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승무’와 ‘태평무’의 나빌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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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빌레라’라는 말의 뜻을 알고 계신가요? ‘나비’에 ‘-레라’라는 어미를 더해 ‘나비처럼’이라는 의미를 지닌 말입니다. 조지훈의 시 <승무>에서 처음 등장해,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라는 첫 구절로 유명하죠. 이는 ‘승무’를 추고 있는 무용수의 모습을 묘사한 것인데요,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나비 같다’고까지 했을까요?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춤이라 할 만한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우리의 춤으로는, ‘태평무’를 꼽을 수 가 있는데요. 이 둘은 극과 극의 다른 분위기를 갖고 있어요. 이 둘이 어떻게 다른지, 그 와중에 공통점 또한 있으니 찾아보시면 재밌을 것 같습니다.  

 

승무, 출처: 국가문화유산포털
故 이매방의 승무, 출처: 우봉 이매방 춤보존회

 

 

민속무용, 승무

  하얗고 긴 장삼에 붉은 띠를 맨 무용수가 고깔로 얼굴을 가린 채 엎드려있습니다. 노래가 시작되자 비로소 느리고 절제된 몸동작이 시작되는 승무(僧舞). 말 그대로 ‘승려’가 추는 춤을 뜻하지만, ‘바라춤’이나 ‘나비춤’처럼 불교의식에서 사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해요. 오히려 불교적 메시지를 담은 춤이 민가로 퍼져 민속무용으로 발전된 것이죠. 승무는 ‘대풍류’라는 음악에 맞춰 추는데요. 대풍류는 삼현육각(三絃六角)의 편성으로 연주되는 기악곡 모음으로, 각 악곡이 장단의 이름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굿거리’, ‘자진굿거리’, ‘허튼타령’ 등으로요. 장고의 장단에 맞춰 관악기 중심으로 연주되기 때문에 대풍류의 가락은 화려하고 장엄한 느낌을 주지요. 때문에 엄숙한 분위기의 승무와도 무척 잘 어울립니다. 대풍류 악곡의 구성은 춤의 짜임새와 공연의 분위기에 따라 즉흥적으로 바뀌기도 하는데요. ‘즉흥성’. 이는 우리 전통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죠.

 

 

승무의 아버지, 한성준

  승무는 1900년 이후 공연 프로그램에 등장하기 시작했는데요. 이 명맥이 현재까지 이어진 데에는 조선말기 판소리 고수이자 민속 무용가였던, 한성준(韓成俊, 1875~1941)의 역할이 컸습니다. 원래 승무는 1920년대까지 만해도 권번의 기생이나 재인들만이 추던 춤이었죠. 1930년대에 한성준이 이를 여러 예인들에게 가르치면서 널리 알렸습니다. 덕분에 승무는 민족말살 통치가 자행되던 일제강점기에도 살아남아 전승될 수 있었죠. ‘승무의 아버지’격인 그는, 실제로 ‘한국 근대 춤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답니다.

  이는 한성준이 조선 춤을 위해 만든 단체 ‘조선 음악 무용 연구회’의 덕분인데요. 조선 최초의 춤 학교였던 그 곳에서, 그는 승무 외에도 태평무, 검무, 학춤, 살풀이춤, 무당춤 등 다양한 우리의 춤을 가르쳤습니다. 그 많은 춤 중에서도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바로 승무였어요. 때문에 교육생들은 승무를 완전히 터득해야만 비로소 다른 춤도 배울 수 있었는데요. 승무야말로 모든 춤의 기본을 골고루 배울 수 있는 기본 중 기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인지 아주 느린 박자부터 빠른 박자까지 이어지는 승무를 체득하고 나면, 한국 전통춤에 필요한 웬만한 기본기는 다 갖춘 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한성준의 고향 홍성에 세워진 동상, ⓒ신영근

 

  승무의 역사는 한성준 사후로도 이어졌어요. 1969년에는 한성준의 손녀 한영숙을 보유자로 해서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되기도 했죠. 여타 전통춤이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 무형문화재가 된 것에 비하면 이는 꽤 빠른 결정이었는데요.그만큼 승무가 당대 예술가들에게 중요하게 인식되었고, 예술적 가치 또한 높게 평가받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한영숙 사후, 한영숙 전승 승무는 ‘이애주’와 ‘정재만’을 보유자로 해서 전승되었고요. 이 두 명무(名舞)까지 작고하자, ‘한영숙 류(流)’와 채상묵을 보유자로 한 ‘이매방 류(流)’로 나뉘어졌습니다. 전승 지역, 무용수의 성별, 동작과 장단 등에서 다른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춤만 보아서는 어느 유파의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해요.

 

 

국가의 번영을 위한 춤, 태평무

  자, 이번에는 태평무 무대로 시선을 옮겨볼까요? 우선 복식부터가 확 다르죠! 태평무(太平舞)에서 무용수가 입는 화려한 복식과 기품 있는 동작은 왕과 왕비를 의미하는데요. 왕과 왕비의 복장을 하고 춤을 춤으로써 왕가와 나라의 평안, 나아가 태평성대를 기리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태평무의 특징은 무용수의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발동작에 있어요. 이런 동작이 ‘경기도당굿 장단’과 기악 연주에 맞춰 어우러지면서 시각적인 화려함은 배가 된답니다.

 

강선영의 태평무, 출처: 한겨레

 

  태평무 역시 ‘승무의 아버지’격인 한성준에 의해 재구성되었습니다. 이후 손녀인 한영숙과 제자 강선영에게 전승되면서 현재는 ‘한영숙 류(流)’와 ‘강선영 류(流)’ 이 두 유파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공연되고 있습니다. 이 두 유파의 차이는 공연을 보면 바로 확인할 수 있는데요. 한영숙 류(流)가 처음부터 당의만 입고 춤을 추는데 반해, 강선영 류(流)에서는 당의 위에 원삼을 입고 추다가 중간에 원삼을 전달하는 절차가 있어, 복식에 변화가 생깁니다. 사실 이는 장단이 빨라지기 전 본격적으로 놀기 위해 준비하는 것인데요. 노는 데에 일가견이 있던 우리 민족성은 어디 가지 않나 봅니다.

  두 태평무는 장단 구성과 기악반주가 서로 비슷하지만, 무용가가 처음 등장할 때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한영숙류 태평무에서는 가야금 독주로 ‘새가락별곡’을 연주하여 새가 곧 날아오를 것 같은 아름다운 분위기를 표현한다면, 강선영류 태평무에서는 ‘길군악’을 연주하여 장엄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두 태평무는 눈으로만 봐도, 또는 귀로만 들어도 어떤 전승의 계보를 가진 춤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승무’는 충분히 절제되었고 ‘태평무’는 충분히 화려한, 상반된 분위기를 가진 한국의 대표적인 두 가지 전통 춤입니다. 승무와 태평무의 나빌레라! 이 두 춤이 어떻게 나비처럼 날갯짓을 하는지, 직접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처음에 말씀드렸던, 공통점은 찾으셨나요? 바로, 오늘날의 승무와 태평무가 있기까지, 조선의 전통춤을 지키고자했던 한성준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이죠. 또한 그의 제자들이 자신만의 개성을 담아 춤을 계승했기에 현재 다양한 모습으로 공연될 수 있는 것일 테고요. 지금도 한국의 전통 예술에서만 찾을 수 있는 고유함과 예술성에 가치를 두고 정진하는 무용수들이 있을 텐데요. 그들의 날갯짓이 훗날 가져올 나비효과를 기대해봅니다.

 

 

 


참고자료
 - 김영희, “20세기 초 승무의 전개와 구성 -1920~1945년을 중심으로-”, 「국악원논문집」 제42집, 2020
 - 성기숙, “조선음악무용연구회의 설립배경과 공연활동 연구”, 「한국무용연구」 제32집,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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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07-15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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