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가도 모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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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바이올린’이라 불리던 파가니니를 아시나요? 믿기 힘들 정도의 화려한 기교를 구사했던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연주는 ‘악마’라는 초인적인 힘에 빗대 비유될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런 파가니니를 닮고자 했던 피아니스트가 있습니다. ‘프란츠 리스트.’ 재능과 노력을 겸비한 그는 19세기 낭만주의 시대 최고의 비르투오소1) 피아니스트로 일컬어져 왔어요. 그에겐 한 가지 더, 뛰어난 점이 있었는데요. 바로, 수려한 외모였어요. 그의 공연장에서 쓰러진 여성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해요.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죠. 이런 그가 사랑했던 두 명의 여인과, 그들의 사랑이 만들어 낸 리스트의 걸작들을 알아볼게요.
1) 비르투오소: 뛰어난 기교를 보여주는 음악가
유럽의 유명인사 리스트와 마리 다구 부인의 만남
어렸을 적부터 피아노에 재능이 있었던 리스트(Liszt Ferenc, 1811~1886)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체르니를 사사했었어요. 그의 연주를 처음 들었던 체르니는 ‘하늘에서 내린 피아니스트’라고 감탄했다고 해요. 이후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 리스트는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겠다고 결심했고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연습에 매진했어요. 천부적으로 타고난 음악성에 노력까지 더해졌으니. 이보다 더 뛰어날 순 없었겠죠. 그는 파가니니에 비할만한 피아니스트이자 천재 작곡가로, 또 키 185cm에 달하는 수려한 외모의 젊은 음악가로 유럽 전역에 명성을 떨쳤어요.

이런 그가 운명적인 여인을 만나게 되었어요. 1833년 살롱2)에 초청받은 리스트는 자신보다 6살 연상이었던 마리 다구 백작 부인(Comtess Marie d'Agoult)을 만났어요. 당시 마리 다구 백작 부인은 남편과 결혼생활 중이었고 두 아이가 있었어요. 그녀 역시 리스트 못지않은 유명인사였는데요. 그녀는 당시 파리 사교계를 주름잡았던 화려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이었고, 문화. 예술에 대한 조예도 깊었어요. 그녀는 리스트에게 열광적이었던 다른 여성들과는 다르게, 도도하고 냉담했어요. 리스트는 이런 그녀에게 강한 끌림을 느꼈다고 해요. 한편, 그녀 역시 첫눈에 리스트에게 끌렸었죠. 이후 마리 다구는 남편과 자식들을 두고 리스트와 사랑의 도피를 떠났어요.
2) 살롱(Salon)은 귀족의 응접실이라는 뜻으로, 프랑스 귀족들이 예술가들과 모여 문화,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사교 모임 장소를 뜻해요.


리스트는 생전에 수많은 여성들과 만났지만 마리 다구는 리스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 평가받는 두 명의 여인 중 하나예요. 마리 다구는 리스트와 법적으로는 동거인의 관계였지만, 그의 세 자녀를 낳은 유일한 여인이었어요. 그녀와 함께 한 시간 동안 리스트의 음악 인생 역시,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죠. 1839년에서 1847년 사이, 리스트는 무려 1000회 이상의 독주회를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요.
마리 다구 부인과의 결별이 낳은 3개의 가곡
음악적 전성기를 맞은 리스트는 활발히 커리어를 쌓기 위해 유럽 곳곳으로 연주 여행을 떠났는데요. 자유로운 성향의 리스트는 그 곳에서 수많은 여성들과 염문을 뿌렸어요. 반면, 귀족 출신이었던 마리는 자존심이 강한 여성이었고 리스트가 아이들과 자신에게만 충실해주길 원했죠. 또한 리스트는 ‘잘나가는’ 피아니스트였음에도, 경제적 압박에 시달려야 했는데요. 평생 귀족으로서 부유한 삶을 살아왔던 마리 다구의 사치 때문이었어요. 그들의 관계는 삐걱대기 시작했고, 결국 그들은 동거 9년 만인 1844년, 완전히 결별하게 되었습니다.
마리 다구 부인과 헤어진 직후 1845년, 리스트는 세 개의 가곡을 작곡했어요. 독일의 시인인 프라일리그라트(Ferdinand Freiligrath,1810-1876)의 시에 곡을 붙여 만든 ‘고귀한 사랑’, ‘가장 행복한 죽음’,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입니다. 이 세 가곡은 1849년, ‘3개의 녹턴 (Liebesträume, 3 Notturnos)’이라는 이름의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되어 출간되었어요. 그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세 번째 가곡,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는 ‘사랑의 꿈 (Liebestraum no. 3 As-Dur)’으로 편곡되었는데요. 사랑을 주제로 한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멜로디를 갖고 있는 이 곡은 리스트의 세 개의 녹턴 중에서도 피아니스트들에게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는 곡이에요.
사랑의 꿈을 꾸게 한 두 번째 뮤즈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를 편곡하여 ‘사랑의 꿈’을 발표했던 1949년, 리스트는 그의 두 번째 뮤즈 캐롤라인 비트겐슈타인(Princess Carolyne Sayn-Wittgenstein at Kiev)과 동거하고 있었어요. 1847년, 키예프에서 열린 자선 음악회에서 처음 만나게 된 이들은 이후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되는데요.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은 본래 공주의 신분이었고 딸 한 명을 낳은 후 남편과 별거 생활 중이었어요. 독실한 카톨릭 신도였던 그녀는 마리 다구 백작 부인과는 정반대로 리스트의 수많은 여자관계를 묵인해 주었어요.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은 리스트에게 연주자로서 보다는 작곡가로서 전념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는데요. 이에 리스트는 궁정 지휘자로서 바이마르에 체류하며 작곡 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했어요. 부유했던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이 리스트가 마음껏 음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금전적 후원을 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덕분에 리스트는 이 시기에 일생의 가장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였으며 수많은 위대한 명곡들을 작곡했어요. 파우스트 교향곡 (A Faust Symphony), 단테 교향곡 (A Symphony to Dante’s Divina Commedia), 피아노 소나타 B단조 (the Piano Sonata in B Minor), 피아노 협주곡 1번 E-flat 장조(the Piano Concerto No. 1 in E-Flat Major) 등을 비롯한 수많은 명곡들이 이 시기에 탄생했죠.
바이마르에서 동거생활을 했던 두 사람은 정식으로 결혼하여 부부가 되기를 원했어요. 하지만 두 사람의 끈질긴 노력에도 결국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의 이혼이 법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는데요. 리스트와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은 이에 절망하여 결국 각자의 길을 가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이후 리스트는 성직자의 길을 택했죠. 그는 수도원에서 생활하며 종교 음악 작곡에 열심을 쏟았어요. 오라토리오3) ‘성녀 엘리자베스의 전설(Die Legende von der heiligen Elisabeth)’과 ‘예수 그리스도(Christus)’등의 많은 종교 음악을 작곡했어요. 비트겐슈타인 부인과도 계속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고 해요. 이후 1886년 7월 31일, 리스트가 급성 폐렴으로 사망했는데요. 이렇게 그들의 관계는 종지부를 찍는 듯했지만, 리스트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은 공작부인 역시 이듬해 1887년 3월 9일에 세상을 떴으니. 마지막 길만은 함께 갔다고 해야 할까요?
3) 오라토리오는 17∼18세기에 가장 성행했던 대규모의 종교적 극음악을 뜻해요. 성서에서 비롯된 종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동작 혹은 무대장치가 따르지 않는 것이 특징이랍니다.
뛰어난 재능과 외모를 갖춘 마성의 남자, 리스트에겐 많은 여성들이 있었는데요. 정작 그가 결혼을 꿈꿨던 두 여인들과는 가정을 이루지 못했고, 남은 평생을 함께 하지 못한 채 헤어져야 했어요. 하지만 이 두 여인과의 사랑에서 수많은 명곡들이 탄생했어요. 리스트의 음악 인생을 이 두 여인을 빼고 얘기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죠. 특히, ‘사랑의 꿈‘은 리스트의 모든 곡 중에서 사랑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곡으로서 기억되고 있어요.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라! 시간이 올 것이다, 당신이 무덤에 서서 애통할 때가!’ 격한 슬픔이 담긴 구절인데요. 이 비통함이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피아노 독주로 편곡된, ‘사랑의 꿈’을 들어보시길 추천해요. 마리 다구 부인과의 이별에서 비롯된 애절한 음악이 또 다른 사랑으로 인해 감미로운 곡으로 편곡되었다니. 역시 사랑은 알다가도 모를 일인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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