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속 작은 악기의 반란, 하모니카
- 2,065
- 0
- 글주소
학창 시절 음악시간을 떠올려보면 유독 자주 등장하는 악기들이 있습니다. 리코더, 하모니카, 단소. 이 세 악기는 한 손으로 들 수 있을 만큼 가볍고, 연주도 어렵지 않아 음악시간 악기 3대장이라고도 불렸죠. 그중에서도 옥수수를 닮은 모양의 하모니카는 유독 친근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하모니카를 불면 꼭 ‘삑사리’를 내는 누군가 때문에 모두가 웃었던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으신가요? 우리의 추억이 칸칸이 박혀있는 정겨운 악기, 하모니카. 하모니카는 작은 크기 때문인지 제법 간단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 전문성만큼은 여느 다른 악기에 뒤지지 않는다고 해요.
하모니카 연주자, 하모니시스트
우리는 피아노 연주자를 ‘피아니스트’라고 부르죠. 바이올린은 ‘바이올리니스트’, 첼로는 ‘첼리스트’. 그렇다면 하모니카 연주자는 어떻게 부를까요? 그토록 친숙한 악기인데도, 바로 답변하실 수 있는 분은 아마 별로 없으실 거예요. 그만큼 하모니카가 친숙하고도 낯선 악기라는 반증이겠죠. 하모니카 연주자를 칭하는 정식 명칭은 ‘하모니시스트’입니다. 국내에는 박종성, 이윤석 등이 하모니시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박종성 하모니스트는 2020년, 세계대회 1위에 입상하기도 했었죠. 이 외에도 많은 대회에서 수상하며 훌륭한 연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협주회와 독주회에서 이들의 하모니카 연주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 그 이상으로, 아름답고 독특한 음색을 가진 악기랍니다.

150종의 다양한 하모니카의 세계
위 사진 속, 하모니시스트의 손에 들린 작은 악기가 보이시나요? 두 손에 가려져 보일 듯 말 듯 하지만, ‘하모니카’라고 하면 대부분 비슷한 모양의 악기를 떠올리실 거예요.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모양의 악기가 들려있을 수 있답니다. 세상에는 무려 150여 가지 종류의 하모니카가 있거든요. 150가지라니, 아마 악기로는 최다 종류를 갖고 있을 것 같아요. 종류에 따라 멜로디 연주나 반주 화음을 위한 연주 등 다른 기능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이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 종류의 하모니카에 대해 얘기해볼게요.

먼저, 일반적으로 ‘하모니카’라고 하면 우리가 머릿속에 떠올리게 되는 악기인데요. 이 하모니카의 정식 명칭은 ‘트레몰로 하모니카’입니다. 그림처럼 두 줄의 사운드 홀이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트레몰로 하모니카는 들숨과 날숨에 각각 다른 음을 내며 연주되는데요. 두 칸의 사운드 홀이 호흡할 때 동시에 울리면서 하나의 음을 만드는 방식이에요. 트레몰로 하모니카 하나로는 섬세하게 모든 음을 낼 순 없고, 흰건반의 소리만을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12음계를 모두 소리내기 위해선 두 개의 하모니카를 겹쳐 연주해야 하죠. 교육용 또는 입문자용으로 사용되고 있어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하모니카입니다.

다음은 특이한 생김새를 갖고 있는, ‘크로매틱 하모니카’입니다. 이 악기는 우측 옆에 마치 안테나처럼 튀어나온 것이 있는데요, 이것은 음을 조절할 수 있는 레버입니다. 레버를 누르면, 피아노의 흑건처럼 기존 음보다 반음이 높은 소리를 내게 되는데요. 레버의 조작만으로 두 개의 음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트레몰로 하모니카와 달리 하나의 악기만으로도 모든 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베이스 하모니카, 다이아토기 하모니카, 코드 하모니카, 비네타 하모니트, 호른 하모니카 등등. 이렇게 많은 종류의 하모니카가 존재하는 덕분에, 하모니카로만 구성된 오케스트라도 존재한다는 놀라운 사실! 하모니카 오케스트라는 일반 오케스트라 못지않은 다양한 음색과 웅장한 스케일로 매 공연마다 하모니카가 ‘손안의 작은 악기일 뿐’이라는 편견을 깨부수고 있답니다.
세계 최초 하모니카 협주곡
하모니카 오케스트라가 있다면, 그들에게 최적화된 협주곡 또한 필요할 텐데요. 하모니카와 협주곡? 왠지 거창하게 들리는 건, 우리의 편견일 뿐이죠. 당연히 하모니카 협주곡 또한 존재합니다. 올해 초, 작곡가 김형준은 하모니카를 위한 오케스트라 협주곡 ‘하모니카 메모리얼(Harmonica Memorial)’을 완성했는데요. 이 곡은 세계 최초의 하모니카 오케스트라 협주곡으로, 1년간 박종성 하모니시스트와 함께 하모니카에 대해 치열하게 연구한 끝에 얻어낸 결실이었죠. ‘하모니카 메모리얼’은 총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200여 년에 걸친 하모니카의 기원과 역사를 악장별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1악장에서는 하모니카의 시작점이자 중국의 자유리드 악기였던 쉥(Sheng)이 서양에 전해지며 날숨으로만 소리를 내는 ‘Mundeolin’으로 탄생되는 과정을, 2악장에서는 들숨까지 사용하도록 발전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그렸다고 하죠. 3,4악장에서는 20세기 블루스와 대중매체를 통해 하모니카가 대중화되는 과정을 표현했는데요. 하모니시스트 박종성은 이 곡을 ‘가장 하모니카답지 않은 곡이면서도 오직 하모니카로만 연주할 수 있는 곡’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혹시 여러분도 서랍 속 어딘가에 잠들어 있는 하모니카를 갖고 계시나요? 지금 꺼내서, 정해진 음정 없이 불어 재껴보면 어떨까요. 들숨과 날숨을 이용하다 보면 금방 음을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그저 서랍 속 추억의 악기로 남아있기엔 우리가 보지 못한 하모니카의 모습이 너무 많습니다. ‘하모니카 메모리얼’의 3,4악장에서 그리고 있는 모습처럼, 하모니카는 지금도 클래식, 재즈, 국악, 가요 등 다양한 음악들과 조화하며 그 가능성을 넓혀나가고 있는데요. 앞으로 5악장, 6악장을 그려나갈 작은 하모니카의 반전 매력을 기대해봅니다.
지금 로그인하시면
하루예술의 모든 콘텐츠 열람이 가능해집니다!
이야기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