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의 변신은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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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둥둥둥둥~ 만나면 좋~은 친구~~’. M방송사의 CM송을 기억하시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국민가요 못지않은 유명세를 탔던 노래입니다. ‘뚜둥둥둥둥~’하고 줄을 뜯는 음색은 서양의 피아노 화음에 익숙한 우리에게 낯설기도 하지만, 그 덕분에 시청자의 귀를 사로잡았었죠. 들어보신다면 바로, 이것이 우리의 전통악기라는 것을 아실 수 있을 텐데요. 네 맞습니다. ‘가야금’입니다. 고급 한식당에서 장식용으로, 사극에서 곱게 치장한 여인네들의 연주 장면으로, 아니 적어도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전통악기 가야금이죠. 이렇게 오랜 시간 우리 곁에 머무르긴 했지만, 가까이 있어도 먼 당신, 가야금에 대해 알아볼까요?
가야금을 한 번 살펴볼까요?
여러분께 ‘가야금’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가야금은 말 그대로 ‘말로만 듣던’ 악기로 더 익숙할 듯한데요. 가까이에서 직접 악기의 생김새를 찬찬히 살펴보거나, 손을 대어 줄 한번 튕겨볼 기회가 많지 않죠. 그래도 첫눈에 현악기라는 것을 알아차리셨을 겁니다. 그럼 줄의 개수를 알고 계시나요? 지금 여러분 머릿속에 떠오른 줄 개수는 아마도, ‘산조 가야금’의 줄 개수 일 것 같은데요. 뒤에 가서 더 자세히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가야금의 줄의 개수 다음으로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우륵’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볼게요. 가야금의 유래는 김부식 『삼국사기』를 통해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짧게 언급하면, 가야국의 가실왕이 만든 가야금이 있었고, 가야국의 우륵이 가야금 연주에 뛰어났다고 합니다. 신라왕이 그의 연주를 듣고, 우륵을 본국으로 데려와 가야금을 전수하도록 했다고 하죠.
당시의 가야는 어지러운 정세와 ‘말기’라는 시대적 특성을 고려했을 때, 악사였던 우륵이 끌려온 것인지 혹은 초청된 것인지에 관해서는 확인이 어렵습니다. 틀림없는 것은, 우륵이 신라에서 제자에게 전수하여 가야금을 전승했다는 사실입니다. 당대 가야금 모습을 정확하게 고증할 사료가 없어 아쉽지만, 그 시기 주변국에 남아 있던 가야금과 비슷한 형태의 악기를 통해 비교학적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가야금, 중국의 쟁(箏), 몽골의 야탁, 일본의 고토, 베트남의 단짜인 등이 그것인데요. 비슷한 모양새와 연주법을 가진 현악기(지터류-ZITHER)들로, 현재까지도 각 나라의 전통 악기로서 연주되고 있습니다. 저의 생각을 덧붙여 보자면, 해상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졌던 가야와 신라시대에 다양한 문물과 함께 이 같은 형태의 악기가 유입되어 향악화(鄕樂化)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가야금이 가진 매력
가야금은 현악기이죠. 서양에도 많은 현악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야금에는 서양악기에선 들을 수 없는 독특한 음색이 있는데요. 가야금은 명주실을 꼬아 만든 줄을 나무 위 안족(雁足)에 받쳐 연주하는 악기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줄’의 차이는 소리의 차이를 만들어 냈습니다. 가야금의 ‘실’ 줄은 음색이 단조롭지 않고 탁한 반면, 서양악기의 ‘철’ 줄은 음색이 명확하면서도 차가운 소리를 냅니다.
주법 또한 서양악기와는 다릅니다. 짚어서 음의 높낮이를 내는 것이 아닌, 장력을 이겨 내듯 눌러내어 음의 높낮이를 맞춥니다. 전통 현악기는 연주자가 힘을 조절해가며 음을 만들어내야 하기에 정확한 음을 갖고 있는 서양의 현악기에 비해 진입장벽이 높습니다. 하지만 또한 여기에 가야금 연주의 매력이 있는데요. 미분음을 세세하게 조절하면서 백번 연주하면 백번 다르게, 그때마다의 감정을 오롯이 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의 전통 현악기 중, 개방음(누르거나 외부 힘을 가하지 않고 그대로 연주하는 음)을 악기 그 자체에 기대어서만 낼 수 있는 현악기는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개인의 힘으로 조절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변화하는 악기 가야금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가야금의 줄의 개수를 12개로 알고 계신 분 많으시죠. 가야금은 ‘변화하는’ 악기랍니다. 연주하는 전통음악의 분류에 따라 현의 개수가 달라질 수 있는데요. 12 현 산조 가야금, 18 현 정악 가야금(법금), 25 현 가야금(창작곡에서 활용) 등 연주자의 기호 혹은 곡의 필요성에 따라 현의 개수를 다르게 하고 있습니다.
12현은 특히 민속음악(민요, 산조 각종 민속 악곡)에 주로 사용하는 악기로, 폭이 얇고 독주악기로써 활용되는 경우가 많아 음색이 또랑또랑 합니다. 18 현은 정악 가야금으로 정 악곡인 궁중음악(宮中音樂)과 방중악(房中樂) 거문고나 가야금을 중심으로 소규모 합주를 하는 실내악 등에서 주로 활용되며, 산조 가야금에 비해 음색이 튀지 않고 둥글둥글합니다. 독주곡이냐 합주곡이냐에 따라 각각의 특성에 맞도록 악기를 제작하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25 현 가야금은 특수하게 가야금 실줄 코어에 플라스틱 재질의 실을 넣는데요. 소리가 크지 않고 널리 퍼지지 않는 실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입니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집안에서의 수양을 위해 악기를 연주해 왔지만, 25 현 가야금은 이와 다르게 서양 관현악과 같이 웅장하고 규모가 있는 곡들을 연주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줄 개수가 25개까지 유달리 많은 이유는, 연주되는 악곡의 다양한 음역대와 화음을 내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다선율을 가진 서양악기의 유입에 영향을 받은 한국음악의 단편적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색다른 신식 가야금
현재, ‘전통 음악’의 범주에서 벗어난 다양한 연주곡들이 선보이면서, 가야금도 25 현 가야금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해 오고 있는데요. 색다른 신식 가야금은 어떤 모습일지 알아볼까요?
25 현 가야금이 만들어지기 전, 그러니까 약 50여 년 전으로 돌아가 봅니다. 일제 강점으로부터의 해방 이후, 철 가야금이 나타납니다. 명주실이 아닌 구리줄을 사용해서 연주하며, 철 줄의 특징과 줄의 장력을 이용한다는 특징이 있죠. 이전과는 다른 음색을 갖고 있고, 보통은 독주악기로써 활용되었습니다. 최신식으로는 일렉 가야금이 있겠네요. 전자음악이 주로 쓰인 현대음악을 소화하기 위해 개량된 경우입니다. 기타 밑동에 스테리오 잭이 있는 것과 같이, 가야금에도 악기와 연결하여 스피커로 뽑아낼 수 있는 스테레오 잭이 달려 나온답니다.
오늘은 가야금을 앞뒤 안팎으로 살펴보고, 줄도 한번 만져보고, 가야금의 각 종류마다 다른 음색도 들어보는, 아니 읽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전통악기’라는 통념처럼, 가야금은 딱딱한 모습에 낯선 소리를 내는 악기가 아니라는 것, 아셨죠? 곡에 맞추어 알맞은 모양새로 변하고, 시대에 맞추어 소리도 기능도 변화할 수 있는 전통악기랍니다. 우리도 실제로 가야금이란 악기를 들어보고 연주해보는 기회를 가지면서 가야금을 가깝고도 친근한 당신으로 맞아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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