시내용과 관련해서 다양한 체험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는 점! 끼워맞추기식 체험이 아니라서 더욱 효과적인 관람을 도와준답니다.
ㅇ요건 쫌 아쉬운데
- 사울 레이터의 인생은 간략하게만 소개되어 있어요. 유년기, 청년기 등 조금 더 세세하게 설명되었다면 더욱 풍성한 관람이 되었겠어요!
💬Editor’s Comment
레이터는 말합니다. “내 사진은 왼쪽 귀를 간지럽히는 게 목적이에요.” 은밀하게 쳐다보는 시선으로 누군가의 귀를 간지럽힌다는 의미죠. 뉴욕 거리 정면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멀리서 누구보다 친밀하고 세심한 내면의 눈으로 거리 곳곳을 누볐던 사진가 사울 레이터. 그만의 독특한 촬영 구도는 새로운 사진 미학을 창조해냈고 후대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었습니다. 길가다 문득 왼쪽 귀가 간지러워진다면, 누가 내 욕을 한다고 생각하기보다, 어디선가 또 다른 사울 레이터가 당신에게 친밀한 내적 눈빛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지금 로그인하시면
하루예술의 모든 콘텐츠 열람이 가능해집니다!
이야기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