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여성은 위대한 지휘자가 될 수 없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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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사나 리니브, 출처: The guardian

  오페라는 극의 규모와 극적 내용에 따라 4가지의 스타일로 나뉘어요. 그중 극적인 내용을 강조하는 스타일의 오페라인 악극(Musik Drama)을 창시한 인물이 있는데요.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예요. 그의 업적을 기리고자 독일에서는 매년 여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Bayreuther Festspiele)을 개최해요. 이 페스티벌은 실제 바그너의 가문이 대대로 축제를 운영하고 있어 다소 보수적이라는 평을 받았는데요. 그러나 지난 25일 열린 공연에서 새로운 변화의 모습을 보여줘 세상을 놀라게 했어요. 바로, 개관 145년 만에 첫 여성 지휘자 옥사나 리니브(Oksana Lyniv, 1978~)가 등장한 것이죠. 드디어 변화를 시작한 클래식계, 그 여풍(女風) 기류에 탑승해볼까요?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첫 여성 지휘자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은 리하르트 바그너를 기리며 그가 남긴 오페라만을 공연하는 음악제로 바그너의 성지로 불리죠. 이탈리아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Arena di Verona Opera Festival),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Salzburger Festspiel)과 함께 ‘유럽 3대 음악제’로 꼽혀요. 역사가 오래된 만큼, 매우 보수적이라는 평을 받아온 음악제인데요. 145년 만에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역사상 최초로 포디움(podium, 지휘자들이 올라서는 지휘단)을 정복한 여성 지휘자 옥시나 리니브가 등장했어요! 그는 지난 25일  바이로이트 페스트슈필 하우스(Bayreuth Festspielhaus)에서 공연한 개막작 <방황하는 네덜란드인(Der Fliegende Hollander, 1843)>을 지휘하며,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포디움이 가진 성별의 벽을 무너트렸죠. 이날 바그너 팬으로 알려진 앙겔라 메르켈 (Angela Merkel, 1954~) 독일 총리도 남편과 함께 공연장을 찾았어요. 리니브가 지휘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관람하고, 리니브의 성공적인 데뷔를 축하했다고 해요. 그리고 총리는 “마침내!”라고 외치며, 드디어 변화를 시작하는 클래식계를 응원했어요!

 

🧐잠깐, 유럽 3대 음악제는 어디?!

👉이탈리아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은 1913년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오페라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Giuseppe (Fortunino Francesco) Verdi, 1813~1901)의 탄생 1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시작된 후, 100년이 넘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역사적인 축제인데요. 독특하게도 과거 투기장으로 이용되던 원형극장을 활용해서 축제를 열고 있어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1920년에 시작되었어요. 오페라뿐만 아니라, 관현악, 실내악, 성악, 연극 등 세계적인 클래식 거장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약 한 달 반 동안 잘츠부르크를 클래식의 성지로 꾸려 가요. 지역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다채로운 음악 축제가 인상적이에요.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은 유럽 3대 음악제 중 가장 오래된 음악제에요.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매년 여름에 열리는 음악 축제로, 리하르트 바그너가 남긴 10개의 오페라만을 무대에 올리고 있죠. 이 음악제는 바그너가 <니벨룽겐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 1876)>의 초연을 올리기 위해 처음 시작되었어요. 당시 그는 페스티벌 하우스(Festspielhaus)를 직접 설계할 만큼, 이 축제에 대한 엄청난 애정을 보여줬다고 해요.

 

✍️새로운 역사를 쓴 옥사나 리니브

  옥사나 리니브는 우크라이나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20여 년간 유럽에서 독일어를 사용하며 늘 독일에서의 공연을 꿈꿔왔는데요. 독일에서 전문 지휘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죠. 그러나 실력은 기회를 만드는 법! 그는 뮌헨 바이에른 국립오페라(Bayerisches Staatsopernhaus Orchester)의 부지휘자를 역임하고, 오스트리아 그라츠 오페라(Graz Opera)와 그라츠 필하모닉 오케스트라(Graz Philharmonic Orchestra)의 수석 지휘자로 활약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게 되었죠. 그리고 올해, 성별을 뛰어넘는 실력으로 리니브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포디움에 오르면서 클래식계의 유리천장을 깨트렸다고 평가받고 있어요. 또한 그는 오는 11월에는 런던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에서 자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 1858~1924)의 <토스카(Tosca)>를, 내년 5월에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Berlin Philharmonic Orchestra)와 함께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1)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지휘자로서 더욱 활약할 예정이에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과 함께한 여성 지휘자가 옥사나 리니브가 처음은 아니에요. 사실, 리니브보다 앞서 시몬 영(Simone Young, 1961~)이 바그너 <니벨룽겐의 반지(Ring of the Nibelungs, 1876)> 시리즈 전체를 녹음했고, 바이로이트 공연인 10개의 오페라 작품을 지휘한 경험도 있지만,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무대에는 오르지 못했죠. 그만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은 관객들이 냉정하기로 유명해요. 그들의 대다수가 바그너의 ‘찐 팬’이기 때문이죠. 지난 공연에서 관객들은 개연성이 부족한 전개로 연출가 드미트리 체르니아코프(Dmitri Tcherniakov, 1970~)에게는 노골적 야유를 선사했지만, 거침없는 연주를 선보인 리니프에게는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그를 환영했어요.

 

🎼보수적인 클래식계가 변화하게 된 계기는?

  2017년 음악전문지 그라모폰(Grammophon)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휘자 50명을 뽑았어요. 그러나 그중에서 여성 지휘자는 단 한 명도 없었죠. 그만큼 클래식계에서 여성 지휘자는 인정받기 힘들었는데요. 특히 보수적인 클래식계 중에서도 남성주의가 강한 오페라에서 여성 지휘자에게 기회가 생기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어요. 오페라는 오케스트라에 성악가까지 통솔해야 하니 더욱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고정관념이 깊게 뿌리박혀 있었어요. 게다가 여성이 이러한 리더십을 발휘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리라 판단하며, ‘유리천장’은 더욱더 두꺼워졌죠. 그렇다면 이렇게 보수적인 클래식계가 어떻게 점차 변하게 되었을까요?

  그 변화의 시작은 2017년과 2018년 전 세계 예술계에 불어온 미투 운동이었어요. 특히 클래식계는 제임스 러바인(James Levine, 1943~2021), 샤를 뒤투아(Charles Dutoit, 1936~), 다니엘레 가티(Daniele Gatti, 1961~) 등 거장 지휘자들의 성범죄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며 큰 질타를 받았어요. 미투 사건으로 기존의 남성주의적인 보수성을 지적받은 클래식계는 성별과 인종에 차별을 두지 않는 다양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했죠.

  이러한 움직임 중 하나로, 지난해 9월 프랑스 필하모니 드 파리(Philharmonie de Paris)의 여성 지휘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콩쿠르 ‘라 마에스트라’(La Maestra)’를 꼽을 수 있는데요. 당시 51개국에서 220명의 여성 지휘자가 지원했고, 예술계는 클래식의 변화를 상징한다는 평가를 보냈어요. 그러나 한편에서는 여성에게만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냐며, 역차별 논란이 일기도 했죠.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기회에 배제되었던 여성 지휘자들이 드디어 능력을 드러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을 뿐이라며 여성 지휘자를 향한 지지의 목소리가 압도적이었어요. 이렇게 미투 사건을 계기로 클래식계는 여성 인권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여성 지휘자의 실력도 재평가 받기 시작했어요.

 

💘세계 속 여성 지휘자의 활약상

  세계 최초의 여성 프로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안토니아 브리코(1902~1989)예요. 그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New York Philharmonic)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ropolitan Opera)를 지휘한 첫 여성 지휘자이죠. 하지만 ‘여성 지휘자가 어떻게 지휘를 하냐’는 편견과 차별 때문에 평생 프로 오케스트라에  정식으로 소속되지는 못했어요. 당시에는 오케스트라에 여성 단원이 입단하는 것조차 어려웠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죠. 보수적인 클래식계에서 포디움에 오르기 위한 그의 치열한 노력은 영화 <더 컨덕터(The Conductor, 2018)>로 제작되기도 했답니다.

  안토니아 브리코와 같은 선배 여성 지휘자들이 노력한 결과로 1990년대부터 여성 지휘자들이 차차 포디움에 오르기 시작해요. 아직 프로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여성 지휘자는 전 세계적으로 5%에 불과하지만, 객원 지휘를 넘어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상임(또는 수석) 지휘자를 맡으며 입지를 확대해갔죠.

  대표적으로는 조앤 펠레타(JoAnn Falletta, 1954~)가 1999년 버펄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Buffalo Philharmonic Orchestra)의 음악감독을 맡아, 미국 프로 오케스트라 최초의 여성 음악감독이 되었어요. 그 뒤로 마린 알솝(Marin Alsop, 1956~)은 역사상 최초로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Baltimore Symphony Orchestra) 음악감독, 상파울루 심포니 오케스트라(Sao Paulo Symphony Orchestra) 수석 지휘자, 빈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Vienna Radio Symphony Orchestra)의 예술감독으로 임명되었어요. 2005년에는 시몬 영이 여성 지휘자 중 최초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Wien Philharmonic Orchestra)를 지휘했어요. 그 후 약 10년간 함부르크 주립 오페라단(Hamburg Opera)과 함부르크 주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Hamburg Philharmonic Orchestra)를 동시에 이끌 만큼 그 실력을 인정받았죠. 최근에는 미르가 그라지니테 틸라(Mirga Grazinyte-Tyla)가 29살의 나이에 영국 버밍엄시 심포니 오케스트라(City of Birmingham Symphony Orchestra, CBSO) 음악감독 자리에 오르며, 클래식계의 라이징 스타가 되었어요!

 

👸국내 클래식에도 불고 있는 여풍

김경희 지휘자, 출처: 한겨레

  여성 지휘자의 활약은 국내에서도 진행되고 있어요. 그중 서울시립교향악단과 KBS교향악단에서 여성 지휘자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는데요. 지난달 KBS교향악단 정기공연에서 캐나다 출신의 여성 지휘자 타니아 밀러(Tania Miller, 1969~)가 무대에 올랐어요. 타니아 밀러는 캐나다를 대표하는 여성 지휘자로, 빅토리아 심포니(Victoria Symphony) 음악감독을 오랫동안 역임할 만큼 실력이 출중한데요. KBS교향악단 정기공연에서 여성 지휘자가 지휘봉을 잡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어서 화제가 되었어요. 앞서 KBS교향악단은 김경희(1960~), 성시연(1975~), 여자경(1970~), 진솔(1987~) 등 국내를 대표하는 여성 지휘자와 함께 무대를 꾸민 적은 있지만 특별연주회뿐이었고, 정기연주회는 남성 지휘자만 고집했었죠.

  KBS교향악단보다 서울시향이 먼저 여성 지휘자들에게 포디움을 개방했어요. 2005년 서울시향은 재단법인으로 독립하면서부터 여성 지휘자에게 지휘봉을 맡겼는데요. 상하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Shanghai Philharmonic) 부지휘자였던 이선영(1967~)의 특별공연 지휘를 시작으로, 중국의 시앤 장(xiànzhāng, 1974~), 성시연과 미국의 조앤 팔레타(JoAnn Falletta,1954~), 지젤 벤-도르(Gisele Ben-Dor,1955~)가 서울시향의 정기공연에서 포디움에 올랐어요. 특히 성시연은 서울시향 부지휘자(2009~2013)를 거쳐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2014~2017)까지 역임했고, 서울시향의 단골 지휘자로 여성지휘자의 파워를 보여주고 있죠.

 

 

💬Editor's Comment

  성시연 지휘자가 2014년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단장으로 취임할 당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여성 지휘자로서 어려움이 뭔가요?”였다고 해요. 여기에 그는 “여성 지휘자가 아닌 한 명의 지휘자, 한 사람의 예술가로 봐달라”라고 답했는데요. 답했다고 하는데요. 여성 지휘자, 여성 예술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여성’을 떠나 ‘지휘자’로서 바라보고, 평가하며 기회를 제공하는 우리들의 시선이지 않을까 싶어요. 여성이어서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닌, 실력 있는 예술가이기에 포디움에 오른다는 그런 목소리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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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08-10

키워드

#클래식 #음악 #지휘자 #여성지휘자 #바이로이트페스티벌 #옥사나리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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