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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입시생들의 적,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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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바이올린엔 악마가 있고, 내 활에도 악마가 있으며 나 자신도 악마다!”

  고전시대에서 낭만시대로 넘어가던 18-19세기, 자타공인 악마로 소문난 바이올리니스트가 있었어요. 바로 니콜로 파가니니(Niccolò Paganini, 1782~1840)인데요. 무려 100년이 넘는 지금까지 파가니니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답니다. 그들은 과연 무엇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걸까요?

 

😮돌아온 탕아, 파가니니?

  1782년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태어난 파가니니는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을 배웠어요. 바이올린을 배운 지 몇 개월 만에 그의 스승을 능가할 정도로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보였죠. 그의 재능을 눈치챈 아버지는 하루에 10시간씩 혹독한 연습을 시켰다고 전해져요. 그렇게 실력을 쌓은 파가니니는 17살이라는 다소 이른 나이부터 북이탈리아 지방에서 많은 지지를 받으며 연주와 레슨을 다녔답니다. 한순간에 부와 명성을 얻은 거죠. 그러나 파가니니는 성공에 취해 방탕한 일상을 보냈고, 도박에 빠져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 거액의 빚을 진 신세가 되었어요. 결국 그가 항상 연주했었던 바이올린 과르네리1)를 팔아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했죠. 다행히 그는 자숙하며 건강을 회복하는 시기를 가졌는데요. 그때 현악기만의 특수 주법인 진동을 이용해 연주하는 하모닉스2)나 스타카토 등의 새로운 바이올린 주법을 연구했답니다.

1) 과르네리는 이탈리아의 악기 제작자 가문인 과르네리 가문에서 만든 모든 현악기를 통칭하는 말이에요. 전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바이올린 중 하나랍니다.

2) 하모닉스는 줄 위의 한 점에 가볍게 손가락을 대고 인공적으로 진동을 만들어 숨겨져 있는 음(배음, 倍音, overtone)을 얻는 방법이에요. 왼손가락으로 지판을 세게 눌러 내는 보통의 음과는 달리 부드럽고 투명한 울림을 얻을 수 있죠.

 

파가니니가 연주하던 과르네리 바이올린 ©에덴동산

 

🙄바이올린으로 이런 게 돼…? (파가니니 : 가능.)

  파가니니는 연주자로서의 기량을 뽐내며 평생을 살았어요. 그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19세기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 또한 연주자 개인의 기술적 기량이랍니다. 당시 연주 기교가 탁월한 음악가를 비르투오소(virtuoso)라고 불렀는데요. 파가니니 역시 이 비르투오소로서, 19세기 전반 가장 주목을 받았던 연주자이기도 했죠. 10대 때부터 본인의 실력을 쌓아 온 파가니니는 앞서 말했듯 17살에 이미 연주자로서의 성공을 거뒀어요. 23살에는 제노바에서 다시 연주 활동을 시작하며 이전보다 더 칭송을 받았고, 26살 때부터 46세까지 20년에 걸친 기간 동안 이탈리아 각지로 연주 여행을 다니면서 청중에게 큰 감명을 주었어요.

  파가니니는 워낙 독특하고 까다로운 연주법을 구사했던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자신만을 위해 특별히 작곡한 작품이 아니고서는 본인의 개성을 나타내기 어려워했답니다. 그는 본인이 연주하기 위해 어렵고 화려한 연주 기법을 만들었는데요. 네 옥타브에 걸친 넓은 음역의 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거나, 왼손으로는 줄을 튕기면서 오른손으로 활을 켜고, 또 소리를 내는 것조차 힘든 높은 음역에서 빠른 속도로 연주하는 방법 등이 파가니니에 의해 탄생했죠. 이처럼 파가니니는 바이올린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끌어내 곡에 담았어요. 바이올린 한 대로 반주와 연주를 동시에 하는 구성의 음악도 만들었고, 3도부터 10도까지 다양한 화음이 어우러지는 곡들도 있답니다. 바이올린 현 네 줄만으로 구현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기술들인데요. 파가니니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고안했으나, 너무 파격적이고 어려워 당시 연주자들 사이에서 악명이 자자했죠. 기교를 따라 할 줄 아는 수준에 그치면 안 되고, 음악에 방해되지 않게끔 잘 소화하기까지 해야 하니까요. 때문에 현재까지도 파가니니의 곡은 연주하기에 매우 부담스럽고 고통스러운 곡으로 알려져 있어요.

 

한 줄로만 연주하는 파가니니를 풍자한 19세기의 삽화 ©gettyimages

 

  파가니니는 자신만의 화려한 연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청중을 즐겁게 하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었어요. 활 대신 나뭇가지를 사용해 바이올린을 연주하기도 하고, 악기로 개, 고양이, 당나귀 같은 동물의 울음소리를 흉내내기도 했답니다. 1832년에는 심지어 파가니니의 연주를 직접 들은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가 너무 감격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울었다는 기록도 있어요! 리스트는 연주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죠. 

“수십여 년이 지나도, 난 그때의 여운을 잊지 못한다. 그때, 나는 파가니니 연주를 듣고 눈물이 계속 나왔고, 나는 죽어도 저 사람의 연주 실력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 누가 저 사람을 바이올린 연주로 앞선단 말이냐! 그러나, 저 사람이 바이올린을 한다면 나는 피아노로서 파가니니가 되겠다!”

  파가니니의 연주가 얼마나 대단했을지 상상이 가시나요? 그의 연주는 기교만 대단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매력도 있었어요. 그를 좋지 않은 시각으로 보던 사람들도 그의 연주를 듣고 난 뒤에는 그의 열렬한 팬이 될 정도였답니다.

 

🙋??? : 나 제2의 파가니니 할래

  파가니니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곡이죠. 24개의 카프리치오(Capriccio)를 아시나요? 카프리치오는 파가니니가 자신의 기교를 과시하기 위해 만들었는데요. 이탈리아어로 변덕, 공상을 뜻해요. 규칙이나 관습에서 벗어나 형식이 자유롭고 기교가 화려한 음악을 가리키는 말이죠. 연주 도중 갑작스럽게 분위기가 변하거나, 속도가 불규칙하고 리듬이 자유로운 것이 특징이랍니다. 파가니니에게 딱 어울리죠? 당연히 극강의 난이도를 자랑하는데요. 바이올린 독주를 위해 작곡된 가장 어려운 곡으로 꼽히며, 테크닉을 다방면으로 요구하거든요. 악보의 첫 페이지부터 음표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바이올린의 네 현을 모두 넘나들며 상당히 민첩하게 움직여서 연주해야 한답니다. 또 두 줄과 세 줄을 한꺼번에 활로 그으면서 연주하거나 여러 음을 빠르게 끊어 연주하는 슬러 스타카토를 구사해야 하는 등 매 순간이 어려운 곡이에요.

 

 

  그중 가장 유명한 마지막 곡인 24번은 시대를 넘나들며 여러 작곡가들에게 영감이 됩니다. 리스트는 이 곡을 포함해 파가니니의 카프리치오 중 6곡을 골라 6개의 피아노 작품으로 편곡했어요. 이것이 바로 리스트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연습곡 6번>입니다. 피아노계의 파가니니가 되겠다고 선언한 리스트는 카프리치오에서 사용되었던 트레몰로나 현으로만 연주해야 했었던 옥타브를 양손 옥타브로 편곡하는 등 바이올린 카프리치오를 거의 그대로 피아노 악보에 옮겼어요. 브람스도 파가니니에게 영감을 받아 피아노 연습곡을 만듭니다. 브람스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라고도 불리는데요. 카프리치오 24번 주제 선율을 총 14개로 변주한 상당한 난이도의 피아노 연습곡이랍니다.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는 원래 무반주로 연주되던 카프리치오를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같이 연주하는 대규모의 편성으로 편곡한 것이고요. 19세기부터 20세기를 거쳐서 계속 진화해 온 파가니니의 곡! 그의 영향력이 음악가들 사이에서도 어마어마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파가니니에겐 재밌는 전설이 있어…

  파가니니와 얽힌 두 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요. 하나씩 살펴볼까요? 이른 나이에 성공했지만, 도박에 빠져 빚을 지게 된 파가니니는 바이올린 처분 당시 파가니니 이외의 사람이 연주하지 않게 한다는 조건으로 자신의 악기 과르네리를 넘겼는데요. “내 바이올린, 내 영혼을 이제부터 영원히 제노바에 기증하노라.”라는 유언에 따라 현재 이탈리아 제노바 시청에서 보관 관리 중이랍니다. 악기는 지속적으로 계속 사용해야 소리가 유지되기 때문에 악기 제작자를 비롯한 관리 위원들에 의해 꾸준히 관리되고 있죠. 프레미오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의 우승자에게 그가 생전에 사용하던 이 악기로 연주할 수 있는 특권을 주는데요. 파가니니는 자신 이외의 사람이 연주하지 않게 한다는 조건을 붙였지만, 오늘날 수많은 연주자들의 손에 오르내리게 된 것이 아이러니한 일이지 않나요? 소리가 웅장하고 풍성했던 탓에 캐논(Cannone, 대포)라는 이름까지 붙은 이 악기는 2015년 제54회 프레미오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우승자인 양인모의 손을 거치기도 했죠.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 달랐던 파가니니는 앨러스-단로스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앓았어요. 이 때문에 손가락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움직여 특유의 기교를 부릴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죠. 베나티의 회고록에 따르면, 파가니니의 손이 월등히 큰 것은 아니었지만, 손의 각 부위가 상당히 잘 늘어났다고 해요. 현을 짚은 왼손의 포지션을 바꾸지 않은 채로 손가락의 첫 번째 마디를 구부릴 수 있었고, 보통 사람의 거의 두 배 가까운 길이로 손을 뻗을 수 있었다고 전해진답니다. 상당히 놀랍죠?

 

Did Paganini, the great virtuoso violinist, sell his soul to the devil? -  Classic FM
파가니니의 손 모형 ©ClassicFM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렸지만 19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그 시대의 상징이었던 파가니니는 바이올린, 비올라, 클래식 기타 연주자이자 작곡가, 지휘자였던 희대의 천재예요. 역사상 최고의 음악가로 꼽히며, 낭만주의를 개척하고 비르투오소의 시대를 연 최초의 연주자이기도 하죠. 실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말년에는 악마와 계약했다는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답니다. 파가니니의 카프리치오를 들으며 전성기 시절의 실력을 한번 상상해 볼까요?

 

 

 

ㅇ참고자료

- 민은기, “서양음악사2”, 음악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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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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