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배틀 속 그 작품, 쇼팽 에튀드가 피아노의 교과서라 불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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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보신 적이 있나요? ‘Secret’이라는 악보를 끝까지 연주해 시간을 돌려 과거로, 미래로 여행을 떠나는 내용의 대만 영화인데요. 영화는 보지 않았더라도, SNS나 기타 미디어를 통해 ‘피아노 왕자, 피아노 배틀(혹은 아이스크림 선배…?!)’ 장면은 한 번쯤 보셨으리라 생각해요. 여기에서 등장하는 흑건(편곡 버전인 백건까지)은 알고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사람의 작품이랍니다. 취미든 전공이든 피아노 좀 치는 사람이라면 필수로 거치는 곡인데요. 바로 ‘피아노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쇼팽(Frédéric François Chopin, 1810~1849)의 에튀드입니다.
😂에튀드, 화장품 브랜드만 아는데요…?
19세기에는 피아노가 인기 악기로 급부상하면서 피아노 교육에 붐이 일었어요. 자연스레 피아노 연습 교본도 많이 출간되었죠. 연주 테크닉을 향상할 수 있는 곡도 많이 작곡되었고요. 그 가운데에서도 쇼팽 에튀드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위치에 있었어요. 낭만주의 시대 피아노 연주에 필요한 거의 모든 테크닉이 담겨 있거든요. 아, 그리고 쇼팽의 연주곡에는 특별한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쇼팽 답게, 연습곡에도 최초로 섬세한 감정을 담아낸 것이죠. 이렇듯 이전에 없던 새로운 시도 덕분에 그는 피아노 연주와 기술에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어요.

에튀드(étude)란 연습, 공부의 뜻을 가진 프랑스어예요. 음악에서는 연주 테크닉 연습용으로 작곡된 작품을 가리키죠. 쇼팽의 연습곡은 모두 3개의 묶음으로 나뉘는데요. 작품번호 10번에 12곡, 25번에 12곡, 그리고 3개의 작은 에튀드 구성으로 총 27곡이에요. 작품들은 저마다 다른 특징을 가져요. 연습이 필요한 부분을 하나의 테마로 하여 작곡된 것이거든요. 앞서 이야기한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속 쇼팽 에튀드, 흑건은 오른손으로 치는 부분의 거의 모든 음계가 검은건반으로 이루어져서 흑건이라는 제목이 붙었어요. 그냥 듣기 좋은 연주곡 같지만, 사실은 검은건반에서 손이 미끄러지지 않기 위한 연습곡이랍니다. 흰건반은 폭이 넓어 안정적이지만, 검은건반은 상대적으로 폭이 좁아 다른 음을 누르기 십상이잖아요. 다른 손가락들에 비해 힘이 약한 4번(약지)과 5번(새끼) 손가락의 힘을 길러주기 위한 곡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힘의 균형을 맞춰야 연주가 잘 구현되니까요. 이외에도 옥타브 연습을 위한 곡, 도약을 연습하는 곡, 왼손 테크닉을 기르는 곡, 양손 테크닉에 익숙해지는 곡 등 종류가 아주 다양해요. 에튀드를 모두 연습하면 현란한 연주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요. 사실 에튀드 자체도 난이도가 상당하기 때문에, 한 곡을 완벽히 치는 것도 힘들답니다.
😤아무리 연습이라도, 감성이 빠지면 섭섭하지!
쇼팽은 19살에 고향 바르샤바에서 열린 파가니니1)의 순회공연을 접하고 연주 테크닉의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파가니니의 무대에서 영감을 받아 몇 주 만에 4개의 곡을 작곡했는데요. 이때 탄생한 곡이 에튀드의 시작이 되었답니다.
1) 니콜로 파가니니(Niccolò Paganini, 1782~1840)는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작곡가예요. 현대의 바이올린 테크닉을 완성하였으며, 초인적인 기교로 유명하죠.
그는 피아노를 연주할 때 왼손과 오른손에 힘이 다르게 들어가고, 열 손가락도 제각각 힘과 움직임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쇼팽은 모든 손가락을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게끔 훈련이 가능한 곡을 만든 거죠. 하지만 쇼팽의 에튀드는 이전의 연습곡들과 조금 달랐습니다. 쇼팽 이전의 연습곡들은 그저 '기계적인 손가락 노동' 정도였는데, 쇼팽은 음악적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담아냈거든요. 손가락 훈련에 그치지 않고, 음악성과 감정 훈련에도 신경을 쓴 거예요. 그러니까 에튀드는 리스트 연습곡이나 라흐마니노프의 회화적 연습곡처럼 단지 연습용이 아니고, 풍부한 상상력과 예술적 감흥을 필요로 하는 연주용으로 작곡되었다고도 볼 수 있죠. 후대 작곡가들 사이에서 에튀드가 여럿 등장한 것도 쇼팽의 영향이 큰데요. 그렇다면 유독 쇼팽의 연습곡이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테크닉은 연주의 단편적인 부속품일 뿐이며 음악 표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임을 확실하게 깨닫게 한 것이 쇼팽의 에튀드이기 때문이랍니다.
쇼팽은 피아노의 시인답게 에튀드를 감정적으로 섬세하게 작곡했어요. 덕분에 쇼팽 에튀드는 독립적인 곡으로서의 가치를 얻어 연주회에서 울려 퍼져도 손색이 없는 곡으로 인정받았죠. 그의 에튀드처럼 단순 연습만을 목적으로 두는 곡이 아닌, 하나의 예술적인 작품과도 같은 에튀드를 이르는 말 역시 새롭게 생겨났습니다. 바로 콘서트 에튀드(Concert Etude)인데요. 기교뿐만 아니라 표현도 강조되는, 아주 높은 예술성을 지녀 연주회용으로도 손색이 없는 연습곡을 의미하죠. 그는 어떤 작곡가보다도 피아노라는 악기의 표현적, 기교적 특성을 잘 살려냈는데요. 쇼팽 한 사람으로 인해 ‘연습곡’은 고도의 테크닉을 요구하는 동시에 초월적인 예술성을 갖춘 장르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에 피아노는 가정오락의 중심이자, 개인의 자기 계발을 위한 중요한 도구였어요. 점차 피아노 연주가 교양의 상징으로 여겨지자, 중산층 사이에서 피아노 교육이 유행했는데요. 그 결과 피아노 연습곡들이 작곡되고 출판되었죠. 우리가 흔히 아는 체르니 연습곡도 그때 탄생한 거고요. 피아노를 찾는 사람이 많아짐에 따라 피아노곡도 훨씬 많아졌고,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의 수도 증가했습니다. 무엇보다 피아노 음역이 확연하게 넓어졌어요. 그래서 쇼팽은 피아노 독주곡을 많이 작곡했답니다.
😄제각각 다른 별명을 가진 에튀드
쇼팽의 에튀드에 포함된 곡들은 각각 재미있는 별명을 가지고 있어요. 곡의 특징이 잘 드러나고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죠. 나비, 승리, 대양, 추격, 혁명, 겨울바람, 마법사, 햇빛 등이 있는데요. 어릴 적부터 본인이 폴란드인이라는 정체성이 확고했던 쇼팽은 1830년 20살에 더 큰 무대로의 진출을 위해 폴란드를 떠나 오스트리아 빈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 바르샤바 11월 봉기 소식2)을 듣게 되었죠. 당시 러시아의 동맹국이었던 오스트리아에 망명자 신세로 남겨진 쇼팽에게 그 시기는 크나큰 고통과 시련의 시간이었어요. 바로 이때 작곡한 곡이 <혁명>이라는 곡입니다. 작품 번호 10번의 12번이에요. 당시에 그가 겪었던 분노가 왼손의 속주에서 적나라하게 느껴지고 오른손의 당찬 느낌이 무게를 실어주는 곡이죠. 들어보면 정말 어울리는 별명임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2) 바르샤바 11월 봉기는 1830년부터 1831년까지,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일어난 민중 봉기를 뜻해요. 러시아의 지배에 대항했던 무장 반란이죠.
작품번호 10번의 4번, 일명 <추격>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곡인데요. 상당히 빠른 템포로 시작해서 곡이 끝날 때까지 같은 속도를 유지하며 숨도 안 쉬고 치는 곡으로 유명해요. 양손 열 손가락 모두의 테크닉을 기르기 위한 연습곡이죠. 말 그대로 물 흐르듯 막힘없이 자연스럽게 쳐야 해요. 밀집된 음형과 확장된 음형을 한데 모아놓고 코드까지 가볍게 치는 연습을 해야 하므로 손 모양을 재빠르게 바꾸는 연습 또한 필요합니다. 이런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빠른 속도를 유지하며 안 틀리고 치려면 상당히 공을 들여야겠죠? 이렇게 곡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별명들은 쇼팽이 직접 지은 것은 아니랍니다. 후대 사람들이 곡 분위기에 따라 알맞은 단어들을 하나씩 붙인 건데요. 참 재미있게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작곡하는 모든 곡을 본인의 섬세한 감정에 기반해 만든 쇼팽은 손가락의 움직임을 연습하는 곡에도 심오한 음악적 감정을 녹였어요. 덕분에 아무 의미 없이 손가락 노동만 하던 기존의 피아노 연습은 단순 ‘훈련’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죠. 지금까지도 쇼팽의 에튀드는 전공생들의 시험 곡으로 쓰이며, 무대 위에서 아름답게 연주되곤 합니다. 손가락 테크닉뿐만 아니라 음악의 표현까지도 연습할 수 있게 만들어준 쇼팽! 가히 전설의 음악가답네요!
ㅇ참고자료
- 민은기, “서양음악사2”, 음악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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