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 넘어져도 8번 음악으로 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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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리넬리’는 그 누구보다도 깊고 청명한 고음을 낼 수 있었던 한 카스트라토1)의 이야기예요. 남녀를 불문하고 열광적인 팬덤을 갖고 있었던 그는 오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장본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이 영화에는 또한 동시대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가 등장해요. 파리넬리는 증오하면서도 그토록 열망하던 그의 곡으로 무대에 서기 위해 악보를 훔쳐와 노래 ‘울게 하소서’를 완벽하게 소화해내죠. 신비로운 파리넬리의 목소리를 숨 막히도록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던 그 곡, 누구의 곡이었을까요? 바로크 시대 최고의 오페라와 오라토리오 작곡가, 헨델입니다.
1) 카스트라토는 변성기 이전, 거세를 통해 여성의 고음을 낼 수 있었던 남자가수를 말해요.
☄초신성 헨델의 등장!

영국을 대표하는 작곡가 헨델 (Gerge Frideric handel, 1685~1759)은 1685년 02월 23일 독일 작센주의 할레에서 태어났어요.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헨델은 어릴 적부터 음악가가 되기를 꿈꿨는데요. 그의 아버지는 그가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바랐어요. 하지만 헨델에게는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한 사람, 어머니가 있었어요. 목회자의 자녀로서 교회 음악에 익숙했던 그의 어머니는 헨델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보았고, 그에게 음악 교육을 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어머니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죠. 어릴 적부터 뛰어난 재능으로 이름을 떨쳤던 헨델은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차우(Fredrich Wilhelm Zachlow)를 사사하며 건반 악기 연주와 작곡의 원리를 배웠어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법학과에 입학했던 헨델은 독일의 북부 도시 함부르크로 거처를 옮기면서 음악가로서의 본격적인 삶을 시작했는데요. 이곳에서 헨델은 바이올리니스트이자 하프시코드 연주자로서 활동했어요. 그리고 이 시기에 그의 첫 번째 오페라인 ‘알미라(Almira)’를 선보였어요. 관객들의 열광적인 호응에 무려 20차례나 공연을 할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새로운 별의 등장이었죠.
발표한 오페라마다 족족 성공으로 이끈 헨델은 오페라의 종주국인 이탈리아로 건너가 다양한 오페라들을 선보였어요. 아르칸젤로 코렐리와 도메니코 스카를라티 등, 당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곡가들과 만나 음악적 교류를 하기도 했고요. 이탈리아 스타일의 오페라까지 섭렵한 그의 음악은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 전역에서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어요.

이후 영국으로 여행을 떠났던 헨델은 오페라 ‘리날도(Rinaldo)’를 런던에서 초연했어요. 위에서 언급했던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는 오페라 ‘리날도’의 소프라노 아리아로, 2막에서 적군의 여왕 아르미다에게 사로잡힌 알미레나가 자유를 염원하며 부르는 노래예요. 뜨거웠던 관객석의 호응을 시작으로, 헨델은 영국에서 조차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된 그는, 이후 영국 왕실의 무대에 진출해 두 번의 연주를 성공적으로 해냈어요. 이젠 대중들뿐만 아니라, 왕실과 귀족, 지식인들까지도 헨델의 광팬이 되어버렸죠. 이후 헨델은 영국으로 귀화했어요.
🤘인생작으로 화려하게 컴백!
이런 그에게도 침체기는 있었어요. 오페라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었죠. 하지만, 이후 그는 종교음악인 오라토리오2) 작곡에 힘을 쏟으며 다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어요. 1742년 헨델은 영국의 더블린에서 그의 인생의 걸작을 발표했는데요. 바로, 킹 제임스 성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Messiah)’이였습니다. 이후로 영국에서 오라토리오 열풍이 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메시아를 작곡하던 시기, 헨델은 시들어가는 인기와 오페라 작품의 실패로 인한 부채와 지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어요. 이 시기에 헨델은 총 공연 시간이 2시간 30분에 달하는 이 대곡을 불과 3주 만에 완성했어요. 헨델이 작곡하며 많은 감동을 받아 몇 차례나 눈물을 흘렸다고 해요. 헨델은 악보 끝부분에‘(Soli Deo Glori)오직 하나님께 영광을’이라는 글귀를 적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죠.
2) 오페라와 오라토리오는 모두 극음악으로 성악가들이 노래하고 관현악곡들이 등장하지만, 오페라는 세속적인 내용을, 오라토리오는 성경을 바탕으로 한 종교적인 주제를 모티브로 한다.

‘메시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칭호로,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과 탄생에 관한 내용을 담은 1부와, 인류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대속을 그린 2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영생의 내용을 담은 3부와 53곡의 노래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메시아의 곡 중, 44번째 곡인 ‘할렐루야(Hallelujah)’는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당시 국왕이었던 조지 2세가 이 곡이 시작할 무렵, 감격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해요. 이후로 이 곡이 시작하면 관객 모두가 기립하는 전통이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어요. 이 외에도, ‘우리를 위해 한 아기가 나셨다 (For unto us a child is born)’, ‘문들아 머리 들라(Lift up your heads, O ye gates)’, ‘주의 영광(And the glory of the Lord shall be revealed)’, ‘죽임 당하신 어린양(Worthy is the Lamb that was slain)’, ‘아멘(Amen)’등의 합창곡도 유명합니다.
그는 ‘메시아’ 이후에도 ‘삼손’ 등, 수많은 명곡들을 탄생시켰는데요. 음악적으로는 승승장구했지만 사실 그는 생애 많은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렸어요. 헨델은 양극성 장애를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뇌졸중으로 쓰러지기도 했었죠. 하지만 그는 음악을 향한 열정을 원동력으로 삼아 언제나 음악가로서의 삶으로 돌아왔습니다. 백내장을 앓다 받은 수술이 잘못되어 실명을 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어요. 죽기 전까지 연주와 작곡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그는 1759년 4월 14일, 74세의 나이로 런던에서 사망했어요.
헨델의 오페라는 귀족적이에요. 음악은 장중하면서도 화려한 선율을 자랑하고 무대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죠. 한 시대를 오페라로 주름잡았던 그가 말년에 가까워 오라토리오를 선보이기 시작했는데요. 그의 오페라 음악을 따온 듯, 드라마틱하고 서정적인 선율과 화려한 기교의 창법이 그대로 오라토리오에 담겨있어요. 종교음악임에도 불구하고, ‘메시아’가 그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유가 아닐까요. 영화 ‘파리넬리’의 내용과 실상은 달랐다고 해요. 실제로 헨델과 파리넬리의 만남은 한 번도 성사된 적이 없었죠. 그럼에도 바로크 시대, 오페라 가수의 일생을 다루면서 헨델의 곡을 빼놓을 순 없었을 테고, 그 불발의 아쉬움을 이렇게라도 달래보고 싶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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