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T입니까 F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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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약간의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동안(혹은 지금까지도) 열풍이 일었던 대화 주제가 있죠. 바로 성격 유형 검사인 MBTI 말이에요. 물론 어떻게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16개 범주 안에서만 규정할 수 있겠냐마는, ‘MBTI는 유사과학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오갈 정도로 어느 부분에서는 꽤나 정확하다니까요. 그중 T유형과 F유형의 차이가 특히나 화제였는데요. T유형은 Thinking의 약자로 논리적인 이해, 이성적인 판단을 추구하는 사고형을, F유형은 Feeling의 약자로 사람 사이의 관계, 공감을 중요시하는 감정형을 뜻해요.
  그런데 잠깐만요. 이성과 감성, 두 단어의 조합은 이미 익숙하지 않나요? 아주 오래전, 칸트를 거슬러 고대 철학에서부터 이 둘의 관계는 많은 이들의 연구 대상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이 작가의 소설 역시 이성과 감성이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말하고 있기도 하죠!

 

📖헤르만 헤세 오피셜 ‘영혼의 자서전’

  이 작가는 바로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 독일계 스위스인 소설가이자 시인이에요. 194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철학, 종교, 정의와 같은 관념적인 대상들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는 태도를 보였어요. 휴머니즘1)을 지향했던 그였기에 헤세의 작품 속에서는 청춘들이 성장하면서 겪는 고민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양면성이 서로 조화하는 과정이 다수 등장하죠. 그가 스스로 ‘영혼의 자서전’이라고 평했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역시 마찬가지예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세상과 동떨어진 듯한 마리아브론 수도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신실하고 이성적인 수도사 나르치스와 수도사를 꿈꾸는 감성적이고 도취적인 골드문트의 이야기를 전하죠. 헤세가 이 소설을 ‘영혼의 자서전’이라고 일컬은 까닭은 그가 골드문트의 방랑, 방황을 통해 자신의 성장기를 고스란히 담아냈기 때문이랍니다.

1) 휴머니즘은 인간주의, 인본주의라고도 해요. ‘인간다움’을 존중하는 넓은 범위의 정신적 태도를 뜻하죠. 15세기 이전 교회와 종교의 권위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과 고뇌를 억압하는 데에 반발하며 15세기부터 16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특히 성행했어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원서 ©Suhrkamp

  그리고 지난 2월 8일, 이 ‘영혼의 자서전’은 무대에도 오르게 되었어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동명의 뮤지컬이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3관에서 진행 중이거든요! 올해 초연으로 선보이는 이 작품은 단 두 명의 배우가 이끌어가는 2인극인데요. 그래서인지 각 배우들의 매력과 호흡에 더욱 몰입하게 된답니다.

 

뮤지컬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포스터 ©인터파크

💭책 읽듯 음미하는 뮤지컬

  헤세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인간의 양면성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 두 인물의 대조를 통해 보이는데요. 이 두 인물이 추구하는 바가 대사와 넘버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따라가다 보면, 더 즐거운 관람이 될 거예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답게, 곳곳에 비유적인 표현들이 숨어 있어 해석하는 즐거움이 있거든요. 때로는 사실적인 말보다 그것을 이루고 있는, 혹은 그와 비슷한 다른 표현으로 더 정확하게 감정을 전달할 수도 있죠. 이번 뮤지컬은 그 사실을 아주 잘 활용합니다. 작품 후반부에 골드문트는 서로 사랑을 나누었으나 페스트로 인해 자신의 곁을 떠나버린 이들을 조각으로 남기는데요. 바로 이때 ‘조각을 한다’, ‘예술로 승화한다’와 같은 직접적인 표현은 덜어내고, ‘그들의 파편이 내 손 끝에서 하나의 형상을 그리네’와 같이 유려한 묘사로 대신합니다. 어때요? 단 한 줄만으로도 문학적이라는 말이 피부에 와닿는 가사가 아닌가요?

 

사랑과 방랑을 쫓지만 이성과 종교를 동경했던 골드문트 ©한국교육신문

💞우린 사랑일까?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두 사람의 교류를 지켜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흐뭇한 감정이 슬며시 피어나요. 이들의 진정 어린 우정, 서로를 향한 동경,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사랑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을 함께 느끼게 되거든요. 나르치스는 자신을 동경하는 골드문트에게 서로는 너무나도 다른 존재임을 설명하며 각자가 이어지지 않는 다른 길 위에 서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데요. 하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나르치스로 대변되는 이성과 골드문트가 의미하는 감성의 조화입니다. 서로를 외면하지 않고 마주 보며, 서로에게서 배우고자 하는 자세 말이죠. 그리고 마침내 나르치스는 자신이 골드문트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친구여, 우리 둘은 태양과 달이며 바다와 육지다. 우리의 목표는 서로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식하고, 서로가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존경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이번 작품은 단 하나의 세트, 단 둘의 배우, 이렇게 적은 요건으로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기도 한데요. 이처럼 한정된 배경 안에서 두 인물이 각자가 생각하는 사랑을 표현하는 과정은 퍽 섬세합니다. 배우마다 미묘하게 다른 감정선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아요!

 

단일 무대 세트 ©위드인뉴스

 

✅솔직 핵심 정리 노트
ㅇ박수갈채 드립니다
- 단일 세트, 하지만 조명 맛집: ‘작은 무대인데 조명을 이렇게 빽빽하게 쓰다니!‘하고 놀랐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빛 표현을 기가 막히게 하는 작품이랍니다. 몰입을 도와주고 배우들의 연기를 극대화해요!
- 사색을 돕는 극. 자연스레 이성과 감성,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사유를 이끌어요.
- 좁은 무대에서도 동선을 최대한 활용해 다양한 움직임을 보여줘요. 특히 골드문트가 자신과 사랑을 나누었던 여인들, 첫 키스의 순간을 표현한 안무는 그윽함과 아련함의 끝판왕!

ㅇ요건 쫌 아쉬운데
- 대단한 와우 포인트가 있다기보다는 전반적으로 잔잔한 작품이기 때문에 100% 몰입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예습이 필요해요.
- 헤르만 헤세의 작품은 철학적 사유를 포함하고 있어 호불호가 극명하기로 유명해요. 또 이번 뮤지컬 역시 원작 내용에 충실하기 때문에 내용에 따른 호불호가 갈릴 수 있어요!


💬Editor’s Comment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16갈래로 구분할 수 없듯이, 한 사람을 이성 혹은 감성으로 판단할 수도 없어요. 한없이 합리적인 사람이라도, 어느 순간에는 필연적으로 논리의 탑을 무너뜨리는 감상적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삶이니까요. 헤세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교류, 그리고 사랑을 통해서 바로 이런 양면성을 인정하고 균형을 이루자고 이야기하고 싶었나 봐요. 사람은 평면적이지 않고 입체적인 존재잖아요. 이제는 누군가 T인지 F인지 궁금하지 않고, 대신 어떤 때 이성적이고 어떤 순간에 감성적인지, 둘의 비율이 어떻다고 생각하는지가 궁금해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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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03-31

키워드

#뮤지컬 #대학로 #나르치스와골드문트 #헤르만헤세 #문학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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