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협화음 속 조화로움, 우리 음악 시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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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음악의 재즈라 불리는 시나위

무대 위, 연주자들이 자리를 잡습니다. 곧 공연이 시작될 모양인데요. 그런데 연주자들 앞에 악보나 지휘자가 보이지 않습니다. 한 가락의 연주가 흘러나오며 공연의 시작을 알립니다. 연주자들도 어떻게 연주될지 알지 못하는 즉흥연주인데요. ‘아, 이게 바로 자유의 상징이라는 ‘재즈’공연인가? 하시는 분들 있으시죠?’ 네, 그렇다면 반은 맞추신 겁니다. 여러 악기들이 한꺼번에 어우러졌다 또 선뜻 자리를 내어주는, 치고 빠지기의 고수인 이 연주는 한국음악의 재즈로 불리는 ‘시나위’입니다.
시나위는 한국음악 기악합주곡의 정수라고 불릴 만큼 음악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왔는데요. 한강 이남 지역과 태백산맥을 기준으로 서쪽 지방에서 육자배기토리 음계를 사용하여 즉흥적으로 연주한 음악입니다. 그렇다고 주로 육자배기토리를 사용했던 전라도 지역에서만 시나위를 연주했던 것은 아닙니다. 경기 지역에서 연주되었던 ‘경기 시나위’와 함경도 지역의 ‘신아우’, 경상도 지역의 시나위도 존재합니다. 우리는 언어와 예술을 공유하는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해 왔기에, 시나위 또한 음악적 어법을 조금씩 달리하여 각 지방에서 연주되었습니다. ‘육자배기토리’는 판소리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굵게 떠는 음 ‘미’, 길게 뻗는 음 ‘라’, 꺾는 음 ‘시, 도’, 이렇게 총 네 음정이 선율의 주축을 이룹니다.
시나위는 무속의식을 행할 때 연주되는 음악이었습니다. 예부터 우리는 어렵고 힘겨운 상황을 제사나 의식을 통해 이겨내고자 했습니다. 오늘날의 발전된 과학기술이나 여러 사회적 제도가 없었던 당시에는 의지할 곳이 신과 조상뿐이었겠지요. 그들을 이승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음악이 필수적이었습니다. 시나위를 들어보면 아실 겁니다. 구슬프고 애달픈 선율과 함께 힘 있는 장단으로 간절한 그 바람을 온 마음을 다해 전하고 있는 듯합니다.
즉흥 연주곡 시나위
즉흥 연주곡인 시나위는 악기 편성에 있어서도 자유롭습니다. 대금, 아쟁, 피리, 해금, 가야금, 거문고, 장고가 다 함께 연주하는 대편성은 물론, 아쟁과 대금 두 악기가 장단에 맞추어 연주를 하더라도, 혹은 피리가 혼자 연주해도 모두 시나위입니다. 시나위의 예술성은 서양음악에서 추구하는 형식적이고 절대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정해지지 않은, 묘한 안 어울림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조화입니다.
장고의 한 가락으로부터 시나위는 시작됩니다. ‘덩- 기덕 쿵 더러러러 쿵- 기덕 쿵 덕’. ‘국민 장단’이라고 할 수 있는 굿거리장단이죠. 이 첫 장단은 다른 연주자들에게 박자를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이후에는 악기를 다 함께 연주합니다. 아니, 아까부터 악보가 없다, 자유롭다, 즉흥적이다, 하는데 그럼 어떻게 합주가 가능한 건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연주자들 간 ‘최소한의 약속’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첫 음정, 장단 구성, 솔로(solo) 순서 등을 정하고 연주를 시작합니다. 이는 시나위가 큰 틀 안에서 자유롭게 연주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셈이지요. 요즘에는 무대 위에 서야 하기에 정해진 선율을 연주하는 경우가 있지만, 옛 연주자들은 이 정도의 이야기만을 나누고 시나위를 시작했을 겁니다. “시작은 본청으로, 장단은 굿거리-엇모리-자진모리, 독주는 대금-아쟁-피리-해금 순으로.”
산조의 바탕이 된 시나위

시나위를 토대로 19세기 말에 비롯된 기악 독주곡이 있습니다. 바로 ‘산조’인데요. 정해진 장단과 가락이 없어 무수히 길어질 수 있는 시나위에 비해, 고정된 형식과 구조를 가졌다는 것이 산조의 특징입니다. 남도 지방의 시나위 가락을 진양-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 등의 정해진 장단에 맞춰 짜임새 있게 독주하는 것이지요. 시나위를 재즈라고 한다면 산조는 소나타형식을 갖추고 재즈 선율을 차용한 피아노 독주곡쯤이 되겠네요.
산조에는 작곡자가 있다는 것도 시나위와의 차이점입니다. 대표적으로 가야금산조는 김죽파, 최옥산, 김병호 등의 명인들이 곡의 쳬계를 완성하여 ‘김죽파류 가야금산조’와 같은 명칭으로 불리는데요. 이와 마찬가지로, 거문고와 해금 등 다른 악기의 독주곡에서도 명인의 이름을 딴 산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산조는 자신만의 가락으로 정제하여 완성도 있게 구성하였기에 예술가의 일생이 담겨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무속 의식에서 시작된 시나위는 태생적인 이유로 천대를 받기도 했지만, 기악독주곡의 꽃이라 불리는 산조의 한바탕이 되었고, 현재까지도 기악 합주곡의 진수로 꼽히며 무대 위에서 연주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명맥을 이어온 것은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음악으로서, 예술성 또한 뛰어나기 때문이겠지요. 각각의 특색이 강한 한국 전통악기들이 한데 어우러져 미묘한 조화를 이루는, 시나위의 연주를 지금, 직접 들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즉흥적이어도 괜찮습니다. 즉흥적인 불협화음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시나위’처럼, 우리도 그 안에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참고자료
- 음반 <한국의 시나위 음악> (서울음반, 1995) 중 “시나위 합주”
- 이진원, “시나위의 새로운 정의 시론”, 한국음악사학회,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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