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한국인에게 ‘예술 DNA’가 없다는 거장의 막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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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커스 주커만, 출처: 국민일보

 

  최근 세계적인 바이올린 거장 핀커스 주커만(Pinchas Zukerman, 1948~)이 ‘한국인 비하 발언’을 해서 논란의 중심에 있어요. 주커만은 내한 공연을 7번이나 진행했고, 한국인 제자를 직접 미국으로 불러 가르치는 등 한국과 인연이 많은 인물이죠. 국내에도 그를 지지하는 다수의 클래식 팬을 보유하고 있는데요. 세계적인 거장의 영향력 만큼이나 그의 막말 파문은 점점 더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에요. 주커만이 쏘아 올린 클래식의 인종차별, 어떻게 된 사건일까요?

 

💬한국인은 ‘노래하는 DNA’가 없다고?

  사건은 지난 6월 25일 뉴욕 줄리아드 음대(New York Juilliard School of Music) 온라인 수업에서 발생했어요. 당시 주커만은 학생들의 바이올린 연주를 지도하고 있었는데요. 아시아계 학생의 연주를 들은 주커만은 그의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자, “한국인은 노래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라고 말한 것이죠. 당시 이 발언을 들은 학생이 “자신은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라고 말하자, 주커만은 “일본인도 노래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학생에게 핀잔을 주었어요. 당시 이 영상은 실시간으로 온라인 송출되었고 100여 명의 학생과 교수들은 주커만의 발언을 지켜보고 있었죠. 그러나 주커만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이 온라인 행사가 끝날 무렵, 다시 한번 “한국인들은 노래하지 않는다. 그건 그들의 DNA에 없다.”라고 언급해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이 발언은 빠르게 논란이 되었죠.

  이러한 주커만의 발언은 한국인은 기계적으로 악기를 연주하기 때문에 예술성과 음악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인데요. 아시아계 연주자의 실력과 예술성에 대한 그의 편견을 공개적으로 일반화시키면서 문제가 대두됐어요. 그의 발언은 클래식계뿐만 아니라, 아시아계에 대한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확대되어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통해 빠르게 이슈화되었고, 아직도 뜨거운 감자로 진행 중이에요.

 

☹️브라보 주커만이 아닌, 보이콧 주커만

  지난 9일 페이스북(Facebook)에서는 ‘아시아 뮤지션 얼라이언스 커뮤니티(Asian Musician  Alliance community)’가 만들어졌어요. 이번 주커만 사건을 계기로 클래식 음악계의 인종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형성된 모임이에요. 특히, 주커만의 막말에 가장 큰 분노를 표시한 미국 내 아시아계 음악인들이 모임의 주를 이루었는데요. 그룹 개설 사흘 만에 250여 명이 가입했어요.

  대중의 비판이 계속되자, 주커만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어요. 그는 “지난 마스터 클래스에서 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재능이 충만한 두 명의 젊은 음악인들에게 뭔가를 소통하려고 했지만 내가 사용한 말은 문화적으로 무감각한 것들이었다”라며 “이 학생들에게도 개인적으로 사과의 글을 쓴다.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어서 죄송하다. 돌이킬 수는 없지만 진실한 사과를 전한다. 이로 인해 값진 뭔가를 배웠다. 앞으로 더 잘하겠다”라고 전했죠. 그리고 소속 학교인 맨해튼 음대 동료들에게도 “잘못된 말을 했고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입혔다”라는 이메일을 돌렸지만 그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를 쉽게 작아지지 않고 있는데요.

  그의 사과문 발표 후에도 온라인에는 ‘보이콧 주커만(Boycott Zukerman)’이라는 해시태그(#)를 단 게시글이 쏟아지고 있어요. 게시물에는 ‘아시아인을 향한 혐오를 멈춰라(Stop Asian Hate)’ ‘ 아시아인의 생명도 소중하다(Asian Lives Matter)’ 해시태그가 함께 달리고 있죠. 또한 과거에도 주커만이 아시아계 학생들을 향해 인종 차별적 발언을 해왔다는 증언들도 속속 나오고 있는 상황이에요.

 

😤핀커스 주커만은 누구?

  주커만은 이스라엘(Israel) 텔아비브(Tel Aviv)에서 태어났어요. 7살에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고, 8살 때 텔아비브음악원에 들어가 정식으로 음악을 배울 만큼 어린 시절부터 재능을 인정받았죠. 1962년에는 줄리아드 음악학교에 입학하였고,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Isaac Stern, 1920~2001)과 파블로 카살스(Pablo Casals, 1876~1973)의 후원을 받으며 공부했어요. 1967년 줄리아드를 졸업 후 미국에서 독주자로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1967년 당시 세계 최고 권위 있는 레벤트 국제 콩쿠르(Leventritt competition)에서 정경화(1948~)와 공동 우승하며 명성을 얻었어요. 이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New York Philharmonic) 등 세계적인 교향악단과 협연을 지속하며 바이올린 거장으로 인정받아요. 현재 뉴욕 맨해튼 음대(Manhattan School of Music, MSM) 소속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지금까지 7차례나 내한공연을 진행했으며, 현재 맨해튼 음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고소현(2006~)을 가르치고 있죠.

👉고소현은 누구야?

  신동으로 불리는 바이올리니스트예요. 2016년 내한한 핀커스 주커만의 눈에 띄어, 그와 함께 무대에 섰고, 공연 후 자신에게 바이올린을 배우라는 주커만의 권유에 따라 유학길에 올랐죠. 지난해는 TV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바이올린 영재역할로 출연하여 스타성을 갖춘 연주자로 촉망받고 있어요.

 

🤷‍♀️아시아계 비하, 처음이 아니라고?

  주커만의 아시아 비하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해요. 과거 중국인의 연주를 비하하는 발언을 했었는데요. 이번 막말을 계기로 다시 화제가 되고 있어요. 당시 주커만의 발언 영상이 SNS에 이미 확산 중인데요. 그 영상에서 주커만은 “중국인 여러분은 결코 메트로놈(metronome)을 사용하지 않는다. 단지 빠르고 시끄럽게 (연주)할 뿐”이라며 “여러분은 빠르고 시끄러우면 최고인 줄 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라고 말하죠. 이번 막말과 마찬가지로, 이 영상에서도 중국인 음악가들의 연주와 음악에 대한 생각을 자신만의 기준에 가두고 있는데요. 이렇게 주커만은 아시아계 음악인들에 대한 인종적 고정관념으로, 그들의 음악을 틀에 가둔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받고 있죠.

* 메트로놈 : 음악 박자를 측정하거나 템포를 나타내는 기구

 

🧯문제에 대한 관계자의 대응도 중요해!

  이번 주커만의 발언과 관련해 그를 초청한 줄리아드 음악원과 소속 기관인 맨해튼 음대에도 책임을 묻고 있어요. 줄리아드 음악원은  “그의 무감각하고 모욕적인 문화적 고정관념에서 나온 발언은 우리의 가치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발표했죠. 그리고 논란이 된 주커만의 강의 영상을 비공개 처리했어요.

  그의 소속학교 맨해튼 음대의 제임스 갠드리 학장도 입장을 발표했는데요. 그는 “주커만은 부적절하고 모욕적인 언급을 했고, 이는 잘못된 발언”이라면서도 “그가 앞으로는 더 잘할 것”이라고 전했죠. 이에 대하여 대중들은 주커만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내리지 않았고, 주커만이 반성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그를 지지하는 말을 했다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인데요.

  게다가 갠드리 학장의 이번 대응은 지난해 인종주의 논란에 휩싸인 도나 본 오페라 예술감독 때와 다른 태도를 보여줘서 논란이 되고 있어요. 당시 본 감독은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적 묘사를 담은 프란츠 레하르(Franz Lehar, 1870~1948)의 <미소의 나라(Das Land Des Lachelns)> 상연을 앞두고 진행된 온라인 질의응답에서, 상연 이유에 관한 질문을 받았는데요. 본 감독은 "연결을 끊으라"라며 답변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어요. 이런 인종차별적 행동으로 인해 그의 해임을 요구하는 온라인 청원을 진행했고, 결국 그는 예술감독 자리를 내려놨어요. 당시 본 감독을 사임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학교 측의 어떠한 징계도 없이, 말로만 사건을 무마하려 해서 비판 받고 있어요.

 

🎻클래식계의 인종차별

  세계 최정상 오케스트라라고 불리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Wiener Philharmoniker)는 전통적으로 오스트리아인 단원만을 채용해왔어요. 과거 일본인 튜바 연주자 스기야마 야스히토라가 빈 필에 입단하려고 했으나 '실력 부족'이라는 이유로 불합격한 사례가 있어요. 그 후 스기야마는 미국의 대표적 교향악단인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Cleveland Orchestra)의 튜바 수석으로 채용되면서, 빈 필의 불합격 처리가 타당하지 않음을 증명했죠. 현재는 빈 필에 외국인 단원들도 제법 있지만 대부분 빈 음대에서 공부했거나, 전 현직 빈 필 단원의 제자 등 빈 필 고유의 연주법을 배운 사람들이죠. 이렇게 클래식의 고향 유럽에서는 인종차별 문제는 지속적으로 대두되고 있어요.

  2019년 독일의 신문사 벨트(Welt)에서 독일 오케스트라와 인종 차별 문제를 다루기도 했어요. 당시 기사에서는 한국을 포함한 동양인들이 유럽인들보다 기회를 잡기 어렵다는 의문을 제기했죠. 기사에 따르면 그들이 오디션에서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0초인데, 이러한 연주 기회를 얻는 것조차 힘들다고 말해요. 이것이 인종차별의 문제인 것인지, 아니면 수많은 지원자를 챙기기 어려운 오케스트라의 사정 때문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어요. 하지만 같은 학교, 같은 교수 아래서 배우는 유럽 출신 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기회에 차이가 없다고 증명하기는 어려운 것이죠. 
 
 

🌾주커만, 그의 마음은 갈대

  이번 그의 발언을 듣고, 국내 팬들은 2016년 일화를 떠올리게 되었는데요. 그는 2016년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차세대 바이올린 유망주들을 대상으로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했어요. 이날 주커만은 당초 예정되었던 레슨 시간을 30분가량이나 넘기며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줬죠. 클래스가 끝난 후에 그는 ‘교육생들이 다들 재능이 엄청났고 배우려는 의지가 너무나 강했다며 몇몇은 호주머니에 넣어 데려가고 싶을 정도’라고 매우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음을 전했는데요. 게다가 레슨에서 만난 학생을 미국으로 데려가 직접 트레이닝 시키고 싶다는 의사도 밝혔죠.

  또한 1967년 레벤트릿콩쿠르에서 만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첼리스트 정명화(1944~)를 떠올리며, 대단한 연주자들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1979년 그가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와 2016년 한국은 딴 세상처럼 다르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는 게 너무나 멋있다는 방한 소감도 전했죠. 과거 그의 발언은 그냥 해외 팬을 위한 립 서비스였던 걸까요? 이렇게 한국과 인연이 깊은 그가 인종 차별적 발언이라니! 그를 사랑했던 국내 팬들은 더욱 충격을 받고 있어요.

 

📃그냥 넘길 수 없지, 반크가 나섰다!

반트가 제작한 포스터

  사이버 외교 사절단 반크(vank)는 지난 15일, 이번 주커만의 막말에 대응하는 캠페인을 시작했어요. 캠페인은 주커만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요구하는 항의서한 발송, 맨해튼 음대에 징계를 요청하는 국제 청원, SNS를 중심으로 '아시안을 향한 인종차별을 멈춰달라'라는 내용의 포스터 배포 등을 진행 중이에요. 포스터는 한국어와 영어로 제작돼 현재 SNS에서 활발하게 공유되고 있죠.

  반크는 주커만이 유대인이라는 점에 착안해 비판의 목소리를 담은 포스터를 제작했어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Auschwitz Concentration Camp) 비극의 시작은 혐오였고, 홀로코스트(Holocaust)와 같은 나치(Nazi) 전쟁도 인종차별로 인해 시작되었다는 점을 꼬집었죠. 주커만 역시, 그의 부모가 폴란드의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1947년 이스라엘로 이주한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는데요. 역지사지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이런 인종차별적 발언은 더욱 할 수 없지 않았을까요?

 

 

💬 Editor’s Comment

  클래식의 고장인 유럽에서 아시아인의 연주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어요. 마치 우리나라 국악을 유럽인들이 연주하였을 때 오는 이색적인 느낌일까요? 하지만 음악, 예술은 특정한 국가 소유의 언어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인간의 심리적 교류를 음악은 가능하게 해주니까요. 이런 시각에서 우리는 음악이란 피부색에 따라 소유가 나뉘는 영역이 아닌, 모두가 같이 소통하는 언어임을 잊지 말았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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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07-21

키워드

#클래식 #바이올린 #주커만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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