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을 이끄는 상상력 훈련, '매직 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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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인 메타버스 안에서 우리가 만든 아바타는 지금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서,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다른 행동을 하면서 살아가죠. 이런 아바타가 오프라인에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떨까요? 연극 무대가 바로 그런데요. 연기자는 실제 자신과는 다른, 주어진 배역에 맞는 역할을 하며 무대 위의 삶을 살아가죠. 작가에 의해 창조된 허구의 세계에서 말입니다. 때론 연기자 본래의 성격과 비슷한 캐릭터의 역할을 맡을 수도 있지만, 낯설거나 전혀 예상치 못했던 캐릭터를 연기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을 거예요. 그럼에도, 연기자들은 연기를 하는 동안 마치 아바타가 되어 ‘온전히 캐릭터의 삶을 살았다’고 자신할 만큼, 자신의 감정을 극 중 캐릭터에 이입합니다. 어떻게 이런 연기가 가능한 것일까요?
뭐든지 할 수 있어! 상상력 훈련

이전 글에서 말씀 드렸듯, 좋은 연기자가 되고 싶다면, 심리신체적 연기 훈련을 해야 하는데요. 이 훈련 중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 상상력 훈련입니다. 대본 속에서 배역이 처한 극적인 상황들을 연기자가 모두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상상력을 통해 연기자는 간접 경험한 것을 응용하여 연기를 하게 되죠. 메소드 연기의 3대 거장 중 한 사람인, 스텔라 아들러(Stella Adler)역시, 상상력을 연기의 바탕으로 보았어요.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이름과 성격을 가지거나, 당신 집에 결코 있지 못할 겁니다. 당신이 이야기하는 모든 사람도 작가에 의해 허구적으로 쓰였습니다. 당신이 찾는 모든 환경 또한 가상의 공간 안이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모든 단어, 모든 동작은 연기자의 상상력 속에서 반드시 비롯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미국 작가 오 헨리(O. Henry)의 <마지막 잎새> 작품에서 폐렴으로 투병하며 죽음을 눈앞에 둔 존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가정해 볼게요. 아무리 완벽한 연기를 추구한다 해도, 연기자가 폐렴에 걸릴 수는 없겠죠. 그럴 때, 상상력을 발휘해서 죽음을 연기할 수 있어요. 만약 상상이라는 도구가 없다면, 연기자가 존시 역할을 효과적으로 해내기는 어려울 거예요.
온 몸을 통해 상상해보자. 보고 듣고 걷고 느끼고!
상상력(imagination)이란, 이미지를 보듯이 머리에 떠올리는 것이죠. 하지만 연기자의 상상력은 단순히 머리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에요. 20세기 최고의 연기자이자 연기 지도자로 꼽히는, 미카엘 체홉(Michael Chekhov)은 ‘연기자는 몸으로 상상한다’라고 주장합니다. 몸으로 상상한다는 것은 연기자가 머릿속의 이미지를 시각화(visualisation)하여 행동하는 것인데요. 지금 여러분과 함께, 눈이 오는 것을 상상해볼게요. 자, 눈이 내리고 있나요? 함박눈인가요, 흩날리는 눈인가요? 상상 속에서 눈의 이미지를 떠올렸다면, 그 이미지를 시각화하여 실제로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행동해보겠습니다. 손에 살포시 닿은 차가운 눈을 느껴보고, 소복이 쌓인 눈을 바라볼 수 있겠죠. 이번엔 직접, 그 위를 걸어가 볼게요. 한 걸음마다 느껴지는 감각과 눈 밟는 소리도 즐겨보세요. 이렇게, 눈이 내리는 장면을 시각화하여 직접 행동하고 느껴보면서 내적인 감각과 외적인 표현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을 때, 비로소 연기자는 ‘제대로’ 상상을 한 것이에요. 제대로 상상한 여러분은 좋은 연기자가 될 가능성을 충분히 지니고 있는 것이고요.

매직 이프, 만약 내가 이랬다면?
자, 그럼 어떻게 상상력을 더 잘 발휘할 수 있을지 알아볼게요. 콘스탄틴 스타니슬라브스키(Constantine Stanislavski)는 상상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매직 이프(Magic if~)’를 사용했습니다. ‘매직 이프’, 즉 ‘만약에 ~라면’을 떠올리며 자신이 맡은 역할을 내적으로 이해하고, 그 속에서 감정적 파동을 일으키도록 훈련하는 것이에요. 벨라 멀린은 ‘매직 이프’를 ‘상상력이 이끌어주는 주어진 환경(given circumstance)의 발판’이라고 이야기하죠. 여기서 ‘주어진 환경’이란 캐릭터가 처한 상황쯤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그리고 주어진 환경에는 시간, 장소, 배역의 과거, 현재, 미래 등등 대본에 나와 있는 ‘사실들(facts)’이 포함되는데요. 연기자는 대본 속에서 이러한 ‘사실들’을 밝혀내고 ‘내가 그 환경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상상해요. 이렇게 연기자는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건네면서, 본능적으로 내적 감각과 외적 감각을 찾아갑니다. 몸 전체로 상상의 범위를 넓혀가면서 역할을 구축해가는 거죠. 연기자가 주어진 환경 속에서 ‘매직 이프’를 반복하면 할수록, 상상력은 더 발전합니다.

이런 상상력에도 한계가 있을까요? 많은 분들이 혹시, 나이가 들수록 상상하는 힘 또한 시들해지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실 텐데요. 영국의 극작가인 윌리엄 서머셋 모옴(William Somerset Maugham)에 따르면 상상력은 연습에 의해 성장하고, 일반적인 믿음과는 달리 청소년들보다 어른들에게 더 강렬하다고 합니다. 인생의 경험 치와 이해도가 더 높기 때문에 상상을 할 범위도 더 넓어지는 것이죠. 반면, 신체적인 상상력은 어른들에게 부족한 편이에요. 어른들은 자의식 때문에 자신의 행동에 대해 자기검열을 하며 움직이는 것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이에요.
연극 무대를 또 하나의 세계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상상력’에 달려있어요. 특히 연기자는 머리로 상상할 뿐만 아니라, 신체까지 움직여 제대로 된 상상력을 펼칠 수 있어야 하죠. 상상력의 부재로 배우와 캐릭터간의 이질감이 느껴지는 순간, 관객들 역시 플롯을 따라가던 상상의 흐름이 끊기게 됩니다. 그 이후 연극 무대는 그저 무대 장치로 그득한 세트장으로 남게 되죠. 다행히도, 상상력은 노력하고 시도하면 발전 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오늘도 작가의 아바타로 완벽히 변신하기 위한 연기자들의 ‘매직 이프’, 그 ‘매직’을 기대해 봅니다.
ㅇ 참고자료
- Alex Osborn,『Your Creative Power』, Mayer Press, 2011, 31p
- Bella Merlin, 『The Complete Stanislavsky Toolkit』, Nick Hern Books Limited, 2007, 127p
- David Kransner, Strasberg, Adler and Meisner: Method Acting cited in Alison Hodge’s 『Actor Training』, Routledge, 2010, 153p
- David Zinder, The actor imagines with his body-Michael Chekhove: An examination of the phenomenon, 『Contemporary Theatre Review』, 17, 2007, 7p
- Oxford Dictionary, 『Oxford English dictionary online』, Mount Royal College Lib., Calgary, 14, 2004.
- 윤현정, 이진, 윤혜영, 메타버스 개념과 유형에 관한 시론: 가능세계 이론을 중심으로, 『인문콘텐츠학회』, 62, 2021,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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