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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을 주고받은 예술 시리즈 ②] 동백꽃 여인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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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동백꽃 여인>,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발레 <카멜리아 레이디>. 장르도 다르고, 이름도 다른, 이 세 작품들에는 공통점이 있어요. 바로, 소설 <동백꽃 여인>의 내용을 바탕으로 각색된 작품들이라는 것인데요. 이렇게 한 작품이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해요. 뒤마피스의 소설, <동백꽃 여인>이 발표된 이후, 수세기에 걸쳐 이 소설은 다양한 분야의 작품에 모티브가 되어 왔는데요. <동백꽃 여인>의 탄생 스토리를 뒤마 피스의 짧고도 강렬했던 사랑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볼게요.

 

불꽃같던 자신의 사랑을 한 편의 소설로!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Alexandre Dumas fils, 1824~1895)가 작가 지망생이었을 때였어요. 친구와 함께 공연을 보기 위해 파리의 바리에테 극장을 찾은 그는 친구의 소개로 객석에 앉아있는 동갑내기인 마리 뒤플레시스(Marie Duplessis, 1824~1847)를 만났는데요. 그는 곧 마리에게 첫눈에 반하고 말았죠. 큰 키에 가느다란 목을 지닌 마리는 피아노를 곧 잘 연주했고, 오페라와 공연을 즐겼으며 독서를 좋아해 교양이 넘쳤다고 전해오고 있는데요. 이렇게 뛰어난 매력을 지닌 그녀는 파리 사교계의 유명한 코르티잔(courtesan)1)이었어요.

1)  코르티잔(courtesan)은 귀족이나 부유한 계층의 남성들이 자신의 지위와 부를 자랑하기 위한 공개 연인을 이야기해요.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 ©Wikipedia
마리 뒤플레시스 Ⓒ포토뉴스

 

  공연이 끝난 후 알렉상드르는 마리를 쫓아가 이 둘의 만남이 성사되었고, 두 사람은 깊은 관계로 발전해 함께 지냈어요. 하지만 알렉상드르는 파리의 부유한 남성들로부터 후원을 받은 마리의 사치를 감당할 경제적 능력이 없었고, 마리는 늙은 백작과 부유한 은행가의 청년 백작 등 자신의 후원자들과 계속 관계를 맺었죠. 알렉상드르는 결국 마리와의 이별을 택하고 세계 여행을 떠났는데요. 2년 후 그가 돌아왔을 때, 폐결핵을 앓고 있었던 마리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었죠.

  마리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848년, 알렉상드르는 소설을 발표해요. 바로 그 작품, <동백꽃 여인(La Dame aux camélias)>은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야기 속에서 사생아나 매춘부 같은 사회적 약자를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이들을 차별하는 사회에 대해 분노하고 있어요.
 

카멜리아의 여인 소설 표지 ⒸAbeBooks

 
  이 소설에는 파리의 상류층 공개 연인(코르티잔)인 ‘마르그리트’가 등장해요. 발레 ‘마농’의 공연장에서 마르그리트를 본 명문가의 귀족 청년, ‘아르망’은 첫 눈에 반해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아르망과 마르그리트는 보금자리를 마련하죠. 둘의 교재를 알게 된 아르망의 아버지는 아르망 몰래 마르그리트를 찾아가 두 사람이 헤어질 것을 부탁해요. 아르망을 진심으로 사랑한 마르그리트는 아르망과 헤어지는 것만이 그를 위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아르망과 관계를 끊겠다고 약속해요. 그녀는 이전처럼 여러 남자들과 어울리고 사치스러운 생활로 돌아가는데요. 그녀의 속내를 모르는 아르망은 마르그리트가 예전의 화려한 생활을 포기하지 못해 자신을 떠난 것으로 오해하고 헤어져 고향으로 돌아가요. 이후 마르그리트는 앓던 폐병이 악화되어 홀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해요.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르망의 아버지는 죄책감에 그간의 일들을 아르망에게 알려요. 진실을 알게 된 아르망은 마르그리트를 찾아가지만 그녀는 이미 숨을 거둔 후였죠.

 

오페라, 발레까지! 팔색조 '동백꽃 여인'

 

주세페 베르디 ©liveabout
<라 트라비아타> 초연 포스터 ⒸWikipedia

 

  <동백꽃 여인>은 1852년, 뒤마 피스가 희곡(A Little Princess)으로 각색한 후 큰 인기를 얻었었는데요. 이후에는 오페라로도 만들어졌어요.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Giuseppe Fortunino Francesco Verdi, 1813년~1901)에 의해서였죠. 그는 첫 번째 아내인 베리치와 사별을 하고 홀로 지내던 중, 베르디의 작품 <나부코>에 출연했던 소프라노 주세피나 스테르포니와 사랑하게 되었어요. 미혼모였던 스테르포니는 남자관계가 복잡했던 인물이고, 이 둘의 관계는 이탈리아 음악계의 대단한 스캔들이었어요. 당시에는 용인될 수 없었던 혼전 동거에, 심지어 여자는 미혼모로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었으니까요. 세간의 시선을 피해 스테르포니는 파리로 떠나기로 결심하면서 둘의 관계는 멀어지는 듯했어요. 하지만 그녀를 잊지 못한 베르디는 파리 공연을 계기로 스테르포니를 다시 만났고, 2년여 동안 파리에서 함께 생활했어요. 이때, 이 둘은 당시 큰 성공으로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로 진출한 연극 <동백꽃 여인>을 보게 되었는데요. 연극을 보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고 해요. 연극이 베르디와 스테르포니 자신들의 이야기와 닮아있었기 때문이에요. 베르디는 대본도 없이 곡을 쓰기 시작했고, 이탈리아로 돌아온 후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탄생시켰어요.
                
  베르디의 오페라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라 트라비아타>는 총 3막으로 된 오페라로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1853년에 초연되었어요. <라 트라비아타>는 ‘거리의 여자, 길을 잃은 여자’라는 의미로, ‘비올레타(소설의 마르그리트)’를 뜻해요. 오페라라면 역사, 신화, 설화 등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태반이었던 당시, 트라비아타는 베르디의 시대적 배경과 경험을 담아낸 태생부터가 달랐던 오페라였어요. 때문에, 기존의 오페라에 익숙해져 있던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했죠. 아름답고 가녀린 코르티잔 역의 소프라노의 외모가 대중들의 기대와는 많이 달라 빈축을 사기도 했고요. 이후, 배경을 루이 14세가 다스리던 1700년대로 바꾸고 여주인공과 출연진을 대거 교체해 큰 성공을 거두었어요. 오페라로서는 우리나라에서 공연된 첫 번째 작품이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어요.

 


  소설 ‘동백꽃 여인’은 또한 <카멜리아 레이디(The Lady Of Camellias, 1978)>라는 이름으로 발레 무대에 진출하기까지 했어요. <카멜리아 레이디>는 당시 함부르크 발레단의 최고 안무가였던 존 노이마이어(John Neumeier, 1939~)가 안무한 작품으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Stuttgart Ballet)의 수석 무용수였던 강수진의 대표작이에요. 강수진은 이 작품으로 발레계의 아카데미 상이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당스(Benoise de la Dannse)’에서 최고 여성 무용수 상을 수상했었죠. 
 

강수진이 연기하는 <카멜리아 레이디> ©LG 유플러스 블로그

 

  <카멜리아 레이디>는 낭만주의의 전형을 보여주는 프레데릭 쇼팽(Fryderyk Franciszek Chopin, 1810~1849)의 곡으로만 이뤄져 있는데요. 이는 안무가였던 존 노이마이어(John Neumeier, 1939~)의 아이디어로, 1840년대 프랑스 파리의 분위기를 담기 위해서였다고 해요. 작품에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소나타, 전주곡, 발라드, 왈츠 등의 다양한 곡이 등장해요. 슬픈 사랑이야기가 낭만적인 무드를 만나 그 비극은 더욱 극대화되었어요.  

 

  이렇게 뒤마 피스의 짧고도 강렬했던 사랑은 개인의 삶에서 소설로, 소설이 희곡과 오페라, 발레작품으로 각색되었는데요. 장르를 넘나드는 각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1900년 이래로 20여 편의 영화로 스크린에 올려졌고, 뮤지컬로도 제작되어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죠. 모든 장르를 넘나들며 각색된 작품들이 모두 흥행에 성공한 셈 이예요. 때론 공감을 이끌어 냈을 테고, 때론 흥미로운 신파가 되었을 테죠. 시대를 초월해 인간의 삶만큼, 보편적이며 특이한 이야기도 없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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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07-08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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