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우리가 몰랐던 조선의 뮤지션, 세종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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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께 세종대왕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까요? 집현전 학자들과 토론하며 글자를 창제하는 문학자의 모습인가요? 혹은 측우기를 점검하고 있는 과학자로서의 모습일까요? 세종대왕은 책과 학자를 가까이한 임금답게 학구적인 면모가 강조된 분이죠. 이에 살짝 가려진, 세종대왕의 또 다른 면모가 있는데요. 오늘날의 아이유나 BTS처럼 직접 곡을 만들고, 절대음감으로 악기를 조율했던, 불세출의 예술가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몰랐던 조선의 뮤지션, 세종대왕과 그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악보, 정간보

  전 세계엔 다양한 종류의 악보가 있지만, 자국의 악보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몇 안 된다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그 안에 우리나라가 속해있다는 점이죠!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악보 체계인 ‘정간보(井間譜)’는 세종대왕이 우리에게 물려준 소중한 자산이자 역사적 가치가 높은 예술작품입니다.

  우물 정(井)의 모양을 연속으로 그려놓고 1칸을 1박으로 쳐서 음의 시가(時價)를 표시하는 이 악보는 정간(칸) 안에 ‘중임무황태’ 같은 음정을 기입해 음의 높낮이를 표시합니다. 음의 시가를 담아내지 못했던 기존 악보들의 결점을 없애기 위해 창안된 만큼, 정간보는 ‘유량악보(有量樂譜)’라 하여 서양의 ‘오선보’와 그 위치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궁중음악인 정악(正樂)을 연주하는 데 사용되고 있으니, 살아있는 유산, 그 자체라 할 만하지요.

 

대악후보(정간보) ⓒ국립국악원

 

 

음악으로 백성을 평안하게

  예로부터 성군들은 예의와 음악으로 인성을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여, 예악(禮樂)을 두루 중시했다고 합니다. 세종대왕 또한 음악이 백성을 평안하게 하고 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바른 음악, 즉 정악(正樂)의 작곡에도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오늘날 대표적인 정악곡이 된 여민락(與民樂), 백성과 함께 즐기자는 의미를 갖고 있는 곡은 세종대왕이 직접 작곡했는데요. 이는 세종실록에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임금은 음률에 밝아 새로운 음악은 모두 임금이 만든 것이데, 막대기로 땅을 치면서 하루 저녁에 음악을 만들었다.” 세종대왕이 작곡한 음악은 여민락(與民樂)ㆍ정대업(定大業)ㆍ보태평(保太平) 등인데, 이 곡들은 요즘도 연주되고 있다.

  활발히 신곡을 제작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막대기로 땅을 치면서 하루 저녁 만에 음악을 만들었다니요. 음악에 대한 임금의 탁월한 재능을 짐작할 수 있으실 겁니다. 세종대왕곡들 중, 대표곡으로도 ‘여민락’을 꼽을 수 있겠는데요.

  여민락은 원래 기악 반주에 ‘용비어천가’의 가사를 얹어 부르던 곡이었지만, 지금은 기악곡의 형태로만 남아 전해지고 있습니다. 연주에만 약 2시간이 소요되는 이 곡은 정확한 박자로 연주하는 서양의 곡과 달리, 연주하는 순간의 호흡을 따라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따라서 연주자가 누구인지, 연주자 간의 조화는 어떠한지, 언제·어디서 연주되는 것인지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연주됩니다. ‘백성들과 함께 즐기기 위한’ 곡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여민락은 지친 백성들의 마음을 달래고 함께 호흡하고자 했던 어진 임금의 마음을 닮은 곡입니다.

 

여민락 ⓒ국악아카이브

 

절대음감을 가진 세종대왕

  세종대왕은 악기에 대한 관심도 많았습니다. 박연과 함께 만든 ‘편종(編鐘)’, ‘편경(編磬)’은 본래 고대 중국으로부터 유래된 악기인데요. 악기의 주 재료인 경석이 희귀한 탓에 국내에서는 제작하지 못했다가, 세종대왕 때에 국내 생산을 시작했어요. 심지어는 중국보다 질도 좋았다고 합니다. 이 악기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전해지는데요.

   박연(朴堧, 1378~1458년) 같은 특출한 음악가까지 있어 편경을 직접 만들었는데, 새로 만든 편경의 시연회에서 소리를 듣던 세종대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리가 참 맑고 아름답다. 그런데 이칙음(G#)의 소리가 높으니 무슨 까닭인가?” 이 말을 듣고 박연이 살펴보니, 편경 가장자리에 가느다란 먹줄이 남아 있었다. 편경을 만들 때는 돌에 ㄱ자 모양으로 본을 뜨고 그 자리를 먹줄로 표시한 다음 석공이 돌을 다듬어 만든다. 그런데 석공이 돌을 미처 다 다듬지 않았던 것이다. 석공을 시켜 먹줄이 없어질 때까지 갈고 나자 비로소 음이 고르게 되었다.

  이쯤 되면 여러분의 입에서 탄성이 나올 만도 한데요. 이 기록을 통해 세종대왕이 악기에 대한 해박한 지식뿐만 아니라 그 악기의 조율을 지적할 만큼 뛰어난 음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악기의 특정 진동수까지 구별한다는 것은 보통의 음악적 감각만 가지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세종대왕은 과학, 정치뿐 아니라 국악 전반에서도 재능을 드러낸 훌륭한 뮤지션이었습니다. 아마 현재에 태어났더라면, 그야말로 ‘월드 스타’가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편종, 편경 ⓒ한국관광공사

 

  악보 창안, 작곡, 악기 제작에 이르기까지. 뮤지션 중에서도 이 정도면, 재능과 노력을 겸비한 만능 뮤지션인데요. 한 나라의 국왕으로서 음악에 몰두한 세종대왕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여러분도 이제, 노래를 흥얼거리며 나뭇가지를 들고 박자를 세고 있는 세종대왕의 모습이 떠올려 지시나요? 요즘, BTS의 세계적인 인기를 반영하여 ‘우리는 방탄 보유국이다’라고 말한다지요. 오늘부턴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요. ‘우리는 뮤지션 세종 보유국이다.’

 

 

 

참고자료
 - 전인평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악』, 현암사, 2007
 - 네이버 지식백과 ‘여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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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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